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우주 대항해시대’ 맞는 대한민국의 자세

후발주자 네덜란드 역전극에 답 있다

  • 김세연 前 국회의원

    입력2024-01-0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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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ce: the final frontier…”

    • 일론 머스크가 염두에 둔 생각

    • 화성을 지구처럼 만드는 방식

    • AGI(인공일반지능) 등장한다면

    • 동인도회사가 구축한 네트워크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미국의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우주 발사체이자 달과 화성 탐사에 쓰일 ‘스타십’이 미국 텍사스주 보카치카 해변의 우주발사장 ‘스타베이스’에서 발사 준비를 하고 있다. [스페이스X]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미국의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우주 발사체이자 달과 화성 탐사에 쓰일 ‘스타십’이 미국 텍사스주 보카치카 해변의 우주발사장 ‘스타베이스’에서 발사 준비를 하고 있다. [스페이스X]

    ‘스타트렉’은 1966년 시작돼 2022년까지 총 11개 시리즈, 42개 시즌, 860개 에피소드가 제작된 미국의 우주 개척 드라마 시리즈다.(머잖아 현실의 영역에 들어올 이야기라 ‘SF 드라마 시리즈’라고 하지 않겠다.) ‘스타트렉’의 도입부에서는 오리지널 시리즈 시절부터 “Space: the final frontier…”로 시작하는 문구가 낭독된다. “우주: 마지막 미개척지. 이것은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의 항해다. 그들의 5년간의 임무: 신비한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새로운 생명체와 문명을 찾아내며, 누구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과감하게 나아가는 것.” 마지막 구절(to boldly go where no one has gone before)은 인류의 탐험 정신, 개척 정신을 응축한 터라 특히 유명하다.

    이 시리즈에서 규정한 ‘우주: 마지막 미개척지’라는 인식이 앞으로도 적절할지 여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이라고 하기에 지구는 너무 작고 우주는 너무 광활하다. 마라톤 경주의 첫 번째 발걸음을 겨우 뗀 상태에서 두 번째 발걸음을 내디디며 ‘마지막’이라고 하는 셈 아니겠는가.

    미국은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에 의해 건설됐고, 서부 개척으로 확장돼 오늘의 지리적 경계를 이뤘다. 이런 미국에서 ‘국경’ 또는 ‘미개척 영역’을 뜻하는 ‘frontier’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1960년 존 F 케네디가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쓴 ‘new frontier’라는 구절은 그래서 더 큰 울림을 줬다. 참고로 케네디의 ‘뉴 프런티어’에는 우주탐사뿐 아니라 시민권, 교육개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를 지향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

    1957년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했다. ‘스푸트니크 쇼크’의 결과로 이듬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창설됐고, 1969년 유인탐사 우주선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성과로 이어졌다. 이것은 이후 국제정치, 과학기술, 교육 등 여러 분야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1972년 12월 아폴로 17호까지 총 6회에 걸친 달 유인탐사가 있었다. 근래에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통해 우주 유인탐사 프로그램이 다시 준비되고 있다.

    지구가 잠재적 재앙에 직면할 경우

    최근 들어 우주가 인류의 관심사 한가운데 자리 잡은 데는 일론 머스크의 공이 크다. 물론 기술혁신과 탐험을 통한 영감과 희망의 제공도 우주 개척의 목표 중 하나다. 다만 머스크에게는 ‘인류의 다행성 종족(multiplanetary species·여러 개의 행성에 거주하는 종족)화’가 우주 개척의 첫 번째 목표다. 지구가 잠재적 재앙에 직면할 경우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필자는 이런 문제의식에 동의한다. 다만 현재 가장 유력한 식민지 후보로 거론되는 화성은 정착 과정에서 만만찮은 도전이 따를 것이다. 화성은 지구에 비해 작은 중력(지구의 38%)과 희박한 대기가 특징이다. 최근 물의 존재가 확인돼 개척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인간이 호흡할 수 있는 대기 환경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에 얼음이 있는 화성의 극지에 핵폭탄 1000개를 터뜨리는 방안이 제기되기도 한다. 얼음 캡에 들어 있는 이산화탄소를 방출시켜 온실효과를 강화하고, 이 과정에서 기온을 높여 화성을 테라포밍(지구처럼 만드는 것)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와 화성은 다르다. 지구는 뜨거운 고체 상태의 ‘내핵’과 액체 상태의 ‘외핵’으로 이뤄져 있다. ‘외핵’에서는 철과 니켈 이온이 대류를 만들고 이것이 지구 전체를 둘러싸는 자기장을 형성한다. 이를 통해 태양풍과 우주자외선으로부터 지구의 생명과 환경이 보호된다. 반면 화성은 내부의 핵이 이미 식어버린 상태다. 표면 일부에서 국소적으로 자기장이 발견되긴 했으나 행성 전체를 보호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핵폭탄을 터뜨려 극지 얼음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해도 자기장의 부재 또는 부족으로 인류가 지표면 위에서 호흡할 수 있을 정도의 대기 조건이 갖춰질지 알 수 없다.

    중력의 차이로 인한 문제도 있다. 중력이 없거나 약하면 뼈의 밀도가 약해지고(골다공증과 유사) 근육이 감소하며 체액의 분포가 달라져 상체로 피가 과도하게 쏠리게 된다. 세세하게는 안구 압력 증가, 안면 부기 등의 증상이 수반된다. 반면 중력이 지구보다 강한 천체에서는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을 증가시켜 근골격계에 대한 압력이 커지고 심장이 혈액을 신체 상부로 공급하는 데 더 큰 부담을 지게 된다. 중력의 차이 탓에 발생하는 현상을 인간의 몸으로 감내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얘기다.

    ‘생체인간’과 ‘기계인간’

    2023년 2월 22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 있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로비에 2020년 국제우주정거장(ISS) 20주년을 기념하는 대형 걸개그림이 걸려 있다. 2020년 미국은 달 탐사 계획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워싱턴=문병기 동아일보 특파원]

    2023년 2월 22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 있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로비에 2020년 국제우주정거장(ISS) 20주년을 기념하는 대형 걸개그림이 걸려 있다. 2020년 미국은 달 탐사 계획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워싱턴=문병기 동아일보 특파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기계는 정해진 설계와 프로그램에 의해 작동된다. 스스로 변이를 만들어내는 경우는 아직까지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자연 상태의 생물종은 생존을 위해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돌연변이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가진 개체와 종이 살아남는다는 자연선택의 진화 과정이 우주에서도 반복되지 않겠는가. 지구의 미세한 환경 차이에 따라 생태계에서는 적응을 위한 돌연변이가 속출했다. 이를 고려하면 물리법칙의 기본이라 할 중력이 달라졌을 때 발생할 일은 우리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 같다. 인류가 다행성 종족이 되면 ‘생체인간’은 지금의 인류와는 다른 형태와 기능을 발달시킬 수 있다. 자연스레 종의 분화 또는 진화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새로운 천체에 정착하는 데에도, 그리고 우주선을 타고 우주공간을 장기간 이동하는 데에도 ‘생체인간’은 ‘기계인간’보다 더 치명적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우주 방사선 노출 과정에서 암과 심혈관질환, 신경계 손상 등의 위험에 휘말릴 여지가 있다. 또한 ‘생체인간’은 우주선 선체라는 한정되고 협소한 환경에 장기간 격리돼야 한다. 이로 인한 정신적·심리적 질환의 가능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마도 우리 같은 생체인간보다는 로봇과 AI(인공지능)가 결합된 기계인간들이 우주 개척의 주된 역할을 맡게 될 것 같다. 아바타나 메타버스처럼 현장에 있는 신체를 원격으로 통제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현재의 우주 통신 기술로는 두 행성 공전주기에 따른 거리가 있는 지구와 화성 사이에 최대 수십 분에 이르는 통신 지연이 발생한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효과적 대응을 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사고하고 위급 상황에서도 단독으로 대처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춘 AGI(인공일반지능)가 주목받는다. AGI 등장 이후 기계인간을 활용한 우주 개척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인간 단독 주도 문명’ 시대가 저물고 ‘인간-기계 공존 문명’ 시대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인류는 기계와 협업해 우주 개척에 나서게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알겠어. 다 좋은데, 이런 일들이 오늘을 사는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법하다. ‘경기침체기에 겪는 개인의 생활고와 인구 급감으로 초래되는 정부 재정 위기에 대처하기도 쉽지 않은데 지금 한가하게 우주 운운할 때인가’ 유의 반문을 충분히 던질 수 있다.

    500년 전과 같은 점

    그런데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바로 지금 500년 전의 ‘대항해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개념과 증거는 피타고라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서야 지구 구형론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과 마젤란의 세계 일주를 통해 비로소 경험적으로 증명됐다. 그때 그들은 어떤 심정으로 절벽이 있을지도 모르는 망망대해에 목숨을 걸고 배를 띄웠을까.

    우주 개척도 마찬가지다. 인류가 활동할 지리를 확장하는 일이다. 이 모험에 앞장선 개인과 국가는 다행성 종족으로서 인류가 겪을 변화와 발전상을 먼저 그려내는 동시에,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을 개발하고 있다. 이들이 역사를 바꾸고 새 시대를 선도할 것이다. 필자는 바로 그런 이유로 이 문제가 중요하다고 말하겠다.

    화성 외에도 태양계 내에서 식민지로 개척할 수 있는 천체로는 유로파, 가니메데 같은 목성의 위성들과 타이탄, 엔셀라두스 같은 토성의 위성들이 있다. 행성 중에는 열악한 조건이긴 하지만 금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 벨트는 희귀금속을 채굴하는 우주 광업의 현장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우주 선진국들은 벌써 여기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유럽우주국(ESA)은 목성의 여러 위성을 겨냥한 탐사선을 2022년에 발사했는데, 이것은 2030년대에 도착할 예정이다. 미국은 목성의 유로파와 토성의 타이탄 탐사를 위한 우주선을 각각 2024년과 2027년에 발사할 예정이다. 소행성 탐사에도 일본과 미국은 일찌감치 나선 양상이다.

    그럼 이미 늦은 건가. 대한민국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항해시대의 네덜란드를 보자. 당시에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의해 중동을 통해 아시아로 가는 육상 무역로가 봉쇄돼 있었다. 이 시대 선발 국가들은 이를 우회해 15세기 말부터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로 향하는 해상무역로를 개척했다. 대항해시대를 주도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조선술과 항해술 혁신에 성공했다. 이들 나라가 만들고 운용한 ‘카라벨선’은 긴 선체와 뾰족한 선수 덕에 가볍고 기동성이 뛰어난 구조를 가졌다. 덕분에 깊은 해양은 물론 얕은 해역에서도 운항이 가능했다. 전통적인 사각 돛뿐만 아니라 맞바람도 배의 추진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삼각 돛까지 장착했다. 이들 나라는 국가 주도의 탐험과 식민지 개척에서 경쟁했고 무역 외에도 ‘종교’와 ‘자원’, 즉 기독교 전파와 금·은 등 희귀금속 확보를 중시했다.

    반면 네덜란드는 후발주자였지만 철저하게 ‘무역’과 ‘상업’을 중시했다. 먼저 무역과 화물 운송에 최적화된 ‘플루이트선’을 개발했다. 이 선박은 비용 효율적으로 대규모 화물을 운송했고, 상대적으로 적은 승무원으로 운용이 가능했다. 지리적으로도 다른 국가가 선점한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대륙이 아닌,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에 집중했다. 또 해상무역과 관련된 금융 및 보험 시스템을 발전시켜 해상무역의 위험을 줄이고 투자를 유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대 주식회사의 원형이라 할 ‘동인도회사(VOC)’를 설립하고 동인도 지역과의 독점 무역권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식민지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각종 권한은 물론 군사 행동과 조약 체결 등 정부가 수행해야 할 광범위한 권한까지 갖게 했다.

    이에 힘입어 세계적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규모와 영향력은 당시로선 전례가 없었고, 세계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애초 네덜란드의 국력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미치지 못했다. 다만 네덜란드는 가장 잘할 수 있는 요소를 파악하는 데 능했고, 덕분에 기술적·경제적 혁신을 이뤄냈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새로운 전략 틀을 만들어내면서 이를 실행에 옮긴 셈이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선발 국가들을 누르고 강력한 해양강국으로 부상했다.

    인구 급감, 초고령화, 가계부채, 연금 고갈 등 우리를 짓누르는 문제가 결코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성 종족으로 진화를 앞두고 있는 인류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우주 대항해시대’의 막이 열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인식과 시야도 우주를 향하고 있기를 바란다.

    김세연
    ● 1972년 출생
    ●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 제18·19·20대 국회의원
    ● 여의도연구원 원장
    ●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 저서 : ‘리셋 대한민국’(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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