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호

비상! 원화절상·경상흑자 경고! 일본형 장기 저성장

  • 이창선 |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cslee@lgeri.com 이근태 |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gtlee@lgeri.org

    입력2013-11-20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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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월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액은 일본보다 7억 달러 가까이 많았다. 원화 강세와 엔화 약세로 우리 제품의 가격 경쟁력에 부담이 있었지만 수출 호조 덕분이다.
    • 하지만 내년에는 원화 절상 압력이 더 커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원화 환율이 달러당 1000원대 초반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원화 절상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과거보다 훨씬 크다. LG경제연구원은 11월 5일 발행한 보고서 ‘빨라진 원화강세 한국경제 위협한다’에서 “원자재 가격 하향세로 수입이 안정되면서 원화 절상과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는 일본형 불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비상! 원화절상·경상흑자 경고! 일본형 장기 저성장
    원화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중 달러당 1150원대였던 원화는 7월부터 강세기조로 전환해 10월 중순에는 한때 달러당 1050원 선을 위협했다. 정책당국이 급히 구두 개입과 시장개입에 나서면서 달러당 1060원 수준으로 반등했지만 원화 절상 추세가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기는 물론이고 중장기적으로 원화 강세를 지속시킬 요인이 적지 않다.

    하반기 들어 각국 통화는 미국 출구전략의 향방에 따라 크게 출렁였다. 양적완화 축소 예상으로 미 달러화에 대해 큰 폭의 약세를 보이던 각국 통화는 9월 중순 이후 상당 부분 회복세를 나타냈다. 9월 통화정책회의에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양적완화 축소에 나서지 않고 10월에는 미국 정부 폐쇄 사태의 여파로 양적완화 축소 시행 시기가 늦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확산된 때문이다.

    원화는 하반기 중 지속적으로 강세를 보이면서 주요 통화 중 가장 큰 폭으로 절상됐다. 6월 말 대비 10월 말 원화의 절상 폭은 8.3%에 달했다. 최근 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유럽 지역의 통화가 대부분 상승세지만 원화의 절상 폭이 더 크다.

    주요 교역상대국 통화에 대해 교역량을 가중치로 평균한 종합적 환율 수준을 나타내는 명목실효환율 기준으로도 원화의 강세 폭은 큰 편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추계한 국가별 명목실효환율 자료에 의하면 원화는 3분기 중 절상 폭이 5.4%로 61개 통화 중 절상 폭이 가장 크다. 소비자물가 변화까지 고려한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는 원화의 절상 폭이 6~9월 중 5.2%로 베네수엘라(10.3%)를 제외하면 가장 큰 폭으로 절상됐다.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기본 원인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로 외화 공급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9월까지 경상수지 흑자는 488억 달러에 달해 이미 지난해 전체 흑자 431억 달러를 넘어섰다. 연간으로는 66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상GDP 대비로는 5%를 넘어 2000년대 이후 최대 규모다.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통관 기준 수출이 1.3% 늘고 수입은 1.9% 줄어 상품수지는 418억 달러의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다.



    불황형 흑자

    만성 적자 상태이던 서비스 수지가 지난해에 이어 흑자를 보이는 것도 경상수지 흑자를 늘리는 요인이다. 서비스 수지는 9월까지 흑자 규모가 46억 달러로 지난해의 27억 달러를 웃돌고 있다. 대규모 건설 서비스 흑자가 유지되고 있는 데다, 사업 서비스 적자 폭도 지난해 153억 달러에서 올해는 9월까지 50억 달러로 크게 줄었다. 이전소득수지는 9월까지 7억 달러가량 적자이지만, 본원소득수지는 30억 달러의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해외투자 증가에 따른 배당이나 이자수입이 늘어난 데 기인한다.

    지난해 이후 지속되고 있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는 수출입이 동반 부진하면서 나타나는 불황형 흑자 성격이 짙다. 원자재 가격 안정도 수입 억제를 통해 경상수지 흑자 확대에 기여한 요인이다. 최근 수출과 더불어 수입도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단기간 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크게 줄어들기는 어려워 보인다. 내년에도 400억 달러 이상의 흑자가 예상된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이미 나타난 현상이다. 그럼에도 원화의 절상 추세는 뚜렷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1.7% 절하되기도 했다. 경상수지가 대규모 흑자를 보이는데도 원화 환율 조정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은 것은 최근 몇 년간 미국과 유럽의 금융불안 등의 요인으로 자본 유출입이 불안정했기 때문. 유럽에서 재정위기가 주기적으로 발생할 때마다 해외 자본이 급격히 유출되면서 원화 절상 추세에 제동이 걸리고 일시적으로 대폭 절하되기도 했다.

    2011년 이후 자본의 유입보다 유출 규모가 더 크게 나타나면서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에 따른 원화 절상 압력이 상당 부분 상쇄된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자본 순유출 규모는 128억 달러에 달했으며 2012년에는 317억 달러로 커졌다. 올해도 9월까지 자본 순유출 규모가 432억 달러에 달한다.

    자본의 순유출 추세가 이어진 것은 해외 자본의 국내 투자는 억제된 반면 국내 자본의 해외투자 규모는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자본 유입 규모는 2009년 527억 달러를 기록한 이후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345억 달러에 이어 올 들어 9월까지는 157억 달러를 유지하고 있다. 3종 세트로 불리는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단기 외화 차입에 대한 부담금 부과 등의 정책이 해외 자본의 국내 유입을 억제한 듯하다.

    반면에 국내 자본의 해외투자는 2009년 156억 달러에서 점차 늘어나 2012년 693억 달러를 기록했고, 올 들어 9월까지는 614억 달러에 달한다. 해외증권 투자와 기타 투자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상반기 중 원화가 절하 추세를 보인 것은 연초 불거진 북핵 리스크, 3월의 키프러스 사태와 더불어 뱅가드펀드의 벤치마크 지수 변경에 따른 영향 등으로 외국인 자금이 유출됐기 때문이다. 5~6월에는 양적완화 축소 움직임이 가시화하면서 자금 유출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7월부터 외국인 투자자금의 흐름이 크게 바뀌었다. 상반기 중 국내 주식 매도에 나섰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7월 이후 4개월째 대규모 순매수 추세를 유지했다.

    양적완화 축소 움직임이 오히려 국내 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양적완화 축소는 미국의 경기회복을 반영하는 것이어서 우리 수출 여건에 개선 요인이 될 수 있고, 여타 신흥국의 경제 불안으로 우리나라가 상대적 혜택을 본 측면도 있다. 다른 신흥국들은 구조적인 성장세 둔화와 함께 경상수지 적자, 고물가 등에 시달리면서 금융 불안 우려가 높은 데 비해 국내 경제는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외환부문의 안정성도 높다고 평가된다.

    외국인 채권투자 위축

    비상! 원화절상·경상흑자 경고! 일본형 장기 저성장

    전문가들은 내년 원화 환율이 달러당 1000원대 초반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원화 절상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원화 저평가로 인해 경상수지 흑자가 유지되고 있기에 절상 압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이후 경상수지가 거의 균형에 근접했던 시점을 기준으로 할 때 9월 원화 환율은 4.3%가량 저평가된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 몇 년간 원화의 저평가 폭이 꾸준히 줄었지만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들기보다 오히려 확대된 것은 경기 부진에 따른 수입 위축과 함께 국제 원자재 가격 안정 등의 요인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인 듯하다.

    단기적으로 원화 환율의 향방은 외국인 투자자금의 움직임과 정부의 환율정책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 규모는 둔화될 여지가 있다. 이미 외국인 채권 순투자는 8월 이후 마이너스로 돌아선 상태. 올 들어 7월까지 순투자 규모는 월평균 1조7000억 원가량으로 유지됐으나 8월 중 -2조600억 원을 기록한 데 이어 9월에도 -2조 4490억 원을 나타냈다. 10월 중에도 마이너스 순투자 추세가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 채권을 내다 팔 정도는 아니어서 순매수 추세는 유지되고 있지만, 그 규모가 크게 줄어든 데다 보유 채권의 만기 도래분을 재투자하지 않고 있다. 향후 금리가 점차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원화 환율이 단기간에 크게 하락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추가 채권투자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주요 원화 채권 투자자였던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환율 방어 목적의 외화 확보 수요를 늘리면서 해외채권 투자 여력도 줄었다.

    주식의 경우는 외국인의 순매수가 아직 유지되고 있으나 규모는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7월 이후 4개월 동안 국내 주가가 15%가량 상승한 데다,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가 8% 이상 상승한 상태여서 단기 차익을 노리고 유입된 외국인 투자자금은 차익실현 기회를 엿볼 가능성이 높다. 주가와 환율 수준에 부담을 느껴 신규 주식투자자금 유입도 둔화될 수 있다.

    정책당국의 환율 안정 의지도 단기적으로 환율의 향방을 좌우할 주요 변수다. 일단 정책당국은 달러당 1050원 선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내비쳤다. 외환시장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에서 환율에 대한 외환당국의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다. 최근처럼 대규모 자본 유입에 의해 통화 가치가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한 시장 개입은 달러화 매입을 통해 외환보유액 증가로 이어진다.

    다만 눈에 띌 정도로 자주 외환시장 개입에 나서기가 쉽지는 않다는 점이 변수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원화 절상을 억제하려 한다는 해외의 시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의 외환시장 개입은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 대비 외환보유액 증가 규모가 최근 크게 낮아졌다. 글로벌 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외환보유증가액/경상수지 흑자 비율이 1 이상을 유지했으나, 2011년과 2012년에는 각각 0.54, 0.28에 불과했고 올 들어 9월까지는 0.13까지 떨어졌다. 최근 들어서는 직접적인 시장 개입 대신 자본 유입 억제 및 자본 유출 확대 등을 통해 원화절상 압력에 대응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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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경상수지는 흑자지만 외환보유액 증가는 소폭에 그쳤다.

    금융시장 변동성 축소

    앞으로도 적극적인 외환시장 개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책당국이 원화 절상 추세 자체를 바꾸기는 어려워 보인다. 절상 속도를 늦추는 정도의 효과가 예상될 뿐이다. 단기적으로 올해 중에 달러당 1050원 선을 지킬 수 있더라도 내년에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내년에도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와 함께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양적완화 축소가 외국인 자금의 국내 유입을 억제할 요인이지만 경기회복 및 여타 신흥국과 차별화된 경제 건전성으로 인해 외국인 투자 유인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는 원화가 달러당 1000원대 초반 수준까지 절상될 가능성이 있다.

    아시아 신흥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 우려가 크지 않고 과도한 원화 절상을 걱정할 정도로 외환시장이 안정적이다. 과거 대외충격이 발생할 때 원화 환율이 급등하던 추세에서 벗어난 양상이다.

    통화가치 방어를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는 신흥국가 달리 우리나라는 환율 안정 목적으로 통화정책이 제약받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도 크다. 최근 국제적인 달러화 강세 움직임 속에서도 경기방어 차원에서 호주와 이스라엘을 비롯한 몇몇 국가가 금리인하에 나선 바 있다. 우리나라도 외국인 자금 이탈과 통화가치 급락에 대한 우려 없이 경기위축이 심화하는 등의 유사시 금리인하 여력을 확보하고 있다.

    금융시장은 안정될 전망이지만 실물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작지 않을 것이다. 원화 절상은 여러 경로를 통해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수입물가 안정 등을 통한 긍정적 효과도 있겠지만, 현재와 같이 물가가 안정되어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는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더욱 강할 것으로 여겨진다.

    과거 우리 경제가 원화 절상으로 인해 수출이나 성장에 크게 타격을 입은 사례는 뚜렷하지 않다. 1980년대 이후 원화 절상이 장기간 지속된 시기는 크게 네 차례 정도다. 두 차례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및 리먼 브러더스 쇼크 등으로 급등했던 환율이 정상화되던 시기다. 나머지 두 차례는 세계경제의 호황기에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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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후반 유가 하락과 엔고 등에 힘입은 3저 호황기에 원-달러 환율은 1986년 880원에서 1989년 670원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이 기간 중 수출증가율은 20%를 넘었으며 경제성장률도 평균 10%에 달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원-달러 환율이 2001년 1290원에서 2007년 930원까지 절상됐지만 저물가-고성장 시기의 빠른 교역 확대에 힘입어 평균 15% 이상의 높은 수출 증가세가 지속됐다. 세계 수요 증가로 우리 수출이 크게 늘어나고 이에 따른 경상수지 흑자로 원화가 절상 기조를 보인 것이다. 원화 절상에 따른 경쟁력 손실이 국내외 수요 확대 효과 때문에 부각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세계 교역 증가세 둔화

    그러나 현재 우리 경제 여건을 고려할 때 원화 절상이 가속되거나 추세가 장기화할 경우 실물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과거보다 훨씬 클 것이다. 원화 절상이 세계 경기 회복과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3저 호황기나 2000년대 중반 호황기와 유사하지만, 경기 회복 및 교역 확대 속도는 과거에 비해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의 부채 조정이 지속되고 양적완화 축소 등 출구전략도 점차 본격화하면서 세계경제 성장세는 내년에도 3%대 중반에 머물 전망이다. 평균 4.8% 성장한 2000년대 중반뿐 아니라 4% 가까이 성장한 3저 호황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더욱이 세계 교역의 증가 속도는 과거보다 훨씬 느릴 전망이다.

    선진국 경기가 좋아지고 있지만 수입은 별로 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올 상반기 중 1.5% 성장했지만 수입 증가율은 -2.1%에 그쳤다. 유럽연합(EU) 지역도 7월까지 수입 증가율이 -2.7%를 기록했다. 세계 전체적으로 교역은 지난해 0.4% 증가에 이어 올해도 5월까지 1.5% 증가에 머물렀다. 2003~2007년 증가율이 16.7%에 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크게 상회한 것과 대조적이다.

    선진국의 부채 조정을 위해서 무역 불균형 조정은 필수적이다. 명시적으로 보호무역 기조를 강조하지는 않지만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유턴에 대한 세제 지원, 시장규제 및 지적재산권 보호 등을 통해 수입보다는 자국 생산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 대외적자 확대 우려가 커지면서 사회적으로도 자국 제품 소비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향후 세계 경기가 완만하게 회복되어도 세계 수요 확대가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처럼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원화 절상에 따른 가격경쟁력 악화의 충격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더욱이 우리 기업들의 재무상황은 2000년대 들어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원화 절상을 버텨낼 여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 상반기 기업들의 평균 매출액 증가율은 0.5%에 그쳐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더욱이 매출액 증가율의 중위값은 -1.2%로 역성장했다. 일부 기업의 높은 성장이 평균을 끌어올렸지만 전년대비 매출액이 감소한 기업이 절반 이상이라는 것이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도 1980년대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전반적인 수익성을 살펴보면 선진국 기업들의 수익성이 유지되는 가운데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과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익성 둔화가 두드러진다. 주요 개도국 기업들이 전기전자, 석유화학, 철강 등 우리 기업들의 주력 부문에서 대규모 투자 확대를 통해 생산능력을 확충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주요 개도국들의 화폐가치가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원화 가치가 절상되면서 우리 수출의 가격경쟁력 약화효과는 더욱 크게 나타날 것이다.

    비상! 원화절상·경상흑자 경고! 일본형 장기 저성장
    원화 10% ↑ = 수출 5% ↓

    대외 충격에 따른 환율의 급변은 IMF 외환위기와 리먼 쇼크 이후의 글로벌 금융위기 때 두 차례 발생했다. IMF 외환위기 때는 기업 부실과 투자 급감으로 수출이 크게 늘지 못했지만 리먼 쇼크 이후의 환율 급등기에는 우리 수출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크게 올랐다. 2007년 이후 연평균 환율은 2년 동안 37% 상승했는데, 이에 따른 세계시장 점유율은 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2.6%에서 3.1%로 상승했다. 세계 수요 확대효과를 제외하고도 우리 수출이 약 18.9%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원화 환율 10% 상승에 따른 수출증대 효과는 약 5.0%인 셈이다.

    같은 분석을 상품별 수출에 적용해보면 원화 절상에 따른 효과는 농축수산물 등 1차 산품과 섬유의복 부문에서 높게 나타난다. 이들 품목은 원화 10% 절상 시 수출 감소 효과가 8%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가 뚜렷한 제품경쟁력 우위를 갖지 못한 산업일수록 가격 변화에 대한 민감도가 크다. 섬유 및 의복의 경우 그동안 개도국에 대한 가격경쟁력 약세와 해외기지 이전으로 수출이 계속 줄어들었으나 2008년 이후의 원화 환율 급등에 힘입어 플러스 증가세로 돌아선 바 있다. 향후 원화가 다시 절상 기조를 보일 경우 수출 부진이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된다.

    철강·금속도 제품 차별성이 다른 산업제품에 비해 작은 편이어서 원화 환율에 따른 영향이 크게 나타난다. 더욱이 최근 세계적인 공급 확대로 가격경쟁이 치열해지고 기업 수익성도 낮아져서 원화 절상에도 불구하고 단가를 추가적으로 낮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기전자, 자동차, 기계류 등 주력 수출부문도 원화 환율 변화 대비 수출 탄력성이 0.3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형 불황 우려

    이에 따라 일본과 같은 장기 저성장의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은 1980년대 후반 일본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당시 일본은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가 빠르게 절상되는 가운데서도 수입이 크게 늘지 않아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장기간 지속됐다. 주요인의 하나는 원자재 가격 하락이었다. 오일쇼크 이후 높아져 있던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엔고에도 불구하고 수입증가율이 수출증가율을 크게 상회하지 못했다. 자본재 수입 의존도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폐쇄된 일본 유통구조로 인해 소비재 수입도 크게 늘지 않았고 결국 경상수지 흑자와 엔고가 공존했다.

    엔고가 지속되면서 일본은 TV, 자동차 등 주력 부문의 생산기지를 해외로 빠르게 이전했고, 완성품 수출 형태에서 해외지사에 대한 부품 수출 중심으로 수출구조를 바꿔갔다. 해외생산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국내 투자와 고용, 생산이 위축되는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발생했고, 이는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장기 저성장에 주원인으로 작용했다.

    우리나라는 수입의 가격탄력성이 높지 않다는 점, 원자재 가격이 하향 안정 기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점, 해외투자가 계속 늘어난다는 점이 1980년대 중반의 일본 상황과 유사하다. 전체 수입에서 원자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50.8%에서 지난해에는 63.2%까지 꾸준히 높아졌으며, 가격탄력성이 큰 소비재 수입 비중은 10%를 넘지 못했다. 결국 원화 가치가 절상돼 수입가격이 낮아져도 수입물량이 늘어나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며, 국제원자재 가격이 하향 안정되면서 수입이 당분간 부진한 양상을 띨 전망이다. 국제수지 균형을 위해 그만큼 수출이 조정돼야 하는 폭이 크다는 뜻이다.

    여기에다 국가신용등급 상승 등으로 원화 자산의 안전성이 높아지면서 안전자산으로서 원화에 대한 수요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유럽 재정위기 등 선진국 경제불안으로 전통적인 안전자산 외에 여타 대체 안전자산을 찾는 추세와도 관련이 있다. 결국 세계경제의 리스크가 클 때 원화가 절하되면서 국내 회복세를 높이는 과거의 경기안정 메커니즘이 점차 작용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 세계경제가 부진할 때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더욱 경기 위축 요인으로 작용했던 일본의 전례를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해외투자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지난해까지 우리나라의 해외 직접투자 증가율은 연평균 6.9%로 국내 투자 증가율 5.4%를 상회한다. 국내총생산(GDP)에서 해외 직접투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2.9%에 달해 일본 수준을 넘어섰다. 임금 경직성이 높고 기업 규제도 많다는 인식이 높은 상황에서 원화 절상 기조가 오래 지속될 경우 기업들은 해외에 투자할 유인이 커질 수 있다. 자국 화폐 절상과 경상수지 흑자가 공존하면서 국내 제조업 생산이 정체되는 일본형 성장 둔화 리스크를 떠올리게 한다.

    내수 수요 창출이 해답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유지되는 한 시장 개입은 점차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10월 말 발표된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도 ‘한국 금융당국에 대해 시장 혼란의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환시장 개입을 제한해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IMF나 미국 등에서는 원화가 아직 저평가 상태이며 3369억 달러(9월 말 기준)에 달하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규모도 이미 적정 수준을 초과한 것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외부의 시각을 고려하면 빈번하고 지속적인 외환시장 개입은 어려워 보인다. 다만 외환시장에서 쏠림 현상이 발생할 때 일방적인 원화 절상 기대심리를 막는 차원에서 제한적인 시장 개입은 필요할 것이다. 국제적인 갈등을 야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외환시장 개입을 적절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자본 유입이 크게 늘어날 경우에는 자본 유출입 안정화 방안 강화를 모색할 수도 있다. 2010년 이후 단계적으로 도입된 은행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은행 단기차입에 대한 부담금 부과 등의 조치는 단기 유출 가능성이 높은 외국인 자금의 대규모 유입을 억제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외적으로도 이들 3종 세트는 거시 건전성 규제 차원에서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만큼, 해외 자본 유입에 의해 국내 금융시장이 위협받을 경우 추가적인 강화 조치는 가능할 듯하다. 아울러 외화 유입을 억제하는 것과 함께 해외증권 투자 등 외화 유출 확대를 도모하는 것도 원화 절상 압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규제 완화와 인프라 확충을 통해 내수 부문에서의 수요 창출력을 높이는 것이 잠재적인 성장능력을 키우고 빠른 원화 절상을 막는 방안일 것이다. 특히 내수시장에서 대외 개방도를 높여 수출과 수입의 균형 있는 증가를 도모하고 경상수지 흑자가 과도하게 누적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아울러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이 지속되면서 제조업이 공동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내투자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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