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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원자력인의 토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고함”

민족 밝히는 원자력, 후손 위한 원자력 만들기 위해 우리는 정말 온 정성을 다했다

원로 원자력인의 토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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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원자력인의 토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고함”

한국원자력연구소에 설치된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배고픔과 가난이 상식으로 통하던 국민소득 80달러 시대에 ‘한 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튼튼한 사과나무를 심었다. 1959년 이승만 대통령이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한 것이다. 나는 이 점 하나만으로도 이승만 대통령은 역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적은 연구비로 원자력 기술 자립을 이룩한 나라이다. 이러한 원자력이 조국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승만 대통령이 다진 토대 위에 에너지 자립의 중요성을 인식한 박정희 대통령이 웅지를 폈다. 박정희 대통령은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해, 1978년 4월 고리 원자력 1호기를 준공했다. 그 후 한국은 원자력 연구와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거듭해 원자력 발전 선진국에 진입했다.

불과 40년 만에 우리나라의 발전 설비는 140배 증가했다. 1964년 1억달러에 불과하던 우리나라 수출은 1977년 100억달러를 달성했다. 그리고 고리 원전 1호기를 준공한 1978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성장에 들어가 2005년 2800억달러를 넘어섰다. 40년 만에 수출은 2800배 증가했다.

그뿐인가, 국민소득은 1960년대 초 80달러에서 2005년에는 200배가 넘는 1만6000달러에 도달함으로써 중진국 반열에 당당히 올랐다. 아침이 바쁜 나라는 동력(動力)이 넘친다. 그 동력의 40%를 원자력이 제공한다.



치욕의 창씨개명

1959년 설립된 원자력연구소는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소형 연구용 원자로를 이용해 매우 기초적인 원자 물리와 방사성 동위원소 관련 연구만 했다.

1978년 고리 1호기가 가동되면서부터는 원자력발전과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1979년 10·26사건을 계기로 정치적 혼란에 빠지면서, 원자력연구소는 설 땅을 잃었다. 그동안의 연구 성과에 대한 비판과 함께 연구소를 없애라는 국내외 압력이 거세진 것이다.

그러나 뜻있는 분들은 원자력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 결과 창씨개명을 통해서 문제를 수습할 수 있었다. 한국원자력연구소라는 간판을 내리고 한국에너지연구소라는 간판을 올린 것이다. 실체는 유지했지만 이름을 빼앗긴 비극, 이는 4반세기 전 우리 선조가 당한 창씨개명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국제무대에서는 힘이 곧 선(善)이고 규범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러한 질곡의 역사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핵연료 국산화 사업이다. 여기에 참여했던 연구원들은 뜨거운 조국애를 가지고 냉난방 시설도 갖추지 못한 실험실에서 1주일에 80시간 이상을 연구하며 핵연료 국산화를 추진했다. 그들은 에너지 안보의 꿈을 키워간 것이다.

핵연료를 만드는 데는 핵연료 설계기술과 핵연료 가공기술, 그리고 UO₂(이산화우라늄)을 생산하는 변환 공정이 필요하다. 핵연료 국산화를 수행함에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현장 경험이 있는 전문가가 없다는 점이었다. 핵심 기술을 외국에서 이전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반핵단체의 압박도 대단했다. 그러나 정녕 우리를 괴롭힌 것은 ‘엽전(?)이 개발한 기술을 어떻게 믿느냐’는 부정적인 시각이었다. 우리 스스로 경멸해서 부르는 엽전…. 그런 부정적인 시각을 극복하려는 오기가 발동해 우리는 더욱 더 열심히 연구했는지도 모른다.

중수로 핵연료 국산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우리가 만든 핵연료를 연구용 원자로에 넣어 성능시험을 치른 후 합격 해야만 쓰겠다’고 한 한국전력측의 최후통첩이었다. 당연한 요구일 수도 있는데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너지연구소에는 연구용 원자로가 있었지만 성능시험을 할 수 없는 소형이었다. 할 수 없이 캐나다AECL(???) 산하 NRU(National Research Universal)의 재료 시험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는 성능시험비로 300만달러(당시 환율로는 20억원)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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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순 한국원자력연구소 고문, 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 ischang@kae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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