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호

이의제기 할 수는 있으나 지휘 거부할 근거 없어

검사동일체 원칙

  • 성영훈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변호사, 전 광주지검장 yunghoon.sung@BKL.co.kr

    입력2013-11-21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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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의제기 할 수는 있으나 지휘 거부할 근거 없어

    10월 21일 서울중앙지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진술하고 있다.

    국정감사장에서 벌어진 서울중앙지검 검사장과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특별수사팀장 간의 진실 공방은 20여 년 검찰에 몸담았던 필자에게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검찰은 우리 사회의 범죄와 맞서 싸우면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인권과 법치국가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근간 조직이다. 그런 검찰기관의 지휘·감독자와 그 지휘를 받는 검사가 많은 국민이 중계방송을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의 주장이 진실이라며 정면충돌하는 모습은 검찰에 대한 신뢰에 큰 상처를 줬다. 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검찰이 또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를 생각하니 착잡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임관 20년이 다 된 차장급 검사이자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성공적으로 처리해온 베테랑 검사인 수사팀장이 검사의 지위를 크게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소신대로 수사를 관철하겠다며 검사장에게 사전 보고를 하지 않고 영장청구서를 법원에 접수시켰다. 검사장에게 수사 경과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검사장이 보인 반응에 비추어 신속한 수사가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행위는 검찰청법 등 검사 업무 수행의 기초가 되는 법령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과연 이런 항변은 타당한 것인가. 정당한 소신 수사냐, 하극상이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대검은 감찰을 진행해 수사팀장 등에 대해 법무부에 중징계를 건의했고, 검사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소신대로 수사를 진행한 수사팀장을 징계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감찰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한다. 2004년 검찰청법 개정으로 검사동일체 원칙이 폐지되고, 검사의 이의제기권이 신설돼 상사의 명령에 대한 복종의무가 없어졌다는 것이 주된 논거 중 하나다.

    필자는 2003년 법무부 검찰1과장으로 재직하면서 2004년 1월 20일 시행된 검찰청법 개정 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 최근 논란의 핵심을 이해하려면 당시 진행된 검찰청법 개정의 배경과 내용을 되짚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때도 검찰 개혁은 정계와 법조계의 큰 화두였고, 특히 검사의 지위를 규정하는 검찰청법 개정안을 두고 국회에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검사 개개인의 독단 방지



    논의의 초점은 검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하는 것이었고, 개정안도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개정안의 주된 내용은 ①고등검사장, 검사장, 검사로 나뉘어 있던 검사의 직급을 ‘검사’로 일원화 ②검사 임용 후 7년마다 ‘검사 적격 심사’ 실시 ③‘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표현의 삭제 및 상급자에 대한 검사의 이의제기권 명문화 ④자문기구인 검찰인사위원회를 심의기구로 변경 ⑤검사 인사에 대한 검찰총장의 의견 제시권 도입 등이었다. 이 가운데 이번 논란과 직접 관련된 부분은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표현의 삭제 및 이의제기권의 명문화다.

    검사동일체 원칙은 본래 강학상(講學上), 실무상 용어였으나 1986년 12월 31일 검찰청법 개정 때 각 조문에 표제를 넣으면서 제7조의 표제로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법률에서 사용됐다. 하지만 조문 내용은 1949년 12월 20일 검찰청법이 제정된 이래 변함이 없었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복종의무). 둘째, 검찰총장, 검사장, 지청장은 소속 검사로 하여금 그 권한에 속하는 직무의 일부를 처리하게 할 수 있다(직무위임권). 셋째, 검찰총장, 검사장, 지청장은 소속 검사의 직무를 자신이 처리하거나 다른 검사로 하여금 처리하게 할 수 있다(직무 이전 및 승계권).

    검찰청법은 왜 제정 당시부터 검사동일체 원칙을 규정했을까. 검사는 조직상 법무부 소속 행정기관이지만, 기능적으로는 사법작용을 수행하므로 사법권 독립의 정신이 관철돼야 하는 준사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따라서 사건을 수사하고 결정함에 있어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검사는 각자가 독립된 관청으로서 수사, 수사 지휘, 기소, 재판 집행 등의 직무를 처리하는 1인제(독임제, 단독제) 관청이다. 그런 까닭에 준사법기관성의 확보 못지않게 검사 개개인의 독단을 방지하고, 전국적으로 통일적이고 균형 있게 검찰권을 행사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것이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며 상사의 결재제도는 이에 기초를 두고 있다.

    2004년 개정법이 논의될 당시에는 그간 과도하게 1차 수사기관화해 있던 검사의 준사법기관성을 회복하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청이 강했다. 이에 법무부는 검사의 직무상 독립성과 중립성을 강조하기 위해 상명하복 관계(명령에 복종한다)를 지휘·감독 관계(지휘·감독에 따른다)로 완화하고, 제7조의 표제를 ‘검사동일체의 원칙’에서 ‘검찰사무에 관한 지휘·감독’으로 변경했다. 아울러 지휘·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에 대한 검사의 이의제기권을 명문화하는 내용의 개정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 통과됐다.

    이러한 개정을 통해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폐지된 것일까. 만약 폐지된 것이라면 검사는 소속 상급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상급자의 지휘를 받지 않은 검사 개개인의 개별 행동은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까.

    개정 전후의 검찰청법을 비교해보면 위 질문들에 대한 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검사동일체 원칙을 구성하는 주요 내용은 변함이 없다. 복종의무는 ‘복종’이라는 표현이 삭제되었을 뿐 지휘·감독에 따르도록 규정함으로써 그 취지를 그대로 승계했다. 다만 이의제기권을 신설함으로써 검사동일체 원칙을 발전적으로 보완했을 뿐이다. 당시 국회의 법률안 심사안과 전문위원 검토보고서 등 입법자료도 “검사의 준사법기관적 독립성을 강조하기 위해 ‘검사동일체’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그 대신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르도록 하되 이의제기권을 보장해 검사동일체 원칙을 완화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지휘·감독권의 우월성

    일각에서는 이의제기권을 근거로,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헌상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을 뿐 독단적인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지휘를 거부할 근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지휘·감독권’과 ‘이의제기권’이 병존함으로써 권한의 수직적 대립관계가 설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직무의 위임, 이전, 승계권을 그대로 유지하는 점에 비추어 양자가 충돌하는 경우 지휘·감독권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나아가 이의제기권은 검찰권의 적법, 적정한 행사를 위해 상사와 다른 견해를 적극적으로 표시하고, 토론과 설득을 통해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할 의무를 내포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의제기권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검사의 소신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지, 주관적이고 비합리적인 고집까지 용인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물며 현재 검찰청마다 운용 중인 수사·공소심의위원회와 같이 상하 간 협동작업을 개시하는 단서라 할 수 있는 이의제기권조차 행사하지 않은 채 지휘·감독에 따르지 않겠다는 논리는 매우 위험하고 부적절하다.

    검사동일체 원칙은 검찰이나 검사를 위한 원칙이 아니다. 검찰 지휘부를 위한 원칙은 더더욱 아니다. 이 원칙 때문에 지휘·복종 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독일, 프랑스, 일본 등 대륙법계 국가에서 특수한 지위를 갖는 검찰이 적정하고 효율적으로 기능하도록 담보하면서도 검찰권의 남용을 예방하고 전국의 개별 검사들이 수행하는 수사와 결정의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적 원리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사태가 정치·사회적 논리가 아닌 법과 원칙에 따라 현명하게 매듭지어지기를 기대한다. 또한 검찰도 내부 상처를 하루속히 봉합하고, 향후 검찰권 행사의 올바른 방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검사동일체 원칙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논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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