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호

경제위기 칼날 위에 선 부자들

IMF 당시 떼돈 벌었던 부자들, 이번 경제 위기 에선 처절하게 울었다

  • 김창수│하나은행 재테크팀장 겸 아시아선수촌골드클럽 PB팀장 changsoo2.kim@hanabank.com│

    입력2009-06-05 1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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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가 나빠지면 서민들만 고통 받는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를 생각해봐라. 당시 부자들은 더 큰 부자가 됐다. 아무리 경제가 나빠져도 부자들은 끄떡없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전세계의 부자들은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로 주식 등 자산가치가 폭락하면서 천문학적인 손실을 봤다. 전체 부의 가치가 떨어지자, 가진 것이 많은 부자들이 그만큼 손해를 많이 본 것이다.
    • 한국 부자들도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에서 비켜나지 못했다. 부자들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야 했다. 부자들의 글로벌 경제위기 생존법을 소개한다.‘편집자’
    경제위기 칼날 위에 선 부자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로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가 한국에 상륙하면서 주가는 한때 900선을 위협했다. 환율은 한때 달러당 1600원을 바라봤고, 국가부도 가능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신용부도스와프(CDS)도 치솟았다. 그리고 믿었던 부동산마저 30% 이상 가격이 떨어졌다. 그러자 외환위기의 아픈 기억을 지닌 개인투자자들은 은행이 부도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자금을 예금자보호법상 보장되는 액수인 5000만원 이하로 나누어 은행별로 분산 예치했다. 실제로 외환위기 당시에는 문을 닫는 은행이 속출했다. 국가부도를 염두에 두고 달러나 금을 사서 은행 대여금고에 보관하는 고객도 속속 등장했다. 펀드가 반토막 나는 상황에서 부자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러다가 각국의 정책공조가 이뤄지면서 3월 말을 기점으로 유동성 위기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주식시장은 저점 대비 30% 이상 반등하고 환율은 진정세로 돌아섰으며, 부동산시장도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이런 시장 분위기가 본격적인 경기회복 징후인지, 아니면 급락 장세 후의 풍부한 유동성에 의한 단기 반등인지는 아직까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최첨단 투자로 부메랑 맞은 부자들

    언론과 경제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을 10년 전 외환위기와 비교하곤 한다. 외환위기는 부자들에게 부를 좀 더 확고히 하고, 더 크게 불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이번 경제위기는 부자에게 큰 시련을 가져다줬다. 물론 외환위기 때도 부동산가격이 일부 내려 곤란을 겪은 부자가 다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정부에 요구한 고금리 정책으로 30% 이상의 고금리 금융상품이나 40~50%대의 채권상품에 투자해 큰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이어 부자들은 거품이 빠진 부동산을 싸게 구입해 자신의 부를 더 크게 불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사뭇 달랐다. 한국 부자들은 지난해 하반기에 레버리지를 이용한 부동산투자가 일반화되면서 상업용 및 투자용 아파트를 보유한 채 동시에 펀드 열풍 및 해외펀드 비과세 조치와 중국경제 호황 등에 따른 해외 주식시장 호조로 금융자산의 대부분을 펀드에 투자했다. 그러던 차에 금융위기로 펀드가 반토막 나고 부동산 가치가 크게 하락하자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손해를 봤다.



    그러자 부자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금융권에서 생각하는 ‘전통 부자’는 최소 현금자산 10억원 이상을 예치하고, 상업용 건물 1~2채에서 나오는 임대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과거에는 부동산에 투자하면서 별도로 금융자산은 부동산투자를 위한 유동성 개념의 정기예금 형태로 운용해왔다. 하지만 2000년 중반 이후 펀드 열풍이 불자 이들도 일반 투자자처럼 금융자산의 대부분을 국내외 주식형펀드에 주로 투자했다. 더욱이 이들은 각 금융기관의 VIP라는 이유로 일반 고객이 접할 수 없었던 최첨단 금융상품에 주로 투자했다.

    경제위기가 본격화하면서 상황은 참담하게 변했다. 투자했던 펀드는 손쓸 틈도 없이 반토막 났다. 해외펀드의 경우 환율이 급등하면서 환(換)헤지가 부메랑으로 작용해 손실이 투자금액보다 더 커지는 일도 발생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환헤지 연장을 위해 자금을 더 집어넣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임대 건물에서는 임대료가 들어오지 않아 통장에서 자동결제되던 적금과 공과금이 연체되기 시작했다. 임대 주택과 건물의 세입자가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이야기도 하지 못한 채 속병을 앓아야 했다.

    세입자에게 월세를 주다

    세입자가 나간다고 하면 펀드에 투자한 전세금이 손실이 난 상황에서 환매도 하지 못하고 전세금 반환을 위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이마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정 등으로 쉽지 않아 세입자 눈치만 봐야 했다. 이 시기에 오히려 세입자에게 월세를 주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연말에 종합부동산세가 고지됐을 때 세금 납부를 위해 펀드나 예금을 담보로 마이너스 대출을 이용한 부자도 많았다.

    신흥 부자로 불리는 성형외과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도 불황으로 고객이 급감해 큰 위기를 느꼈다. 이들은 주로 절세를 위해 보험에 많이 가입했는데 보험료 납입을 유예하거나 중도인출이나 약관대출로 사업체 운영비나 생활비를 충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낸 부자들은 수입 감소와 환율 급등으로 이중 고통을 겪었다. 자녀에게 생활비 절약을 당부하고 일시 휴학까지 권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사업과 부동산투자로 부자가 된 K씨 사례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통 부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북 출신인 그는 동대문에서 섬유 및 의류사업으로 자산을 축적해 현금성 자산만 500억원이 넘었다. 그는 사업으로 자산의 기초를 닦은 뒤 부동산을 통해 자산을 더욱 불렸다.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여유자금을 제2금융권의 고금리 틈새상품으로 운영하던 그는 외환위기로 금리가 폭등하자 금융자산을 고금리 예금 및 채권에 투자했다. 1~2년쯤 지나 금리가 하락하자 이 돈으로 인근 건물과 지방의 공장부지용 토지를 구입했다. 구입한 건물은 부동산 바람이 불면서 2배 이상 가격이 치솟고, 지방 부지는 행정복합도시에 편입되면서 어마어마한 보상금으로 돌아왔다. 단 몇 년간 투자로 자산을 3배 이상 불린 K씨는 마침 펀드 바람이 불자 여기에 편승해 그 부를 다시 2배 이상으로 불리는 행운을 누렸다.

    경제위기 칼날 위에 선 부자들

    강세장을 상징하는 뉴욕 월가의 황소상.

    50억 펀드투자했다가 80% 손실

    그러던 중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국을 덮치자 K씨는 상상 이상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상업용 건물이나 땅 같은 부동산가격의 하락은 큰 빚이 없었기 때문에 오를 때를 기다리면 됐지만, 100억원 이상 들어간 펀드가 문제였다. 특히 50억원 이상을 투자한 일본과 중국펀드는 환헤지로 이중 손해를 보고 있었다. 일본펀드는 80% 손실이 발생했고, 중국펀드는 환헤지 연장을 위해 오히려 자금을 더 부어야 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금융자산은 많았지만 펀드로 거의 모든 자산이 묶였고, 임대료는 잘 들어오지 않아 여유자금은 바닥났다. 기업의 흑자부도 위기가 사업을 거의 접은 자산가에게 닥친 셈이다. 후진양성을 위해 시작한 장학사업도 중단 내지 연기를 고려해야 했다. 지금은 주식가격이 조금 회복돼 자산 일부를 정리해 유동자금을 확보하면서 숨을 돌렸지만, 지난 6개월은 K씨에게 너무나 엄청난 시련의 세월이었다. 상당수 부자가 규모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K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여유자산만 있으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는 한국 사람 누구나가 아는 경제상식이 됐을 정도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일반인에게 충격을 줬다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거액자산가에게 큰 아픔을 주었다. 물론 일반 개인도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담보대출로 구입한 주택가격의 하락, 대출받아 투자했던 펀드가격의 하락, 실직 등으로 중산층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위기에 빠졌다. 그런데 부자들도 그동안 쌓아온 부가 하루아침에 날아가 ‘일반인’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자금이 충분했고 위기는 곧 기회라는 ‘그들만의 투자상식’이 있었지만, 이번 경제위기는 달랐다. 우선은 여유자산이 부동산과 펀드에 잠기면서 자금이 메말랐다. 그리고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투자상식이 재테크 바람과 인터넷의 확산으로 이제는 ‘만인의 상식’이 됐다. 이 때문에 언론은 부자들이 어떻게 하는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보통 사람이 모르는 또 다른 방식으로 과거와 같이 당당한 승자로 거듭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이다. 하나은행 재테크팀장으로 있는 필자에게도 기자들의 취재요청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필자도 조금 더 고민해야 했다.

    외환위기 당시 경험을 돌이켜보면 부자들은 실질금리가 상승하면 금리 확정 채권상품에 가입하고, 금리가 내리면 채권을 팔아 주식에 투자하고, 다음에 부동산에 투자하는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국내 금리는 생각만큼 크게 오르지 않았고, 환율도 2000원대까지 치솟지도 않았다. 그것은 정보가 공개돼 추가수익 확보의 기회가 적어지고, 외환위기 경험을 가진 정부의 대응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투자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펀드와 부동산에 갇힌 유동성을 되찾기 위해 손절매와 같은 고통스러운 결정을 해야 했다. 필자가 본 부자들의 대응방식은 나이나 자산구성 등에 따라 달라 획일적으로 나누기는 쉽지 않지만 투자성향에 따라 분류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는 손실난 펀드를 과감히 손절매한 뒤 국내 주식 직접투자로 급선회한 적극적 투자자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손실의 많은 부분을 회복했다. 이들은 투자성향이 원래 적극적이기도 하지만 급격한 하락 후에는 급속도의 반등이 있을 거라는 V자형 반등의 외환위기 경험을 충실히 따른 부류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이들이 승자다. 최근 주식시장 흐름은 외환위기 후와 유사하다. 대형주보다 중소형주가 많이 오르고, 공모주와 같은 무위험 투자가 유행하는 것은 정말 비슷하다. 주식가격이 단기에 급등하자 이들은 다시 고민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정보통신(IT)버블과 같은 위기가 와서 주가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주식 직접투자로 손실 회수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주식 비중을 줄여야 할지, 아니면 좀 더 가능성이 있다는 중국 주식시장 같은 곳으로 돌려야 할지 고민 중이다. 부자들은 먼저 움직이기 때문에 이들의 움직임은 향후 주식시장의 바로미터가 된다. 국내 주식시장은 국내 큰손보다는 외국인의 움직임에 의해 영향을 더 받지만, 이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둘째는 부동산투자를 다시 늘려가는 부자들이다.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가격이 크게 오른 뒤 펀드열풍이 불자 과거 부동산에만 투자하던 부자들이 부동산에서 자금을 빼서 펀드 투자로 옮긴 사례가 제법 있었다. 이들은 부동산으로 2배 이상 수익을 얻고, 다시 펀드에서 30~40% 이상 고수익을 얻어 좋아하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오히려 큰 손해를 입었다. 이들은 “상업용 부동산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으면 이 정도 손해까지는 입지 않았을 것”이라며 크게 후회하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펀드투자가 활성화됐던 2005년 이후에도 중심지역의 상업용 부동산은 펀드 못지않게 올랐고,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하락폭은 주식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들은 경제위기가 터지자 평소 구매하고 싶었지만 높은 가격에 엄두를 못 냈던 강남 3구의 핵심요지 상업용 건물가격이 자신들의 목표금액대까지 떨어진 것을 오히려 기회로 판단, 상업용 건물을 사들였다.

    부동산을 선호하는 부자들의 이런 움직임과 환차익을 보고 들어온 교포 및 일본계 자금 덕분에 상업용 건물 가격은 높아지는 공실률에도 불구하고 다른 자산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부동산에 투자한 부자들도 한국의 부동산가격이 현재 낮은 수준이 아니며 향후 가격이 급등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전의 유가파동을 겪은 전통 부자들은 이런 종류의 경제위기 이후에는 인플레이션이 오게 마련이고 화폐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결국 실물인 부동산가격이 올랐다는 경험을 믿는 것이다. 또 설사 부동산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더라도 부동산은 펀드처럼 50% 이상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부동산투자에 일조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정리하고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L씨 사례다. 건물 2채로 임대업을 하면서 소일하던 그는 2006년 펀드 바람이 불자 건물을 한 채 팔아 2007년부터 펀드 투자를 시작했다. 대부분 중국을 비롯한 이머징시장의 해외펀드에 투자했는데 어림잡아 100억~150억원쯤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0억원에 산 건물을 15년이 지나 200억원 정도에 매각하고, 그중 많은 부분을 펀드에 투자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로 펀드가 반토막 나자 그는 몹시 후회하면서 손실이 적은 펀드를 환매해 여유자산을 국채에 투자했다. 금리가 내리자 국채를 팔아 공모주 같은 무위험 자산에 투자하면서 강남권에 재건축이 가능한 건물을 구입했다.

    또 다른 자산가인 S씨는 주식을 싫어해 펀드 투자는 일절 하지 않았다. 그는 건물 매각자금을 정기예금과 같은 확정금리상품으로만 운영하다가 금리가 낮아지자 평소 눈여겨봐두던 건물을 매입했다.

    셋째는 무조건적인 안전지향으로 회귀한 경우다. 평소 확정금리의 은행 정기예금에만 투자하다가 펀드 열풍에 조금씩 투자형 상품 비중을 높여가다가 큰 손해를 보자, 이들은 손실이 큰 주식형펀드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모두 은행이나 제2금융권의 정기예금과 같은 확정금리상품으로 돌렸다. 가장 보수적이고, 나이가 든 이자 생활자들이 주로 이런 방법을 선택 했다. 더 극단적인 보수적 투자자들은 각 은행 예금도 5000만원 미만으로 분산해 예치하고, 달러나 금 실물을 직접 구매해 보유하기도 했다.

    이들은 주로 이자로 생활해야 하는 노인들로 금융위기로 금리가 오르자 장기로 6~7%대의 정기예금이나 그 이상의 후순위채 상품에 가입해 위험은 피하면서 안정적 이자수익을 누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작년 연말 이후 한국은행이 경기회복을 위해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하하고 이에 따라 실세금리가 크게 하락하자 당시 장기 확정금리 상품에 가입한 사람들은 요즘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마지막으로 극도의 경제 혼란 속에 잠시 쉬어가는 것도 미덕이라며 여유자산을 그냥 머니마켓펀드(MMF)에 넣고 좀 더 확실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투자자들이다. 갑자기 떨어진 사상 최저금리 수준의 예금금리와 갑작스레 오른 국내 주가와 부동산가격에 후회와 아쉬움을 느끼는, 요즘 고민이 가장 많은 그룹이다.

    역시 다른 부자들의 대처방식

    이처럼 위기 대응방식은 달랐지만 “부자들은 역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느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기회를 포착하는 통찰력과 그것을 활용하는 실행력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경제위기로 자산가치 하락에 고민할 때 부자들은 자산가치 하락시기를 이용해 보유자산의 승계를 서둘렀다. 부동산 및 펀드의 자산가치가 30~50% 이상 하락한 상태에서 자산을 증여하면 세금 같은 이전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고 향후 동일 자산의 가격이 회복하면 절세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평가가치가 크게 떨어진 펀드 보유 부자들은 자녀 앞으로 명의를 변경했고, 기업을 보유한 부자들은 값이 싼 주식을 증여해 기업 승계 비용을 아끼면서 안전한 승계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정부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 각종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하자 매각 또는 증여를 통해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변경하는 방법으로 세금을 대폭 줄이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어느 누구도 확신하기 힘들다. 하지만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는 데에는 전문가들도 대체로 동의한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금융기법 및 통신기술의 발달로 경제 및 사회가 개방된 단일 글로벌 경제권이다. 빨라진 자산 및 정보의 이동 속도, 유동성을 만드는 방법의 통용 등은 어느 시장에서나 공개되지 않은 손쉬운 방법으로 기대 이상의 투자수익을 거두기 힘들게 만들었다.

    조금만 이득이 있다고 알려지면 곧바로 상상 이상의 대규모 자금이 몰려들어 저평가된 해당 자산가격을 단기간에 크게 올려놓았다가 초과수익을 획득한 자금은 일순간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현상이 자주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길게 보면 자산가치는 점차 상승세로 나가겠지만 그 과정에서 자산 간 순환적 급등락을 반복하는 변동성이 큰 불안한 흐름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각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으로 풀려난 풍부한 유동성은 변동성을 더욱 심하게 해 전세계 자산시장을 투기장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이런 넘쳐나는 유동성은 일부 전문가나 부자들이 우려하는 소위 ‘슈퍼 인플레이션’이라 불리는 초(超) 인플레이션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부자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느끼지만 부자의 실체에 대해서는 누구도 정확히 정의하기 힘들다. 보통 언론이나 일반인에게 회자되는 부자들은 과거의 유물인지도 모른다. 이들은 평균 70세가 훌쩍 넘어버린 노인인 경우가 많다. 이들이 세상을 떠난 10년 후에 그 자리는 누가 차지하고 있을까. 전통 부자와는 조금 다른 사고방식의 부자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금융위기로 전통의 상업은행이 투자은행에 승리했듯이 전통적인 부동산 부자들이 금융지식과 네트워크로 무장한 신흥 부자들을 물리치고 승자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이 경쟁에서 이긴 부자는 남다른 통찰력과 실행력으로 살아남은 ‘영원한 승자’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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