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호

“인권은 한 사람이 전부, 전부가 한 사람인 세계”

[단국대 HK+사업단 연속 기획 ‘한국사회와 지식권력’8] 오경석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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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2-02-1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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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인구보다 많은 250만 외국인 주민

    • 치안·질병·복지…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

    • 중국 동포를 무차별적 혐오 대상으로 여겨서야

    • 인권을 위하면 풍요로움 얻을 수 있어

    ‘신동아’는 단국대 일본연구소 HK+ ‘동아시아 지식권력의 변천과 인문학’ 사업단과 함께 ‘한국사회와 지식권력’을 주제로 연쇄 인터뷰를 진행한다.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개인을 통해 삶과 지식, 권력의 연관 관계를 살피고 지식과 권력의 미래상 또한 모색하려는 기획이다. <편집자 주>



    1월 7일 ‘신동아’와 만난 오경석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소장. [홍태식 객원기자]

    1월 7일 ‘신동아’와 만난 오경석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소장. [홍태식 객원기자]

    “저 인형들의 이름은 ‘모니카’예요. ‘톡투미’라는 이주여성 단체가 만들었죠. ‘멀리서 온 사람’이라는 뜻인데, 어느 나라 말일까요?”

    1월 7일 경기 안산시 소재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에서 만난 오경석 소장은 자신 뒤편의 인형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피부색과 머리색, 옷차림이 모두 다른 그것들은 다문화를 상징하는 듯 보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몇 번 들어본 이름이지만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영어 같기도 했고 이탈리어 같기도 했다. 우물쭈물하던 기자에게 오 소장이 뜻밖의 답을 했다.

    “한국말이에요. 멀리서 왔다고 ‘머니까’로 이름 지은 거죠. 하하.”



    왜 외국어일 것이라고만 생각했을까. 이주여성들이 만든 인형이니 당연히 그러리라 여긴 ‘선입견’ 탓인 듯했다. 여러 기억이 스쳤다. 버스를 타고 가다 외국인노동자들이 가까이 앉자 왠지 모를 느낌에 자리를 옮겼던 일, “동남아 사람 닮았다”며 킥킥 웃는 지인들에게 묘한 불쾌함을 느낀 경험, 여럿이 모여 있는 중국 동포들이 꺼려져 다른 길로 돌아갔던 일까지. 외국인을 보는 게 드문 일이 아니었음에도 그들이 그저 낯설게 느껴졌다. 각종 미디어가 만들어낸 부정적 인상이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외국인은 이제 현실에서 마주해야 할 존재다. 2020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2007년 약 100만 명이던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19년 기준 약 252만 명으로 늘었다. 대구광역시 인구(약 238만 명)보다 많고 한국 총 인구(약 5160만 명)의 5%에 가깝다(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 2021년 12월 31일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총 인구 대비 외국인 수가 5%를 초과할 시 ‘다문화사회’로 분류되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은 다문화사회의 코앞에 다다른 셈이다.

    오경석 소장은 ‘국경 없는 마을’ ‘들꽃피는 마을’ 등의 시민단체를 거치며 이주민·가출 청소년의 권익을 위해 일한 인권운동가다. 2013년부턴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를 맡아 인권침해 예방과 권리구제, 교육, 포럼 개최 등 한국 체류 외국인의 인권 증진과 다문화사회 확립에 힘쓰고 있다. 오 소장은 “외국인은 한국 사회에서 ‘이웃’으로 살아가는 단계다. 한국이 인권 선도국가로서 위상을 유지하려면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 인권의 차이가 줄어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주여성 단체 ‘톡투미’에서 만든 인형 ‘모니카’. 머리색과 피부색, 옷차림이 모두 다르다. ‘멀리서 온 사람’을 의미하는 ‘모니카’는 한국말 ‘머니까’에서 따온 이름이다. [홍태식 객원기자]

    이주여성 단체 ‘톡투미’에서 만든 인형 ‘모니카’. 머리색과 피부색, 옷차림이 모두 다르다. ‘멀리서 온 사람’을 의미하는 ‘모니카’는 한국말 ‘머니까’에서 따온 이름이다. [홍태식 객원기자]

    존중받지 못하는 외국인 인권

    한국의 외국인 인권 문제 양상이 어떻습니까.

    “한국은 1990년대 이후 인권 영역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인권 선도 국가’지만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저희가 매년 400~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데, 지난해 ‘한국인의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응답한 사람은 8%에 불과했지만 ‘외국인의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32%에 달했어요. 한국 국민의 인권은 단기간에 빠른 발전을 이뤄냈지만 외국인의 인권은 그만큼 발전하지 못한 거죠.”

    외국인들이 주로 호소하는 고충은 무엇인가요.

    “한국 체류 외국인이 250만 명이 넘어요. 주목할 점은 그중 70%가 장기체류자라는 점입니다. 장기체류자 절반은 가족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는 외국인 인권 문제가 사회 전반 모든 곳에서 벌어짐을 의미합니다. 예전엔 외국인 인권침해라고 하면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이젠 외국인들이 한국 사회에 깊이 들어와 ‘이웃’으로 살아가는 단계거든요. 주차, 임대차, 육아, 산재, 건강보험, 휴대전화 불법 도용까지 생활 속 모든 문제가 벌어집니다.”

    ‘외국인’이라고 통칭하지만 출신 국가, 종교, 인종에 따라 매우 다양한데요.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크게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체류 자격이 있는 사람(비자 취득 외국인). 둘째,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 마지막으로 체류 자격과 국적 모두 없는 미등록체류자 혹은 무국적자가 있죠. 두 번째 경우가 재밌죠. 귀화해 한국인과 똑같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도 외국인으로 보는 거니까요. 또 이들이 낳은 자녀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외국인 주민 자녀’로 구분돼요. 사회·문화적 차별을 겪는 거죠.”

    코로나19는 외국인들의 삶에 차별을 더했다. 2020년 11월 2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외국인 이주민 중 60.3%가 코로나19 관련 일상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정책·제도상으로 차별을 받았다고 털어놓은 응답자가 73.8%에 달했다.

    코로나19로 외국인에 더해진 차별을 꼽자면 어떤 게 있습니까.

    “코로나19 예방과 사후 대응에 있어 외국인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먼저 외국인은 코로나19 창궐 초기 공적 마스크 구매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음은 강제적인 PCR 검사가 있죠(지난해 3월 서울시는 외국인노동자에게 PCR 검사를 강제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가 차별 논란이 일자 철회했다. 서울시 외에도 많은 지자체가 외국인에게 PCR 검사 강제 행정명령을 내렸다). 또 재난 문자에 대한 접근성에서 불이익을 겪었습니다. 외국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한국어니까요. 결국 건강과 생명이 위험에 노출되고 방역 비협조자라는 낙인까지 찍혔죠.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비행편이 없어서 못 갔습니다. 정부는 체류 기간은 늘려주면서 취업비자는 연장해 주지 않고요. 기껏 번 돈을 다 쓰게 됩니다. 그들이 즐거울 리 있겠습니까.”

    외국인 혐오는 사회적 환경에서 온다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갖는 편견과 오해가 있다면.

    “치안 관련 편견이 있습니다. 외국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거죠. 형사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실제론 외국인 범죄율이 한국인보다 더 낮습니다. 질병에 대한 편견도 있죠. 외국인은 더럽고 비위생적이라 병을 옮기기 쉽다는 건데, 이건 복지 관련 오해로도 이어집니다. 외국인은 건강하지 않으니 이들이 나라에 많으면 세금 지출이 늘어난다는 거죠. 이 또한 사실과 다릅니다. 이주민은 대개 젊고 건강해 복지 혜택을 받을 확률이 낮죠. 이주민이 많은 도시는 복지재정 악화 없이 총생산만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많은 한국인이 외국인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녹록잖은 환경이지만 가족을 부양한다는 긍지를 갖고 살아갑니다. 꿈과 목표가 있는 데다가 미래에 긍정적입니다.”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나 이질감, 혐오 등은 어떤 감정에서 비롯하는 걸까요.

    “낯섦과 고정관념인 것 같아요. 이 중 낯섦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가 있죠. 두려워하거나 혹은 동경하거나. 낯섦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는 까닭은 자신이 처한 환경 때문일 때가 많아요. 본인의 삶이 불안정하고 여유가 없다면 외국인을 마냥 환영할 순 없으니까요. 사회의 분위기, 구조의 취약함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혐오의 범위와 정도가 줄어들 거예요.”

    외국인 문제는 세계가 직면한 숙제다. 지난해 12월 29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요 일반 알현에서 “현재 진행 중인 이주민 위기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인류의 스캔들”이라고 했다. 그가 특히 염두에 둔 부분은 난민 문제다. 중동·아프리카 등에서 벌어진 전쟁은 무수한 난민을 생겨나게 했고, 이들의 엑소더스(Exodus·사람, 자금 따위가 대량으로 빠져나가는 일)가 벌어지고 있다. 탈출 중 목숨을 잃는 난민도 많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2500명 이상이 유럽으로 가려다 지중해에서 익사한 것으로 추산했다.

    “난민 인권과 국익 모두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자”

    한국도 난민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18년 5월 제주도에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이 들어왔을 때 여론은 이들에 대한 혐오로 들끓었다. 지난해 8월엔 탈레반 세력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정부를 도왔던 현지인 377명이 입국했다. 2018년에 비해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1994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을 상대로 한 난민 신청 건수는 6만4357건이다. 이 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외국인은 1022명으로 총 신청자 중 1.5%에 불과하다.

    전 세계적으로 불거진 난민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없어요(웃음).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이런 말을 했어요. “난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다. 우리 모두가 난민이 되는 것”이라고요. 현재 시스템으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죠. 그만큼 어려운 일이에요. 가장 큰 쟁점은 ‘주권’과 ‘인권’의 양립 가능성이에요. 인권은 국민의 권익이 아닌 사람의 권리를 말해요. 즉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권리지만 현실은 달라요. 국가의 통치 원리가 곧 주권이고, 세계는 국가 중심으로 움직여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에 소속돼 있죠. 난민은 국가 범위 밖의 사람들입니다. 인권의 기본 정신, 인간에 대한 사랑 등 추상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어요. 어렵다고 해서 결코 해결을 포기해서는 안 되고요. 난민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게 첫걸음입니다.”

    난민에 반감을 가진 사람도 많잖아요. 난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게 한국인에게 도움이 될까요.

    “반감을 내비치는 사람들의 논리는 명쾌해요. ‘국민이 먼저다’ 이겁니다. 물론 국민이 먼저죠.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한국 국민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요즘 같은 글로벌 사회에서 난민과 국민을 완전히 분리해 생각하는 게 국가를 위하는 길인지는 의문이에요. 난민의 인권과 국익을 모두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애국=난민 반대’ 접근은 잘못된 것입니다.”

    “人權 중 人을 바라봐 주길”

    [홍태식 객원기자]

    [홍태식 객원기자]

    오 소장과의 대화는 인권 전반에 대한 담론으로 옮아갔다. 외국인과 난민이 존중받아야 하는 까닭은 그들 역시 인간이어서다. 오 소장은 “인권은 어떤 기준이나 자격을 충족할 필요 없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라고 강조했다.

    일상에서 무심결에 생길 수 있는 인권침해가 있다면.

    “흔히 쓰는 ‘흙수저’ ‘금수저’라는 말이 있죠.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문제지만 이런 말로 개인이 이뤄낸 성취의 차등을 정당화해요. 친밀함과 재미라는 말로 범하기 쉬운 이른바 ‘얼평(얼굴 평가)’도 있어요. 학계에선 외국인 인권 침해의 본질을 외모 차별로 보기도 합니다. 또 ‘국민가수’ ‘국민배우’라는 말도요. 명예로운 말이지만 ‘국민’이라는 말을 붙이는 순간 250만 명은 배제돼요. 한국 국적 취득자의 자녀가 한국에서 나고 자라도 ‘외국인 주민 자녀’로 분류되는 게 현실이니까요.”

    한국인의 민족주의가 ‘국수주의’ 양상을 보인다고 생각하나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국의 ‘민족주의’가 강하지 않다고 봅니다. 외국인 중 차별을 가장 심하게 느끼는 집단은 ‘한국계 외국인’이거든요. 이른바 조선족을 예로 들 수 있죠. 이들은 중국 국적의 한(韓)민족이에요. 중국으로 이주했지만 3, 4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들의 고향은 한반도였어요.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도를 넘어선 수준이에요. 불과 몇 세대 지나지 않았는데 같은 민족을 무차별적 혐오의 대상으로 여길 수 있나요. 민족주의가 강하다면 이러지 않았겠죠.”

    이 대목에서 오 소장은 ‘불관용의 원칙’에 대해 말했다. 그는 “인권은 한 사람이 전부고 전부가 한 사람인 세계다. 전 세계 77억 명에 달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는다면 인류 전체의 인간성은 폄훼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찬가지로 한국 체류 외국인 중 한 사람이라도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한국인의 인권 역시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만 행복할 수 있는 사회는 없다”고 덧붙였다.

    향후 센터를 운영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인권의 주류화입니다. 인권의 주류화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인권 규범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을 의미해요. 한국 사회에서 인권에 대한 논의는 아직 빈곤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포럼을 확장해 공론의 장을 키우고 담론을 활성화하는 데 힘쓰려고 합니다.”

    오 소장은 인권 문제에 더 친근하게 다가갈 것을 권했다. 그는 ‘권리’가 아닌 ‘사람’에게 집중해 주길 당부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권이라는 말은 인간과 권리의 합성어입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권리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인권은 딱딱한 권리, 법, 제도 등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인권을 위하는 사람들을 이해관계자 집단으로 보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인권이란 인간에 대해 탐구하는 것입니다.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이죠. 인간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지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인권을 위하면 돈을 벌지도, 사회적인 지위를 얻지도 못하지만 그것들로 대신할 수 없는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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