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호

암초에 걸린 대양해군 건설

한국은 ‘해군 삼국지’에서 촉한(蜀漢)이 될 것인가

  • 이정훈│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09-06-05 1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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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鄭和 원정 이후 최대 해군력 파병한 중국 해군
    • 중국 의식해 파병한 일본, 일본에 지기 싫어 파병한 한국
    • SM-3 탑재 못한 세종대왕함, 그러나 3,4번함에는…
    • 헬기가 없어 사실상 빈 배로 다니는 독도함의 비애
    • 비밀 병기 ‘해군용 현무-3’, 북한 전역을 사정권에 넣는다
    암초에 걸린 대양해군 건설

    아시아 최대 상륙함으로 만들어졌으나 작전할 헬기가 없어 사실상 빈 배로 다니는 독도함.

    2003년 ‘대양해군’(동아일보사 간행)을 펴낸 기자의 요즘 감회는 남다르다. 최근 대양해군의 꿈이 현실화하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좋은 사례가 창군 이래 최초의 전투함 파병으로, 3월13일 4500해리 떨어진 소말리아 아덴만으로 출항한 청해부대의 활약이다. KD-Ⅱ급 구축함인 문무대왕함을 모체로 한 청해부대는 5월4일 해적의 추적을 받는 북한 상선 다박솔호를 구해주는 등 성과를 올리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소말리아 해역에 함정을 파견한 나라는 한중일 세 나라뿐이다. 그런데 세 나라 사이에 상대를 의식해 파병한 듯한 묘한 ‘기싸움’의 양상이 보인다. 가장 먼저 파병한 쪽은 자원 확보를 위해 아프리카 진출을 확대해온 중국이다.

    ‘제2의 鄭和 원정 ’추진한 중국 해군

    중국은 소말리아 해적이 번번이 중국 선박을 나포해 거액을 요구하자 바로 행동에 나섰다. 중국은 남해함대에서 중국산 구축함인 ‘우한(武漢)함’과 ‘하이커우(海口)함’을 빼내고 보급을 담당하는 군수지원함 ‘웨이산후(微山湖)함’을 붙인 전단을 지난해 12월26일 출항시킨 것.

    중국은 명나라 때인 1405년 환관인 정화(鄭和·1377~1433)로 하여금 217척의 배를 이끌고 동남아와 서남아, 그리고 아프리카 동쪽까지 항해하게 했다. 정화는 1433년까지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대 항해를 일곱 차례나 성공시켰다. 그러나 7차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자 명나라 선덕제가 “나는 이제 다른 나라의 것에 관심이 없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더 이상 출항하지 못했다.



    이 시기 명나라는 왜구의 침입에 시달렸기에, 왜구의 은신처인 유인도를 없애기 위해 자국민이 섬으로 나가 사는 것을 금하는 ‘해금(海禁)정책’을 취했다. 정화 함대의 출항 금지와 해금 정책으로 중국은 바다를 향한 출구를 닫았다.

    이런 해양 경시 풍조는 중국 해군의 탄생 과정에도 투영됐다. 본래 중국 인민해방군에는 해군이 없었다. 그러다 국공(國共)내전 말기인 1949년 4월23일 화둥(華東)군구가 장쑤(江蘇)성 타이저우(泰州)에서 처음으로 해군사령부를 설치했다. 해군사령원(사령관)은 화둥군구 부사령원인 장아이핑(張愛萍)이 맡았고 병력은 644명이었다. 화둥군구는 장제스(蔣介石)군이 완전히 대만으로 이동한 다음에도 ‘대만 정복’을 제일의 임무로 삼았기에 다른 군구와 달리 해군을 육성했다.

    화둥군구(지금의 난징군구)라는 ‘지역 육군’의 한 조직으로 시작한 해군이 올해 4월23일 설립 60주년을 맞자 중국 해군은 두 가지 행사를 준비했다. 하나는 정화의 원정 이후 최초로 전투함을 인도양 너머로 파병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국제 관함식을 거행한 것이다.

    이러한 중국 해군의 약진에 라이벌인 일본의 해상자위대가 자극을 받았다. 해상자위대는 일본 상선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위협받자 파병을 검토했으나 선뜻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 중국 해군이 파병하자 구축함인 ‘사자나미(漣)함’과 ‘사미다레(五月雨)함’을 3월14일 출항시키고 군수지원함은 추후 보낸다는 결정을 했다.

    이런 일본의 선택이 한국 정부를 자극했다. 한국 정부도 한국 상선 3척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적이 있어 파병을 검토했으나 북핵 문제와 대포동 2호 발사 문제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다 일본이 파병 결정을 하자 문무대왕함을 차출해 일본보다 하루 앞선 3월13일 소말리아로 출항시켰다.

    한중일, 한미일 해군 삼국지

    소말리아 해적 퇴치작전은 미 해군이 중심이 된 다국적군 지휘체인 CTF(Com-

    bined Task Force)-151이 주도한다. 한국은 문무대왕함 지휘권을 CTF-151에 맡겼다. 그러나 중국은 “미 해군의 지휘를 받지 못하겠다”는 명분으로, 일본은 “동맹을 금지한 평화헌법 때문에 동맹체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유로 단독작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는 외견상의 차이일 뿐이고, 실제로는 모두 CTF-151의 통제를 받는다. 3국 함정은 CTF-151이 할당해준 수역에서 CTF-151이 의뢰한 상선 보호 작전을 펼치고 있다.

    그로 인해 한중일 각 함정은 국가 자존심을 걸고 경쟁하는 ‘아덴만의 해군 삼국지’를 벌이게 됐다. 그러나 한국 해군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약해 보인다. ‘소말리아 3국지’에 참여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해왔지만, ‘유비의 촉한(蜀漢)’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한국 해군의 현실이다.

    한국 해군이 대양작전 능력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로는 4월5일 북한이 대포동 2호(북한 이름은 ‘은하 2호’)를 쏘았을 때를 꼽을 수 있다. 한국은 미국 일본에 이어 이지스 구축함을 보유한 ‘유삼(唯三)’한 나라다. 소말리아 파병 경쟁이 ‘한중일 삼국지’라면, 대포동 2호 추적을 놓고 벌인 동해 경쟁은 ‘한미일 삼국지’라고 할 수 있다.

    암초에 걸린 대양해군 건설

    베이스 라인 7.1로 설계됐음에도 정치적인 이유로 SM-3를 싣지 못한 세종대왕함.

    북한이 발사한 대포동 2호를 가장 먼저 포착한 것은 한국의 세종대왕함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세종대왕함은 대포동 2호를 미국이나 일본의 이지스함보다 앞선, 발사 15초 만에 포착했다고 한다. 해군본부와 합참의 지휘통제실에 모여 있던 한국군 수뇌부는 세종대왕함의 레이더가 대포동 2호를 포착하는 순간을 대형 스크린 영상과 설명을 통해 보고 들으며 감격해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동해에서 벌어진 한미일 삼국지에서 세종대왕함이 1위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지스함이라고 해도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다. 탐지시스템인 이지스 체계에는 ‘베이스 라인’이라는 급수가 있다. 동해에 들어간 미국과 일본 이지스함의 베이스 라인은 4정도였으나, 세종대왕함은 7.1이었다. 따라서 세종대왕함이 제일 먼저 대포동 2호를 포착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이 분석은 옳지 않다.

    세종대왕함의 이지스 체계가 미일 함정보다 우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탐지 시간이 다를 정도로 차이 나지 않는다. 세종대왕함의 신속한 포착은 그 위치 덕분이 다. 아무리 좋은 이지스 체계를 탑재했더라도 직선으로 날아가는 레이더파로 수평선 너머에서 일어난 일을 바로 탐지하진 못한다. 4월5일 세종대왕함은 대포동2호가 발사된 함경북도 화대군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들어가 있었고, 미일 이지스함은 그 뒤에 있었기에 세종대왕함이 대포동 2호를 먼저 포착할 수 있었다.

    日이지스에 밀리는 세종대왕함

    위치 때문에 개가를 올렸다고 하지만 세종대왕함은 확실히 성능이 뛰어나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로 뛰어난 성능이 ‘반쪽’이 되고 있다. 미국의 록히드마틴 사는 베이스 라인 7 이상의 이지스 체계는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SM(Standard Missile)-3 미사일과 연동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반면 SM-3가 개발되기 전에 제작된 베이스 라인 7 이하의 이지스 구축함에는 탄도미사일보다 훨씬 느리게 날아가는 항공기와 순항미사일(크루즈 미사일)을 요격하는 SM-2를 실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한국은 베이스 라인 7.1의 세종대왕함을 건조하면서, ‘MD(미사일 방어체계)에 가입하기 위한 행동이다’라는 오해를 피하려 한 김대중 정부 때문에 SM-3가 아닌 SM-2 미사일을 실었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베이스라인 7 이하의 이지스함을 개조해 SM-3를 실을 수 있도록 했다.

    세종대왕함과 함께 동해에 들어간 일본 이지스함은 SM-3를 싣도록 개조한 것이었다. 따라서 대포동 2호를 요격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세종대왕함은 구경만 하고 있고 일본 이지스함이 나서서 작전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 해군이 대양해군의 반열에 올라선 것은 분명하지만 왠지 그 위상이 불안정해 보인다. 결정적인 2%가 부족한 때문인데 그 2%를 채우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노무현 정부에서 만든 국방개혁 2020이 수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수정하는 국방개혁 2020안이 대양해군 완성을 순연시키고 있다.

    대양해군의 궁극적인 모습은 먼 바다를 건너가 상대 해군을 무력화한 후 상대국 영토 안으로 전력을 투사할 수 있는 군대다. 현재 이러한 능력은 미국 해군만 갖고 있다.

    미 해군은 먼 바다에 나가 해양 작전을 할 수 있는 해군을 ‘대양으로(To the Sea)’를 실현한 해군으로 보고, 먼 바다를 건너가 상대 국가의 영토 안으로 압도해 들어갈 수 있는 해군을 ‘대양으로부터(From the Sea)’를 실현할 수 있는 해군으로 나눠 보고 있다. 국방개혁 2020 원안은 한국 해군도 제한적이긴 하지만 ‘대양으로부터’의 실현을 목표로 했다. 여단급 규모의 상륙전을 구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빈 배로 다니는 독도함

    이런 개념하에 ‘아시아 최대의 상륙함’이라는 독도함이 먼저 태어났다. 여단급 상륙전 부대의 병력은 3000명을 넘어선다. 그런데 독도함에 태울 수 있는 상륙군 규모는 1개 대대에 해당하는 700여 명이다. 다행히 해군은 LST로 불리는 2600t의 고준봉급 상륙함 4척을 갖고 있다. 고준봉급 상륙함에는 1개 중대에 해당하는 240명의 상륙군을 태울 수 있으므로 4척을 동원하면 1개 대대 병력을 이송할 수 있다.

    현재의 해군 전력은 최대 해병대 2개 대대를 태울 수 있으므로 해군은 상륙함 추가 건조를 추진해왔다. 첫 번째는 ‘마라도함’으로 임시 명명한 2번 독도함을 건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LST-2로 불리는 4500t급 차기 상륙함 4척 건조도 추진했다.

    마라도함과 차기 상륙함 4척이 건조되면 한국 해군은 여단급 상륙군을 태울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상륙전 능력을 완비하진 못한다. 상륙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전차나 자주포 같은 무거운 장비를 신속하고 안전하게 상륙시켜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LCAC(앨캑)이라고 하는 공기부양정이 있어야 한다. LCAC은 상륙함에서 전차를 비롯한 중장비를 싣고 나와 30~40노트(시속 55~70km)로 달려 바로 상륙하는 배다.

    고준봉급은 LCAC을 싣지 못하나, 독도함급과 차기 상륙함은 LCAC을 싣는다. 그런데 예산부족을 이유로 이명박 정부가 국방개혁 2020을 수정하면서 두 사업의 완성 연도가 뒤로 밀려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해군은 상당기간 독도함과 고준봉급을 이용한 대대급 상륙전을 펼치는 군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

    적(敵)이 화기를 집중 배치한 해안에서 적은 희생을 치르고 상륙하려면 ‘공중’으로 침투해야 한다. 따라서 헬기는 상륙작전의 필수품이 되는데 헬기를 이용한 상륙전을 펼치기 위해 만든 함정이 바로 독도함이다. 그런데 독도함은 상징적으로 한두 대의 헬기를 싣고 다닐 뿐 실제 상륙전에 필요한 헬기는 전혀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이는 한국형 기동헬기 개발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합참과 국방부는 이 헬기가 생산되면 독도함에 태우라고 했다. 국산 기동헬기는 올해 8월쯤 시제기가 완성돼 시험비행을 한 후 2011년쯤 생산에 들어간다.

    함정용 헬기는 블레이드(날개)를 접는 등 육군용 헬기와 달라야 한다. 해군은 육군용 기동헬기 보급이 끝난 다음에야 블레이드를 접는 헬기가 개발돼 독도함에 배치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공격헬기 분야로 들어가면 전망은 더욱 암울해진다. 한국은 공격헬기를 자체 개발할지 외국에서 사올지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공격헬기는 아무리 일러도 2018년이 지나야 들어올 수 있으므로 그때까지 독도함은 공격헬기 없이 다녀야 한다.

    미니 이지스함 개발

    이지스 구축함 추가 확보 문제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한때 해군이 생각했던 기동함대는 3개 전단 규모였다. 각각의 기동전단은 독도급 대형 상륙함 1척에 이지스 구축함 2척, 그리고 일반 구축함(문무대왕급) 3~5척으로 구성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예산 사정 때문에 해군은 기동함대를 2개 기동전단으로 줄인 듯하다. 그러나 각각의 전단에는 이지스 구축함을 2척 배치하고자 한다.

    현재 해군은 ‘율곡 이이함’으로 명명한 2번 이지스함을 진수해 무기를 싣고 있고, 3번 이지스함은 건조 중이므로 1척만 더 건조하면 이 목표를 채울 수 있다. 3·4번 이지스함에는 SM-3를 탑재해야 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4번 이지스함 이후 한국 해군이 검토할 것은 ‘미니 이지스함’의 도입이다. 미니 이지스함의 모델은 스페인과 노르웨이 해군이 2척과 3척 보유한 이지스 호위함이다.

    이 이지스 호위함은 KD-Ⅱ 구축함과 비슷한 4500t 규모로 이지스 구축함보다는 약간 성능이 떨어지는 이지스 체계를 탑재한다. 한국 해군은 미니 이지스함을 짝수로 ○척 확보해야 하는데 이 미니 이지스함은 장차 수명이 다해 퇴역하는 문무대왕급을 잇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 한국 해군은 짝수인 ○척의 이지스 호위함과 4척이 되는 이지스 구축함 그리고 2척의 독도함급을 둘로 나눠, 두 개의 기동전단을 구성한다.

    이러한 기동전단 구성과 맞물리는 것이 해군용 순항 미사일의 개발이다. 현재 한국은 ‘현무-3’로 불리는 한국형 순항(크루즈) 미사일을 개발해 실전배치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함정에 발사할 수 있도록 개량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 미사일은 미국 이지스 구축함과 잠수함에 탑재하는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과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 토마호크의 사거리는 500km 이상이니 해군용 현무-3도 그 정도 사거리 확보를 목표로 한다.

    해군용 현무-3는 이지스 구축함과 미니 이지스함 그리고 문무대왕급 구축함에 탑재된다. 사거리가 500km 넘는 해군용 현무-3를 탑재한 함정이 동·서해에 배치되는 것은, 북한 전역을 사정거리 안에 넣었다는 의미가 된다. 문제는 차기 이지스 구축함과 미니 이지스함 건조가 국방개혁 2020의 수정에 따라 늦춰질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 염려의 눈으로 볼 대목이 KSS -3 또는 장보고-3로 불린 차기 잠수함 사업의 순연이다. 장보고-3는 해군용 현무-3를 탑재하기에 미 해군의 LA급 핵추진 잠수함처럼 대지(對地) 공격을 할 수 있다. AIP라는 특수 장비를 갖고 있어 일반 잠수함보다 훨씬 오래 잠항한다. 크기는 3000t급으로 한국이 독자 설계하는 최초의 국산 잠수함이다.

    그러나 장보고-3 사업은 수정된 국방개혁 2020에 의해 2020년 이후로 순연됐다. 이렇게 되면 해군이 보유한 잠수함 전력은 18척이 돼 해군이 원하는 전력인 25척 내외와 큰 차이가 난다. 잠수함 전력 역시 상륙함, 이지스함과 더불어 당분간 절름발이 상태로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형 토마호크 탑재

    한반도를 지키는 해역함대의 전력 증강도 절실하다. 이를 위해 해군은 FFX로 불리는 2500t급 차기 호위함 설계를 완료했다. 차기 호위함은 광개토대왕급으로 불리는 KD-Ⅰ급 구축함(3000t급)보다는 작지만 해군용 현무-3를 탑재하기에 화력은 훨씬 강하다. 24척이 건조돼 1·2·3함대의 핵심전력이 될 차기 호위함은 2011년 1번함을 진수한다는 계획이었으나 국방개혁 2020이 수정됨으로써 그 시기가 밀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완성한 국방개혁 2020에 들어가는 예산은 총 621조3000억원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600조원 이하로 줄이라고 요구함으로써 국방부는 599조3000억원으로 줄어든 수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로 인해 육해공군의 전력증강 사업이 찌그러드는 파행이 연출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육군은 전력증강보다는 병력 감소 축소를 택했다는 점이다.

    국방개혁 2020 원안에 따르면 육군은 수방사와 특전사 항작사, 유도탄사라고 하는 특수목적 작전부대와 4개 지역군단과 2개 기동군단으로 축소하기로 했는데, 수정안은 수방사를 군단으로 바꿔 특수목적 작전부대를 하나 줄이는 대신 지역군단을 5개로 늘렸다. 수방사보다는 군단이 훨씬 큰 부대이므로, 육군의 병력 감축은 원안보다 줄어든다. 2020 원안은 육군 병력을 38만8000명으로 줄이기로 했으나 수정안은 1만7000여 명이 많은 40만5000명으로 가기로 했다.

    2군을 2작사로 이미 개편한 육군은 1군과 3군을 통합해 지작사를 만들기로 했으므로 육군의 대장 보직이 하나 줄어들었다. 그리고 작전통제권 이양에 따라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연합사 부사령관 직위가 사라져, 육군 대장 보직이 또 하나 사라진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국방부는 합참에 대장을 보임하는 1차장과 대장 또는 중장을 보임하는 2차장을 두려고 한다. 합참 1차장은 항상 육군 대장을 보임하게 함으로써 사라진 육군 대장 보직을 하나 마련하는 것이다.

    국방개혁 2020 원안은 대당 가격이 40억원 하는 K1-A1 전차보다 두 배 정도 비쌀 것으로 보이는 K-2 흑표 전차를 600여 대 확보한다고 했으나 이는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러한 비판을 수용해 국방부는 수정안을 만들며 300여 대로 줄였으나 여기에 ‘1차’라는 단서를 붙여놓았다. 이는 1차로 300여 대를 도입하고 이어 2차나 3차로 나머지 300여 대를 도입한다는 뜻이다. 국방부는 2301대로 돼 있는 육군의 전체 전차 수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으니 흑표 전차의 도입량은 600여 대가 될 수밖에 없다.

    국방개혁 2020 원안대로 가야

    육군 사업은 이러한 형태로나마 살아남은 것이 있으나 해·공군 사업은 순연시키는 식으로 수정한 것이 국방개혁 2020 수정안이다. 그러나 미래전은 지상전력이 아닌 해·공군 전력으로 결판난다.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발생하는 큰 위기에 대처하는 데 육군보다는 해·공군 전력을 동원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줄어든 예산 때문에 해군은 ‘대양화’를 연기하고 있다.

    4월23일 중국 해군이 벌인 국제 관함식은 지난해 한국 해군이 한 국제 관함식을 참조한 것이다. 한국 해군은 중국 해군에 한 수 가르쳐줄 정도로 성장했다. 20년의 노력 끝에 주목받는 해군으로 떠올라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높여온 한국 해군이 국방개혁 2020 수정안의 등장으로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한국 해군은 영원히 촉한 (蜀漢)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대한민국 해군호를 순항시킬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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