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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의 공부법

과학자의 수학 예찬론

‘수학 숲’ 들어가니 ‘과학 나무’가 보였다

  • 고중숙 순천대 교수·물리화학 jsg@sunchon.ac.kr

과학자의 수학 예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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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숫자와 수식 때문에 ‘어렵고 복잡한 학문’이라는 오해를 받아온 수학. 그러나 수학은 모든 학문의 바탕이다. 물리학은 수학을 토대로 발전했고, 물리학은 화학을, 화학은 생물학을 낳았다. 인문과학의 기본인 논리학 역시 수학과 상호작용한다. 이 때문에 수학의 원리를 알면 다른 과목에 이를 적용하기란 어렵지 않다. 물리화학자 고중숙 교수가 제안하는 학문간 경계 허물기.
과학자의 수학 예찬론
본론에 들어가기 전 먼저 ‘공부법’과 ‘교육법’은 서로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특히 공부는 교육 현장에서 교육을 받는 사람이 하는 게 기본이므로 공부가 교육에 끼치는 영향보다는 교육이 공부에 끼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요컨대 ‘공부는 교육의 그림자’인데,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공부법(학습법)은 교육법(교육제도·교과과정·교습법)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공부법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의 교육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이 글을 이해하는 데에 필자의 상황을 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여겨 간추리고 넘어간다. 필자는 박사과정에서 ‘레이저 분광학’을 전공했다. 간단히 말하면 이는 첨단 광학의 산물인 레이저로 화학반응의 미세한 단계를 연구하는 분야다. 짐작하듯 이 분야는 수학·물리·화학이 한데 어우러지는 복합적 영역이다. 그래서 학부에서는 화학을 공부했지만 이후 수학과 물리까지 폭넓게 공부하느라 많은 고생과 노력을 했다. 그리고 박사 이후에는 과학 전반의 뿌리를 찾아 과학사와 철학도 혼자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이런 노력을 토대로 그동안 여러 책을 쓰고 외국의 과학책도 다수 번역했는데, 그중 ‘수학 바로 보기’라는 책이 있다. 필자가 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집필 중인 ‘과학 바로 보기’에 대한 기반을 다지기 위함이었다. 필자의 바람은 이로써 필자 자신도 학문적 기초의 올바른 틀을 갖추고,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모든 학문의 원형

고등학교까지 학생들이 배우는 과목은 20가지 정도 되지만 그 가운데 수학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거센 영어 열풍도 수학의 벽은 웬만해선 넘지 못한다. 학부모들도 이런 생각으로 수학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다. 또 ‘공부를 잘한다’는 말은 ‘수학을 잘한다’로 통한다. 그래서 “수학은 잘한다”라고 조사 하나만 바꾸면 “지금 전반적인 성적은 좀 떨어지지만, 수학‘은’ 잘 하는 것을 보니 언젠가 철이 들어 공부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서 은연중에 수학 공부를 모든 공부의 원형으로 여기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런 인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수학은 거의 모든 학문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스스로 세운 아카데메이아(Akade·#51418;meia, Academy의 어원)의 현판에 “기하를 모르는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라고 썼다. 당시 기하는 수학의 대표였는데, 이게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수학은 철학과 함께 가장 오래된 학문이다. ‘mathematics’와 ‘philosophy’라는 말이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함께 만들어졌다는 데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나아가 그 뜻은 모두 ‘앎’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대체로 이들은 mathematics를 ‘모든 앎의 실체(를 찾는 활동)’, 그리고 philosophy는 ‘이 실체에 대한 해명(을 추구하는 활동)’으로 여겼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근대까지의 역사를 살피면 수학과 자연과학의 관계가 뚜렷이 드러난다. 물리학은 수학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분야로 수학에 이어 두 번째로 발달한 자연과학이다. 그런데 철학과 수학이 다분히 순수한 사변적 학문임에 비해, 물리학은 과학적 도구와 과학적 인식이 먼저 충분히 발달해야 했다. 이 때문에 물리학은 수학보다 무려 2000년이 뒤진 17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발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리학으로 한번 물꼬가 트이자 다른 과학들이 기다렸다는 듯 뒤를 이었다. 화학은 물리학을 토대로 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물리학에 이어 18세기부터 제대로 된 기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물리학이 점성술과 천동설이라는 기나긴 암굴을 헤매다 정식 학문이 되었듯, 화학은 연금술이라는 신비주의를 극복한 뒤 정식 학문으로 인정받았다.

다음으로 생물학은 화학이라는 토대가 필요한 학문이다. 그래서 화학에 이어 19세기부터 터를 잡았다. 생물학은 20세기 중반에 수학·물리학·화학이 합쳐 이룩한 DNA의 구조 해명으로 큰 전기를 맞아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끝으로 지구과학은 자연과학의 4대 분야 가운데 종합과학적 성격이 가장 두드러진다. 그 출발 시기는 19세기 중반이라 할 수 있으며 생물학처럼 20세기 이후에 많은 발전을 이뤘다. 한편 자연과학이 발달하는 동안 응용과학으로 각종 공학이 발전했다. 오늘날 공학은 규모 면에서 자연과학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가 되었지만 본질에서는 자연과학의 범주에 속한다. 따라서 수학은 널리 보면 역사적으로 모든 자연과학의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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