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호

중국 견제 위해 이라크 친다

전쟁 준비하는 미국의 속셈

  • 글: 백범흠 주 오스트리아 대사관 서기관 bberge@hanmail.net

    입력2002-11-05 12: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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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전쟁 명분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많은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이라크 석유에 대한 통제권 확보와 중국 견제가 주된 목적이라고 분석한다.
    • 중국은 매년 고도성장을 계속하면서 막대한 양의 중동산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미국의 석유 메이저들이 이라크 유전을 장악할 경우 중국은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초 미국 휴스턴의 한 호텔에서는 미국과 러시아 간 색다른 회담이 열렸다. 미국과 러시아 석유산업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라크 유전에 대한 이권을 조정하고 미·러 양국이 협력하여 세계 원유시장을 안정시키는 방안을 협의했다. 미국 정부 인사들이 러시아, 중국, 프랑스, 독일 등 이라크 공격에 미온적인 국가들을 설득하느라 동분서주하던 그때에, 막후에서는 사담 후세인 이후 이라크 유전에 대한 이권 분할문제가 협의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라크 공격에 아랍권은 물론 기존 동맹국들도 협력을 망설인다. 군사적 위험도 크지만 상당한 정치·경제적 부작용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미국은 왜 이라크를 공격하려 하는가. 이라크는 어떤 나라이고, 미국과 이라크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미, 후세인 사주해 이란 공격

    중국 견제 위해 이라크 친다

    지난 걸프전 때 파괴된 이라크군 탱크.

    이라크는 인류 문명이 탄생한 ‘비옥한 초승달’의 중심지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한 이슬람 국가다. 2310만 인구 가운데 아랍계가 80%이고, 고대 미디아인의 후손인 쿠르드족이 20%를 차지한다. 이라크는 고대에는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의 중심지였고 중세에는 사라센과 몽골계 일한국의 중심지였다.

    미국과 사담 후세인간 관계는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3년미 중앙정보국(CIA)이 친소련 카셈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알 바크르(Al-Bakr)와 후세인이 주도한 쿠데타를 지원한 것이다. 쿠데타는 실패로 끝나고 후세인은 이집트로 망명했다. 1968년 31세에 불과한 후세인은 마침내 쿠데타를 성공시켜, 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슬람 혁명으로 이란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한 미국은 1979년 대통령을 승계한 후세인을 사주하여 혁명 후 혼란기에 처한 이란을 공격하게 했다.

    우호관계를 유지해오던 미국과 후세인은 후세인이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하고 이스라엘에 대해 극도의 적대적 정책을 펴면서 악화됐다. 후세인이 더 이상 미국의 대변자가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강력한 전차군단을 지휘하여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통일한 신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왕의 선례를 따라 아랍 통일에 나선 후세인은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기습, 점령했다. 쿠웨이트가 이라크에 넘어갈 경우 석유 에너지에 의존하는 세계 경제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고 미국은 판단했다. 이에 미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은 1991년 초 이라크군을 격파하고 후세인으로부터 사실상의 항복을 받아 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이라크 전쟁이 종식된 지 10년이 경과한 2001년 9월11일 중동지역을 다시 한번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할 사건이 중동이 아닌 미국에서 발생했다.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상징하는 뉴욕 국제무역센터와 워싱턴 국방부 건물이 동시에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지도자들은 미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계전략을 수정하고 테러의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 정부는 빈곤한 아랍국가에 경제원조를 하고 동(東)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지원해야 한다는 일부 진보적 인사들이 주장한 문제해결 방식보다는 군사적 해결방식을 택했다.

    미국 석유 메이저들의 야욕

    물론 미국의 첫째 목표는 중동문제의 고리인 이라크로부터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라크가 생화학무기를 제외한 대량살상무기를 제조 또는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그런데도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서두르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현재 확인된 세계 석유 매장량의 65%가 페르시아만을 비롯한 중동에 있다. 이라크 메소포타미아 유전지대의 총 매장량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카스피해 지역에 이어 셋째 규모로 알려져 있다. 제2차 걸프전쟁(1990~91) 이후 미국 등 서방의 봉쇄조치로 사실상 개발이 중단된 이라크의 유전을 신기술로 개발할 경우 1일 600만~700만배럴까지 생산해 세계 원유시장을 좌우하게 된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미국 지도부의 배후에는 미국 석유 메이저들과 군산복합체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미국 석유 메이저들은 러시아와 프랑스 석유회사들에 넘어간 이라크 유전에 대한 이권을 되찾고 싶어한다.

    또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배경에는 급속히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견제라는, 더 큰 이유도 숨어 있다. 과거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고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것도 유전 확보를 노려서다.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미국 지도부의 의중에 이라크 석유 통제권 확보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중국은 1993년 이후 원유 순수출국에서 순수입국으로 바뀌었다. 중국의 대도시와 공업지대는 주로 연안에 있다. 이에 반해 주요 유전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신장, 북만주 등 공업지대와는 거리가 먼 내륙에 분포해 있다. 운송비용을 감안할 때 연해 도시와 공장들에는 동남아나 중동산 원유가 오히려 유리하다. 중국 경제가 연 7∼8%의 속도로 계속 성장한다면 원유 수입량이 매년 9%씩 늘어날 것이다. 이런 비율로 나아갈 경우 2005년에는 47%, 2010년에는 65%정도를 해외에서 수입해야 한다. 고도의 경제성장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원유 등 에너지 수급문제가 우선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수입하는 원유 가운데 중동산 석유는 1997년 48%에 이르렀다. 2010년에는 80%에 달할 전망이다. 중국도 내심으로는 후세인이 제거되고 중동지역이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중국은 미국이 이라크 공격에 성공하여 이라크 유전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할까봐 두려워 한다. 미국이 이라크 유전을 장악하게 되면 중국의 대미 석유 의존도는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천안문 사태 여파로 서방으로부터 각종 제재를 받던 1991년에 중국은 이라크 공격과 관련, 미국이 주도한 10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모두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미국의 국익이 걸린 중요한 국제 문제에 중국이 ‘No’라고 말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미국 내 유대인들의 입김 작용

    이스라엘이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명간 충돌’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이집트, 사우디 아라비아 등 친서방 정권이 붕괴되고 중동지역이 혼란에 빠질 경우 미국을 직접 지원할 능력이 있는 유일한 중동 국가라 한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중동에 박아놓은 쐐기인 셈이다.

    1982년 레바논 침공 때까지 이스라엘의 전쟁 상대는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 인접국들이었다. 그러나 1979년 이란의 팔레비 샤 정권이 붕괴되고 1988년 제1차 걸프전(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난 이후 이스라엘의 주적(主敵)은 이라크와 이란으로 바뀌었다.

    아랍민족주의, 사회주의, 세속주의(secularism)와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나자고 주장하는 바트당이 집권하면서 이라크가 아랍국가들의 맹주를 자임하고 나섰다. 아랍민족주의를 내세운 이라크와 유대국가의 말살을 추구하는 이란 신정체제의 등장은 이스라엘에 크나큰 위협이었다. 고대 유대국가를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 제국의 후손들이 다시 적대세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중동의 안정을 위협하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은 예루살렘의 지위와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이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유대교 신전(神殿) 자리가 있는 민족의 탯줄 같은 곳이다. 팔레스타인인들도 예루살렘을 결코 양보할 수 없다. 마호메드가 승천한 곳으로 알려진 예루살렘은 이슬람교의 3대 성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2만770㎢에 650만 인구가 거주하는 인구 과밀국이다. 팔레스타인은 600만에 달하는 난민 중 귀환을 원하는 전원을 받아달라고 이스라엘에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국토면적을 감안할 때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이다. 팔레스타인은 이란 및 아랍국가들의 지원을 배경으로 이스라엘에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울 수 있게 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이스라엘은 자살테러를 앞세운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철저히 진압해왔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이란 및 아랍국가들의 지원과 피압박 민족이라는 대의명분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에 맞서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상대방을 철천지원수로 증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동 문제 전문가들은 팔레스타인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으며 더 이상의 악화를 방지하는 관리(management)만 가능할 뿐이라고 본다.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이라크 공격과 팔레스타인 문제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미국이 금년 초 북한과 함께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지목한 것은 두 나라가 테러단체를 지원하는 한편,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의심해서다. 이란과 이라크는 국토의 면적, 인구수, 자원 부존량 등 여러 측면에서 이스라엘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사담 후세인과 이란 과격파들은 유대국가를 지구상에서 없애버리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이스라엘의 장래를 우려하고 있는 미국내 유대인 커뮤니티는 미국 정부에 이라크와 이란에 강력히 대응할 것을 요구해왔다. 리버만 상원의원 등 유대계 정치인들은 부시 행정부에 이라크에 대한 강경책을 주문했다. 유대인들의 유전자에는 ‘바빌론 유수(幽囚)’에 대한 공포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밀고 나가는 것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끝내 해결하지 못한 두통거리를 반드시 해결하고야말겠다는 아들 부시 대통령의 집념 때문이라고 이해된다.

    또 다른 이유 중 하나가 이란 문제다. 이란은 특유의 저항의식으로 역대 오스만 터키 황제들이 제일 큰 골칫거리로 여겼을 정도다. 이란은 미국에도 크나큰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공산주의가 지구상에서 사라진 현재 시아파 이슬람 근본주의는 미국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와 극명하게 대립되는 사상이다. 후쿠야마가 말한 ‘역사의 종말’을 굳게 믿고 있는 미국 지도자들에게 이란식 이슬람 신정은 눈꼴신 체제인 것이다.

    이란은 미국의 경제봉쇄 조치로 인해 경제력이 약화된 상황인데도 수백명의 군사고문단을 레바논, 수단, 보스니아 등에 파견하여 테러리스트 훈련을 지원하는 등 노골적인 반미국, 반이스라엘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이란의 옆구리에 비수를 들이대는 형국이 될 것이다. 이란은 이미 동에서 아프가니스탄, 북에서 아제르바이잔, 남에서 사우디 아라비아 카타르에 주둔하는 미군에 포위되어 있다. 미군의 이라크 장악은 이란 신정체제의 지도자들을 공포에 빠뜨릴 것이다. 미국은 이란을 포위함으로써 혼란과 변화를 유도하려 할 것이다.

    계산 다른 강대국들

    그러면 미국이 과연 이라크를 공격할 것인가. 만약 공격한다면 언제 어느 방향으로, 얼마큼의 군사력을 동원할 것인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되고 있다. 9·11테러 이후 새로운 세계전략 아래 영구 평화체제를 구축해온 미국에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시도하고, 반이스라엘 정책을 취하며 테러단체에 동조해온 후세인은 탈레반 다음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공격 여부는 이라크의 대응 태세보다는 미국 내 여론과 의회의 태도 등 국내 사정과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거나 협력을 주저하는 러시아, 독일, 프랑스와 아랍국가들의 태도에 영향받을 것이다. 여론과 의회가 지지할 경우 세계여론과 유럽 일부국가가 목소리 높여 반대한다 해도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할 것이다. 독일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 쿠웨이트 주둔 독일 화생방부대를 철수할 것이라고 선언하는 등 미국에 맞서고 있다. 전통적으로 유럽대륙에서 프랑스가 하던일을 독일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피셔 독일 외무장관은 이라크가 알 카에다와 연계되어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면서 이라크 공격에 반대한다.

    이라크 공격과 관련하여 러시아의 최대 관심사는 러시아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지 않는 대신 그루지야 내 판키시 계곡에 도피한 체첸 게릴라 진압에 미국의 양해를 얻는 일이다. 러시아는 또한 이라크와 일일 생산량 50만배럴 규모의 유전과 400억달러 규모의 상업계약 체결 및 무기시장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은 푸틴 정부가 미국의 ABM(탄도탄요격미사일) 탈퇴와 NATO의 중동유럽 확대를 용인하고 중앙아시아-코카서스 미군 주둔을 양해하는 등 크게 양보했으나 러시아가 얻은 것은 별로 없다고 비난하고 있다.

    러시아의 이라크 내 이권이 엄청나고 보수파들이 친미정책을 반대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결국 미국과 타협해 나갈 것이다.

    한편 중국은 2001년 4월 자국 전투기와 미국 정찰기간 충돌로 발생한 ‘해남도 사건’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미국과 관계를 개선해왔다. 그 덕분에 2008년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2010년 세계박람회를 유치하려는 등 경제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중국에는 국제정세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장 위구르족의 테러에 직면한 중국은 이라크와 위구르족 문제가 반테러라는 동일선상에서 다루어지기를 원한다.

    국민 여론과 의회의 지지를 얻을 경우 미국정부는 러시아, 중국, 프랑스, 독일 등을 설득하거나 압박하여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라크 공격에 대한 명시적 또는 묵시적 동의를 이끌어낼 것이다. 이와 관련,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우방국이나 적국에 주춤하지 않고 공세적으로 나아가는 자세를 보여야하며, 약하게 보이면 적국의 공격을 초래하거나, 우방국의 지원을 얻지 못한다고 믿는 것 같다.

    대부분의 아랍국가가 명시적으로는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지만, 급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로부터 내부에서 공격받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 이집트 등은 미국과 장기간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형편이 못된다.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등 걸프 소국들은 군사·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은 군사기지를 제공하는 등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협조할 수밖에 없다. 한편, 이란 지도부는 이라크에 공격 구실을 주지 말라고 요청하는 등 적극적 중립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라크 다음의 목표가 자국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미국은 총 2만명 이상의 미군을 이미 이라크 주변에 배치했다. 또 터키에 공군기지 이용 및 지상군의 영토 통과허가를 요청했다. 파월 미국 국무장관은 10월초 이라크 북부 쿠르디스탄을 방문하여 쿠르드족 의회에 참석했다. 쿠르드족이 미국의 동반자임을 선언한 것이다. 파월은 이 자리에서 이라크의 장래에 대한 계획을 쿠르드족과 공유한다고 천명했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미국은 공습과 함께 지상군과 쿠르드족 민병대를 활용하여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하기로 결심한 듯 하다.

    쿠르드족 의회는 독립헌법을 의결했다. 고대 미디아 왕국 이후 수천년간 한번도 독립했던 적이 없으며 이라크 북부, 터키 동남부, 이란 서부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독립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2000만 쿠르드족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고 있으며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터키가 자국의 영토통합과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쿠르드 독립국가 창설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북부와 동부 산악지역 일부를 제외한 거의 전 국토가 사막기후로 몹시 더운 까닭에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군사작전이 쉽지 않다. 남부의 바스라는 여름철 기온이 섭씨 50도를 넘기도 한다. 미군의 이동특성, 기후 등을 고려할 때 금년 크리스마스 무렵 또는 내년 초가 이라크 공격 시점으로 적당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공습 및 함포 사격과 함께 지상군과 쿠르드족 민병대가 남쪽과 북쪽 요르단으로부터 동시에 바그다드로 진격할 것이다. 미군의 작전은 로마군과 몽골군의 주특기였던 밀집 포위 공격이 될 것이다.

    후세인은 미국이 공격할 경우 바그다드에서 시가전을 벌이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이라크 군부가 패배가 예정된 독재자에게 계속 충성을 바칠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미 지상군과 쿠르드족 민병대가 투입될 경우 바그다드 시가전도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사담 후세인 이후의 이라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바스라 중심의 남부와,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중부, 북부의 쿠르디스탄으로 분할 독립시킬 것인가. 미국이 이라크를 분할할 경우 발칸반도에서처럼 소국분열이 우려되며 종족간 갈등은 한층 심화할 것이다. 이라크 쿠르드족이 독립할 경우 터키 동남부와 이란 서부 쿠르드족 거주지역이 불안해지고 중동은 다시 혼란에 빠질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를 확보할 경우 아랍세계는 총체적 무력감에 빠지고 지원세력을 상실한 테러단체의 활동 역시 수그러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동이 혼란에 빠질 개연성은 낮아

    일부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동질서의 완전한 재편을 기도하고 있다고 본다. 즉 요르단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워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요르단의 하시미트 왕가에 이라크 대부분을 넘겨주려 한다는 것이다. 좀더 기다려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으로 중동이 혼란에 빠져들 개연성은 낮다. 이라크가 국경 밖으로 전쟁을 확산시킬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은 세계경제의 안정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석유 가격은 현재보다 10∼20%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라크 전쟁은 세계의 물류를 방해하고 민간소비를 위축시킬 것이다. 9·11테러 이후 국가간 자본의 흐름이 감소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좌파의 집권이 예상되는 브라질 등 일부 개도국이 다시 경제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는 어디에 서야 하는가. 국익이 걸린 문제에 감상적 접근은 금물이며 국민정서에 의존하는 외교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한때 지중해와 동부유럽, 중동의 패자(覇者)였던 오스만 터키가 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국민과 일부 지도자들의 친독일 성향 때문에 별 이해관계 없는 독일을 지원, 결국에는 국가 자체가 해체되고만 뼈아픈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필자는 이 글이 외교부의 입장과는 무관한 사견임을 밝혀왔습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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