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시험관아기 시술은 생명윤리 위배 아닌 자연 섭리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3-12-1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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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관아기 시술 같은 난임 시술로 세상에 태어나는 아기는 전체 출생아의 10%에 달한다. [Gettyimage]

    시험관아기 시술 같은 난임 시술로 세상에 태어나는 아기는 전체 출생아의 10%에 달한다. [Gettyimage]

    해마다 난임 시술로 세상에 태어나는 아기가 전체 출생아의 10%에 달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과연 이 많은 아기가 인위적 의술의 힘으로 태어났을까. 그렇지 않다. 비록 시험관아기시술(IVF)이라는 최신 생식 의학의 도움으로 세상에 태어났지만 모두 자연의 섭리에 한 치도 어긋남 없는 귀한 생명이다.

    지금도 IVF로 임신하는 것에 대해 생명윤리에 위배된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일부 종교인은 IVF가 창조주(신)의 고유 권한에 개입해 생명 잉태를 좌지우지하는 의술이라며 난임 시술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도 한다.

    난임 전문의로서 가장 허탈하고 기운 빠지는 순간이 언제인지 아는가. 환자가 임신에 성공하지 못했을 때다. 난임 치료는 곧 임신인데, IVF를 받는다고 누구나 임신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어서 의사로서 한계를 느낄 때가 더러 있다.

    천주교에서 임신중절을 허하지 않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이는 신이 선사한 생명을 인간이 끊을 수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다. 문제는 천주교에서 IVF도 허락하지 않는 점이다. 가톨릭의대 졸업생들은 산부인과 전공의 과정을 성모병원에서 밟을 때 시험관아기 클리닉이 개설돼 있지 않아 다른 대학병원의 난임 클리닉으로 파견 가서 IVF 교육 및 실습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78년 세계 최초로 IVF에 성공한 영국의 생리학자 로버트 G 에드워드(1925~2013)는 그런 훌륭한 업적을 이뤘음에도 2010년이 돼서야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교황청이 반대해서였다고 한다.



    1978년 세계 최초로 IVF에 성공한 영국의 생리학자 로버트 G 에드워드 박사. [Gettyimage]

    1978년 세계 최초로 IVF에 성공한 영국의 생리학자 로버트 G 에드워드 박사. [Gettyimage]

    그렇다면 천주교는 세상의 모든 질환에 대한 치료와 수술(장기이식 등)도 반대해야 마땅하다. 장기이식은 되고 IVF는 안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난임 치료를 위한 체외수정술은 마다하면서 왜 다른 병은 수술을 받아서라도 완치하고 싶어 할까. 다시금 강조하지만 의술은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기술이지 신의 뜻을 거스르거나 자연의 섭리를 위배하는 기술이 아니다.

    진인사대천명

    이제는 생식 의학의 한계를 이해하고 IVF가 인위적 시술이라는 오해를 풀어야 한다. 건강한 난자와 정자를 키워내는 것은 결국 당사자(부부)의 몫이다. 착상 또한 시술받는 여성 개개인의 운명과 생식기 여건(착상 환경)에 달려 있다. 아무리 건강한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고 자궁(착상 환경 등)에 문제가 없다고 해도 임신의 성패는 의사도, 당사자(부부)도, 배양연구원도 알 길이 없다.

    IVF는 임신을 돕는 보조생식술에 불과하지, 생명을 반드시 잉태시키는 시술이 아니다. 정자와 난자가 체외(몸 밖)에서 수정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뿐이다. 생명을 만들거나 잉태를 좌지우지하는 시술이라니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다. 인간이 어찌 감히 생명의 신비로움에 도전장을 내밀겠는가.

    난임 전문의로 살아온 지난 36년간, 그리고 지금도 배아(수정란)를 여성의 자궁 속에 이식하고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꼭 자녀를 만들어주는 역사를 행해 주소서’라고. 한 사람 한 사람 시술(IVF)을 끝내면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긴다. 하늘의 뜻에 따르겠다는 겸허함에서 비롯됐을 게다.

    그렇다면 IVF는 임신에 어떤 도움을 주는 시술일까. 정자를 만나지 못하는, 만나더라도 수정하지 못하는 난자를 몸 밖으로 끄집어내서(난자 채취) 정자와 수정하게끔 해주는 의술이다. 난임 전문의는 생명을 창조하는 의사가 아니다. 최일선에서 생명 잉태로 물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따라서 IVF는 신을 거역하는 일도, 자연을 거스르는 일도 아니다. 인간이 불을 발견하고 도구 사용법을 터득했듯이 종족 번식을 위해 획기적 의술을 개발해낸 것이다. IVF의 역사도 어느덧 45년이 됐다. 전 세계적으로 IVF로 태어나는 아기는 매년 수십만 명에 달한다.

    요즘 뉴스만 틀면 등장하는 유대민족을 예로 들겠다. 그들은 성서를 통해 신이 내린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을 수천 년간 가슴에 새기고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다산(多産)을 실천해 왔다. 현대에 들어서는 IVF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출산이야말로 애국이자 민족의 번성을 위한 기본 의무라고 여기며 자국민인 여성에게 평생 무료로 IVF를 지원한다.

    이러한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이 최근 하마스와 전쟁을 치르며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내고 있어 안타깝다. 종교전쟁이 끔찍한 결과로 치닫는 것을 인류가 지나온 역사를 통해 간접 경험했기에 더더욱 마음이 무겁다. 북한 정권이 1950년 일요일 아무 예고도 없이 남한으로 쳐들어왔듯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도 무자비하게 미사일을 날리면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시작했다. 북한이 남침을 위해 땅굴 여러 개를 파놓았듯이 하마스도 이스라엘과 장기전으로 가기 위해 병원 밑에 미로의 터널을 만들었다.

    그 때문에 병원 환자들이 먼저 희생됐다. 병원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라는 미숙아들이 전기가 끊겨 목숨을 잃을까 봐 의료진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니 심장을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있는 난임 전문병원들은 더 걱정이다. 전쟁이 계속되면 이들 병원에서 IVF를 위해 냉동해 놓은 정자, 난자, 배아가 멀쩡하게 보존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IVF 성패도 신의 뜻

    난임 시술을 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고난도 난임으로 절망하던 여성이 도전을 거듭해 임신에 성공할 때면 하늘의 뜻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필자를 찾아온 난임 환자 가운데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선교사 부부가 있었다. 여성은 나이가 어렸지만 자궁에 너무 큰 혹이 있었고, 난소의 난포 수가 지나치게 적어 의사들에게 임신하기 힘들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IVF를 통해 기적적으로 아기를 갖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성령이 임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성은 둘째 아기를 IVF 시술이 아니라 자연 임신으로 출산했다. 역시 강한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님이 거둬주시는 것 같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다.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이 발발했고 천재지변으로 참사가 일어난 곳도 많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총탄과 폭격 소리가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신이 있다면 인류를 구원하는 데 앞장서는 IVF에 힘을 보태며, 이 또한 자연의 섭리(provision of nature)이자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응원할 것이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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