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호

국제금융사기 ‘나이지리아 419’가 당신을 노린다

전직 대통령 부인의 메일 “일확천금의 기회를 드립니다”

  • 이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입력2006-03-27 17: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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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망명한 거물 정치인의 아들입니다. 수백만달러의 비자금을 환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10%의 수수료를….” 이런 내용의 e메일을 받아본 일이 있는가. 그 내용이 궁금해 인터넷을 뒤져본 일이 있는가. 한번쯤 ‘이 메일이 사실이라면…’ 하고 상상해본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지구 반 바퀴 떨어진 아프리카에서 남의 주머니를 노리는 국제금융범죄의 목표물이 된 것이다.
    국제금융사기 ‘나이지리아 419’가 당신을 노린다
    2005년 초 나이지리아 라고스 공항. 비행기 탑승구 앞에 선 김모씨의 심장은 쉴새없이 쿵쾅거렸다. 이제 곧 서울로 출발한다고 계속 되뇌었건만, 팽팽해진 신경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공항 한구석에 몸을 숨긴 채 불안한 시선으로 주위를 살폈다. 언제 나이지리아 금융범죄 조직원들이 자신을 발견하고 쫓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사건의 뿌리는 2004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업가인 김씨는 나이지리아의 중앙은행인 CBN(Centural Bank of Nigeria) 총재 명의로 된 영문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퇴출당한 전임 총재의 비자금 7000만달러를 비밀리에 해외로 반출하고 싶으니, 계좌를 빌려주면 수수료 25%를 주겠다’는 요지였다. 비자금이 안전하게 반출되면 한국에 투자하겠다는 얘기도 있었다. 김씨는 반신반의했지만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에 구체적인 상황설명을 부탁하는 답신을 보냈다. 몇 개월에 걸쳐 서신과 전화가 오갔고, 마지막 확인차 나이지리아를 한번 방문해달라는 초청을 받기에 이른다.

    나이지리아에 도착하자 은행 간부 두 명이 살갑게 그를 맞았다. 경찰 호위까지 준비한 정성에 기분 좋게 호텔로 향했다. 낯선 곳에서 김씨가 행여 불편한 점이라도 있을까 은행 직원 한 명이 24시간 옆에서 그를 보좌했다.

    다음날 김씨는 보좌한 직원과 함께 총재를 만나기 위해 CBN 라고스 지점으로 향했다. 총재는 “그간의 도움으로 이곳 상황은 잘 마무리됐다”며 “마지막으로 이 일을 알게 된 정치인에게 줄 자금(뇌물) 1만달러를 부탁한다”고 했다. 중앙은행에서 총재까지 만나고 난 상황이고 보니, 김씨는 별 의심 없이 돈을 건넸다.

    그러나 막상 돈을 건네고 나니 상황은 급변했다. 항상 동행하는 직원 때문에 마음대로 외출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 그러고 보니 집요하게 따라붙는 직원의 태도가 부자연스러웠다. 묘한 두려움이 김씨를 덮쳤다.



    이튿날, 그는 은행 직원이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 몰래 방을 빠져나왔다. 급히 라고스 시내에 있는 한국대사관으로 달려가 사정을 설명했다. 곧바로 경찰을 대동해 호텔로 왔지만 은행 직원이라던 남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확인 결과 그들은 은행 직원도, 총재도 아니었다. 비서와 짜고 총재실 사진을 바꿔 달며 치밀하게 준비한 한 편의 연극일 뿐이었다. 김씨는 “총재라는 사람이 멀쩡히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가짜인 줄 알았겠냐”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는 “돈도 돈이지만 몇 달 동안 살맛 났었는데…”라고 힘 빠진 음성으로 말했다.

    교묘한 트릭

    김씨가 당한 사기수법은 대표적 국제 금융사기인 이른바 ‘나이지리아 419’의 전형이다. 나이지리아에서 처음 시작된 사기유형으로, 나이지리아에서 사기죄가 형법 419조에 규정돼 있다는 데 착안해 국제수사당국 사이에서 이런 별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해외의 불특정 다수에게 ‘비자금 반출을 도와달라’는 팩스 또는 e메일을 대량으로 보낸 후 회신을 해오는 사람에게서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이 같은 수법이 높은 성공률을 보이자 인근 아프리카 국가들로 전파됐고, 많은 조직이 나이지리아 방식을 ‘교과서 삼아’ 연마해 수법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419가 국내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98년 2월. 국가정보원이 나이지리아의 국영 석유회사인 NNPC를 사칭해 투자 유치를 유도한 전송문을 입수한 것이 계기였다. 국정원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동안 신고건수는 60건, 피해액은 620만달러에 이른다. 2004년의 29건, 335만달러에 비해 두 배나 늘어난 숫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메일을 받아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에 신고율이 0.3%에 불과하고, 피해를 당하고서도 창피함에 쉬쉬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국정원의 분석이다. 실제 범죄규모와 한국인 피해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얘기다.

    나이지리아 419의 유형은 수십 가지에 이르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일단 전현직 고위층을 사칭해 비자금을 미끼로 접근한다. 그리고 “긴급한 상황이므로 절대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제안이 넘어갈 수 있다”는 말로 상대를 긴장시킨다. 어느 정도 신뢰가 쌓였다고 판단되면 다음 단계인 시간 끌기 작전에 들어간다. 이 과정은 대개 1만달러 미만의 소액 수수료 뜯기와 함께 진행된다. “자금을 보내기 위해 은행 관리를 매수해야 한다” “지금 보관은행이 수색 받는 중이라 문제를 무마하기 위한 뇌물성 자금이 필요하다”는 구실을 대며 돈을 요구하는 것이다.

    문제는 불특정 다수에게 뿌려지는 제안 내용이 나이지리아 현지의 정세(情勢)를 토대로 매우 정교하게 작성된다는 사실. 웬만큼 아프리카 사정에 정통하다는 사람들도 그럴 듯하다고 여길 만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얼마 전 부동산업자 장모씨가 받은 e메일은 누구나 한번쯤 받아봤을 나이지리아 419 메일의 전형을 보여준다.

    ‘본인은 사니 아바차의 부인으로, 나이지리아의 유명한 국제기구로부터 당신을 소개받았다. 남편이 재직할 당시 나이지리아에서 건설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해준 한 러시아 회사가 남편에게 6500만달러를 보낸 것을 얼마 전 알았다. 최근 나이지리아 민간정부가 가족들의 모든 계좌를 동결해가며 자금원을 조사 중이다. 그래서 당신이 이 자금의 해외반출을 도와줬으면 한다.’

    사니 아바차(Sani Abacha)는 1998년 사망한 옛 나이지리아 군사정부 수반. 그가 집권시절 부정축재를 많이 했다는 사실이나, 1999년 집권한 민간정부가 그 가족들의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내용 자체는 허무맹랑하기만 한 얘기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부인이 도움을 요청한다는 형식은 동정심을 자극하는 부분도 있다.

    사기 지뢰밭 당첨됐습니다!

    이와는 조금 다른 유형도 있다. 해외 인터넷을 서핑하다 “당신은 1만 번째 방문자입니다” 혹은 “복권에 당첨되셨습니다”라며 튀어나오는 팝업 창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직장인 박모씨는 지난해 “3000번째 방문자에 당첨됐으니 상금을 지급하겠다”는 e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다. 메일에 링크된 주소를 클릭하자 실제 홈페이지에 연결됐다. 네덜란드에 있는 컴퓨터 회사였다. 기쁜 마음에 전화를 했더니 상금 수령에 필요한 서류를 팩스로 보내왔다. 회사소개, 상금액수, 필요한 수수료 입금방법 등이 안내돼 있었다. 그러나 사무실에서 일하는 외국인 인턴은 서류를 보고 “정황상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며 그를 뜯어말렸다. 네덜란드 컴퓨터 회사라던 사이트는 알고 보니 아프리카 국가에서 만든 것이었다.

    자원을 헐값에 팔겠다고 현혹하는 수법도 있다. 석유, 구리, 금 등을 시중가의 85%에 주겠다며 접근해 돈을 떼먹거나 일부 제품만 운송한다. 특히 아프리카에 체류 중이라면 시도 때도 없이 이런 제안을 받게 된다.

    한 사업가는 콩고에 갔을 때 현지 사업파트너로부터 “다이아몬드 원석에 관심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파트너는 금과 다이아몬드 원석 샘플을 보여줬다. 전문가에게 감정해보니 품질은 믿을 만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27억원가량의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되팔 경우 수익이 짭짤하기 때문에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

    파트너는 콩고 최대 규모의 법률회사 소속 변호사를 소개해줬고, 그 사무실에서 계약이 이뤄졌다. 콩고에서부터 해양운송이 가능한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의 수송비용에 위험수당까지 포함된 가격이었다. 불법거래이기 때문에 화물열차의 석탄 속에 숨겨넣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남아공에 먼저 도착해 원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케이프타운에서 물건을 받아본 그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했다. 도착한 물건의 양은 애초에 얘기했던 것의 절반 남짓이었고, 그나마 대부분은 진짜 원석이 아니었다. 바로 파트너에게 전화를 걸어 따져 물었다. 파트너가 소개해준 상인은 놀란 목소리로 “물건을 실을 때는 이상이 없었는데 중간에서 누군가 바꿔치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지 교민들에게 물어보니 “브로커, 변호사, 상인 모두 한통속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그는 교민들의 도움을 받아 일당을 고발했지만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었다. 더군다나 다이아몬드를 판 사람은 콩고 정보기관 직원. 해결이 쉽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지만, 그는 여전히 소송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나는 절대 안 속는다’고?

    나이지리아 419는 이처럼 곳곳에 정교한 트릭을 심어놓고, 때로는 상대를 긴장시키다가 때로는 무장해제시키며 목적을 달성한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수법에 속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거나 자신은 절대 속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는 이도 있겠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심리학)는 사기조직의 접촉에 응하는 것은 복권을 사는 사람의 심리와 같다고 설명한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내게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요. 그러나 복권에 당첨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복권을 사듯, 자신에게 행운이 왔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는 겁니다.”

    일단 그들과의 거래에 마음이 들뜨면 사기라고 의심하기는커녕 행운이 찾아왔다는 생각에 행복해한다. 나이지리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한인회 부회장 김태철씨는 “비밀이 많은 손님이 종종 묵는다”고 전했다. 이런 이들은 나이지리아에 온 목적을 물어도 “사업차 왔다”며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고, 연령대가 다양하긴 하지만 주로 나이가 많은 이들이라는 설명이다.

    “자기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 혹시 누가 가로채갈까 봐서입니다. 게스트하우스를 오래 운영하다 보니 척 보기만 해도 알 것 같아요. 위험해 보이는 손님한테는 ‘이러이러한 금융사기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당부하는데, 자기는 절대 아니라고들 하죠. 결국 숙박비도 못 내고 귀국하는 걸 보면 참 답답하지요.”

    사기를 당하고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서울경찰청 외사계 송동규 형사는 제3자의 신고로 피해자를 불렀지만 “곧 돈이 들어올 것”이라며 조사를 거부한 사람의 일화를 들려줬다. 국정원 관계자도 “피해자인 한 건설사 사장이 오히려 피의자 석방을 요구해 황당했던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는 피해자의 이런 심리를 ‘사교(邪敎)집단 교도’에 비유했다. “환상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예언이 틀려도 종교를 의심하기보다는 다른 요인에서 문제를 찾으려는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흔히 이런 수법의 사기에 당하는 사람은 나이가 어리거나 학력이 낮은 사람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신고되는 사건의 피해자들을 분석해보면 학력, 경제적 조건, 연령 등에서 어떤 일관성도 보이지 않는다. 2004년에는 현직 대학교수가 나이지리아 419로 8만달러를 날린 경우도 있었다. 로또를 사는 이들이 여러 부류이듯 사기에 걸려드는 사람에도 기준이 없는 셈. 누구보다 현명하고 이성적인 사람도 사기에 걸려들 수 있다는 얘기다.

    유일한 희망이 ‘사기’

    사실 인터넷을 이용한 국제금융사기는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나이지리아발(發)’로 불러도 될 만큼 여전히 나이지리아에서 가장 빈번하게 이뤄진다. 나이지리아 419가 정확히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됐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일부 전문가들이 ‘1970~80년대 초 나이지리아 당국이 수입품 통관절차 중에 권한을 남용하면서 시작됐을 것’이라고 추측할 따름이다.

    한국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영호 연구원은 “나이지리아에서 금융사기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복잡한 국내 상황과 관계가 깊다”고 설명한다. ‘국민의 90%가 극빈곤층, 부패지수 세계 1위, 심각한 종교·인종갈등’ 등이 불안정한 정세와 겹쳐 사기범죄가 일어날 만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우선 나이지리아에 이렇다 할 산업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건축과 석유사업이 있지만 그조차 개발능력이 없어 대부분 외국 기업이 수주하고 있다. 산업이 없으니 고용도 낮으므로 다수의 국민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식이다. 엄청난 숫자의 난민도 있다. 결국 많은 이들이 ‘먹고 사는 방편으로’ 사기를 택한다는 것이 박 연구원의 설명이다.

    원유 매매로 형성된 지하자금 커넥션도 무역사기를 부추기는 한 원인이다. 나이지리아 정부와 반군, 외국 유전업체들이 원유 매매를 놓고 벌이는 갈등은 무력분쟁으로 번질 만큼 심각하다. 지난 2월 말부터 계속된 반군의 외국 유전업체 공격사건은 이 유전싸움이 곪아터진 결과였다. 연 200만배럴의 원유를 퍼올리는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면서도 인구의 3분의 2가 하루 1달러의 생계비로 연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와중에 불법 원유거래가 횡행하니 제대로 이뤄지는 거래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나이지리아가 석유대국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는 이들은 가짜 정보에 현혹되기 십상이다.

    특히 나이지리아는 거의 대부분의 물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 교류가 자연스럽다. 나이지리아의 공용어가 영어라는 점도 국제사기를 치는 데는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다 보니 경제사정이 넉넉하고 범행 후에도 들킬 염려가 적은 외국인이 타깃이 되는 것이다.

    40년의 뿌리를 가진 한탕주의와 부패라는 고질병도 빼놓을 수 없는 배경이다. 나이지리아는 1960년 영국에서 독립한 뒤 40년 가까운 군부통치를 거쳐 1999년에 이르러서야 오바산조(Obasanjo)가 이끄는 민선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개헌 움직임을 보이는 등 여전히 정세 불안정은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이지리아 곳곳을 파고든 부패문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라고스 무역관 관계자의 말이다.

    “일선 직원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개인에게 떨어지는 이익이 없으면 일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결정을 위해 단계마다 승인이 필요한 시스템인데, 그때마다 돈을 지불해야 사인을 받을 수 있는 식이지요.”

    낚시꾼은 누구인가?

    나이지리아 419 같은 금융사기를 저지르는 이들은 누구인가. 나이지리아의 거대 조직폭력단체가 이들 사기범죄의 배후에 있다는 설도 있지만, 사실은 가족을 중심으로 2~5명으로 구성된 폐쇄적인 소규모 조직이 대부분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앞서 설명했듯 나이지리아의 종교와 인종문제는 심각하다.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가 각각 40%이고 나머지는 토착종교를 믿으며, 통틀어 220여 민족으로 구성됐다. 이들이 각각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고집하기 때문에, 사기조직은 절대로 다른 종족이나 종교에 속한 이를 끌어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국정원 국제범죄정보센터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들은 철저히 검증된 인물과 일하고, 일시 해산과 집결을 반복합니다. 조직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지요. 비밀리에 움직이기 때문에 조직원 하나를 검거해도 다른 조직원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가 매우 힘든 것으로 압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영호 연구원은 “e메일 수법의 경우 인터넷만 있으면 범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직원끼리 곁눈질로 배우고 범행에 가담한다. 그러나 수입을 제안하며 접근하는 무역사기의 경우 대개 대상자를 현지로 초청하기 때문에 영전, 사문서 위조, 계좌 관리 등 역할을 분담해 치밀한 사기 행각을 벌인다”고 설명했다.

    KOTRA 라고스 무역관의 한 관계자는 나이지리아 PC방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해줬다.

    “그곳에 하루 종일 죽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 50%는 사기 e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이라고 봐도 무방하지요. 200명 중 1명에게서 답신이 와도 몇 년간 생활은 문제가 없는 거니까요.”

    최근에는 이러한 수법의 금융사기가 나이지리아 국경이나 아프리카의 범주를 넘어섰다. 피해자 국가의 내국인이 나이지리아 419에 가담한 사례가 밝혀진 것. 국정원이 적발한 사건 가운데는 영국이나 대만 등에 있는 한국인이 나이지리아 조직과 결탁해 서울의 피해자를 속인 사례가 3건 확인되어 비상이 걸렸다. 심지어 한국인으로만 이뤄진 조직이 나이지리아 419를 모방해 저지른 범죄도 신고되고 있다.

    유령과의 싸움

    국제금융사기의 경우 신고를 해도 보상받을 길은 요원하다. 범인이 해외에 체류하는 정체불명의 외국인이고 철저히 신분을 감추는 탓에 신원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직원은 인터넷과 신원 확인이 불가능한 휴대전화로만 접촉한다(나이지리아나 남아공 등에서는 휴대전화 명의추적이 어렵다). 무역사기의 경우 상호를 비롯한 모든 내용이 가짜임은 물론, 범행 후에는 전화번호와 사기수법까지 바꿔 추적을 피한다. 유령과의 싸움과 다를 게 없다.

    국제범죄는 수사영역에도 한계가 있다. 서울경찰청 외사계 관계자는 2004년 교회 신도를 자처하며 해외 은행에 예치된 비자금을 교회에 투자하겠다는 명목으로 목사에게 12억여 원을 뜯어낸 박모씨의 사례를 들려줬다.

    “투자 유치를 명목으로 송금수수료를 요구한 방식, 돈이 아프리카개발은행으로 송금됐다는 점에서 나이지리아 419 조직과 연계됐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예치금 잔고증명서의 진위 여부는 대사관의 도움으로 밝혔지만 계좌추적은 불가능했습니다. 수사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요. 결국 박씨의 사문서 위조·행사와 사기죄를 인정받았을 뿐 이미 송금된 돈은 못 찾았습니다. 연계된 나이지리아 조직 역시 손도 못 댔죠.”

    현지 경찰과 연계해 수사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반문에 KOTRA 현지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경험담을 들려줬다.

    “나이지리아 경찰에 물어보니 ‘그런 사기는 당하는 사람이 바보 아니냐. 추적할 수도 없지만 별로 잡고 싶지도 않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라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지만 국민성이 다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정원 관계자는 “범죄의 특성상 검거된 사건은 국내에서 내국인이 연계된 사건뿐”이라며 “이 같은 종류의 사기사건은 예방활동에 주력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나이지리아 정부와 경찰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에 일각에는 ‘훌륭한 외화벌이 수단인 금융사기를 나이지리아 정부가 뒤에서 지원한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만에 하나 범인이 잡힌다 해도 십중팔구 담당경찰을 매수하기 때문에 손쓸 방법이 없는 경우도 있다. 각국 정부의 계속되는 항의에 지친 나이지리아 정부는 2003년 ‘경제금융범죄조사위원회(EFCC)’를 설립했다. 이후 한국 기업이나 개인이 사기를 당한 경우 고발절차는 편리해졌지만 아직 해결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자국 내 비리자금 포착에는 성과를 보였지만 국제사기 척결 자체에는 큰 힘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인생 한방’은 없다

    한국인이 나이지리아 419의 타깃이 되기 시작한 것은 IMF 금융위기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던 1997년 말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몰린 기업은 큰 물량의 수입 오더에 희망을 걸었고, 앞서 콩고에서 사기를 당해 끝내 파산한 김모 사장처럼 많은 기업인이 아프리카 정치인 명의의 ‘은밀하고도 특별한 제안’에 마음이 들떴다. 나이지리아 419가 알려지지 않았던 1990년대 후반 곳곳에서 피해사례가 속출했다.

    2006년 현재, 간간이 이어진 언론보도와 입소문으로 나이지리아 419는 꽤 알려진 범죄다. 아프리카 국가와 무역을 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됐다. 그러나 빈틈은 있다. 내국인과 아프리카 사기조직이 결탁해 저지르는 새로운 사기는 나이지리아 419의 고전적인 레퍼토리를 넘어 일종의 ‘블루오션’을 형성하는 형국이다.

    외국 은행에 돈을 송금하거나 외국 현장에 투자하는 내용의 사업이라면 한국인이 중재한다고 해서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앞서 신도를 가장해 목회자에게 접근했던 박모씨의 범행에서 보았듯 본전을 찾을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운을 믿지 않는 마음과 요행을 바라는 마음 사이의 줄다리기. ‘사기’는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그 야누스의 얼굴을 알아채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전문가들이 말하는 예방법은 “아프리카에 대해 관심과 지식을 가져라”는 말로 요약된다. 충분한 준비 없이 들뜬 마음으로 덤비는 순간, 공돈을 주겠다며 유혹하는 ‘나이지리아 419’ e메일의 마수에 당신도 걸려들고 마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419, 예방이 최선!

    ‘지하자금 반출…’은 100% 사기

    나이지리아 419는 일단 사기 피해가 발생할 경우 이를 되돌릴 방안이 거의 전무한 실정. 따라서 초기에 사기성 여부를 잘 판단해야 한다. 대표 유형별로 판별법을 살펴본다.

    유형 1 : 지하자금 반출 빙자 사기(사기확률 100%)
    고위층과의 친분을 빙자, 엄청난 비자금을 국외로 반출하기 위한 계좌를 빌려주면 반출총액의 5~20%를 지급하겠다고 제의(전 정권 수반의 부인, 자녀, 친척, 비서 등을 사칭함)한다. 이런 제의는 100% 사기. 절대 응해서는 안 된다.

    유형 2 : 나이지리아 유명 기관 및 인사, 유령기관 사칭(사기확률 99.9%)
    주로 나이지리아 중앙은행(CBN), 석유공사(NNPC), 전력공사(NITEL) 등과 실재하지 않는 유령기관 관계자를 사칭해 접근한다. 그곳 근무자나 관련 브로커를 내세워 가짜 입찰정보를 제공하고 낙찰을 미끼로 각종 명목의 금품을 요구한다. 정부기관 레터헤드 용지를 위조, ‘Top Urgent’ ‘Top Secret’ ‘Confidential’ 같은 고무인을 날인하는 것이 특징이다. 국가기관의 대형입찰에 사전 입찰정보의 유출 및 불법 낙찰은 있을 수 없다. 관련기관이나 라고스 한국무역관에 문의해 입찰 실시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유형 3 : 무역거래 전제 사전 샘플 요구(사기확률 95% 이상)
    ‘귀사의 제품이 아주 우수하다고 판단되어 얼마만큼의 물량(대부분 많은 물량)을 수입코자 하니 일단 몇 개의 샘플을 송부해달라’고 요구한다. 샘플 대금은 실제 선적대금 지급시 함께 지급하겠다고 제의한다. 주로 휴대전화, 노트북 컴퓨터, 소형 전자제품 및 기기 등 단위가격이 높은 소형 상품을 대상으로 사기를 시도한다. 샘플대금의 송금을 위해서는 정부기관(중앙은행이나 재정경제부)의 샘플검사가 필요하다고 하며 샘플의 선(先) 송부를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샘플대금을 항상 먼저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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