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서울 은평구 연서로 13길 29-23
개관 2015년 11월 13일
수상 2016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 서울시건축상 대상
설계 최재원
문의 02-357-0100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이 건물이 가장 자랑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3층 높이로 아래서 위로 갈수록 작아지는 50여 개의 직사각형 창으로 햇살이 쏟아지는 백색 공간에서 야트막한 계단이나 응접실 분위기 의자에 편안히 앉아 독서 중인 사람들이 보인다. 정면에서 볼 때 왼쪽 흰 벽면에 고 신영복 선생이 쓴 ‘書三讀(서삼독)’이란 정갈한 한자와 한글로 된 설명문이 붙어 있다.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세 번을 읽어야 하는데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필자를 읽고, 마지막으로 그를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한다는. 다시 그 왼편으로는 그물로 된 서가에 꽂힌 책들이 제법 장관을 이룬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서울 은평구의 구립도서관 4곳 중 하나다. 다른 구립도서관은 산기슭이나 공원 같은 데 위치한 반면 이곳은 주택가 한복판에 있다. 그것도 2~4층짜리 다세대주택이 빼곡히 들어선 공간이다. 도서관 부지 역시 원래는 5채의 단독주택과 3채의 다세대주택이 있던 곳이었다. 부지 매입은 2008년 이뤄졌지만 도서관 건립 예산이 부족해 차일피일 미뤄졌다. 머리를 맞댄 주민들은 새로 도서관을 짓기보다는 8채 건물을 모두 도서관으로 활용하자는 안을 냈다. ‘도서관마을’이란 호칭의 출발점이었다.
서울시 주민참여사업으로 선정돼 부족한 예산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건축설계공모에 나섰고 디자인그룹 오즈의 최재원 소장(현 플로건축사무소 소장)의 설계가 당선됐다. 핵심은 8채 건물을 하나의 품에 안아서 엘리베이터나 장애인시설을 통합·운용해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신 해당 부지에 형성된 골목길 풍경을 도서관 내부로 끌어들이자고 제안했다.
8채 건물 중 1970년대 지어진 단독주택 5채는 허물었다. 그 자리에 금속성 외벽으로 돌출한 100석 규모의 청소년공연장이 지어졌다. 그리고 남은 2층, 3층, 4층짜리 다세대주택은 그 구조를 그대로 살리면서 공간을 재활용했다.
자, 그럼 도서 열람 공간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한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쓰던 거실과 안방, 사랑방, 아이들 공부방이 도서관 곳곳에 개미굴처럼 숨어 있는 55개의 열람 공간으로 변신했다. 신발 벗고 들어가 아이들이 맘껏 뛰어다닐 수 있도록 한 어린이도서관처럼 제법 넓은 공간도 있지만 단둘이 앉을 수 있는 다정한 공간도 있다. 구산동 마을역사자료를 모아놓은 곳도 있고 은평구 출신 만화가들 만화만 모아놓은 곳처럼 남다른 공간도 숨어 있다. 올망졸망한 그런 공간의 열람 좌석을 합쳐놓으면 중소 도서관 열람실 규모에 필적하는 300석이 된다고 한다.
옛날 주택이었던 공간이 도서관이 되면 왠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조명장치와 각종 배관장치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천장을 높게 했다. 또 옛 주택의 외벽과 외벽 사이 공간을 유리창으로 노출해 시각적 시원함을 확보했다. 마지막으로 층고가 달라서 생기는 옛 주택의 옥상 공간을 정원화해 2~5층까지 층마다 외부로 노출된 차별화된 휴식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이런 독특한 공간 구성으로 인해 이 도서관은 올 때마다 새롭다. 저마다 층고가 다른 건물을 하나의 층으로 엮어내기 위해 직선계단과 회전계단이 교차하는 계단을 오르내리다보면 내가 서 있는 곳이 정확히 몇 층인지 헷갈릴 때도 많다.
이런 독특한 공간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소통의 건축’을 실현해냈기 때문이다. 마을도서관이 아니라 도서관마을을 꿈꾼 주민들의 역발상과 이를 최대한 실현하기 위해 골목의 추억마저 도서관 안으로 끌어들인 건축가의 독창성이 멋진 하모니를 빚어낸 것이다.
이 기발한 도서관 탄생의 산파 최재원 소장은 “건축을 소수의 창조적 예술로만 이해한다면 결코 체험할 수 없는 희열을 맛봤다”는 남다른 소감을 밝혔다. “처음엔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한다는 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죠. 하지만 그분들과 타산지석이 될 만한 건축물 답사까지 함께 다니며 함께 해법을 모색해나간 것이 제 건축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큰 성취감을 안겨줬습니다. 그런 체험이 있었기에 이제는 그러한 도전을 즐길 수 있는 여유와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