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13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풀려난 마부노호(왼쪽)가 예멘 해안경비대의 안내를 받으며 남부 아덴 항에 정박할 준비를 하고 있다.
10월30일 소말리아 모가디슈 근해에서 해적들의 습격을 받은 북한 선박 대홍단호 승무원들이 맨손으로 격투를 벌여 해적들을 제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러한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었다. 비슷한 시기 미 해군 구축함이 한국인 선원 2명이 탑승한 파나마 선적 골든모리호를 납치한 해적선을 추적해 격침시켰다는 보도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해적에 대한 미 해군의 작전이 구축함 한 척과 전투헬기 한 대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우리 해군은 그만한 능력이 없단 말인가”라는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당국자들과 군 관계자들은 9월부터 10월 중순 사이 한국 정부도 소말리아에 병력을 보내 마부노호 선원들을 구출해낼 방법을 논의한 바 있다고 밝혔다. 합동참모본부의 작전본부 합동작전과를 중심으로 진행된 이러한 검토는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피랍사태가 100일을 넘긴 9월초, 타협점을 찾는 듯했던 해적과 마부노호 선주의 몸값 협상이 해적들 사이의 내분으로 수포로 돌아간 직후부터였다. 해적들의 3분의 2가 마부노호에서 내리는 등 거의 해결 막바지에 이르렀다가 원점으로 되돌아간 상황이었다.
사태가 다시 엉키자 정부 내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대두됐다고 한다. 안보부처 장관들이 모인 관련 회의에서 아프간 인질사태처럼 정부가 주도적으로 상황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협상에 대한 회의론과 함께 무력 사용에 대한 의견도 제시됐다는 것. 특히 무력 사용 의견은 “몸값을 주고 풀려나는 일이 반복되어 한국인이 ‘봉’으로 인식되는 상황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논리에 근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가 청와대로부터 가능한 작전구성안을 실무 차원에서 기획해보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 대략 이 시기와 일치한다.
한 달 반 걸린 보고서
9월 하순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대책회의에서는 병력투입에 관한 이야기가 정식으로 테이블에 올라오기도 했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에 대해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함에 따라 공식적인 차원의 논의는 중단하기로 했다는 것. 그러나 합동참모본부는 별도의 루트를 통해 병력투입에 관한 세부사항을 계속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10월 중순 이에 관한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고서를 작성한 실무주체는 합참 합동작전과였지만 정보본부와의 협의를 거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프리카 지역에서 한국 정부 정보활동이 극히 미미하다는 점을 들어 정보본부가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는 것. 결국 보고서는 구체적인 작전 기획안은 포함되지 않은 채 “병력투입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결론과 그 이유만이 담겨 김장수 장관에게 보고됐고, 김 장관은 이를 10월 중순 청와대에서 열린 안보관계장관회의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처음 합참이 관련 기획을 시작한 시점이 9월초였음을 감안하면 대략 한 달 반 가까운 시일이 걸린 셈이다.
김 장관이 이를 반대한 요지는 우선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정보가 없는 탓에 작전을 준비하기 쉽지 않고, 만에 하나 작전과정에서 인질이 살해당할 경우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이와는 별도로 소말리아 영해에 군대가 진입하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간단치 않은 문제라는 의견도 정부 일각에서 제시됐다고 한다. 법적으로 마부노호가 케냐 국적인 데다 소속회사도 한국이 아닌 케냐에 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 역시 정부의 대응 움직임을 제한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