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호

“원청사 ‘공상 (公傷) 처리’ 요구, 하도급업체 두 번 죽인다”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입력2013-04-19 1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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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청사, 산재사고 공상 처리 유도
    • 합의서 써주면 후유증 생겨도 문제 제기 못해
    • 사업장 책임자, 인사 불이익 우려 ‘은폐’ 급급
    • “성실한 산재 신고에 가점 줘야”
    “원청사 ‘공상 (公傷) 처리’ 요구, 하도급업체 두 번 죽인다”

    하도급업체들은 사고에 따른 공상 처리 비용 부담을 혼자 떠안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공사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에 대비해 사업주는 사업비의 일정 금액을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에 가입하는 데 쓴다. 산재보험은 사업주에게는 불의의 사고에 따른 추가 부담을 덜기 위한 대비책이 되고, 근로자에게는 재해에 따른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안전판 구실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발주처로부터 사업자로 선정된 원청사는 하도급업체에서 사고가 나면 산재보험 처리 대신 공상(公傷) 처리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상은 치료비와 보상금, 위로금 명목으로 합의금을 주고 ‘사고를 종결짓는 것’을 말한다. 자동차보험을 든 운전자가 사고가 났을 때 벌점과 보험료 할증을 우려해 보험사에 보험금을 신청하지 않고 자비로 수리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공상 처리는 대개 원청사로부터 하도급을 받은 업체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아 하도급업체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공상처리 비용 눈덩이

    ‘신동아’는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가 발주하고 모 대기업이 원도급사로 지정돼 2009년부터 공사가 진행 중인 서울지하철 2단계 공사현장의 A 하도급업체 ‘공상처리비용 집계표’를 입수했다. 이 표엔 2009~2010년 11건의 산재사고를 공상 처리로 유도해 노무비와 합의금액을 지급했다고 기록돼 있다. A사가 11건의 공상처리금으로 지급한 금액은 1억1000만 원이 넘는다. 공상 처리 건수가 많아지면 하도급업체는 그만큼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돼 부실시공으로 이어지거나 심할 경우 업체가 도산하는 일도 발생한다.



    모 원청 대기업과 하도급계약을 맺고 2010~2011년 경남 지역의 도로공사에 참여한 B업체도 3건의 사고를 모두 공상으로 처리했다. B사 대표는 “공상으로 산재 3건을 처리하는 데 2000만 원 정도가 들었다”며 “그러지 않아도 최저가 낙찰로 공사를 따내 적자가 예상되는 현장이었는데, 공상비까지 들어 이윤은커녕 빚만 늘었다”고 말했다.

    B사는 적자 보전을 위해 추가공사비 지급과 공사 변경을 요구하다 원청사로부터 하도급계약을 해지당했고, 이후 원청사가 계약이행보증채권을 회수하는 바람에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경남 양산의 한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도 사정이 비슷했다. 공사 도중 발생한 사고는 대부분 하도급업체 대표와 피해 근로자가 ‘합의서’를 작성하고 합의금을 줘 마무리했다.

    공사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현행법은 사고 발생 사실을 지체없이 관계기관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상 처리한 사고는 대부분 보고를 하지 않는다. 한 하도급업체 대표는 “공상 처리한 사고는 우리도 사고 건수로 잡지 않지만, 원청사도 아무 일 없었던 것으로 처리한다”며 “언젠가 몇백만 원을 주고 공상 처리를 하고 돌아왔더니, 공사현장에 ‘무재해 100일’이란 표지판이 붙어 있어 쓴웃음이 나왔다”고 말했다.

    현행법은 산재사고를 보고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보고하면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설 현장에서는 공상 처리로 산재 건수를 줄이고, 적발되면 과태료를 납부한다. 하도급업체 관계자들은 “관련기관에 보고되는 산재 처리 건수는 실제 공사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 건수보다 훨씬 적다”고 말했다. 대한전문건설협회의 ‘산업재해 처리 실태조사’에서도 산재사고 10건 가운데 6건 이상을 공상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전문건설업체 대표는 “원청사는 산재보험에 가입하고, 우리 같은 하도급업체는 산재보험으로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 대비해 근재보험(근로자재해보험)에도 가입한다”며 “하지만 막상 사고가 발생하면 중대재해가 아닌 경우 대부분 원청사가 공상 처리를 요구한다”고 전했다.

    중대재해는 △사망자가 1인 이상 발생 △3개월 이상의 요양을 필요로 하는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 △부상자나 직업성 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를 말한다. 이 같은 중대재해를 제외한 손가락 절단이나 골절, 화상과 같이 공사현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재해는 산재율을 낮추기 위해 대부분 공상 처리를 유도한다.

    PQ 가점제가 산재 은폐 원인

    업체와 피해자가 합의서를 작성하고 합의금을 주고받으면 피해 근로자는 나중에 장애나 후유증이 발생해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공상 처리 과정에 작성하는 합의서에 피해자가 더 이상 추가 보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을 명시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K사와 피해자 J씨가 맺은 합의서는 “본건 합의 이후 K사와 K사의 이해당사자에 대해 민형사상 소송, 진정 및 산업재해보상보험 등 여하한 방법이나 명목으로 추가 보상을 요구하지 않음은 물론 일체의 권리를 포기한다”고 돼 있다. 이뿐만 아니라 “소송, 진정, 산재보험 등의 신청시 K사가 지급한 보상금의 2배를 반환한다”는 강제규정까지 뒀다. 합의서를 작성한 이후에는 산재를 당한 노무자가 어떠한 요구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J씨는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에서 왼쪽 어깨 회전근개 파열 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8주 진단서를 발급받았으나 K사로부터 600만 원을 수령하는 것으로 모든 권리를 포기했다.

    “원청사 ‘공상 (公傷) 처리’ 요구, 하도급업체 두 번 죽인다”

    건설공사 현장에선 크고 작은 사고가 빈번히 발생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공상 보상금은 일시금으로 받기 때문에 액수가 커 뿌리치기 어렵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합의 이후 재해로 인한 장애가 재발하거나 상황이 악화될 경우를 감안하면 공상보다는 산재법에 의해 보상 치료를 받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원청사가 산재보험에 가입하고도 산재 처리를 꺼리는 이유는 사고 건수를 줄여 산재율을 낮추기 위해서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사고가 났을 때 산재보험으로 처리하면 산재율이 높아져 다른 사업에 입찰할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PQ(Pre-Qualifica-tion·사전심사)제도를 의식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 정부가 발주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공사에 대해서는 입찰참가자격 PQ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현행법상 교량과 공항, 철도, 지하철, 항만 등 22개 주요 공사는 반드시 PQ를 거쳐 낙찰자를 선정하도록 하고 있다. 심사 항목은 기술능력과 시공경험, 경영상태와 신인도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 항목을 종합평가한다. 신인도 평가항목 중 환산재해율에 따른 가점 제도가 있어 재해율이 높은 업체는 PQ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각 건설사는 산재율을 낮추기 위해 사고가 나면 하도급업체에 공상 처리를 유도한다. 대형 건설업체의 한 임원은 “건설사가 사업을 낙찰받지 못하면 존립이 위태롭다”며 “산재율이 낮아야 가점을 높게 받을 수 있으니 산재 처리보다 공상 처리하려는 유혹이 크다”고 말했다.

    인사 불이익 우려에 “쉬쉬”

    2006년 7월 이전까지는 PQ에 산재율에 따라 -2점~+2점의 점수를 반영했다. 그러나 산재율에 따른 감점을 피하려 대다수 업체가 산재사고를 은폐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2006년 감점 항목을 없애고 가점 제도만 남겨뒀다. 당시 노동부(현 고용노동부)는 △재해율 반영점수를 -2점~+2점에서 0점~2점으로 축소하고 △산재 은폐 시 1건당 0.2점씩 최대 2점 감점하며 △재해율 산정기간을 1년에서 최근 3년으로 확대하는 안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제도 개선으로 건설현장의 산재 은폐 관행이 상당히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대 2점까지 받을 수 있는 산재율에 따른 가점제도 역시 변형된 감점제도나 마찬가지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H건설사 임원은 “산재율에 따른 감점제도를 없앴다고 하지만, PQ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며 “최대 2점까지 가점을 받을 수 있는데, 만약 우리 회사 산재율이 높아 1점을 받았는데 경쟁업체가 2점을 받았다면 결과적으로 우리가 1점 감점된 것이나 같다”고 했다. 그는 “입찰경쟁이 심할 때는 1점 미만의 소수점 이하 점수도 중요하다”며 “최대 2점까지 차이가 나는 산재율에 신경 쓰지 않을 회사는 없다”고 귀띔했다.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를 산재로 처리하지 않으려는 건 건설사 내부 사정 때문이기도 하다. 각 건설사는 PQ에서 산재율에 따른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각 사업장에 재해율을 낮추도록 강조하고 있다. 산재가 많이 발생한 사업장의 현장소장이나 안전책임자에게는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하도급업체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원청사 현장소장이나 안전책임자들은 사고 건수를 낮추기 위해 하도급업체에 공상 처리할 것을 유도한다.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T건설사 대표는 “사망사고와 같이 은폐가 어려운 중대사고는 즉시 보고하지만, 경미한 사고는 대부분 공상 처리한다”며 “산재가 많은 사업장의 현장소장이나 직원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고가 나면 ‘공상으로 처리해라. 공상비용은 특공(특별공사)이나 추공(추가공사)으로 보전해주겠다’고 약속하지만, 막상 사고 처리를 해주면 태도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하도급업체가 원청사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공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주원인은 원청사가 하도급업체 선정의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공공기관 등 사업을 발주한 곳에서는 원청사만 선정하면 ‘할 일 다했다’며 뒷짐을 지는 게 보통이라 공사 현장에선 원청사가 ‘슈퍼 갑’ 노릇을 한다. 경남에서 활동하는 한 전문건설업체 관계자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한 요즘은 공사 물량이 대폭 줄어 작은 하도급이라도 받으려면 원청사가 요구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PQ 가점제 손질해야

    원청사와 하도급업체 모두 산재 발생 때 보험 처리를 꺼리는 이유로 환산재해율에 따른 PQ 가점제도를 꼽는다. 특히 하도급업체들은 ‘손톱 밑 가시’처럼 불쑥불쑥 추가 비용으로 발생하는 공상 처리 비용을 줄이려면 무엇보다 PQ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토목 전문 건설업체 대표는 “사고가 났을 때 지금처럼 원청사가 하도급업체에 공상 처리를 요구하면 죽어나는 것은 하도급업체와 피해 근로자”라며 “불가피하게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근로자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산재보험으로 처리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건설공제조합 관계자도 “공상 처리로 멍드는 것은 하도급업체들”이라며 “원청사들이 산재율을 낮추려 공상처리를 유도하지 않도록 하려면 PQ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형 건설사의 한 고위 임원은 “PQ에 환산재해율 가점제도가 존속하는 한 산재율을 최소한으로 낮춰 높은 가점을 받으려 하는 게 건설사들의 속성”이라며 “환산재해율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사고 예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사고가 났을 때 적절하게 처리했는지와 같은 산재 관련 사전·사후 노력을 평가해 성실한 산재 신고를 한 업체에 가점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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