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호

사바나

대학 ‘싸강’ 들어보니…“라면 먹는 소리에 애완동물까지”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0-04-1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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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시간 조모임 가능, 마이크 켜면 질문도”

    • 교수마다 수업의 질 현저한 차이

    • 시험 때 부정행위 개입 소지도

    • 일부 학과 “실습 불가능해 이론 수업만”

    • “학생 개개인 사생활 노출 부작용도”

    ‘사바나’는 ‘회를 꾸는,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뉴스랩(News-Lab)으로,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로 삼은 이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입니다.

    4월 9일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한 학생이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문영훈 기자]

    4월 9일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한 학생이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문영훈 기자]

    3월 1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 속에 각 대학교는 온라인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일명 ‘싸강’(대학생들이 사이버 강의를 칭하는 줄임말)이다. 학생들은 강의실이 아닌 컴퓨터를 통해 담당 교수와 만났다. 대학에서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초유의 상황인 만큼 해프닝도 적지 않다. 개강 첫날(3월 16일)에는 학생들이 한꺼번에 서버에 몰렸다. 고려대·국민대·서울대·중앙대 등에서는 온라인 수업을 제공하는 홈페이지가 다운됐다.

    “라면 먹는 소리 들려 교수가 제지”

    평소 강의실이라면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화도 있다. 연세대 3학년 박모(23) 씨는 “실시간 수업에서 마이크가 켜진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한 학생이 아침으로 라면을 먹는 소리가 공유돼 교수가 제지했다”면서 “합창을 진행하는 한 수업에서는 교수가 같이 노래를 불러보자고 제안했는데 저마다 인터넷 속도가 달라 합창이 돌림노래처럼 기괴하게 들리는 상황도 있었다”고 말했다. 

    온라인 강의는 실시간 강의나 미리 녹화·녹음된 강의가 주를 이룬다. 연세대 3학년에 재학 중인 안효근(22) 씨는 이번 학기 ‘컴퓨터를 활용한 언어수업’을 비롯해 7개 강의를 듣는다. 그중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강의는 2개다.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강의는 화상회의를 위해 만들어진 줌(Zoom)을 통해 진행된다. 각 대학은 실시간 수업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교수에게 안내했다. 고려대의 경우 기존에 구축된 학내 프로그램인 ‘블랙보드’를 이용한다. 학교, 교수의 선택에 따라 기존에 만들어진 영상 플랫폼인 유튜브 등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안씨는 4월 8일 정오 수업시간에 맞춰 줌을 켰다. 접속한 교수와 학생들의 얼굴이 화면에 떴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컴퓨터나 이어폰에 내장된 마이크를 통해 질문도 가능했다. 교수의 질문에 채팅으로 대답하기도 했다. 

    “몸, 얼굴, 눈은 어떤 단어 관계를 이루고 있나요? 채팅으로 대답해 주세요.” 

    교수의 질문에 학생 25명은 채팅으로 저마다의 의견을 냈다. “부분어-전체어 관계입니다” 

    한 학생이 정확한 답변을 말하자 교수는 해당 학생에게 내용을 설명하게 했다. 

    안씨는 “줌에 생각보다 다양한 기능이 있어 놀랐다. 현재 말하고 있는 사람을 인식해 그 사람 화면을 중앙에 배치한다. 교수가 조를 짜서 수업시간 동안 같은 조의 사람과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조모임’ 기능도 있다”고 말했다.

    “어떤 교수는 노력해 준비…아닌 경우도”

    교수가 파워포인트(ppt) 파일에 녹음이나 영상을 입히는 방식도 많다. 수업을 듣고 퀴즈를 풀거나 과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출석을 대체한다. 연세대 철학과 한 수업의 경우 텍스트로 된 파일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이전 학기에는 교수의 강의와 학생들의 토론으로 수업이 이뤄졌다. 이번 학기에는 교수가 수업 내용을 한글 파일로 작성해 게시판에 업로드하면 학생들이 읽고 관련 내용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다. 학생들의 발제를 교수가 다시 취합하고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의 의견에 피드백을 하는 형식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되자 온라인 강의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학생과 교수는 처음 해보는 온라인 강의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중앙대 3학년 강모(23) 씨는 “초반에는 서버가 다운되고 교수가 키우는 애완동물이 화면에 등장하는 등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진행한 지 한 달이 돼가면서 온라인 강의 수강이 일상화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온라인 강의를 둘러싼 잡음은 여전하다. 교수 개개인의 디지털 활용 능력에 따라 수업의 질이 차이가 난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중앙대 4학년 강모(27) 씨는 “어떤 교수님의 경우 정성을 들여 수업 자료를 준비하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며 “교수의 노력 여하에 따라 수업의 질에 차이가 큰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디지털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교수들은 조교로 일하는 대학원생에게 온라인 강의 방식을 배우기도 한다. 고려대에서 조교로 일하는 대학원생 이모(28) 씨는 “조교들이 강의 녹화·편집 등을 따로 공부해 교수에게 가르쳐주고 평소 온라인 강의 제작을 돕는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험·실기·실습이 동반돼야 하는 일부 학과의 경우 온라인 강의는 한계가 많다. 정모(24) 씨는 안산대 간호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간호사 국가고시를 보기 위해서는 1000시간 이상 임상실습을 이수해야 한다. 취직 후 실제 현장에서 잘 적응하기 위해서다. 이번 학기에 수강하는 아동, 성인, 여성간호 관련 과목의 경우 기존에는 2주 강의·2주 실습이 번갈아 진행됐다. 지금은 병원에 실습을 나가지 못해 이론 강의가 한 달째 이어지는 상황이다. 

    정씨는 “5월 13일부터 교내 실습 계획이 잡혔지만 이마저도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온라인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들었다”며 “메르스 때는 임상실습 기준 시간이 줄어들기도 했는데 실습이 불가능한 경우 이러한 조치의 필요성도 느낀다”고 말했다.

    시험 때 부정행위 개입 소지도

    중간고사 기간을 앞두고 평가 공정성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구술시험의 경우 문제 발생 가능성이 적은 편이지만, 기한을 정해 놓고 답안을 제출하는 방식의 시험에는 부정행위를 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중앙대 3학년 강씨는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 시험문제가 나오면 답변을 공유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중간고사를 앞두고 학교 측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은 중간고사를 폐지하기도 했다. 3월 27일 연세대는 “1학기 중간고사를 치르지 않겠다는 내용의 지침을 e메일을 통해 각 학과 교수들에게 발송했다”고 밝혔다. 

    성균관대 역시 중간고사를 온라인 과제로 대체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한국외대는 “중간고사 실시 여부와 방식은 담당 교수에게 일임하겠다”면서도 되도록이면 중간고사를 실시하지 않도록 권장할 예정이다. 

    다수 대학에서 실시간 수업을 위해 사용하는 줌의 보안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수준으로 번진 상황에서 전 세계적으로 화상회의와 온라인 수업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그 덕분에 줌 이용자 수는 3월 한 달간 하루 평균 2억 명에 달했다. 하지만 외부에서 수업을 해킹하는 것이 가능하고,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프로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도 줌의 보안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에릭 위안 줌 최고경영자(CEO)는 4월 1일 공식 블로그에 “보안 측면에서 이용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에 사과한다”면서 “우려를 깊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미국 뉴욕시는 4월 5일(현지시간) 보안 우려를 이유로 줌을 온라인 수업에서 배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등록금 반환’ 가능할까

    4월 9일 실시간 강의가 진행되는 줌(Zoom) 채팅창. 실시간 강의 중 채팅을 통해 교수와 학생이 질의 응답을 한다. [문영훈 기자]

    4월 9일 실시간 강의가 진행되는 줌(Zoom) 채팅창. 실시간 강의 중 채팅을 통해 교수와 학생이 질의 응답을 한다. [문영훈 기자]

    일부 학생들은 수업권 보장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등록금 반환을 대학 측에 요구하고 있다. 4월 6일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를 시작으로 성신여대·숙명여대 총학생회가 ‘코로나19 대학가 재난시국선언(재난시국선언)’을 이어갔다. 

    전대넷이 3월 27일 발표한 코로나19 대응 관련 긴급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1만4785명 중 83.8%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학습권 등의 피해가 발생해 등록금 반환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피해 사례를 묻는 질문(중복 응답 허용)에 응답자의 49.4%는 실기·실험·실습 등 온라인 대체가 불가능한 수업에 대한 대안이 미비하다고 답했다. 40.9%는 온라인 수업 내용이 대체로 부실하다고 응답했다. 

    ‘등록금 반환’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는 저마다 달랐다. 중앙대 4학년에 재학 중인 강씨는 “수업의 질도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학교 공간 일부를 이용할 수 없는 불편도 있다”며 “내 경우에는 학교에서 고시공부를 하는 반에 속해 있는데 코로나19 이후 고시반 역시 폐쇄돼 공부할 만한 공간을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면 안산대 3학년에 재학 중인 정씨는 “온라인 수업을 한다고 해서 교수나 직원들이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노력이 줄어들지는 않는다”며 “현실적으로 등록금 반환이 이뤄질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온라인 강의는 지속될 전망이다. 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4월 9일 발표한 대면수업 예정일 조사에 따르면 4년제 대학 193개 중 73개(37.8%) 대학은 5월 이후 대면강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1학기 전체 일정을 사이버 강의로 진행하는 대학도 5개(2.6%), 코로나19 안정 시까지 발표를 늦춘 대학도 40개(20.7%)다. 

    김한샘 연세대 언어정보연구원 교수는 “온라인 강의는 채팅으로 전달되는 학생들의 피드백을 빨리 반영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학생들 개개인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등의 부작용도 있다”며 “코로나19가 지나가면 해외 학회 참석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오프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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