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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리뷰

고래의 전설

중국 애니 ‘나의 붉은 고래’, 일본 애니 ‘괴물의 아이’ 그리고 ‘모비 딕’

  • 권재현 기자 | confetti@donga.com

고래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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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고래. 국내에선 지난해 아웃도어의류업체인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 TV광고로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다 촛불시위 때 세월호 아이들을 업고 촛불의 바다를 건너는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더욱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됐다.

하늘을 나는, 그것도 떼 지어 나는 고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중국 애니메이션이 소개됐다. 6월 15일 개봉한 ‘나의 붉은 고래’다. 량쉬안(梁旋)과 장춘(張春). 두 신예 중국감독이 12년에 걸쳐 제작한 이 대작은 지난해 중국에서 개봉해 940억 원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물론 그걸 단순히 중국만의 역량으론 볼 수 없다. 이 작품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덴노(天皇)로 불리는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천공의 섬 라푸타’ 등에서 차용한 장면을 여럿 만날 수 있다. 음악은 제2의 미야자키 하야오로 불리는 호소다 마모루(細田守) 감독의 데뷔작 ‘시간을 달리는 소년’의 음악감독 요시다 기요시(吉田潔)가 맡았다. 미국에서 방영된 TV 애니메이션 ‘코라의 전설’을 제작한 한국 스튜디오 ‘미르’도 제작에 참여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중국 애니메이션이라 하는 이유는 그 핵심 모티프가 중국 고전 ‘장자’ 소요유 편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거대한 새 붕(鵬)의 전설이라는 데 있다. 장자가 ‘구라꾼’이 많기로 유명한 중국에서 ‘구라의 지존’으로 꼽히는 이유도 거기서 연유한다.
 
세계 도처에는 엄청나게 큰 새에 대한 전설이 많다. 그리스신화 속 그리핀, 남미의 콘도르, 인도의 가루다(금시조) 등등. 하지만 크기에서 붕에 필적할 새는 없다. 몸통의 길이가 수천 리(1000리는 400km)에 이르고 날갯짓 한 번에 파도가 한반도 크기인 3000리나 솟구친다. 뭐 이 정도면 거의 우주새라 할 만하다.

그런데 붕은 원래 북명(北冥)이라는 북쪽 바다에 사는 곤(鯤)이라는 물고기다. 역시 길이가 수천 리 되는 큰 물고기인데 이 물고기가 새로 변신해 붕이 되면 남명(南冥·조선시대 선비 조식의 호 남명은 여기서 따온 것)으로 불리는 남쪽 하늘로 날아간다 하였다.
‘나의 붉은 고래’는 붕의 전설에서 언급된 다음 단락에 주목했음이 틀림없다. ‘푸르른 하늘빛은 하늘의 본래 빛깔일까? 아득하게 멀어서 끝이 없어 그런 것은 아닐까.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붕정만리의 신화

하늘이 푸른 것은 햇빛의 장난이다. 햇빛에 숨어 있는 일곱 빛깔 가시광선이 대기를 통과할 때 파란색이 가장 많이 산란되기 때문이다. 바다가 푸른 이유도 비슷하다. 바다에는 물고기가 살고 하늘에는 새가 산다. 그럼 그 둘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나의 붉은 고래’의 상상력은 이 지점에서 잉태됐음이 틀림없다. 여주인공 ‘춘(春)’은 아득한 저 바다 깊은 곳, 인간의 영혼을 관리하는 마을에 산다. 인간의 영혼은 육신이 죽고 나면 고래가 되어 바다 깊숙이 감춰진 이곳에서 영면을 취하게 된다. 그 마을 사람들은 이를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는데 열여섯이 되면 고래로 변신해 인간세계를 탐방하고 오는 성인식을 치른다. 이때 변신한 고래는 이 마을의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고 이와 접한 바다를 다시 헤엄쳐 인간세계를 둘러보고 오게 된다.

그렇게 이 애니메이션 속 고래는 곤이기도 하고 붕이기도 한 존재다. 인간세계는 고래가 헤엄치는 남명인 셈이고 춘의 세계는 고래가 하늘을 나는 북명인 셈이다. 북명의 푸른 바다와 남명의 푸른 하늘을 하나로 엮은 상상력이 돋보이는 설정이다. 

‘나의 붉은 고래’는 여기에 인어공주 설화를 살짝 비틀어 주입한다. 북명에 사는 춘은 고래로 변신해 남명으로 구경을 나왔다가 위기에 빠진다. 그때 남명에 사는 소년 곤이 그 목숨을 구해주고 자신은 물에 빠져 죽는다. 춘은 그 곤의 영혼을 다시 인간세계로 돌려보내기 위해 인어공주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목숨을 건 도박에 나선다.

그 도박으로 아기고래로 환생하게 된 곤은 춘과 그녀를 짝사랑하는 죽마지우 추(秋)의 헌신적 보살핌으로 하늘로 비상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고래가 된다(물론 장자가 묘사한 곤의 크기엔 한참 못 미친다). 과연 곤은 붕이 되어 남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바다에 사는 곤이 붕이 되어 수만 리 하늘을 날 꿈에 부푼 마음에 빗대 벅찬 미래에 대한 동경을 붕정만리(鵬程萬里)라고 표현한다. ‘나의 붉은 고래’가 담아낸 붕정만리에는 미래에 대한 꿈만 깃든 게 아니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타인의 생명을 구하려는 지극한 사랑이 함께 깃들어 있다. 추와 춘, 곤의 엇갈린 희생적 사랑이다.



만신전의 세계관

‘붉은 고래의 전설’에는 앞에도 언급한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 대한 오마주가 넘쳐난다. 하지만 가장 크게 공명하는 작품은 ‘제2의 미야자키 하야오’로 불리는 호소다 마모루의 ‘괴물의 아이’다. 2015년 일본에서 개봉해 430억 원의 흥행수입을 올린 이 작품은 그해 11월 국내에서도 개봉해 ‘호소다 마모루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도심 속을 날아다니는 거대 고래 이미지는 이 작품이 원조라 할 만하다. 주인공 렌이 일본 도쿄 시내 상공에 출몰하는 거대한 고래의 영(靈)과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종반부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기 때문이다.

‘괴물의 아이’는 ‘나의 붉은 고래’와 세계관도 공유한다. 우선 인간세계와 마법세계가 맞닿아 있다는 세계관이다. ‘나의 붉은 고래’에선 인간세계의 바다와 북명(영화에선 이름이 등장하지 않아 기자가 붙인 이름)의 하늘이 맞닿아 있다. ‘괴물의 아이’에선 고아가 된 주인공 렌은 도쿄 시부야(澁谷) 거리를 헤매다 괴물의 세계인 ‘주텐가이(澁天街)’로 들어가게 된다. 실사의 세계인 속(俗)과 만화적 상상의 세계인 성(聖)이 미묘하게 연결돼 있는 것이다.

주텐가이에서 살아가게 되는 렌은 곰을 닮은 괴물로 엄청난 힘을 지녔지만 ‘왕따’인 구마테쓰의 유일한 제자가 돼 사실상 부자의 연을 맺게 된다. 인간의 관점에선 괴물이긴 다 똑같지만 그 괴물들에게서 다시 괴물취급을 받는 구마테쓰와 인간이지만 ‘괴물 같은 아이’ 인 렌의 교감은 춘과 곤의 교감을 닮았다. 속한 세계는 다르지만 같은 영혼의 떨림을 지녔음을 발견하고 목숨까지 바쳐가며 서로를 위해 헌신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주텐가이나 북명이 만신전의 세계라는 점이다. 주텐가이의 주민은 동물의 형상을 한 인간이다. 만물에 신령이 깃든다는 일본식 애니미즘을 구현한 세계다. 북명의 주민은 인간과 요괴가 뒤섞여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동물 또는 식물의 영(靈)을 지닌 존재라는 점에서 주텐가이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춘의 할아버지는 오동나무의 영이 서렸고 할머니는 거기에 깃드는 봉황의 영이 서렸다. 영화 후반부에 가면 춘도 할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나무의 영이 깃든 존재임이 밝혀진다.


악의 근원은 괴물 아닌 인간

두 작품의 또 다른 공통점은 마법의 세계에 악(惡)이 스며들게 되는 것이 바로 인간 때문이라는 설정이다. 주텐가이에서 악의 씨앗을 뿌리는 존재는 인간이다. 바로 렌과 이치로히코다. 렌이 구마테쓰의 자식이듯 이치로히코는 멧돼지 형상의 괴물 이오젠이 인간세계에서 거둔 양아들이다. 구마테쓰와 이오젠은 주텐가이의 차기 수장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라이벌이다. 인간관계에선 둘 중 하나가 악의 유혹에 넘어가기 마련이지만 둘은 끝까지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 문제는 그들이 인간세계에서 데려온 두 아들에게서 발생한다. 렌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힌 이치로히코가 점차 악의 화신으로 변해가는 것.

렌 역시 어느 정도 자란 뒤 자신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악의 씨앗을 발견한다. 그래서 이를 달래려 인간세계를 넘나들며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탐독하다 문제 해결의 열쇠를 발견한다. 영화에선 그것이 무엇인지 직접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모비 딕’을 직접 읽어보지 않은 관객(특히 어린이들)에겐 어리둥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렌을 죽이기 위해 인간세계로 쫓아온 이치로히코가 ‘모비 딕’의 텍스트를 접한 뒤 거대 고래의 영으로 변신하고 그에 맞서 싸워야 하는 렌의 심리 속에서 구현된다. 도쿄의 어두운 도심 위로 치솟는 고래는 곧 모비 딕이다. 그와 맞서 싸워야 하는 렌은 에이허브 선장이 돼야 한다. 에이허브는 모비 딕을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그를 죽이기 위해 자신은 물론 부하 선원과 배까지 모두 내던졌다. 하지만 렌은 반대로 자신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과 이치로히코의 생명까지 구하고자 한다. 도대체 렌은 왜 ‘악의 화신’으로서 모비 딕으로 출몰하는 이치로히코의 생명까지 구하려하는 것일까.

모비 딕은 인간의 이성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자연의 신비한 힘을 상징한다. 그것은 곧 나와 다르지만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타자 일반을 뜻한다. 그것은 인간세계에선 괴물이요, 괴물 세계에서도 왕따인 구마테쓰와 등가의 존재다. 동시에 인간세계와 괴물 세계에서 모두 왕따였던 렌 자신이기도 하다.

반면 에이허브는 괴물이라 일컬어지는 존재를 접하는 순간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광기를 상징한다. 미지(未知)의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항상 기지(旣知)의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 이성이 가장 폭력적으로 분출한 양상이다. 따라서 그것은 당연히 모비 딕과 같은 괴물의 속성이 아니다. 바로 렌 자신과 이치로히코와 같은 인간의 속성이다.

렌은 ‘모비 딕’을 탐독하면서 이를 깨달았다. 그래서 에이허브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 주텐가이와 구마테쓰를 떠나려 한다. 하지만 이를 깨닫지 못한 또 다른 인간 이치로히코는 광기에 사로잡히고 만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이는 오로지 자신뿐임을 자각한 렌은 이치로히코와 맞서 싸운다. 하지만 이치로히코도 이를 눈치챈 것일까. 하필이면 모비 딕의 형상으로 변신해 렌으로 하여금 에이허브의 길을 선택하도록 압박해 들어온다.

‘나의 붉은 고래’에서도 인간은 악의 씨앗이다. 죽은 영혼만이 머물 수 있는 북명의 세계에서 새끼 고래로 변신한 곤은 그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북명에 숨어 있던 만악(萬惡)을 일깨운다. 인간의 악한 영혼을 쥐의 형태로 다스리던 늙은 마녀는 곤을 이용해 자신의 젊음과 인간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티켓을 획득한다. 그리고 곤이 붕이 되어 날아오르려는 순간 북명의 세계엔 거대한 기상이변과 지진해일이 몰아닥친다(이는 붕의 날갯짓에 파도가 3000리나 솟구친다 한 ‘장자’ 구절에 대한 변주다). 과연 춘은 생명의 은인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이 속한 세상이 멸망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인가.

놀랍게도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 두 작품의 해법은 동일하다. 악의 근원을 절멸하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자기희생을 통한 구원이다. 그것은 이 모든 고래 전설의 기원을 빚어낸 저 위대한 멜빌 선생도 놓친 동양적 신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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