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상대 악마화하는 증오정치, 연합정치 구조로 깨뜨려야”

민주당 ‘차세대 주자’ 이탄희

  • 김도언 시인·소설가

    입력2023-11-2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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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기 6개월 남기고 ‘정치개혁’ 외치는 이유

    •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

    • 연합정치로 증오정치·반사이익 구조 깨자는 것

    • 정치는 ‘정치가 필요한 사람들의 삶’ 지키는 일

    • ‘상위의 가치’ 좇는 정치를 꿈꾼다

    TV와 유튜브 등 매체를 통해 본 그는 음전하면서도 스마트한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이었다. 좀처럼 빈틈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깔끔한 언술과 외꺼풀의 날렵한 외양이 그런 느낌을 강화했다. 게다가 서울대 법대 출신의 전직 법관이라는 커리어가 더해지니 전형적인 엘리트 캐릭터가 연상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 이야기다.

    이 의원은 비교적 매체를 가려서 인터뷰하는 신중한 스타일이라는 소문을 들은 터였다. 보수지로 분류되는 ‘신동아’에서 인터뷰를 요청한지라 응답이 다소 더디게 왔다. 의원실에서는 선거법 및 선거구제 개편 같은, 이 의원이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면 좋겠다는 단서를 전제로 인터뷰를 승낙했다. 그 의사를 충분히 수용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이 의원이 바라는 대로만 인터뷰를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란 속내를 품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았다.

    11월 초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505호를 찾았다. 그의 방은 전망이랄 게 없었다. 의원실 배정은 선수(選數)에 따라 우선 선택권이 주어진다고 했다. 이른바 짬밥 순으로 전망 좋은 의원실을 선택하다 보니 이 의원 같은 초선 의원에게 선택권이 돌아갈 리 만무했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이탄희 의원을 만났고,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이 당황스러움은 내가 가지고 있던, 상술한 그에 대한 나이브한 편견이 깨지는 신선함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우선 의원 집무실이 다소 너저분했다. 그의 책상 위엔 각종 서류와 파일이 정리되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회의실 한쪽엔 놀랍게도 1990년대 중반 정도까지 사용되다가 사라진, 수기로 만들어진 차트가 서 있었다. 지시봉을 종이 갈피 사이에 넣어 뒤로 넘기는 그런 차트 말이다. 회의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지 펼쳐진 차트 페이지에는 여러 의제와 현안이 가득 적혀 있었다. 아, 프로젝터빔과 PPT, 인공지능(AI)과 챗GPT(ChatGPT) 시대에 종이 차트라니. 게다가 이 의원의 입성은 어떤가. 소매를 걷어붙인 와이셔츠에는 주름이 가득했고, 물론 오후 늦은 시간이어서 그랬겠지만 얼굴에는 구청 민원창구의 직원처럼 눅진한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아, 디지털 사이보그형 인간인 줄 알았는데 아날로그형 인간이었던가.

    이탄희 의원. [지호영 기자]

    이탄희 의원. [지호영 기자]

    800원 횡령 버스기사와 하청 노동자

    그는 2020년 총선에서 파격적으로 수도권(경기 용인정)에 공천을 받고 당선돼 정치에 입문한다. 11월 초 기준, 첫 임기를 6개월 정도 남겨놓은 그는 국회 안팎에서 일관되게 정치개혁을 외쳐왔다. 자기가 속한 집단을 향해 개혁을 외치는 건 아무려나 흔쾌한 일은 아닌데, 그랬던 절박한 이유가 무엇일까. 특유의 나직하면서도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설명이 시작됐다.



    “짧은 국회의원 생활을 하는 동안 좌절했던 순간들이 있어요. 그런 순간 속에서 깊이 성찰한 결과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를테면 800원 횡령 버스기사 사건 같은 거죠. 그분에게 내려진 엄중한 판결을 하는 판사들이 비일비재합니다. 판결로 한 사람의 삶을 망쳐버리면, 그런 판사는 나중에 최고 법관이 될 수 없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었어요. 해당 판사에게는 기억에조차 남아 있지 않은 사건이지만 버스기사의 다섯 식구의 삶은 망가지고 말았거든요. 저는 그런 판사는 대법관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양당의 암묵적 합의하에 결국 대법관이 됐어요. 신림동 반지하에서 수재로 희생을 당한 가족이 있잖아요. 그런 피해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선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작년에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수조 원 감액됐어요.

    거제도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유최안 씨라고 있는데, 하청 노동자여서 가장인데도 급여가 200만 원 정도밖에 안 됐어요. 임금협상을 하려고 해도 원청업체 사장님을 만날 수 없는 거예요. 주의를 끌려고 시위를 하면 늘 경찰에 끌려갔죠. 결국 용접공이던 자신의 기술을 발휘해서 0.3평의 철창을 만들어 자신을 가두는 일을 해요. 하청업체 노동자가 원청업체와 최소한 교섭이라도 할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게 노조법 2조 개정안인데, 아직도 안 바뀌었어요.

    이탄희 의원이 지난해 7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유최안 씨가 점거 농성을 펼친 철골구조물과 동일한 크기(0.3평)의 사진을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펼쳐 보이고 있다. [뉴스1]

    이탄희 의원이 지난해 7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유최안 씨가 점거 농성을 펼친 철골구조물과 동일한 크기(0.3평)의 사진을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펼쳐 보이고 있다. [뉴스1]

    저는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지켜내는 정치를 하고 싶은데 계속 벽에 부딪혔어요. 이게 반복되는 이유가 뭘까 성찰 하다가 다다른 결론은 ‘우리 정치가 반사이익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거였어요. 이 구조 때문에 아무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질 않아요. 이슈가 안 되니까요. 상대방의 치부를 드러내고 타격하는 것만 이슈가 돼요.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판사를 대법관 임명에서 부결시키는 게 양당 어느 쪽에도 타격이 안 되는 거예요. 무관심한 거죠. 그래서 내가 이 구조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반사이익 구조를 일하기 경쟁구조로 바꾸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더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없는 사람은 더 힘들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갖은 풍파를 겪은 노인들의 회고처럼 어떤 말이 진실함과 절실함을 품고 있으면 거기에 자연스럽게 리듬감이 입혀지는 걸 몇 차례 경험한 적이 있다. 40대 중반의 이탄희 의원의 말에서 이런 걸 느꼈다면 지나친 호들갑일까.

    그렇다면 정치 바깥에서 법관으로 법의 형평을 저울질하고 있을 때와 수많은 갈등과 현안을 풀어내야 하는 정치의 장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가 느낀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정치의 거칠고 험한 내재율을 견딜 만한 끈기가 스스로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답이 궁금했다.

    “밖에서 볼 때는 사람만 갈아치우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안에 들어와 보니 사람과 구조 두 가지를 다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치인이나 리더라는 사람도 정치에 들어오는 순간 그 구조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고, 개미지옥처럼 빠져들게 되거나 못 견디고 튕겨나거나 한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결국 민주주의 정치의 주인은 주권자들인 시민이잖아요. 그들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저는 제 방식으로 해왔어요. 주권자들이 제가 하는 방식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주신다면 저도 생명 연장을 하는 게 가능하겠죠.(웃음) 안 그래도 비슷한 정치인이 많은데, 제가 제 색깔을 잃지 않고 지키면서 주권자들로 하여금 선택지를 넓혀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연합정치, 궁극적으로 국민 위한 길

    이탄희 의원이 4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5회 국회(임시회) 제1차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결의안 심사를 위한 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전원위가 특정 사안에 대한 찬반 논의를 위해 개최된 것은 20년 만이다. [뉴스1]

    이탄희 의원이 4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5회 국회(임시회) 제1차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결의안 심사를 위한 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전원위가 특정 사안에 대한 찬반 논의를 위해 개최된 것은 20년 만이다. [뉴스1]

    이탄희 의원은 최근 내년 4월의 총선에서 민주당을 포함해 연합 200석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제법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는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즉각적으로 다양한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에 부딪혔다. 이를테면 새로운선택 정호희 사무총장 같은 이는 “이탄희는 네모난 동그라미, 해방조국의 독립투사, 삼겹살 굽는 채식주의자 같은 헌소리를 아주 비장하게도 하고 있다. 더민은 절대선이고 국힘은 절대악이라는 전형적인 진영 논리일 뿐이다. 민주당 중심의 3~4개 연합정당(이라고 쓰고 괴뢰정당이라고 읽는다) 200석, 그건 위성정당보다 더 나쁘고 실현 불가능한 민주당식 천동설일 뿐이다”라고 자신의 SNS에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 의제를 던진 배경에는 어떤 진의가 있는지를. 아울러 여당 180석을 가지고도 개혁 입법을 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예상처럼 짧지 않은 대답이 나왔다.

    “민주당이 180석 갖고도 제대로 일을 못 했던 건 독주 프레임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당이 의석수가 많고 하나의 단일대오로 뭉쳐도 다른 세력이 민주당이 독주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되면 견제 심리로 연대해서 조직적인 저항에 부딪히게 되거든요. 그게 여론 지형, 언론 상황과도 맞물려 있고요. 민주당이 180석이나 가지고 있었지만 기동성 있게 움직일 수 없었던 거예요. 제가 말한 연합정치는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단독으로 180석을 노려서 거대 야당이 되자는 게 아닙니다. 민주당 의석수가 줄더라도 연합할 수 있는 다양한 정당들을 갖자는 게 핵심이에요. 47석의 비례대표 자리는 말하자면 골목상권인데, 거기에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다양한 정치 세력이 들어올 수 있게 하자는 거죠.

    그래서 사안별로 생각이 비슷한 세력이 연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제 생각이에요. 예컨대 검찰개혁이나 노란봉투법 법안을 놓고 말해보면 그런 것들에 동의하는 유권자층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서로 연합해 검찰개혁법과 노란봉투법안을 처리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보는 거죠. 그런 정치를 하자는 거예요. 사실 민주당이 또다시 독주하려 한다고 매도하는 사람들은 이런 연합정치로 위협받을 수 있는 세력이라고 생각해요. 조선일보가 얼마 전 민주당이 단독으로 200석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민주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연합으로 200석 연합해서 해야 한다는 제 주장을 도매금으로 섞어서 내보냈어요. 제가 주장하는 연합정치는 분명히 말하건대 증오정치 구조, 반사이익 구조를 깨자는 겁입니다. 반사이익 구조는 두 개의 선택지밖에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에요. 나머지 선택지를 증오하게 하고 다 죽여 없애는 거죠. 상대를 지지할 수 없게 만드는 후과로 내가 승리하는 방식이죠. 이게 대한민국 기득권 구조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소수파로 인식하고 있고, 강성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그가 먼저 연합정치라는 깃발을 들 필요가 있었을까. 잘 해봐야 본전이고 집중포화의 타깃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그런 눈치를 보면 못 하죠. 저는 이게 모두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거예요. 보수 유권자들도 극우보수와 합리보수 중에서 선택할 수 있고 진보도 경쟁체제가 되는 거예요. 일하기 경쟁구조가 돼서 가장 좋은 정책이 입안이 되면 그걸로 인한 혜택은 대한민국 구성원이 모두 누리는 거죠.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자아내는 정치를 하면서도 뿌듯하지 않은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이 경쟁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거죠.”

    ‘반대편을 보는 정치’를 지향

    개인적인 이야길 좀 하자면 나 역시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연합 또는 통합정치에 대한 오랜 갈망이 있다. 우리 정치에서 6공화국 이후로 연합과 통합정치를 지향했던 대통령은 내 판단에 세 사람이다.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노태우 대통령은 워낙 득표율이 낮아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야당과의 협치가 필요했고,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철학 자체가 연합과 통합에 있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처절하게 실패했지만 말이다.

    한국 정치에 왜 이렇게 연합과 통합이 어려울까. 왜 반대편을 설득하는 정치가 실종된 것일까. 노무현 대통령은 반대편을 설득하기 위해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부산 험지에 출마하고 부산시장 선거에도 나가 처절하게 패배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지금 노무현을 이기고 국회의원과 부산시장이 된 사람의 이름을 누가 기억하는가. 노무현은 그 패배로 결국 대통령까지 되지 않았는가. 나는 이탄희 의원의 연합정치가 조금 더 큰 정치적 맥락에서, 지금은 실종돼 버리고 만 ‘반대편을 설득하는 정치’로 진화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의 의지를 물었다.

    “저도 반대편을 보는 정치를 지향하고 있어요. 정치의 기능은 문제 해결을 하는 것이고 결국은 정치가 필요한 사람들의 삶을 지켜내는 일이에요. 그런데 어떤 사람의 삶을 지켜내야 할 때 어느 편인지 가려서는 안 되잖아요. 정치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다 지켜야 해요. 제가 지켜내는 사람이 어느 편인지 봐가면서 지키는 게 아니거든요. 신림동 반지하에서 수재로 삶을 잃은 분이 선거에서 누굴 지지했는지 봐가면서 지켜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정치의 본질에 천착하기 시작하면 반대편을 설득하지 않는 정치도 완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혼자의 힘으로 이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정치나 공공의 힘이 필요 없어요. 제가 좌절했던 것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계속 실패를 경험했던 부분이에요.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을 모으는 것이 정치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더라고요. 그것이 성공하면 성과를 내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성과가 없는 거예요.

    성과가 있었던 건 이를테면 판사 탄핵 같은 경우예요. 제가 사법농단 사태 당시 블랙리스트 작업을 하고 싶지 않아 법원을 나왔고,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이 구속되면서 일단락됐다고 생각했는데 양 대법원장도 보석으로 나오고 수족 역할을 했던 판사들도 무죄판결을 받고 징계대상이 될 법관들도 김명수 대법원장이 면죄부를 줬어요. 그때 제가 ‘국회에 가서 한 명의 연루자라도 탄핵소추를 하면 헙법재판소에서 판결을 받아낼 수 있고, 그러면 개인 비위 행위와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헌법적 평가가 적힐 거고, 그 결정문은 영구 보존될 수 있다. 20~30년이 지나도 이 일의 당위성만큼은 흔들리지 않을 거다’ 하는 생각에 국회의원을 한 건데요. 판사 탄핵은 가결됐지만 다른 건 못 막은 거예요.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을 못 모은 거죠.”

    그는 법관 출신이다. 판사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출세가 보장된 법원행정처 심의관까지 갔다. 그런데 돌연 퇴직을 한다. 그런 소이연이라면 그가 누구보다도 정치의 사법화라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악습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는 가정은 유효할 것이다. 그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은 명확해요. 그런데 그 해법 역시 연합정치예요. 연합정치의 반대가 바로 증오정치인데요. 증오정치는 상대방이 악마라는 걸 입증해야 해요. 그리고 그걸 입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상대를 고소 고발해서 유죄판결을 받게 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정치의 사법화가 남발되는 거죠. 그 증오정치를 양산하는 반사이익 구조를 깨고 일 잘하는 경쟁구조로 만들어야 해요. ‘나는 이걸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걸 이렇게 잘하고 있습니다’라고 국민에게 보여주고 경쟁하게 하는 거죠. 그런 구조로 바뀌면 자기 정책개발을 하느라 바빠서 고소 고발할 시간도 없을 거예요.(웃음) 정치의 사법화를 낳는 동력을 약화시키는 대안이 필요한 거죠.”

    21대 국회의원 임기를 반년여 앞둔 이탄희 의원은 “좌우를 막론하고 증오정치, 반사이익 정치를 멈춰야 한다”며 초지일관 선거법 개혁을 주창했다. [지호영 기자]

    21대 국회의원 임기를 반년여 앞둔 이탄희 의원은 “좌우를 막론하고 증오정치, 반사이익 정치를 멈춰야 한다”며 초지일관 선거법 개혁을 주창했다. [지호영 기자]

    정치 사법화 막는 대안, 대통령 결선투표

    이쯤 되면 이탄희 의원의 언술은 ‘기승전기득권정치구조타파’이고 ‘기승전연합정치’다. 그는 이와 아울러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 도입과 중임제로의 전환을 정치적 소신으로 내걸고 있음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그렇다면 이탄희 의원은 대통령중심제가 비록 몇 가지 문제가 있음에도 보완해서 가자는 입장인 셈일 테다. 그에게 양당 기득권 정치에 염증을 느낀, 합리적 중도층에서 주로 나오는 내각책임제 개헌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의외로 단호한 답이 들려왔다.

    “의원내각제는 논외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국회 신뢰도가 너무 낮아서 그냥 사내정치로 흐를 가능성이 커요.(웃음) 우리나라 국민들의 대통령 선출 기능은 없앨 수도 없고, 없앨 필요도 없다고 봐요. 그를 통해 국민들의 정치 효능감도 높이고 또 그 제도로 대통령이 된 분들이 결국 우리나라를 이만큼 끌어왔다고 생각해요. 현행 대통령중심제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연합정치 구조를 만들어내면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증오의 레이스를 펼치지 않아도 돼요.

    결선투표제는 첫 번째 투표 후 2주 뒤에 두 번째 투표를 하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첫 번째 투표에서는 모든 후보가 완주할 수 있어요. 그러면 각자가 자기가 잘하는 게 뭔지 말할 수 있는 다자 구도가 만들어져요. 모두가 끝까지 뛸 수 있다는 거죠. 지금은 1등 아니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다른 후보에게 마음이 가도 찍을 수가 없어요, 사표가 되니까요. 그런데 2주 뒤에 한 번 더 투표하면 첫 투표에서 자기가 생각하는 후보에게 마음껏 표를 줄 수 있어요. 그런 표가 있다고 하면 많은 정치인이 도전할 수 있는 동기가 생기죠. 결선투표제만 도입해도 반사이익 구조가 깨지는 거예요. 중임제를 해서 좋은 점은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가 같아지기 때문에 한 대통령 아래 효율적인 연합정치를 기할 수 있고 연합 다수파를 국회에서 형성할 수 있어요. 그러면 대통령이 필요에 의해 연합정치파와 협치를 할 수 있게 돼요.”

    이탄희 의원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문득문득 그의 정치적 입장과 소신을 만들어내는 세계관이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정치적 프레임을 초월해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고 통찰하는 하나의 관점, 세계관 같은 것이 궁금해진 것이다. 그에게 한국 사회의 법제와 시스템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구성원들은 불행해하고 있는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분석을 요구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제도와 시스템은 나아졌는데요. 비유하자면 정치는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나 스마트폰의 OS 같은 건데 그게 여전히 구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정치구조거든요. 우리가 2021년 유엔에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됐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는데, 여기에 맞는 답을 찾아야 해요. 이걸 정치가 해야 하고요. 예를 들면 지방 소멸, 저출산, 기후 위기 이런 문제는 우리에게는 절박하고 당면한 과제이고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전부 망하게 생겼는데, 여기에는 하나의 해법만 있지 않거든요. 각 나라마다 답이 달라요. 저출산 문제만 해도 유럽 국가와 미국의 접근법과 해법이 다르다는 거죠.

    나라마다 맞는 창의적인 해법을 만들어야 해요. 정치가 그걸 해야 하죠. 그런데 그걸 못 하고 있어요. 해결책 없이 문제들이 그대로 노출돼 있기 때문에 국민과 구성원들이 불안해하는 거예요. 그 불안에 대해서 책임지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모습이 없으니, 결국 불안이 불행으로 연결되는 거죠. 그래서 지금 우리가 불행한 거예요. 지난 5년간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치료받은 연인원이 900만 명이 넘어요. 올해 상반기 고독사로 죽은 사람은 2600명이고요. 해법을 제시하는 쪽으로 정치구조가 바뀌어야 해요.”

    불안은 불행으로 이어진다. 이탄희 의원의 어록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전직 여당 의원으로서의 성찰도 듣고 싶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비판을 해달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실망을 했던 사감이 밴 질문이었지만, 그는 차분한 답을 내놨다.

    “결과적으로 일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촛불이 만들어낸 당시 정치체제는 4당 체제였어요. 그래서 기조가 비슷한 세 개의 정당이 연합해서 어떤 사안을 추진해 나갔으면 정치가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 국가와 사회에 좋은 일들을 일관성 있게 실천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러지 않고 민주당 단독으로 하려고 했죠. 대통령 권력과 행정권력, 지방권력으로 했던 거예요. 그건 모래시계와 같은 거였어요. 시간 내에 성과를 내고 다음 과제로 넘어가야 하는데, 혼자서 하려다 보니 급해졌고 모래시계의 모래알이 다 떨어진 거죠.

    개인적으로 지난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만들었던 게 가장 큰 실수였다고 생각해요.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독주 프레임에도 걸리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면 윤석열 대통령도 탄생하지 않았을 거고요. 이제는 두 번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민주당이 연합정치로 갈 것이냐 단독으로 180석을 노리는 정치로 갈 것이냐. 그런데 이미 노출된 문제가 반복돼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의석을 내려놓고 47석 골목상권을 보장하는 게 우리 당에도 좋다는 생각을 계속 말하는 거예요.”

    尹 정부, 총체적 무전략 상태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독선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우회적으로 돌려 말하는 이탄희 의원의 화술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떤 평가를 할지 궁금해진다. 그래도 초선 의원이 보수지와 인터뷰하면서 이 정도의 발언을 공표하는 것을 나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다. 결국에 정치인이든 사람이든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는 것은 진술의 일관성일 테다. 그의 말 저변에는 그런 일관성을 가능케 하는 단단한 논리가 자리 잡고 있는 게 느껴진다.

    이번에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고 했다. 어떤 자리에서 그는 사실상 무정부상태라고 말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총체적인 무전략 상태라고 생각해요. 결국 때려잡기식의 국정 운영만 하고 있다고 봐요. 생산적인 국정 운영이 안 되고 있는 거죠. 노조를 때려잡는다든지, 시민단체를 때려잡는다든지, 국회를 대상으로 수사를 한다든지. 이런 것만 반복하고 있는 거예요. 경제만 봐도 당장 세수만 59조 원이 펑크가 났는데, 이걸 어떻게 메우겠다는 이야기가 없어요. 시정연설하러 와서 엉뚱하게 ‘경제성장률이 내년에 오를 것’이라고 하셨는데, 같은 시기에 OECD에서는 ‘대한민국 잠재성장률이 내년에 1% 이하로 내려갈 것이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발표했잖아요. 정부가 현실을 회피하고 있는 거죠. 외교도 즉흥적이에요. 무전략이죠.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는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우리가 일관된 외교정책을 하는 게 아니라 즉흥적인 깜짝쇼만 하고 있는 거예요. 일본에 대해서는 상위 비전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그때그때의 즉흥성만 보이죠. 지난해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학제 개편 문제나 최근 의대 증원 문제와 김포시 서울 편입 문제 등도 그냥 던지는 식이고 지속적인 추진이 없어요.”

    이탄희 의원에게, 문재인 정부와 여당 시절의 민주당이 정치적 정의의 목소리를 과잉되게 내면서 한국 사회의 정의가 망가진 측면이 있다는 개인적 의견을 표하며, 이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평소의 철학인 듯 거침없이 ‘상위가치론’을 쏟아냈다.

    “상위의 가치가 있어야 해요. 정치를 하다 보면 편이 갈릴 수 있지만 상위의 가치를 위해서는 협의하고 협력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저는 정치적 정의와는 별개로 ‘정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상위의 가치를 제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치적 정의를 포괄해서라도요.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가치와 상식·헌법의 가치가 협조돼 나타난 사례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었다고 봐요. 상위의 가치가 있을 때 정치가 순기능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어요. 하부적 기능 속에서 급진적 주장들이 나오더라도 상위의 가치, 상위의 전략, 상위의 방향성이 제시되면 불안할 이유가 없거든요.

    이건 꼭 덧붙이고 싶은 얘긴데요. 180석 민주당이 특별히 이룬 게 없어요. 반사이익 구조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 생각해요. 정치개혁과 선거법 문제는 민주당만 결단하면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지금 국민의힘이 선거법을 과거로 돌리자 ‘양당 카르텔법’으로 가자고 민주당에 제안을 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그 제안을 받지만 않으면 되거든요.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같은 당 의원들이 적지 않은데, 결국은 지도부가 결정할 문제죠.”

    그의 말인즉슨, 지금 당장은 양당의 기득권 구조, 반사이익 구조를 타파하는 게 상위의 가치라고 믿는 듯했다.

    이탄희 의원은 법관 퇴직 후 3년 동안 많은 고민을 하다가 정치에 입문한다. 법관으로 있을 때 그가 했던 정치적 발언은 ‘법복정치’ 같은 워딩으로 전해지며 비판에 부딪혔다. 그것을 의식한 듯 퇴직 후 그는 “이제 무언가가 되려는 삶은 끝난 것 같다, 이제는 무언가를 하려는 삶, 해야 하는 삶이 남은 게 아닌가 싶다”는 말을 했다. 정치의 길을 숙명적으로 자각한 듯한 멘트였다.

    의미 있는 일에 집중… 후일은 생각하지 않아

    그가 정치인으로서 품고 있는 가장 큰 꿈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정치를 숙명으로 받아들인 게 맞다면 정치인으로서의 자의식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그 궁극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아울러 가시권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에서의 계획까지.

    “대한민국에서 엘리트의 삶을 살아왔는데, 엘리트의 삶이라는 게 정해진 코스를 밟는 거더라고요. 항상 무언가가 돼야 하고, 다음 단계에선 또 무엇이 돼야 하는 그런 서사의 지배를 받는 삶이었어요. 이제는 나에게 의미가 있는 일들을 해나가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전보다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진 것 같아요.

    삶은 가만 보면 여행인 것 같아요.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나에게 다가올 때 그 일에 집중하려고 해요. 판사로 일할 때도 그렇게 했고요. 지금 정치인으로 기득권 구조에 부딪히고 있는데, 그걸 깨는 게 지금 저에게 마치 여행처럼 다가온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선거법 개악을 막는 것에 모든 걸 걸겠다고 국민에게 말해놓았기 때문에 일단 그 일에 집중하려고 해요. 그 이후의 상황은 현재로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지역구 의원으로서의 책무는 열심히 하면서요.”

    호사가들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탄희 의원의 라이벌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차기 리더 자리를 놓고 두 사람이 결국 쟁패를 겨루지 않을까 무협지의 삽화 같은 그림을 그려보는 이들도 있다. 관전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려볼 수 있는 그림이다. 그에 대한 입장을 물으니 이탄희 의원도 “그건 시민들의 자유죠”라고 쿨하게 답했다.

    그에게 평소 존경하는 정치인을 꼽아달라고 하자 국내에서는 노회찬,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 등의 이름을 들었다. 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고선 이렇게 덧붙였다.

    “다른 나라 정치인들 중에 30-40대 리더가 많은데, 그런 리더들을 보면 배울 점이 참 많더라고요. 공동체를 하나로 통합해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정치를 추구하는 정치인들이 결국 리더가 되고요.”

    엘리트 출신에 법관 요직을 거쳐 전도가 유망한 차세대 리더로서 그의 이름을 꼽는 것은 이제 어색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나는 계속 신기하게도 마이너리티의 감수성이 느껴졌다. 그게 그가 정치인이 되고 나서 겨우 습득했을 최소한의 연출력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본질에 스민 자국 같은 것을 숨길 수는 없을 터. 나는 그런 증물로서의 자국을 본 느낌이었다. 소수자에게 반사적으로 끌리는 무의식의 그림자 같은 것이라고 할까. 나는 그 이유를 그의 성장 환경을 듣고서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서울 풍납동에서 나고 자랐어요. 매년 장마 때마다 물난리가 났죠. 세상이 물바다가 되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아파트 높은 층에 모였어요. 집마다 여러 가족이 들어가서 몇날 며칠을 함께 지내곤 했어요. 라면과 촛불, 그리고 방에서 아이들과 한구석 차지하고 밤새 수다 떨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특별히 약자를 살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저도 어울려 산다고 느끼는 거죠.”

    그의 취미는 푸른 잎이 무성한 거목들을 보면서 산책하는 것이라고 했다. 큰 나무의 푸른 잎은 진영을 가려 특정한 이들에게만 그늘을 내주거나 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한국 정치의 큰 나무가 돼 자신만의 잎을 드리우길 바란다. 독자들도 이 인터뷰를 가급적 진영 프레임을 버리고 읽어봐 주면 좋겠다. 그가 보수 매체의 인터뷰에 응하는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당신은 이 인터뷰를 읽을 수도 없었을 것이고, 당신이 지금 막 달려고 하는 ‘악플’을 그가 읽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신동아 12월호 표지]

    [신동아 12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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