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호

이 대통령 일가처럼 땅 사면 위험

  • 입력2011-11-23 16: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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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후 거주할 사저 부지를 장남 이시형씨 명의로 구입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여론의 엄청난 비판이 쏟아진 끝에 결국 없던 일로 되었다.

    문제가 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만일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돈으로 땅을 구입하는 것인데도 자신이 그 땅의 매수자가 되지 않고 아들 이시형씨를 내세워 계약을 하고 등기를 하려 했다면 이것은 실질적인 소유자와 등기부상의 소유자가 달라지는 명의신탁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이시형씨가 자신의 돈으로 아버지가 거처할 집의 부지를 구입하는 것이었다면 실질적인 소유자와 등기부상 소유자가 모두 이시형씨이므로 명의신탁이 되지는 않지만, 이시형씨가 수년 전 재산등록 시 밝힌 재산이 불과 3000만원이었다는 점으로 볼 때 아버지 또는 제3자로부터 돈을 받아 땅을 샀을 것이라는 점에서 증여세 포탈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 사건의 경우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이명박 대통령이 아들의 이름을 빌려 땅을 구입했을 가능성, 즉 명의신탁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계약만 이시형씨 이름으로 한 것이므로 명의신탁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내곡동 사저 ‘불법 명의신탁’ 의혹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동산을 구입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동산의 경우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에 관한 법률(부동산실명법)이 명의신탁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형사적 처벌을 받는다.



    명의신탁이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물건을 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동산 명의신탁은 예전부터 흔했다. 종중 땅을 종중 명의로 등기하지 못해 종친회장 명의로 등기하는 경우가 그 예다. 1995년 부동산실명법이 제정되기 이전에는 부동산 명의신탁에 대해 법률상 제재가 내려지지 않았다.

    부동산 명의신탁을 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일 것이다. 첫째 어떤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은 경우다. 둘째 농지와 같이 특별한 소유 자격이 필요해 그러한 자격을 가진 사람의 명의를 빌리는 경우다. 셋째 부동산 관련 세금을 포탈하기 위한 경우다. 대개 사회 정의에 맞지 않고 비리의 수단으로 빈번하게 활용되므로 국가가 명의신탁을 금지한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실명법은 원칙적으로 명의신탁을 금지하지만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도 한다. 종중이 종중 일원의 명의로 종중 소유 부동산을 등기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부부간의 명의신탁도 받아들여준다.

    돈을 빌린 채무자가 담보로 자신의 부동산 소유권을 채권자에게 이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양도 담보라고 한다. 양도 담보는 실제 매매하는 것이 아님에도 매매하는 것처럼 등기를 이전한다는 점에서 명의신탁과 유사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본다.

    명의신탁에는 2자간 명의신탁, 3자간 명의신탁, 계약명의신탁이 있다. 2자간 명의신탁은 A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B의 명의로 돌려놓기로 약정하고 B에게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이다.

    3자간 명의신탁은 C가 D로부터 D소유의 땅을 구입하면서 E의 이름을 빌리기로 약정하고 D에게 ‘E 명의로 등기를 이전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2자간 명의신탁과 3자간 명의신탁은 특정 부동산 소유 사실을 숨기고 싶은 경우에 주로 쓰인다. 부동산 투기를 하는 사람이 보통 쓰는 수법이다.

    계약명의신탁은 F가 G로부터 G소유의 땅을 구입하면서 자신은 등장하지 않은 채 H를 내세워 G와 매매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때 땅을 파는 G는 매수자가 F가 아니라 H라고 여기게 된다. 이러한 계약명의신탁은 매수자가 신분 공개를 꺼리는 경우에 이용된다. 이명박 대통령 사저 사건에서 청와대는 대통령을 매수자로 할 경우 가격이 폭등하기 때문에 아들을 내세웠다고 해명하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계약명의신탁에 해당될 수 있다.

    명의 빌리다 떼일 수도

    2자간 명의신탁의 A-B 간, 3자간 명의신탁의 C-E 간, 계약명의신탁의 F-H 간에 각각 명의를 빌리고 빌려주기로 하는 명의신탁약정이 체결되는 것인데 이는 부동산실명법 위반이고 이러한 약정은 무효가 된다. 그리고 부동산실명법은 2자간 명의신탁이나 3자간 명의신탁에 의한 소유권 등기이전 역시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다. 추후 소유권을 둘러싼 송사에 휘말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계약명의신탁은 조금 다르다. 매도인이 명의만 빌려준 사람을 진정한 매수인인 줄로 알고 매도했기 때문에 매도인에게서 명의만 빌려준 사람으로의 등기이전은 유효한 것으로 본다.

    명의만 빌려준 사람이 자기 명의로 등기되어 있는 것을 이용해 제3자에게 부동산을 팔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이 제3자는 완전히 유효하게 부동산을 취득한 것으로 본다. 제3자와의 관계에서는 명의수탁자를 소유자로 보기 때문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명의만 빌려준 사람에게 횡령죄나 배임죄가 적용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2자, 3자간 명의신탁에서 명의만 빌려준 사람이 명의신탁자의 허락 없이 제3자에게 부동산을 팔면 횡령죄로 처벌받게 된다.

    명의신탁이 법적으로 문제되는 경우의 대부분은 명의만 빌려준 사람이 그 사실을 부인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명의만 빌려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매수했으므로 진정한 소유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명의신탁 약정은 다른 사람 모르게 비밀리에 진행하고 증거도 남기지 않으므로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히 명의만 빌려준 사람이 사망하고 상속인들이 명의신탁 사실에 대해 모르는 경우 다툼이 커질 수 있다.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은 모 대학 여교수 명의로 거액의 부동산을 명의 신탁했다 돌려받지 못했다면서 이 여교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바 있다. 이 사건이 명의신탁 사건의 전형에 해당한다.

    명의신탁 약정서가 없다면 명의를 빌린 실소유주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법원은 명의신탁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누가 그 부동산의 등기권리증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그 부동산에 부과되는 세금을 내는지, 누가 그 부동산을 실제로 사용하는지를 살펴본다. 간단히 말하면 신탁자와 수탁자 중 누가 주인 행세를 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실소유주가 등기권리증을 가지고 있고 세금도 납부하며 부동산을 실제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법이 명의신탁 약정에 의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의를 빌리는 약정 자체는 유효하다고 본다. 부동산실명법 위반행위가 반사회질서에 해당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위는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동산 실소유주는 부동산실명법 위반죄로 처벌을 받는 것과는 별개로 명의만 빌려준 사람을 상대로 소유권을 돌려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반사회질서에 해당

    이 대통령 일가처럼 땅 사면 위험
    그러나 부동산실명법 위반은 반사회질서에 해당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탈세 등의 이익을 누리기 위해 법을 어겨가며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부동산을 숨겨놓은 사람과 이러한 명의신탁 사실을 모른 채 이 부동산을 상속받아 생활하는 상속인이 소유권 소송의 양 당사자가 된다면 법은 누구를 보호하는 것이 합당할까. 현재 대법원은 실소유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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