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호

실력자 ‘캐치 본능’ ‘룸바’에서 인맥관리

‘엘시티 게이트’ 이영복 기상천외 로비 인생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송국건 |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6-12-22 16: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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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일푼 클럽 웨이터에서 건설업체 대표로
    • 검찰 조사 ‘함구’로 신임…“지켜줄 사람”
    • 최순실과는 강남 계원…“도움 받았을 것”
    • “DJ·친노·법조계 인사에게도 전방위 로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월 16일 김현웅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해운대 엘시티(LCT) 시행사 실소유주인 이영복(66) 청안건설 회장의 비리의혹 사건과 관련해 철저한 수사와 엄단을 지시했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던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박 대통령에게 대면조사 압박을 가하던 시점이다. 정치권에선 당장 “국면 전환용 수사 지시”라는 말이 나왔다.

    새로 불거진 ‘이영복 게이트’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로 최순실 게이트를 ‘물 타기’ 하려는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었다. 더구나 이 회장이 ‘부산의 마당발 로비스트’로 소문난 만큼, 부산 출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새누리당 비주류 리더인 김무성 전 대표를 겨냥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당장 두 전직 대표의 연루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졌다. 그런데 뜻밖에 박 대통령 측근인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유탄’을 맞았다. 부산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현 전 수석은 ‘자해 소동’ 끝에 엘시티 비리에 개입하고 수억 원의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최순실 씨가 이영복 회장 사업의 뒤를 봐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최순실·순득 자매와 이 회장이 억대의 강남 황제 계(契)에 가입한 계원이란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지명수배 중이던 지난 10월에 사업체를 운영하는 그의 아들이 박 대통령과 업체 대표 간담회에 참석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부산지역 정계 인사와 언론인들은 “이영복 씨의 ‘인맥 수완’을 감안할 때, 그가 본능적으로 최순실 씨가 대통령 비선 실세임을 파악하고 ‘황제 계’를 통해 접근한 뒤 사업상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지역 취재원들로부터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기상천외한 ‘이영복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푼돈 받지 마라”

    이영복 회장은 충북 청주 태생이다. 20대 시절인 1970년대에 무일푼으로 부산에 내려가 나이트클럽 웨이터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범일동에서 일식집을 열었고, 국제호텔 나이트클럽을 운영했다고 한다. 부동산 투자를 하면서 1989년 3월 주택사업 허가를 얻어 건설사업에 뛰어들었다. 언론인 A씨는 이 회장의 정계 로비는 이때를 전후해 시작됐다며 비화를 소개했다.

    “1988년 13대 총선 때 부산 동구에서 민정당 허삼수, 통일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맞붙었는데, 5공 신군부 실세이자 집권당 후보인 허삼수에게 돈이 몰렸다. 그러자 이영복이 허삼수를 만나 ‘내가 (돈) 줄 테니 여기저기서 푼돈 받지 마라. 나중에 탈 날 수 있다’며 뭉칫돈을 쥐여줬다. 그해 선거에선 허삼수가 졌으나 1992년 14대 총선에서 설욕했다. 이영복은 허삼수의 든든한 자금줄이었고, 허삼수는 이영복의 뒤를 봐준 것으로 안다. 부산의 유력 정치인들과도 인맥을 쌓았다. 그의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이 회장이 언론에 노출된 건 1998년 ‘부산판 수서사건’인 ‘다대·만덕지구 택지 특혜개발’ 비리 때였다. 부산시 고위 공무원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고, 유력 정치인의 차명계좌에서 뭉칫돈이 발견됐다. 이 회장의 비자금이 정치자금으로 흘러갔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다.



    검찰 간부 내연관계 연결?

    하지만 이 회장은 무려 2년간 도피 생활을 하다가 자수했다. 그는 검찰 수사에서 자신이 뇌물을 준 공직자들을 일절 진술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부산 지역사회에선 “이영복의 돈은 먹어도 탈이 안 난다. 앞으로 우리가 끝까지 챙겨줘야 할 사람”이라는 말이 나돌았다고 한다.

    다대·만덕 사건 당시 김운환 의원이 이 회장에게서 5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부산지역 법조인들을 움직였다는 게 A씨의 전언이다.

    이 회장은 유난히 법조인들을 잘 챙겼다고 한다. 그는 부산 해운대 바닷가에 ‘오션타워’라는 오피스텔 빌딩을 갖고 있다. 1990~2000년대 부산에서 유명한 고급 유흥주점이 있던 곳이다. 지하에는 ‘룸바’, 맨 위층엔 카페가 있는데 이곳엔 그의 전용 룸이 있다. 이곳에 부산지역 판·검사, 언론인 등 유력 인사들을 초청해 향응을 베풀곤 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생활 문제로 자리에서 물러난 전직 검찰 고위 간부도 해운대를 관할하는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근무할 때 이곳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 간부의 내연녀로 알려진 여성이 오션타워 최상층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시기에 그를 만나 내연관계로 이어졌다는 말이 많았다. 이 회장이 두 사람 사이를 연결하지 않았겠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 회장은 부산지역 정계에도 공을 들였다. 13~15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운환 전 의원은 김대중(DJ) 정부 시절 새정치국민회의 부산시 지부장을 지냈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과 DJ 정부 실세가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말도 들린다.

    현재 검찰은 이진복 새누리당 의원(부산 동래)과 측근의 계좌를 압수수색해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이 의원은 1980년대부터 이 회장과 친분을 쌓아왔다. 이 의원은 엘시티 인·허가에 반대하는 공무원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다른 친박계 중진 의원도 내사 중이다.



    李, 이번엔 벼르고 있다

    이 회장이 수십 년 동안 쌓은 정치권 인맥 중 노무현 정부 사람들을 둘러싼 소문이 가장 많다. 친노 세력에선 노무현 정부 때부터 ‘부산 그룹’이 한 축을 이룬다. 야권 인사 B씨는 “친노 인사 중에는 이 회장으로부터 꾸준히 금전적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있는 걸로 안다”고 귀띔했다.

    부산지역 정계 인사 C씨는 “노무현 정부뿐만 아니라 이명박, 박근혜 정부 사람들 중에서도 검찰 수사를 초조하게 지켜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며 “그들은 이번에도 이 회장이 돈을 건넨 사람들의 이름을 검찰에서 진술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번엔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검찰 주변의 전언이다. 이 회장이 이번에 도피생활을 하면서 과거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대부분 나서기를 꺼려 그가 벼르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법조계도 긴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차장급 검사가 오래전 이 회장으로부터 룸살롱 접대를 받았다는 얘기가 퍼져 대검이 직접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부산지역 향판(鄕判)들이 ‘이영복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는 소문도 나돈다.

    이 회장은 엘시티 사업을 추진하면서 500억 원이 넘는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엘시티는 해운대 해수욕장과 맞닿은 옛 한국콘도 등을 포함한 미포지구 6만5000㎡에 건설 중인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이다. 해운대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이었다. 당초 60m 높이 제한 등 여러 제한이 걸려 있어 개발이 안 되다가 이 회장이 사업을 추진하자 고도 제한이 풀렸다.

    그 결과 101층 랜드마크동의 예상 높이가 무려 411.6m에 달한다. 인·허가 과정에는 환경영향평가가 빠졌고, 교통영향평가는 손쉽게 통과됐다. 전방위 금품 로비 없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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