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파문이 확대되자 민주당은 어디까지나 황교수가 개인 의견을 피력한 것이지 연구소와는 무관한 발언이라며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연구소의 존재를 대외에 각인시킨 첫 번째 사건이 ‘설화’라는 사실은 연구소의 이미지에 상당한 흠집을 남기게 됐다. 연구소 내부에서는 이미지 손상보다도 현 정부의 손꼽히는 논객으로 연구소 활동을 실질적으로 견인할 황교수가 낙마함으로써 추진력이 크게 위축됐다는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국가전략연구소는 출범에 쏠리는 기대만큼 설립 추진과정에 당내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지는 못한 듯하다. 김대통령은 연구소 설립 후 첫 청와대 주례보고에서 임소장에게 “(연구소 설립을) 어렵게 결정했으니만큼 열심히 해서 성과를 거두라”고 말했다.
어감상 김대통령이 연구소 설립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임소장은 이에 대해 “김대통령도 연구소 설립이 당의 슬림화라는 명분에 역행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셨다”고 인정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기존 아태재단과 기능이 중복된다는 문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아직 한국 정치의 수준과 체질상 정당의 연구소가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이 김대통령의 인식 아니겠느냐”고 조심스럽게 해석했다.
당 총재인 김대통령의 지원 의지가 확고하지 않다는 것은 연구소가 처한 현실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듯하다. 우선 국가전략연구소는 연구인력 확보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초 ‘20여 명의 연구진을 3실 체제로 편성해 ▲정치개혁 및 정치발전 ▲당의 중장기 전망과 발전방안 ▲중장기 국가정책개발 및 국정운영방안 ▲국정현안 등의 연구활동에 집중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밝혔지만 현재까지 외부에서 박사급 1명과 석사급 1명을 영입하고 당에서 6명을 지원받아 총 8명의 연구인력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청와대 언론비서관을 역임한 이병완 상근부소장은 “연구소의 운영 목적이 학술적인 연구실적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현안 분석과 당의 중장기적 정책개발에 있는만큼 학계나 연구소의 연구경력보다는 ‘현장감각’이 중요하다”면서 “앞으로 충원될 연구 인력도 현장감각을 우선 고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연구인력 확보는 그렇다 쳐도 재원 확충 역시 여의치 않아 보인다. 당 정책전문위원 출신인 곽해곤 연구1실장은 “연구소 설립을 기획하는 과정에 재원 마련 및 독립성 확보 여부에 대해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다. 1안은 당에서 기금을 출연해 독립된 재단법인 형태로 세운다, 2안은 국고보조금 중 20%를 연구소에 직접 지원하도록 정당법을 고쳐 독립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재원을 확보한다, 3안은 당내 기구화였는데 최종적으로 3안이 채택됐다”고 말했다. 원래의 청사진은 충분한 재원을 확보해서 별도 법인으로 설립하는 것이었으나 결국 당내 기구로 후퇴했다는 얘기다.
명의도용 시비에 휘말려
연말까지 연구소 활동비로 20억원 정도의 기금을 확보할 방침이지만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연구소 설립 작업이 그다지‘주도면밀’하게 추진되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명칭문제다. 출범 초 대내외적인 공식명칭이 ‘국가경영전략연구소’였던 국가전략연구소는 개소식과 함께 당사 현관에 현판을 걸고 난 뒤에 한 통의 항의서한을 받았다. 발신인은 강경식 전 부총리 등 전직 국무위원들이 설립한 한나라당 외곽단체인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아홉 글자 중에서 겨우 끝자 하나가 다를 뿐인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명의 도용’이나 다름없으니 재고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공식적으로 내건 명칭을 출범하자마자 고칠 수도 없어 고심 끝에 결국 공식명칭은 그대로 두되 언론 등 대외적 으로는 ‘경영’이란 단어를 빼고 ‘국가전략연구소’로 줄여서 부르자는 미봉책을 마련했다. 결국 당 기구표에는 여전히 ‘국가경영전략연구소’로 존재하지만 대외적으로는 국가전략연구소로 불리는 웃지 못할 혼선이 초래된 것이다.
당내 기구인 국가전략연구소의 현실은 거의 동시에 출범한 김원길 의원의 새시대전략연구소와도 뚜렷이 대조된다. 새시대전략연구소의 경우 출범과 함께 각각 4명의 박사급 연구위원과 석사급 연구간사를 확보해 발빠르게 연구소의 골격을 완성했다. 연구인력 확보와 재원 마련뿐 아니라 연구소의 존재와 활동을 홍보하는 작업 등이 초스피드로 진행돼 출범 5일째인 2월22일에는 미국의 친공화당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과 자매결연도 했다.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가진 조인식에는 에드윈 퓰러 소장과 켄 쉐퍼 아시아지역담당관 등 헤리티지 재단측 주요 인사 상당수가 참석했다. 4월중에는 연구팀을 미국에 보내 헤리티지 재단의 운영에 관해 속속들이 벤치마킹해 온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반대로 헤리티지 재단 쪽에서도 연구인력을 보내 연구협력창구 개설을 논의키로 했다. 영문이니셜인 NSIK(New Strategy Institute-Korea)를 공식명칭으로 사용하면서 별도의 로고도 제작했는가 하면 수시 제작하는 활동 리포트 형식의 소식지인 ‘NSIK 소식’을 출범 3주 만에 7차례나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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