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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의 考古野談

도굴이라는 이름의 전차, 석가탑으로 돌진하다

  • 김태식|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언론인

도굴이라는 이름의 전차, 석가탑으로 돌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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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 부인하다 망신당한 경찰

이에 문화재관리국은 14일 긴급회의를 열어 석가탑과 나원리 오층석탑 국보 훼손 사건 진상을 가리기 위해 미술사학자인 진홍섭 이화여대 교수를 단장으로 하는 조사단을 구성해 15일 아침 현지로 급파했다. 조사단에는 생물학 전공인 박만규 문화재위 제3분과 위원장과 지질학 전공인 같은 분과 손치무 위원, 황수영 박사, 최순우 국립박물관 미술과장이 포함됐으며, 문화재관리국 관련 직원 3명을 합친 8명으로 구성됐다.

이를 결정한 회의에서 앞서 석가탑 훼손 상황을 조사하고 상경한 황수영은 “훼손 원인이 외부에서 가해진 인위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탑을 해체·복원할 것까지는 없으나, 사리가 있는지 없는지는 밝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는 결국 정확한 훼손 상태 확인과 훼손 부위 수리를 위해 그해 연말 탑을 해체 복원하기에 이른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더불어 이 해체를 통해 석가탑은 신라시대 김대성에 의해 건립된 이래 단 한 번도 해체된 적 없다는 신화도 붕괴된다.

이렇게 구성된 문화재위원회 2차 조사단은 16일 오전에는 나원리 오층석탑 훼손 현장을 점검한 결과 이 역시 탑사리를 훔쳐내기 위한 도굴단 소행으로 결론을 내린다. 문화재위는 그 근거로 5층 노반(露盤·탑 상부 부재 중 하나) 위에서 길이 50㎝인 ‘바(bar)’가 발견된 데다가, 4층 옥개석 지붕 위에서는 길이 11㎝, 두께 7㎝의 나무토막 3개와 길이 20㎝, 두께 7㎝인 나무토막 1개를 포함한 모두 4개의 나무토막이 발견된 점을 들었다. 이들 나무토막은 조사 결과 무거운 돌을 들어올리는 ‘잭(jack)’을 대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아무튼 이런 사태 전개는 점점 경찰을 궁지로 몰고 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반응이었겠지만, 석가탑 파손 부위에서 인위(人爲)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던 경찰은 이내 허무하게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것도 같은 경찰에 의해 무리한 억측이었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석가탑 도굴단이 검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굴꾼 일당 체포는 불국사 파출소에 수사본부를 차린 현지 경찰의 몫이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서울시경에서 공을 채갔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이런 사건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경찰의 특진(특별승진)이 걸려 있게 마련이다. 범인을 체포한 경찰관에겐 한 계급 특진이라는 은전이 주어진다.



그러니 같은 경찰이라 해도, 특진 앞에서는 양보나 아량이 끼어들 틈이 없다. 한데 그 공을 경주나 경북도 아닌 서울시경이 낚아채간 것이다. 현지 경찰은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마다 나오는 볼멘소리가 중간에 가로챘다는 말이다. 실제 이 사건에서도 현지 경찰의 이런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기차는 이미 떠난 뒤였다.   



재벌가로 불똥 튄 도굴 수사

도굴이라는 이름의 전차,  석가탑으로 돌진하다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왼쪽)과 석가탑  [김태식 제공]

경찰수사본부가 석가탑 도굴범 용의자로 체포한 채모 씨와 김모 씨 두 사람은 나중에 드러났지만, 석가탑 도굴범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전연 예상치 못한 사실이 드러났다. 채모 씨가 경북 영덕의 신라고분을 도굴해 얻은 구슬 300여 점과 비취 9개(시가 100만 원 상당) 골동품을 대재벌 이모 씨의 형 이병각 씨에게 팔아넘긴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당시 언론보도에서 말하는 대재벌 이모 씨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었고 이병각은 삼강유지라는 회사 회장으로 주거지가 서울 정릉이었다.

한데 이병각의 장물 구입 사건  결말은 이병각이란 거물의 체포였다. 나아가 실로 희한하게도 이병각을 둘러싼 고미술 도굴 커넥션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진짜 석가탑 도굴단을 붙잡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전개된다. 더욱 묘한 것은 석가탑 도굴단 검거는 현지에 수사본부를 차린 현지 경찰 몫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도대체 무슨 일들이 펼쳐졌을까.

9월 18일 밤, 서울시경은 문화재 도굴단을 검거했다고 발표한다. 검거자 중에는 경주시 배반동에 거주지를 둔 주범 김모(45) 씨를 필두로 부두목 윤모(39) 씨와 유모(27) 씨가 있었다. 이튿날 오전 서울시경은 이들을 포함한 도굴단 5명을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하고 이들에게서 문화재 도굴품을 구입한 장물아비 2명을 장물취득 혐의로 구속하는 한편 달아난 일당 7명을 수배했다.

더불어 경찰은 장물아비들한테서 유물을 구입한 이병각 씨도 장물취득 혐의로 수배하는 한편, 정릉동 이씨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았다. 도굴범 중에서 부두목 격인 윤씨의 이력이 독특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10여 년간 수위로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문화재에 대한 감식안을 얻었을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도굴단은 같은 해 3월 초 경주 남산사 절터를 도굴해 통일신라시대 순금 불상 2점을 수습해 이를 골동품상인 김모 씨에게 50만 원을 받고 팔았다. 김씨는 이를 다시 이병각 씨에게 250만 원을 받고 매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포함해 여죄 추궁 과정에서 드러난 이들의 도굴 행각은 전후 6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이들의 범행 대상에는 경남 양산 통도사를 비롯한 유명 사찰이 포함됐다. 동아일보 9월 23일자 3면 보도를 보면 당시 경찰은 이병각 씨의 정릉 집을 압수수색해 11종 226점의 문화재를 압수했다. 경찰은 이를 문화재관리국에 감정 의뢰하는 한편 23일에는 압수품을 언론에 공개했다. 

경찰이 이들의 여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더욱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이 바로 석가탑 도굴을 시도한 주범임이 드러난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9월 3일 밤, 택시를 대절해 불국사에 도착해 미리 준비한 ‘잭’으로 석가탑을 두 번 들어올렸으나 보물을 발견하지 못했고, 5일 밤에 다시 3번을 들어올렸으나 보물이 없어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석가탑 도굴범 검거라는 공로는 서울시경이 차지하고 말았다.
 
한데 이 석가탑 도굴단 중 부두목 윤씨와 유씨가 수사가 시작된 9월 12, 13일 이틀간 정릉동 이병각 씨 집에서 숨어 지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게 되자 경찰은 이씨를 장물취득 혐의 외에도 범인은닉 혐의로 수배한다. 결국 이씨는 21일 경찰에 검거돼 철야 조사를 받고는 구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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