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 중에서 2010년대에 들어 자주 극화되는 인물이 광해군이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드라마 ‘왕의 얼굴’(2014)과 ‘화정’(2015) 등이다. 왜 그럴까. 광해군의 모습에 고 노무현 대통령이란 현실정치인이 투영됐기 때문이다. 광해군을 지지한 북인 세력이 소수 정파였다는 점, 그의 정책에 반대하는 기존 정치 세력의 저항이 거셌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닮았다. 여기에 명·청 교체기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를 해야 했다는 대외적 위기 상황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여 있는 대한민국의 현재진행 상황과 겹쳐진다. 또 임진왜란 이후 피폐해진 조선을 복구해야 했던 광해군의 시대적 과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빈부격차와 민생고에 시달리는 국민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현재의 시대적 과제와 오버래핑된다.
代立軍인가 代立君인가
이들 작품에서 광해군은 외적을 적극적으로 무찌르는 전쟁영웅이거나 나라를 걱정하는 책임감 있는 군주로 그려진다. 한편, 그는 적장자가 아니라 서자인 동시에 차남이 왕위를 승계했기에 적통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반대 세력에 의해 고립된 고독한 왕으로 묘사되기도 한다.올해 상반기 기대작 중 하나였던 ‘대립군’(정윤철 감독)은 그 광해군을 새롭게 다룬 영화다. 조선시대에 군대 징집을 피하려는 이들을 대신해서 군역을 해주는 대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종의 용병(대립군)이 존재했음을 알리는 자막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곧이어 1592년 평안도의 압록강 지역에서 조선인을 납치해서 데려가는 여진족을 습격하는 이들 대립군의 활약상을 보여준다. 이들이 여진족들을 죽이고 치열한 전투가 끝나자 조선 정규군 병사들이 그 수급을 베어 모으고 자기들의 공훈으로 기록한다.
이들 부대에 평양으로 집결하라는 군령이 하달되고 이들은 평양으로 가기 위해 일단 의주로 돌아간다. 의주에서 이들은 두 무리의 일행과 마주친다. 왜병의 침입으로 피란한 뒤 국경을 넘어서 명나라로 가려는 왕(선조) 일행과 왕이 없는 동안 분조(分朝)를 이끌고 전쟁을 치르는 책임을 맡은 세자(광해군) 일행이다. 광해군(여진구)이 이끄는 분조는 평안도 강계로 가서 신철 장군이 이끄는 군대와 합류해 대항군을 조직하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래서 압록강 변에서 돌아온 이들 정규 병사들과 대립군은 광해군과 분조를 호위해 강계로 간다. 광해군을 호위하는 왕실 근위병과 궁궐 나인은 일행에서 이탈해서 도주하거나 이동 중에 습격을 받아서 죽고 최후에는 광해군과 그를 따르는 조정 내 권신들, 그리고 대립군 일행만 남게 된다.
영화는 엉겁결에 세자가 된 광해군의 분조와 대립군 일행이 광해군을 암살하려는 자객들의 습격과 추격하는 왜병 부대를 피해서 강계까지 가는 일종의 로드무비이자 모험담으로 전개된다. 로드무비의 익숙한 문법은 주인공이 여행 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한층 더 성숙한 인물로 성장하는 것이다.
광해군은 원래 세자가 될 생각이 없었으나 부왕에 의해 세자로 임명돼 할 수 없이 분조를 이끌게 된다. 이렇게 왕 노릇을 대신하는 세자의 처지는 군역을 대신하는 대립군의 처지와 비슷해진다. 즉, 대립군의 군은 군대(軍)와 임금(君)을 동시에 의미한다.
민초보다 미래의 왕에 주목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객들의 습격을 받으면서 광해군은 자기를 죽이려 하는 조정 내의 반대 세력에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그런 반대 세력이 부왕과 관련 있음을 눈치채면서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기 신세를 한탄한다. 그러나 광해군은 필사적으로 자기를 지키는 대립군의 모습과 전란으로 인해 터전을 잃은 백성의 모습을 보면서 죄의식과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대립군’에서 대립군의 수장인 토우(이정재)라는 인물이 수호자이자 멘토로 등장하면서 그들이 대립군이 된 계기와 전장의 생리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광해군을 일깨워준다. 그런데 영화의 이야기는 광해군과 토우라는 인물의 각자 이야기를 수렴하지 못했다. 그래서 광해군의 성장담이 부각되는 데 비해 대립군이 된 민초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했다.
클라이맥스는 텅 빈 강계 관아에 도착한 광해군 일행과 대립군이 고을 백성을 이끌고 인근의 산성에 모여들어 추격해온 왜군에 맞서 수성 전을 벌이는 장면이다. 그전까지 광해군은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사춘기 소년이자 호위병과 나인의 보호를 받는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다 이 수성전에서 직접 활을 쏘면서 왜병과 맞서 싸우며 사나이로 성장한다. 치열한 전투와 대립군의 희생을 통해 산성에서 탈출한 광해군이 신철 장군의 진영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때 광해군은 나라를 구하겠다는 결의에 가득 찬 인물로 바뀌어 있다.
역사에서는 분조를 이끌게 된 광해군 말고도 광해군의 형인 임해군이 의병을 모집하는 임무를 받고 함경도 지역으로 파견된다. 백성들은 포악한 임해군을 잡아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에게 넘긴다. 영화에서는 가토에게 붙들려온 임해군의 모습만 보여준다.
이때 임해군은 마치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기소된 재벌 2세나 3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아울러 부왕 선조는 원군을 요청한다는 구실로 명나라로 도망간 파렴치한 인물로 그려진다. 책임감과 의무감에 눈뜨는 광해군과 대비된다. 광해군의 심경 변화는 대립군과 피란민이라는 하층계급과 만남으로써 일어난다. 지배층의 엘리트가 하층계급의 건강성과 희생정신을 접하면서 그들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그 건강성을 체득하는 서사는 대중영화의 전형적 코드다. 그래서 그는 일반인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영웅으로 거듭난다. 이러한 결론은 대중이 현실에 대한 불만, 특히 무책임한 지배층의 부도덕성에 공분을 공유하는 경우에 대중의 지지를 받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대중이 탄핵 과정을 통해서 박근혜 정부가 몰락하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을 받는 과정을 보면서 무책임성과 무능함에 대한 심판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며 보궐선거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안 돼 그에 대한 기대감이 큰 시점이다. 이런 점에서 대립군은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측근그룹을 향한 헌사로 비치기도 한다. 다만 이 영화는 만듦새가 허술 해서인지 대중의 지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현 시국이 너무 빨리 변하는 탓일까.
노광우
●1969년 서울 출생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 :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