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호

“이회창 대세론에 적신호 켜졌다”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입력2005-04-19 1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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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총재 경선에서 21%의 지지를 받은 한나라당의 ‘2인자’ 김덕룡(金德龍) 의원. 그는 현재 아무런 보직도 없는 평당원이다. 대권 관련 여론조사에서도 주목할 만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여야 가상대결에서는 아예 이름조차 거명되지 않고 있다. 그런 김의원이 대학 강단을 통해서 이따금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을 하고 있다. 정가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정·부통령제 개헌론’이 대표적인 예다. 이른바 ‘이회창(李會昌) 대세론’이 한나라당 내에 널리 퍼지고 있는 시점에 ‘비주류의 수장’ 격으로 볼 수 있는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3월 11일 오전 9시. 서울 서초구 원지동 청계산 등산로 입구에서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울시가 서초구 내곡동 그린벨트 지역에 화장장과 납골당을 조성할 계획이라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기 때문이다. 9시10분쯤 등산복 차림으로 도착한 김의원은 서초구청 관계자들과 악수를 나눈 뒤 서명에 동참했다. 김의원의 지역구인 이곳에선 최근 이 문제말고도 상문고 사태, 삼풍아파트 재건축 등 복잡한 민원이 잇따라 발생했다.

    “우리 지역이라서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입지조건으로 봐도 서초구는 적합하지 않아요. 안기부(현 국정원)가 들어오고 군부대가 이전하는 것까지는 참았습니다. 장애인 학교가 들어오려고 했을 때도 주민들이 반대했는데 나는 열심히 설득했어요. 하지만 화장장은 경우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김의원의 산행은 속보가 특징이다. 웬만한 체력이 아니면 따라붙기 힘들 정도다. 수행비서에 따르면 산악인 허영호씨도 김의원과 함께 산을 타다가 ‘천천히 좀 가죠’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빠른 걸음이지만, 곁에 서도 거친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수건을 꺼내 땀을 닦을 뿐이다.

    ―‘민주산악회’ 시절부터 산에 다니셨죠.

    “그렇죠. 그 전엔 ‘어차피 내려올 산에 뭐 하러 올라가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민주산악회 만들고 전두환 정권과 싸우면서 산과 친해졌습니다. 1년에 한번씩 지리산 종주하고, 1월1일에 태백산을 오릅니다. 산에 가보면 음지와 양지가 있잖아요. 보시다시피 산 밑에는 눈이 다 녹았지만, 여기는 아직도 빙판이잖아요.”



    ―정치적으로 보면 김의원은 음지에서 양지가 됐다가 다시 음지가 된 셈이겠네요.

    “살다보면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되는 거잖아요. 그게 자연의 순리라고 봐요. 그런데 한번도 음지를 겪지 않고 양지에서만 살려고 처신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뭔가 ‘뼈’가 있는 말 같아서 다시 질문을 던지려 했지만, 그는 벌써 저만큼 앞에서 등산객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함께 산을 오르던 일행 중엔 벌써 지친 사람도 보인다. 이들은 김의원이 살아오면서 터울없이 만난 친구들이다. 멀게는 고향친구에서부터 가깝게는 6·3사태와 상도동 비서를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맺어진 인연까지 있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이들은 휴일마다 청계산에 오른다. 그들은 김의원을 ‘대장’이라 부른다.

    김의원은 지난 1월31일 미국 포틀랜드대학에서 뜻깊은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포틀랜드대학은 ‘공공활동에 참여하고 진실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해왔는데, 김의원이 여섯 번째였다. 지금껏 미국에서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 등이, 한국에서는 지난 96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이 학위를 받았다. 평소 김의원의 해외일정을 수행하고 있는 양창영(楊昶榮) 호서대 교수는 “현지 신문에는 크게 보도됐는데,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산을 내려가면서 김의원의 오랜 친구들에게 김의원의 향후 행보에 대한 질문을 두서없이 던졌다. 그들의 대답은 조금씩 달랐지만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김의원이 아직까지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는 것이고, 둘째 선택의 시점이 임박했다는 점이다. 한때 ‘DR계보’로 15대 총선에 출마한 적이 있는 박종철(朴鍾哲) 경희대 교수는 “주변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내고 있지만, 김의원은 자기 스타일을 쉽게 바꾸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DJ정부는 55점

    3월13일 오전 10시. 김의원의 여의도 사무실을 찾았다. 97년 10월까지 이 사무실은 태평로 프레스센터에 있었다. 당시 김의원은 신한국당 대통령후보를 뽑는 전당대회에 출마했다. 내심 2위까지 바라보던 김의원은 4위에 머물렀고 선거캠프로 쓰던 사무실은 여의도로 옮겨왔다. 그 사이 두 차례의 총재 경선이 있었지만, 김의원은 이회창 총재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채 ‘비주류’의 길을 걸어왔다.

    ―국민의 정부가 집권 후반기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김영삼(金泳三) 정부에서 두 차례 정무장관을 지내신 분으로서 김대중 정부의 실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100점 만점으로 점수를 주신다면?

    “경제를 잘 하겠다고 얘기했는데 100만 실업자가 생겼고 경제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잖습니까. 한마디로 낙제점이에요. 4대 개혁은 사실상 말로만 끝났고, 공적자금을 100조 원 이상 투입하고도 경제가 엉망이 돼버렸어요. 정치 개혁은 아예 손도 못댔고…. 한 가지 평가해주고 싶은 것은 그래도 남북관계를 진척시켰다는 점이겠죠. 너무 점수를 인색하게 주면 안되겠고 한 55점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근 일부 언론에 김대중 정부가 김영삼 정부를 닮아가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런 평가에 동의하십니까.

    “아마 잘못된 점을 닮아간다는 지적이겠죠. 개혁의 혼선이라든가, 도덕성의 상실, 인사의 난맥상 등이 비슷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두 대통령이 지도자로서 성격이 다르고 입지가 다른 데도 결과적으로 닮아가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역사가 흐르고 나면 평가도 달라질 겁니다.”

    김의원은 지난해 11월 군산대 초청 특강에서 김대중 정부의 ‘수(數)의 정치’를 비판했다. 그는 당시 “공동정권이라는 이름 아래 덜미를 잡고 있는 자민련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역사와 국민을 상대로 개혁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金鍾必) 자민련 명예총재는 ‘DJP공조’를 선언했고, 최근 민국당까지 끌어들여 원내 과반수를 확보했다.

    ―김의원의 희망과는 반대로 ‘DJP공조’가 복원됐습니다. 현 시점의 ‘DJP공조’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연대를 하려면 서로 정책이나 색깔이 비슷해야 되는데 민주당과 자민련은 전혀 다르잖아요. 이건 두 정파의 권력 나눠먹기고 야합입니다. 정치를 순리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숫자놀음을 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야당과 자꾸 충돌할 수밖에 없는 거죠.”

    ―한나라당에서는 일부 의원의 탈당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 지도부는 정계개편 음모 규탄대회를 열었고, ‘탈당리스트’에 오른 의원은 기자회견까지 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낮다고 봅니다. 이건 정계개편을 위한 음모가 아니고 야합이에요. 지금 한나라당은 그 실체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어요. 당 대변인이 나서서 ‘경기도에 두 사람, 강원도에 한 사람이 의심스럽다. 15명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소속의원들에 대한 모독이고 명예훼손입니다. 내가 판단하기로 혹시 내부 단결을 위한 당내용 발언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어요.”

    ―과거에 보면 탈당하는 의원들은 하루 전까지도 부정하다가 다음날 기자회견을 갖곤 했잖아요. 한나라당 지도부도 “공개할 수 없지만, 여권에서 집요하게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발언을 흘리고 있습니다.

    “여당에서야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탈당할 것으로 거론되고 있는 어느 의원의 경우 내가 알기로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그분은 누구보다도 야당성이 강하고 지역 사정을 봐도 탈당할 수 없는 의원인데 당에서 자꾸 의심하고 있어요. 그건 누워서 침뱉기고 동지간에 신뢰를 깨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누가 남이 다 파먹고 난 김칫독에 빠지겠다고….”

    ―현재의 여당을 남이 다 파먹고 난 김칫독이라고 보시는 겁니까.

    “국민들이 무조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잘 하면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죠. 김대중 정부 하에서 반사이익을 취하겠다는 자세를 버리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역할을 하면, ‘적군’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겁니다.”

    김의원은 민주당을 향해 두 가지 표현을 썼다. 하나는 ‘남이 다 파먹고 난 김칫독’이고 다른 하나는 ‘적군’이다. 둘 다 부정적인 색채가 짙다. 하지만 이것만 갖고 민주당에 대한 김의원의 의중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지난해 11월 군산대 강연에서 그는 “김대중 대통령이 사심을 버리고 과감하게 정치개혁을 추진한다면 지역감정 해소를 바라는 야당 내 개혁세력도 동참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의원께서 제안한 정·부통령제 개헌론은 정치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개헌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내년 대통령선거 전에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국가의 틀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이 잘못됐다면 당연히 고쳐야죠. 나는 지금부터 여야가 개헌 논의를 시작해서 금년 말까지 끝내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여야간에도 이 문제를 논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야를 초월해 개헌을 논의하는 기구를 만들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안하려고 합니다. 개헌캠페인 같은 것이 되겠죠.”

    ―한나라당 지도부는 김의원이 제안한 정·부통령제 개헌론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정계개편 전략에 말려들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지금 한나라당은 마치 개헌반대가 당론처럼 돼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16대 총선 이전에 개헌문제를 이슈로 만드는 것이 좋지 않겠다고 해서 전략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던 겁니다. 나는 요즘 이회창 총재가 개헌이 가져올 파장을 두려워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까지 듭니다. 하지만 개헌문제는 단순히 대선가도에 유리하냐 불리하냐 하는 차원에서 논할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의원이 줄기차게 개헌론을 주장하는 근거에는 한나라당 내의 역학구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현 상태에서 전당대회를 치를 경우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후보로 나설 것이 거의 확실하기에 김의원으로서는 정치지형을 바꾸기 위한 도전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한나라당 내에서 러닝메이트가 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계개편을 염두에 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김의원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통령제를 들고 나왔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껏 나는 개인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정치활동의 방향을 잡은 적이 없습니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어느 것이 옳으냐를 판단해서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내가 개헌론을 주장하는 것과, 대선에서 후보가 되겠다는 전략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아마 개헌이 된 이후의 내 행보를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개헌 이후의 행보라는 건 어떤 것입니까.

    “국민을 하나로 묶고 정치의 잘못된 점을 개혁하는 겁니다. 나는 이것을 위해 노력할 것이고 또 평가받고 싶습니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직분입니다. 잘못된 정치, 지역주의 정치, 대권만 놓고 싸우는 정치,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소신을 억압하는 정치를 개혁하고자 합니다.”

    ―‘개헌이 되면 정·부통령 후보로 나가지 않는다’ 이렇게 해석해도 됩니까.

    “지금은 내가 나간다 안 나간다를 이야기할 시기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회창 대세론에 회의적

    이회창 총재와 김덕룡 의원은 지금까지 3차례 경선에서 맞붙었다. 3번 모두 이회창 총재의 승리로 끝났다. 김의원의 순위와 지지율이 한단계씩 상승하긴 했지만, 내용으로 보면 김의원의 입지가 좁아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 결과는 대선을 1년 9개월 앞둔 당내 분위기로 연결되고 있다. 이총재가 대선후보가 될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드물지만, 김의원에 대해서는 출마 여부조차 불투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거나 다름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시간이 가면서 대세론보다는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어요. 한나라당은 대통령 후보를 정한 일이 없는데도 이회창 총재는 지금 자기가 대통령 후보인 양 행동하고 있어요. 지하철 유세를 하고 양로원을 가고…. 반면 여당 사람들은 특별히 언론을 타는 것도 아닌데 이총재와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 ‘과연 이총재가 될 수 있겠느냐’고 회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국민들이 ‘한나라당에 마음 놓고 정권을 맡겨도 되겠구나’ 하는 신뢰를 주어야만 이총재에게도 도움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팽개치고 개인 인기나 유지하겠다는 것은 방향을 잘못 잡은 거죠.”

    ―만일 이대로 가서 이총재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다고 했을 때 본선 경쟁력을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지금 ‘이회창 대세론’에 적신호가 들어왔다고 봅니다. 한나라당은 당 중심의 활동, 정책활동, 당운영을 차별화해서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대선 승리가 어렵습니다. 지역주의에 집착해서 영남 정서와 반(反)DJ정서에 안주해서는 이길 수가 없어요. 온건한 진보세력 뿐만 아니라 개혁세력도 끌어들이고 20~30대 젊은 세대들을 포용하고…, 이런 쪽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자꾸 한쪽으로 치우쳐버리니까 경쟁력이 떨어지는 겁니다.”

    ―‘이회창 대세론’의 전망이 밝지 않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렇다면 김의원께서는 다른 대안이라도 생각하고 계신지요.

    “조만간 당내 중진의원, 개혁적인 소장파 의원, 한나라당의 장래를 걱정하는 분들과 만나 그 문제를 깊이있게 논의할 생각입니다. 지금 한나라당에는 이총재의 행보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과 함께 대책을 세워야겠죠. 필요하다면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연대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김의원은 이회창 총재를 오래 전부터 비판해왔다. 이총재가 3김(金)과 다를 바 없을 만큼 독선적으로 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두 사람은 정치 현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릴 때가 많다. 이총재가 국회를 거부하고 장외투쟁을 선언하면, 김의원은 등원론을 제기했다. 또 지난해 11월엔 이총재가 전격적으로 정기국회 등원을 결정하자 김의원은 “의원총회를 거치지 않고 총재 개인이 등원을 결정한 것은 한나라당이 1인지배 정당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까닭에 이총재 진영에서는 김의원을 가리켜 ‘당의 단합을 해치는 분열주의자’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한나라당의 당 운영에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총재단 회의가 아무런 결정권도 갖지 못한 채 보고만 받고 있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민주정당이라면 당연히 의원총회에서 당론을 결정해야죠. 어느 날 갑자기 규탄대회를 열고,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의원들의 소신을 억압하고…. 이총재는 말로만 3김청산 한다면서 실제로는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요. 성만 이씨지, 또 하나의 3김씨에 불과해요. 이래서는 안됩니다. 독선적으로 당을 운영해서는 절대로 정권을 잡을 수 없습니다. 지금 김대중 정권은 민심을 저버리고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일을 무수히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이회창 총재 중심으로 반DJ 세력을 결집해야 됩니다. 그런데 거꾸로 이총재가 포위되고 있어요. ‘반창(反昌)연대’는 이총재 스스로 자초한 거나 다름없어요.”

    ―이총재를 만나서 ‘이렇게 바꾸십시오’ 하고 건의하신 적은 있습니까?

    “나도 많은 얘기를 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요. 무슨 이야기를 하면 받아들여야 될 거 아닙니까? 그저 내 입만 아프고 듣는 것 하나 없이 끝나버리더라구요. 이총재도 뭐가 문제인지는 다 알 것이고, 이제 결단만 남았다고 봅니다.”

    ―김의원께서는 지난해 11월28일 전북대 경영대학원 초청 특강에서 “당의 회계는 어떻게 처리되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사기업도 투명한 경영을 하겠다는 판인데 정당의 자금 사용이 불투명해서는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우리 당에는 국민의 세금으로 받은 정치자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살피는 내부감사가 없습니다. 자체 감사도 없이 총재가 자기 책임하에 마음대로 쓰고 있어요. 당원들은 당비를 내고 의원들도 세비에서 매달 얼마씩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쓰이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건 민주적인 정당이 아닙니다. 우리 당 뿐만 아니라 여당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97년 7월이었다. 신한국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열린 의원보좌관세미나에서 김의원은 ‘세대교체론’를 제기했다. 그는 “구시대 정치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40~50대 정치가 요구된다. 또 정치개혁은 ‘젊은 정치’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그의 나이 56세. 4년이 지난 지금 그는 60대로 접어들었다. 자신이 4년 전에 내세웠던 논리대로 한다면 ‘세대교체’의 대상이 된다는 얘기다.

    ―다음 달이 회갑이시죠? 4년 전 ‘40~50대 세대교체론’을 제기하신 분으로서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97년 당시엔 3김식 정치를 청산하고 한국정치가 개혁돼야 한다는 점에서 40~50대가 자신감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세대교체론’을 얘기했습니다. 저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시 구절처럼 갈 때가 되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3김식 정치가 판을 치고 있고, 새로운 정치세력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20세기의 마지막 망령인 3김정치 청산은 우리 세대의 몫이 아닌가 싶습니다.”

    ―민주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이인제(李仁濟)·김근태 최고위원과 노무현(盧武鉉)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검토중인 ‘50대 기수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분들에게 내가 걸림돌이 돼서는 안되겠죠. 내가 비록 60이 됐지만, 연령 때문에 그분들보다 활동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될 덕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정치인들은 시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20세기에는 지도자들이 큰 흐름을 잘못 봐서, 비참한 역사를 겪지 않았습니까. 21세기의 지도자는 통찰력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고 3가지 정도를 더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화합적 리더십, 개혁적 리더십, 민주적인 리더십이 그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는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한다고 보십니까?

    “야당을 하려면 철학과 인간미를 갖춰야 합니다. 그에 못지않게 용기도 필요하고요. 가시밭길에라도 자기 몸을 던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겠죠.”

    김의원의 답변엔 큰 정치를 하고 싶은 열망이 묻어난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정치지형은 그다지 여유롭지 않다. 한나라당 내에서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대중적 지명도가 바닥권을 헤매고 있는 것은 치명타나 다름없다. 냉정하게 말하면 김의원이 정치적 ‘도박’을 하고 싶어도 믿을 구석이 없는 상황이다. 반면 현 시점에 김의원이 타깃으로 삼고 있는 이총재는 당내외에서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탄탄한 기반을 구축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한나라당에서는 대통령후보로 이총재가 월등하게 앞서가고 있습니다. 그런 결과를 어떻게 보십니까?

    “한나라당 후보는 이회창으로 알려져 있고 모든 것이 이회창 총재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아마 누구라도 당 총재가 되고 후보가 되는 과정을 거치면 지지도가 올라갈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상태에서 단순 비교를 해서는 안된다는 거죠. 정치라는 게 살아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인기는 오르고 내리는 겁니다. 97년 1월에 신한국당 후보들 가운데 1위를 달리던 박찬종씨가 그후 어떻게 됐습니까? 또 순위에도 없던 이인제씨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래도 김의원의 현재 지지율은 너무 낮지 않습니까.

    “나는 그런 데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나는 그런 쪽보다는 잘못된 정치를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지지율이 어느 정도는 돼야 향후 정치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다 때가 있는 겁니다. 모두들 대선에 미쳐 있는데 이거 뭐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정치개혁을 하고, 민생이나 경제 살리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도 시원치 않을 판에….”

    박근혜 부총재는 큰 정치인

    최근 김의원의 정치적 발언은 대부분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를 겨냥하고 있다. 한국언론재단이 운영하는 종합뉴스데이터베이스(Kinds)로 검색을 해봐도 그런 결과가 나온다. 그만큼 김의원은 현재의 정치구도에서 이총재와 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가능할 듯하다.

    이런 까닭에 김의원이 이총재를 제외한 여야의 다른 정치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지금껏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인물평’을 해달라며 여야 대권주자의 이름을 들이댔다.

    ―민주당에서는 김중권(金重權) 대표가 등장하면서 ‘영남후보론’이 뜨거운 화두로 등장했습니다. 김대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항상 양지만 걸어다닌 사람들이 국민의 애환을 얼마나 알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김대표는 여러 가지로 대통령까지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봐요. 내가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지만, 자기도 좀 당당하지 못한 것 아닙니까.”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은 13대 총선을 앞두고 김의원이 추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똑같이 4선이 되었지만, 정치적 지위는 다른 것 같습니다. 대권후보로 볼 때 이최고위원을 평가한다면.

    “아직 대통령 후보가 된 것도 아닌데 뭐라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봐요. 다만 97년 대선에서 우리 당 전당대회에 출마했다가 경선에 불복하고 탈당한 건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봅니다.”

    ―‘신동아’ 1월호에서 여야 국회의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정·부통령제 개헌을 전제로 박근혜(朴槿惠) 부총재가 부통령 호감도 1위로 나왔습니다. 김의원은 박부총재와 개인적으로 가깝고, 현재 나란히 개헌론을 외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과 중국도 함께 다녀오셨는데 앞으로 개헌이라는 틀에서 두 사람이 연대할 수도 있다고 보십니까.

    “박부총재하고는 자주 만나서 여러 가지 얘기를 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지 않고 큰 정치를 할 만한 사람이라고 봐요. 생각이 바르고 국민적 인기와 잠재적 능력, 정치감각, 절도, 아버지의 후광 등 정치인으로서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어요. 개헌 문제를 포함해 한나라당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의논할 수 있는 분입니다.”

    김의원은 4선을 거치면서 재무위, 국방위, 통일외교통상위에서 활동했다. 국정의 핵심을 이루는 상임위원회를 모두 거친 셈이다. 비록 의정활동보다 정치적 행보에 치중해 왔지만 쟁점 사안에 대해서도 개혁적인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최근엔 논란이 되었던 개혁입법 처리와 소장파 의원들의 크로스보팅 주장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최대 이슈인 남북관계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통외통위 소속인데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김대중 대통령의 포괄적 상호주의와 이회창 총재의 전략적 상호주의에 대한 견해도 밝혀주십시오.

    “한미정상회담은 상당히 당혹스러웠습니다. 부시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시각 차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고, 이러다가 햇볕정책의 햇볕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시 정부와 호흡을 맞추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상호주의란 기계적으로 하나 받았으니까 하나 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주기도 하고 늦게 받을 수도 있는 겁니다. 큰 것을 끌어내기 위해 막힌 벽들을 뚫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상호주의 앞에 굳이 수식어를 붙인다면 ‘단계적’ 또는 ‘탄력적’이란 말이 좋을 것 같습니다.”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의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지난해 1차회담은 평화의 문제보다 통일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국론분열의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2차 회담에서는 남북간 교류, 긴장완화, 신뢰구축 등 주변국과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 의제들이 중시돼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만일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남북관계가 지금보다 경색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는 정치권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김대중 정부가 야당과도 협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다 정권이 바뀌면 다시 백지로 돌리는 식이 돼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한나라당도 큰 틀에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도와야겠죠.”

    인터뷰를 마칠 시간이 됐다. 마지막으로 차기 대권과 관련한 그의 행보를 물었다. 그가 똑 부러지게 대답할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는 지금보다 환경이 훨씬 좋았던 97년 경선 때도 그 해 1월이 돼서야 비로소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일부 언론에 서울시장 출마설이 보도됐습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의회정치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서울시장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한나라당이 대통령후보를 선출하는 2002년 전당대회에 출마하실 생각이십니까?

    “아직까지 출마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안하겠다는 것도 아니구요. 정치인으로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회피하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뭐라 말하기 힘듭니다”

    ―출마 여부는 언제쯤 결정하실 겁니까?

    “전당대회가 다가오면 그때 가서 많은 의원들과 논의해서 결정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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