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호

현지취재

“한국에 친중정권 세워 사드 철회 노린다”

중국의 ‘韓 대통령 탄핵’ 대응책

  • 홍순도 | 아시아투데이 베이징 특파원 mhhong1@hanmail.net

    입력2016-12-29 17: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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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14억 중국인은 이웃 나라 한국에서 자신들로선 상상조차 못할 정치적 격변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무척 놀라워한다. 하기야 대부분의 한국인도 불과 수개월 전까진 대통령이 탄핵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비선(秘線) 실세 최순실’ 사건으로 한국 정치와 한국 민중은 중국인들에게 완전히 새롭게 비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누나’에서 ‘아줌마’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중국인들의 시각은 최근 1년여 사이에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마따나 극에서 극으로 돌아섰다. 한때 박 대통령은 중국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한국 정치인이었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선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자주 싣는 ‘환추시보(環球時報)’도 그를 ‘스타’로 대접했다. 어떤 면에서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듯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박 대통령이 2015년 9월 3일 중국의 ‘항일 및 반제국주의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 참석차 베이징의 톈안먼(天安門) 성루에 올랐을 때 최고조에 달했다. 많은 중국인이 당시 박 대통령을 ‘다제(大姐, 큰누나)’라고 불렀고, 중국어판 박 대통령 자서전들도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를 결정하면서 중국인들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최순실 의혹이 근거 있는 것으로 밝혀져 대통령 탄핵소추가 논의되자 완전히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다제’라는 말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다마(大媽)’라고 부르는 이가 많아졌다. 부정적인 의미의 ‘아줌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SNS 공간에선 ‘측천무후(則天武后, 폐위된 당나라 여황제로 남자관계가 회자됐다)’ ‘서태후(西太后, 청나라의 몰락을 부른 여성 실권자)’라 일컫는다. 이 정도면 조롱 수준이다. 청와대에 비아그라 등이 대량 유입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런 표현은 더욱 늘었다.   



    평소에는 비교적 점잖은 논조로 기사를 쓰는 언론매체들도 물 만난 고기들 같다. ‘구이미(閨密, 절친한 여자친구) 게이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사건을 선정적으로 다룬다. 심지어 환추시보는 최순실이 사드 배치에까지 개입해 농단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지우지 않는다. 중국 네티즌들은 “박 대통령이 정신적으로 최순실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중국 언론도 이런 주장을 가감 없이 보도하는 듯하다.



    언론에 스며든 中 정부 의중

    마샹우 런민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박 대통령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이른바 ‘관시(關係)’가 중요한 중국에서도 최고권력자가 한 사람에게 그 정도로 의지하는 경우는 없다.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주변 몇 명만의 이익을 추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중국인들도 이 점을 비판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중국에서 쌓은 엄청나게 좋은 이미지는 이제 완전히 신기루가 됐다.”

    한국 정치도 조롱과 다름없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베이징청년보(北京靑年報)’처럼 젊은 독자가 많은 신문들도 연일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향해 ‘십상시’나 ‘내시환관당’ 같은 민망한 단어들을 쏟아낸다. 몇몇 중국 신문은 “새누리당 의원 상당수가 박 대통령의 추문을 알고 있던 부역자들”이라는 논평을 내놓는다. 한국 유학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리빈 쥔허(君和)투자관리공사 부사장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상당수의 중국인은 한국이 정치적인 면에서는 일본 못지않은 수준에 올라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 비록 독재 시절을 거치기는 했으나 그래도 지금의 야당이 10년 집권도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고 시스템이 많이 망가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통령의 무한 권력을 어쩌면 그렇게도 견제하지 못했나. 여당의 책임도 크겠으나 야당도 비난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박 대통령 탄핵 정국에 대한 중국 언론의 보도는 시진핑(習近平) 정권의 대(對)한반도 정책과 맥을 함께한다는 시각도 있다. 중국 정부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 외교가 관계자의 분석을 들어보자.

    “중국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이고 새누리당까지 싸잡아 만신창이로 만드는 데 전력투구해왔다. 여기엔 중국 정부의 의중도 반영돼 있다. 중국 정부의 궁극적 목적은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새누리당이 몰락하고 내년 한국에 친중(親中)정권이 들어서 사드 배치를 철회하도록 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 탄핵소추 이전까지 6차례의 대규모 촛불집회를 평화적으로 치러낸 한국 민중에 대한 중국인들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한국인들의 평균적 정치 역량에 대해 알고는 있었으나 새삼 다시 평가하게 됐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특히 수십만 명이 운집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사고가 전혀 발생하지 않은 사실에 주목한다.

    유력 인터넷 포털사이트 신랑(新浪)을 비롯한 일부 중국 매체들은 촛불시위 현장을 생중계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많은 중국인은 QQ, 위챗 등을 통해 감탄사를 연발했다. 촛불집회를 계기로 한국인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평가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



    中 광전국 ‘촛불 보도지침’

    또한 적지 않은 부패혐의를 받는 최고권력자를 민중의 힘으로 끌어 내리는 한국적 상황을 부러워한다.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것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광화문을 가득 메운 인파는 이들에겐 매우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러면서 집회와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자국의 현실을 돌아보는 듯하다.

    한 중국인은 “우리도 27년 전에 톈안먼 유혈 사태를 겪었다. 한국의 촛불집회 장면을 보고 당시를 떠올렸다. 중국에선 당분간 보기 어려운 모습이 아닌가 싶다. 솔직히 동류의식을 많이 느꼈다.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한국의 촛불시위에 이처럼 큰 관심을 쏟는 분위기는 최근 들어 다소 자제되는 듯한 양상이다. 중국 정부에 최근의 ‘한국 사태’는 양면적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으로 비친다. 중국의 이익에 반해 사드 배치를 추진한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게 된 것,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이 타격을 입게 된 것은 중국 정부로선 반가운 일일 수 있다. 반면, 민중이 최고권력자에게 저항해 그를 굴복시켰다는 메시지는 공산당 1당 독재체제의 중국 정부엔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다.

    중국 당국은 12월 들어 한국 촛불시위 관련 기사에 대한 통제에 적극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언론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미디어 분야를 총괄하는 정부기관인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은 당 기관지 ‘런민일보(人民日報)’, 관영 신화통신, 국영 CCTV(중국중앙방송) 등의 책임자들을 소환해 “앞으로 한국 정치 관련 기사 게재는 자제하도록 하라. 중복 보도를 하는 일도 없도록 하라”는 요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많은 기사를 접하지 못하게 된 만큼 한국 정국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도 줄고 있다.  


    “계속 낭떠러지로…”

    그러나 중국 당국은 한국 정치 사태를 계속 예의주시한다. 외교부 산하 싱크탱크와 베이징대 한반도문제연구소 등에서 활약하는 전문가들을 규합해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향후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처지에선 한국에서 큰 변고가 발생해 동북아 정세의 가변성의 커졌으니 대비할 것이 많다고 여길 것이다.

    현재 외교가에서 떠도는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시진핑 정권이 사드 배치 결정으로 인해 친구에서 원수로 돌아선 박 대통령을 낭떠러지로 계속 밀어붙인다는 설이다. 힘이 약해진 상대를, 내친김에 아예 쓰러뜨리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이에 따라 실체가 애매모호한 이른바 ‘한한령(限韓令, 중국 내 한류 제한 정책)’은 은밀하게, 그러나 강력하게 계속 추진된다고 한다. 사드 배치 결정을 강행해 이런 상태를 몰고 온 책임을 박 대통령에게 분명히 씌워 남남갈등을 유발하겠다는 전략이라고 한다.

    사드 배치 결정 및 박 대통령 탄핵과 맞물려 현안으로 떠오른 한한령은 모호하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외교부의 겅솽 대변인은 지난 11월 말 내외신 정례 회견에서 “나는 한한령에 대한 말을 결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게다가 한한령을 유추할 만한 중국 정부의 공식 문건이 공개된 적도 없다.

    하지만 여러 정황을 보면 한한령이 없다고 하기 어렵다. 우선 사드를 경북 성주의 롯데골프장 부지에 배치하기로 결정한 이후 중국에서 영업하는 롯데그룹의 모든 사업장이 세무조사, 위생검사, 소방검사를 비롯한 온갖 조사를 다 받고 있다. 송중기를 비롯한 한류 스타들에 대한 규제도 집중적으로 이어진다.  

    중국 업계 관계자들의 신빙성 높은 증언도 쏟아진다. 이들에 따르면, 지난 11월 말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은 한류 콘텐츠를 많이 방영해온 유쿠투더우(優酷土豆), 아이치이(愛奇藝), PPTV, LETV 같은 동영상 플랫폼 업체들의 중간책임자급들을 은밀히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한류 콘텐츠의 인터넷 방영, 판권 구매, 한국 업체들과의 협력사업을 전면 중단하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업체 관계자들로서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고압적 분위기였다는 전언이다.



    중국은 ‘보복의 나라’

    몇몇 동영상 플랫폼업체에 대한 중국 당국의 이런 조치는 언뜻 보면 대단한 게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별에서 온 그대’나 ‘태양의 후예’ 같은 한국 드라마가 중국의 TV 채널이 아닌 인터넷 동영상 채널을 통해 대박을 터뜨린 사실을 감안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들 업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한류의 보급이 쉽지 않은데, 중국 당국은 이 길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송중기가 당한 횡액은 한한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근거다. 송중기는 2016년 상반기 ‘태양의 후예’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군복 패션이 중화권에서 대유행했다. 중국의 대표적 여성 스타 안젤라베이비까지 군복 코스프레를 할 정도였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송중기는 무려 2280만 위안(한화 40억 원)에 달하는 개런티를 받고 중국의 토종 스마트폰 업체 비보의 CF를 찍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드 갈등 이후 광고 시장에서 송중기의 자리는 대만 스타 펑위옌(彭于晏)으로 대체됐다. 중국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전지현이나 송혜교도 앞으로 중국에서 광고를 못 찍게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전지현이 출연한 ‘푸른 바다의 전설’이 요즘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라는 말도 나온다.

    한한령 따위를 발동하는 것은 대국의 자세가 아니다. 그래서 중국 당국도 공식적으론 이를 부인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대국이든 소국이든 자국의 이익을 위해 까탈을 부리는 일은 국제사회에서 흔히 목격된다. 특히 중국은 ‘보복’에 관한 한 전통적으로 악명이 높다. “30년 복수를 하지 않으면 사나이가 아니다”라는 해괴한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최근 대만에 대한 압박에 나선 것도 보복의 일환으로 읽힌다.  

    대만은 2016년 1월 ‘대만 독립’을 주창하는 민주진보당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를 신임 총통으로 선출했다. 예상대로 차이 총통은 취임 후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주도로 채찍을 들었다. 우선 대만으로 향하는 관광객을 대폭 줄였다. 대륙에서 활동하는 대만 기업들에 대한 옥죄기에도 적극 나섰다. 대륙에서 공부한 대만 유학생들의 취업도 제한했다. 이로 인해 대만의 관광산업 종사자들이 잇달아 자살하는 등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으나 중국 당국은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이런 중국이 한국이라고 그냥 둘 리 없다는 추측이 나올 법도 하다. 화장품 업계에 종사하는 쑨후이린 씨의 설명이 귀에 쏙 들어온다.

    “중국은 내수 시장이 크다. 웬만큼만 만들면 중국인들에겐 중국 상품이 통한다. 하지만 아직 안 되는 분야가 있다. 바로 화장품이다. 이 분야는 한국이 중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 이 분야 외엔 다 한한령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물론 화장품도 안심은 못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결정한 뒤 추문이 터졌다. 중국으로서는 최고의 상황, 한국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 됐다.”



    韓 정부 무시, 韓 야당 환대

    베이징의 외교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한국과 일본의 강력한 희망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거부로 한·중·일 정상회의가 무산됐다. 한국 정부가 강하게 희망했으나 중국이 끝내 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베이징 주재 서방 외교 소식통의 전언이다. 시진핑 주석은 박 대통령의 대통령 지위를 공고히 해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2015년만 해도 주중대사가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별로 어렵지 않게 만났다. 그러나 사드가 현안으로 대두하면서부터 중국 외교부의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탄핵 정국이 시작되자 얼어붙었다. ‘식물 대사관’이 된 느낌을 받는다”고 전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베이징에서 류전민(劉振民) 부부장을 비롯한 중국 외교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양국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중국이 노골적으로 한국 행정부를 무시하고 한국 야당을 환대하는 것이다. 그 의도는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이런 움직임을 보면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충분히 짐작된다. 중국 정부는 박 대통령과 한국 정부를 아예 무시한 채 사드 배치 철회를 강하게 압박할 것이다. 그래서 정국 주도권을 쥔 한국의 야당과 진보진영에서 “중국이 저렇게 싫다고 하니 사드 배치를 철회하자”는 말이 나오도록 유도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은 집권 가능성이 높아진 한국 야권과 사드 배치 철회 문제를 은밀하게 협의할지도 모른다. 한한령도 속도를 조절해가면서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중국은 한류그룹 ‘방탄소년단’의 상하이 콘서트를 허가했다. ‘속도 조절’의 징표로 해석할 만하다. 다음은 베이징 외교가 관계자의 말이다.

    “한국 대통령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한국 정부의 외교력은 약화됐고, 중국은 이를 호기로 삼아 한국을 흔들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의 새 정권이 사드 배치를 철회하면 한미동맹이 위기에 처한다. 박 대통령 탄핵소추로 촉발된 일련의 사태로 한국의 국가안보가 상당히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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