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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 | 문재인 대통령에게 할 말 있다

무지, 착각 가득한 담론 현실 괴리 정책 이어질 것

노동운동가 출신 김대호의 장하성 비판

  •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itspolitics@naver.com

무지, 착각 가득한 담론 현실 괴리 정책 이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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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국 경제 주저앉게 할 수도
  • ● 황금 알 낳는 거위마저 죽여버리려 해
  • ● ‘직장계급 사회’의 약탈적 노동시장
이글은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의 역작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 대한 서평이자, 문재인 정부의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정책에 대한 비평이다. 장하성 실장은 고려대 경영대 교수 시절 경제민주화와 불평등을 주제로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한 권은 2014년 9월 출간한 ‘한국자본주의’, 다른 한 권은 2015년 12월 출간한 ‘왜 분노해야 하는가(한국자본주의2)’다. 첫 번째 책의 부제는 ‘경제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 두 번째 책의 부제는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이다.



文정부 정책 사령탑 맡아

‘한국자본주의’는 그가 20년 가까이 경제민주화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부닥친 비판과 논쟁을 정리한 것이다. ‘왜 분노해야 하는가’는 우리 시대 최대 난제인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정리했다. 장하성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 사령탑을 맡았기에 정부 정책에 그의 체취가 진하게 묻어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청년의 각성과 행동을 촉구하는 선동의 글 성격을 가졌는데, 이제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지침이 되면서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 이 책은 무지와 착각으로 점철돼 있다. 넘치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휘청거리며 힘겹게 걸어가는 한국 경제를 아예 주저앉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468쪽에 달하는 책에 담긴 주장은 한둘이 아니다. 필자 역시 깊이 공감하는 주장도 있다. 

“지금 한국 사회를 장악한 기성세대 중에서 세상의 변화를 주도할 리더를 찾을 수 없다”는 것, “정치, 경제, 노동, 종교, 교육, 언론, 문화, 법조, 시민사회 단체 등에 있는 사회적 기구들은 대부분 이념 갈등으로 대립화돼 있거나, 이해관계에 얽매어 기득권화됐거나, 또는 비판적 역할과 기능이 이미 크게 손상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청년의 각성, 참여, 행동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왜 분노해야 하는가’ 400~401쪽) 등에 전폭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책의 핵심 진단과 대안은 우리 청년들과 문재인 정부를 크게 오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402쪽에는 개미 방아(ants mill) 현상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군대개미라는 종은 대부분 장님으로, 앞서가는 개미의 페로몬 자취를 따라 움직이는데, 맨 앞에 가는 개미가 방향을 잃고 원을 그리면, 뒤따르는 수만 마리도 같이 원을 그리며 돌다가 결국 지쳐서 집단 폐사한단다. 장하성은 청년 세대가 군대개미처럼 기성세대를 따라가다가 비극적 죽음을 당하면 안 된다는 취지로 이 얘기를 했다. 그런데 필자는 장하성이야말로 수백만 명의 청년과 문재인 정부를 파멸로 이끄는 향도 개미가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빈부격차 핵심 원인은?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통해 토해낸 장하성의 핵심 지론은 이렇다.

“한국의 불평등의 근원은 재산의 격차보다는 소득의 격차이며, 소득의 격차는 임금의 격차로 만들어진 것이며, 임금의 격차는 고용의 격차와 기업 간 불균형에서 찾아야 하며, 고용의 격차와 기업 간 불균형의 책임은 재벌 대기업에게 있다.”(28쪽)

장하성은 한국에서 불평등의 근원은 재산이 아닌 “소득 불평등과 고용 불평등”이라는 주장이 “기존의 불평등에 대한 논의들과 구별되는” 자신의 독창적 논리라고 자부한다. 재산의 격차보다 소득의 격차가 빈부 격차의 핵심 원인이라고 하는 근거는 “모든 계층에서 노동소득(임금)이 전체 소득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평균적인 가계의 경우 재산 소득은 가계 소득의 1%도 되지 않고, 소득 상위 10%에 속하는 고소득층도 재산소득(이자, 임대료, 배당 등)은 5%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25쪽)

장하성은 임금 격차의 뿌리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된 고용 불평등”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간의 불균형”을 지목하고, 그 책임은 “재벌의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태”에 있다고 했다. 재벌 그룹의 주력 기업인 초대기업이 분배구조 악화 내지 빈부격차의 핵심 원인이라고 한 근거는 기업의 고용과 순이익 비중 통계다.

“한국에는 약 50만 개의 기업이 있다. (…) 재벌그룹에 속하는 100대 기업의 매출액 비중은 29%, 모든 중소기업은 35%다. 재벌 100대 기업이 고용하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4%에 불과한 반면 중소기업은 72%다. (…) 재벌 100대 기업은 한국 모든 기업 순이익의 60%를 차지한 반면 중소기업은 35%에 불과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하청 구조 정점에 있는 초대기업이 고용을 만들어내지 않으면서 이익을 독차지하기 때문에 절대 다수의 고용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은 정상인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간신히 생존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2차 하청기업의 임금은 원청기업인 초대기업 임금의 3분1, 3차 하청기업은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 동일한 생산 사슬에 있는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사이에 이렇게 엄청난 임금 불평등은 어떤 합리적 경제이론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고용을 창출하지 않는 초대기업이 순이익을 독차지하는 지극히 불균형한 기업 생태계는 대기업이 ‘갑의 힘’이라는 시장 외적 요인으로 만들어낸 것이지 공정한 시장이 작동한 결과가 아니다.”(27~28쪽)



국가주의적 해법으로 내달려

여기서 장하성의 치명적인 오류 다섯 가지만 말하겠다.
첫째, 노동시장의 부조리(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고용 불평등)를 생산물 시장의 부조리(기업 간 불균형)의 그림자 내지 파생물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노동시장과 생산물 시장이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면서 각각의 부조리(불평등과 불균형)를 더욱 확대, 강화한다. 요컨대 한국 특유의 노동시장이 가진 심각한 부조리를 간과했다.

둘째, 생산물 시장 부조리의 핵심 원흉으로 초대기업을 지목하는 것이다. 초대기업 이상으로 부조리를 심화하는 노동조합, 공무원과 공공부문, 규제산업과 면허직업, 낡은 법·제도·규제를 간과한다는 얘기다.

셋째, 초대기업의 이익을 협력업체나 소비자에 대한 불법적 갑질=약탈의 산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불법적 약탈이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 검찰 등이 아무리 유능하고 공정해도 결코 처벌할 수 없는 합법적, 제도적 부조리다. 기업 간 생산성 격차와 대항력(불리한 거래조건 거부권) 격차를 간과하고 있다는 얘기다.

넷째, 한국의 불평등에서 재산 격차의 비중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 이 모든 무지와 착각의 뿌리에는 거래비용이나 위험과 이익 등을 타산해 움직이는 시장과 기업에 대한 몰이해가 자리하고 있다. 외주하청화, 비정규직 과다, 국내 투자와 고용 확대를 극력 기피하는 현상(사내유보금 등)의 원인과 구조를 이해 못하니, 이를 불법적 약탈이나 노사 간 힘의 불균형에 혐의를 두고, 규제와 징벌이라는 국가주의적 해법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세 번째 문제부터 살펴보자.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등 재벌 주력기업의 매출과 이익의 대부분은 해외시장에서 얻어진다. 국내 협력업체나 소비자에 대한 약탈은 한참 후순위다. 1차 협력업체의 경영성과와 임금도 원·하청 관계에 편입되지 않은 독립기업에 비해 대체로 좋다. 상당수 협력업체가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을 성토하지만,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훨씬 많은 기업이 잘나가는 재벌 대기업의 협력업체가 되지 못해 안달한다.

그런 점에서 장하성은 재벌 대기업의 많은 이익이 높은 생산성의 산물인지, 독과점이나 국가 규제에 의한 초과이윤의 산물인지, 사법적 수단으로 단죄해야 마땅한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태의 산물인지를 구분하지 않는다. 현실은 세 요소가 다 섞여 있게 마련인데 단지 ‘고용 4%를 차지하는 초대기업이 순이익의 60%를 차지한다’는 것을 근거로 사법적 단죄가 가능한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태”의 산물로 규정한다.

물론 정글과 같은 시장 생태계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가진 갑의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태가 없을 리가 없다. 공정위와 사법기관이 매의 눈으로 살펴 강력하게 응징하면 이런 행태를 많이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격차의 근원인 기업 간 생산성 격차와 불리한 거래 조건을 걷어차고도 살아갈 수 있는 ‘을’의 대항력 격차마저 줄일 수는 없다.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을 호소하는 협력업체들도 재벌 대기업이 완전히 공정하고 합법적인 경쟁 입찰을 통해 부품이나 자재를 공급받는다고 했을 때 거래 조건이 지금보다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독과점 시장구조 등으로 원청이 하청의 목줄을 쥐고 있는 이상 거래 조건은 나쁠 수밖에 없지만 사법적 수단이나 도덕적 호소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1960~80년대 정부 주도의 이권 몰아주기 방식의 산업 발전 정책에 따라 만들어진 수많은 국가독점기업, 민간 독과점 시장구조와 높은 진입장벽은 불공정의 본산이지만 사법적 단죄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경쟁, 개방, 민영화 정책 등으로 해결할 문제다.
 


내수 위주 계열사의 ‘갑질’

한국 재벌 대기업의 문제는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등 해외에서 돈 많이 벌어오는 간판 기업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해외에서 돈도 잘 못 벌어오면서 간판 기업에 기대어 연명하고, 더 나아가 시장 생태계까지 교란하는 수많은 내수 위주 계열사에 있다.

이들은 대체로 국내 독과점 사업자인데,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기에 갑질도 더 심하게 한다. 결정적으로 혁신적인 독립 중소·중견기업이 자라 올라오는 것을 방해한다.

한국 재벌 대기업의 주요한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해왔다. 과잉중복투자, 문어발식 확장(경제력 집중), 황제경영, 일감 몰아주기, 변칙 편법 상속…. 그런데 지금의 문제는 삼성전자 등 몇몇 기업을 빼놓고는 중국의 빠른 추격에 밀려 경쟁력이 뿌리째 흔들리는 데 있다. 하지만 이들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 주도 산업과 혁신적 중소·중견 기업이 별로 없기도 하고, 나오기도 힘든 구조다. 단적으로 한국의 생산물 시장, 노동시장, 금융시장은 공히 소비자, 노동자, 약자 보호라는 이름으로 온통 기득권 보호용 규제로 친친 감아놓았다. 핵심 생산요소인 돈과 인재에 대한 유인·보상체계도 지극히 안정지향적이고 지대추구적이다. 고시·공시 열풍은 이 같은 풍토의 기념비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장하성은 유력 재벌의 계열사들과 중소규모 재벌의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태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간판 기업의 많은 이익과 연결해 국가 규제와 사법적 수단으로 간판 기업을 포함해 재벌 전체를 옥죄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1960~80년대 산업정책이 낳아 기른 몇 안 남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조차 죽여버리거나, 별 볼일 없는 알을 낳는 거위로 만들려고 한다.

사실 장하성의 치명적인 맹점은 첫째, 둘째 오류다. 노동시장의 이중화의 책임을 오로지 생산물 시장의 이중화에만 묻고, 더 나아가 초대기업 오너에게 묻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재벌 대기업도 국가독점기업(공기업)도 자본과 노동의 결합체다. 자본이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태로 초과이윤을 얻는다면 노동은 자본 논리의 집행자이자, 그 과실의 최대 수혜자다. 임금 등 근로조건은 한번 올라가면 내려올 줄 모르기에, 노동의 초과 임금은 자본으로 하여금 지속적인 초과 착취에 나서도록 압박한다. 초과이윤과 초과 임금은 ‘악순환’ 하면서, 협력업체나 소비자에 대한 가혹한 갑질을 초래하게 돼 있다. 노동(시장) 역시 불법적 갑질에 큰 책임이 있는데 장하성은 여기에 대해 너무 관대하거나 둔감하다.  
 
노동시장의 이중화를 생산물 시장 이중화의 단순 파생물로 보는 사고방식이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한국에서는 잘나가는 기업에 다니면, 직무에 상관없이 임금 등 근로조건이 좋은 게 당연하다는 사고방식이 상식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진국의 노동시장은 대체로 산업이나 지역 차원에서 직무성과에 따른 근로조건의 표준(직무성과의 공정 가격)이 있다.

천문학적 수익을 내는 회사를 다녀도 직무성과가 낮으면 고임금자가 되지 못한다. 장기근속을 한다고 해도 생산성(숙련)이 허용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임금이 계속 올라가지도 않는다. 업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근로자가 있다면, 정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큰 어려움 없이 합법적으로 내보낼 수가 있다.



한국은 ‘직장계급 사회’

한마디로 선진적 노동시장은 공정성, 연대성, 유연성과 적정한 사회안전망에 의해 생산성과 임금 등 근로조건이 긴밀히 연동돼 있다. 또한 기업 횡단적인 표준이 관통한다. 그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어디 다니느냐’보다 ‘무슨 일을 하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어디 다니느냐’가 가장 큰 관심사다. 소속 직장의 성과를 근로자 개인의 성과와 동일시하는 문화 때문이다. 이런 문화에서 최고 선망하는 직장은 세금이나 독점 요금으로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공공부문일 수밖에 없다.

사람값이 그 본원적인 능력이 아니라 소속 직장에 따라 천양지차가 나는 직장계급사회를 만드는 노동시장의 부조리를 바로잡지 않고는 재벌 대기업의 초과 착취와 과소 고용을 바로잡을 수는 없다.

장하성이 한국의 불평등에서 재산 격차의 비중을 과소평가하는 이유는 가계금융복지조사 통계에서 재산 소득이 5% 내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요한 재산소득인 가계의 임대소득은 기본적으로 비과세이기에 상당 부분 누락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건물주의 재산소득은 근로소득, 사업소득 등 다양한 형태로 변신한다. 단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등 한국의 자산가들은 대체로 자신과 가족이 대주주인 자산 관리회사(법인)를 만들어 가족을 직원으로 등록하는 등의 방식으로 근로소득을 얻는다.

박광온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7월 기준 18세 미만 직장가입자 수는 4034명으로 이 가운데 사업장 대표로 등록돼 있는 경우는 206명이었다. 소득이 가장 높은 대표자의 연령은 10세로 연봉 3억6000만 원이 넘었고, 2위는 16세로 연봉 1억6067만 원이었다. 4세 대표자가 연봉 1억6000만 원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부동산임대사업서비스 업체 소속이었다. 이는 결국 부동산 임대 사업소득을 근로소득으로 전환해 합법적으로 증여하는 수법이라고 봐야 한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파악되는 재산소득의 비중이 5% 내외라고 해서 재산 격차가 별것 아니라는 논리는 저수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양을 보고, 저수지의 크기가 별것 아니라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분산·완충 시스템의 붕괴

망치를 들면 모든 것이 못의 문제로 보인다고 공정위와 검찰 등의 사법관료들은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문제를 대체로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부도덕=갑질의 문제로 본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노동조합은 문제를 노동과 자본의 역관계 틀로 들여다본다. 장하성의 사고방식에는 이 두 가지가 결합돼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어떤 경제적 논리도 지금과 같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것은 강자와 약자의 힘의 불균형이 결정한 것이다. 1990년대 초에는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의 90%이었던 것이 지금은 60% 수준까지 격차가 커졌다. 과거보다 경제성장이 더뎌지고, 고용이 늘지 않으니 노동자보다 사용자의 힘이 강해져서 임금격차가 커진 것이다.”(407쪽)

장하성은 ‘한국자본주의’에서도 700조 원 넘게 쌓인 사내유보금에 대해 투자금은 주식이나 부채로 조달하는 것이 더 비용 효율적이라면서, 한국에서 배당도 투자도 늘지 않고 사내유보금만 마냥 쌓여가는 현상은 기업의 지분·지배 구조 문제와 시장의 검증을 회피하고자 하는 재벌 대기업의 꼼수로 봤다. 물론 그런 측면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수십 배 큰 구조적 요인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 산업과 기업의 국내 투자와 고용에 대한 위험(리스크)이다.



직고용 비중 낮은 까닭

외환위기와 김대중 정부의 4대 개혁(기업, 금융, 노동, 공공)을 계기로 ‘주식회사 한국’ 시절에 기업-금융-정부-노동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위험 분산·완충(Risk Hedging) 시스템이 거칠게 붕괴됐다. 그런데 낡은 위험 분산·완충 시스템은 붕괴됐지만, 새로운 시스템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경제에 미친 충격에 비하면, 고용유연성을 조금 늘렸다는 고용 법규는 새발의 피라고 봐야 한다.

단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30대 재벌 중 16개가 파산했다. 1997년 기준으로 29개이던 국내 은행은 대량 감원을 동반한 수차례 인수합병을 거쳐 현재 11개로 줄었다. 1945년 이전에 설립된 5개 은행(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 중에서 간판을 그대로 유지하고 독자 생존하는 은행은 하나도 없다. ‘대마불사 신화’는 확실히 붕괴된 것이다. 한편 파산한 재벌 대기업은 대체로 총수나 핵심 임원들이 회계조작, 배임, 횡령 등으로 거액의 추징금과 함께 형사처벌을 받았다. 동시에 기업 대출 등에 대한 연대보증으로 인해, 변칙적으로 빼돌려놓지 않은 재산은 대부분 잃어버렸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한국 기업은 금융과 부채로 인한 리스크를 훨씬 크게 느끼게 됐다. 2000년을 전후한 시기의 대우, 동아, 메디슨과 최근의 STX, 동부 등 주요 재벌 대기업의 파산 혹은 은행 주도 구조조정 과정을 통해 한국 금융은 관의 보호와 간섭 아래 성장해 덩치는 크되 머리는 나쁘고, 부모(관) 눈치나 보는 비만아나 다름없는 존재로 판명됐다. 금융의 노하우와 행태가 저열하고 예측불허면 기업들은 금융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 나라의 기업에 비해, 현금 보유량을 더 늘리고, 부채 비율은 더 줄여야 한다. 이는 기업으로서는 너무나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의 격차 확대 속도는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 특유의 약탈적 노동시장

한국 기업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정규직 직고용에 따른 리스크가 훨씬 크다. 비교우위 산업이나 잘나가는 기업은 고임금에다가 구조조정이 곤란한 직고용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더 적극적으로 외주하청화(고용의 외부화와 아웃소싱 등)에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업들의 해외 진출, 국내외 아웃소싱, 자동화 투자를 통한 단순 노동력 축소(구축)는 세계적으로 보편적 현상인데, 한국 기업들은 한국 특유의 위험 때문에 훨씬 더 적극적, 공세적으로 행해야 한다. 이것이 미국, 일본, 독일에 비해 한국 대기업의 고용 비중이 유달리 낮은 이유다. 한국 제조업이 산업용 로봇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유도 동일하다. 노동자 1만 명당 다목적 산업용 로봇 대수를 보면, 세계 평균은 66대이고, 제조업 강국인 독일이 292대, 일본 314대인 데 한국은 무려 478대다. 이는 로봇이 많이 필요한 산업구조(표준품 대량생산)와 고용에 대한 부담(공포)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한국 기업들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훨씬 강한 중국 리스크, 고용 리스크, 금융 리스크, 법·규제 리스크(정년 연장법, 청년고용할당제, 비정규직 규제, 노동시간 규제 등), 사법 리스크(통상임금, 휴일근로, 회계조작, 배임 등)로 인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보수적으로 경영해야 한다. 게다가 재벌 지배구조상의 결함(무능한 2세, 3세, 4세로의 승계 등)도 있다. 한국 기업이 국내 투자와 고용 확대, 특히 대기업화를 꺼리는 것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바뀐 위험, 완충 시스템과 한국 특유의 고비용 구조를 보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장하성 실장 등이 공유하는 ‘불법’ ‘착취’ 프레임에 입각한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담론은 기본적으로 세계화, 개방화, 지식정보화와 맞물린 산업, 기업의 생산성 격차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또한 기업의 위험 분산·완충 시스템 미비 문제도 간과하고 있다. 결정적으로는 한국 특유의 약탈적(지대추구적) 노동시장 문제와 공공부문 문제를 간과했다. 이를 고치지 않는 한 여름날 재래식 변소에서 구더기가 기어 나오듯 현실과 괴리된 정책 담론이 끊임없이 기어 나올 것이다.





김 대 호
● 1963년 경남 사천 출생
● 진주고·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
● 박영진열사추모사업회 간사
● 노동정책 잡지 ‘단결의 길’ 편집장
● 대우자동차 근무
● 現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 저서 :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 ‘한 386의 사상혁명’ ‘진보와 보수를 넘어’ ‘노무현 이후-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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