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호

중국의 무지와 야만이 부른 지구 황폐화

“그들은 모래더미 속에서 돈을 세고 있다”

  • 박근형 중국 쓰촨대 역사문화학원 박사연구생 berdl28@hanmail.net

    입력2007-05-03 13: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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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월 말~3월 초, 황사의 근원지인 중국 네이멍구와 화베이 지역에서 비교적 큰 규모의 비와 눈이 내렸다. 그러나 중국대륙의 사막화는 이런 일시적 강우로 해소되기엔 역부족. 사막화는 공업화와 맞물려 대기오염을 가중시킨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한반도 해상 대기 중 이산화황 평균 농도는 중국발(發) 오염물질의 영향으로 일본 근해와 태평양 지역의 최고 10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반도에 환경 대재앙의 암운(暗雲)을 드리운 중국의 사막화 현장을 살펴봤다.
    중국의 무지와 야만이 부른 지구 황폐화

    황사가 발생한 서울 한강변. 중국의 사막화는 황사·대기오염 등 한국에도 극심한 피해를 주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중국) 황막화(荒漠化) 토지는 267만4000㎢로 전 국토의 27.9%를 차지하고, 해마다 1만㎢씩 늘어납니다. 18개 성(省) 471개 현(縣)은 비록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 황막화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폐수 방출총량은 439억5000만t으로 우리나라 환경총량을 82% 초과했습니다. 7대 수계(水系)의 40.9%는 수질 오염이 심각합니다. 호수의 75%에선 부영양화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600개 도시 중 400개 시는 물이 부족하고 그 중 100개 시는 매우 부족합니다. 이미 농촌 인구 중 3억6000만명은 적합한 수질의 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이산화질소 방출량은 1927만t, 먼지 방출량은 1013만t, 공업분진 방출량은 941만t입니다. 인민 신체건강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판웨(潘岳) 중국 국가환경보호총국(國家環境保護總局) 부국장이 녹색중국(綠色中國) 제2회 논단에서 한 강연 중 일부다. 정부 당국자조차 이렇게 시인할 만큼 중국의 환경파괴는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13억 ‘밀집 인구’의 충격



    중국의 환경 문제는 단적으로 요약하면 ‘사막화 현상’과 ‘물 부족’이다. 이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중국의 사막화 현상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일본에 거주하는 중국학자 스핑(石平)씨가 쓴 ‘숫자가 폭로하는 중국의 정체’, 중국 동북아산림포럼이 제작한 ‘중국의 사막화 현황과 방지대책’, 중국 CCTV가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정리한 ‘중국서부생태경시록(中國西部生態警示錄)’, 중국 국가환경보호총국이 제작한 ‘전국환보계통우수조연보고문집(全國環保系統優秀調硏報告文集)’, 서울대 박순웅 교수의 ‘황사 발생 원인과 대책’을 참고자료로 활용했다.

    중국 환경 문제에서 인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나치게 많은 인구는 환경에 압박을 가해 오염과 파괴를 일으킨다. 1인당 농경지 면적과 식량 생산량을 감안하면 중국의 인구는 6억명이 적당하다. 그러나 현재 중국 인구는 13억1448만명이다(2006년 중국 국가통계국 발표자료). 적정 인구의 두 배가 넘는다. 1963년 중국 인구는 6억9000만명이었다.

    그런데 실제 중국 인구는 공식발표된 숫자보다 훨씬 많다. 대다수 중국 사람은 중국 정부가 제시하는 인구통계를 믿지 않는다. 공산당 고위관리들도 믿지 않는다. 중국에는 인구조사 자체가 불가능한 영역이 많기 때문이다.

    1995년 2월, 중국 인구는 12억명을 돌파했다. 당시 세계 인구는 57억명. 세계 인구의 21%였다. 중국 국토 면적은 960만㎢로. 남한의 100배에 달하는 넓은 땅인 것은 사실이다. 인구밀도는 1㎢당 약 110명으로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경제활동을 하며 거주할 수 있는 지역이 넓지 않다는 게 문제다. 중국 인구의 90%가 동부지역에 몰려 있으며 과밀지대의 인구밀도는 1㎢당 1000명을 넘는다. 1㎢당 474명(1995년 통계)인 한국의 인구밀도보다 훨씬 높다. 대다수 중국인은 이처럼 매우 비좁게 살고 있다.

    13억이 넘는 방대한 인구가 좁은 특정지역에 밀집해 있는, 이런 중국적 특성이 생태환경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의 모든 환경문제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인구와 관련이 있다. 중국의 1인당 토지, 산림, 수자원 점유량은 각각 세계 1인당 점유량의 36%, 13%, 25%를 차지한다. 중국의 농경지는 세계 농경지의 7분의 1로, 세계 인구의 22%를 먹여 살리는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식량공급은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문제다.

    경제발전 위해 모든 것 포기

    게다가 공업화 및 농약 사용에 의한 토양오염이 심각하다. 화학비료 대량 사용에 따른 토양 경직, 지력 감소, 도시화로 인한 토지 잠식은 중국의 환경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은 식량공급 확충을 위해 숲과 목초지, 저수지를 없애면서 개간을 해왔다. 이 역시 생태환경을 파괴하는 데 일조했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파괴를 막으려면 많은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이 부분에 매우 인색하다. 미국은 1970~82년 공해방지비용으로 5950억달러를 썼다. 일본이 공해방지설비에 투입한 비용은 국민총생산의 2%를 차지한다. 반면 중국은 제7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86~90년) 기간 중 환경오염방지에 국민총생산의 0.7%만 썼다.

    인류가 당면한 환경 문제는 경제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폐수, 유해가스, 고체폐기물, 방사성폐기물, 유독화학물질, 산림 파괴, 토양 유실은 모두 경제활동의 부산물이다. 중국의 환경 문제도 그렇다. 공업의 기형적 성장, 환경 문제에 대한 인민의 무관심, 약탈적 자원개발은 이제 중국의 상징이 됐다. 기술적으로 중국 환경 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있다. 문제는 의식이다. 중국은 경제발전을 위해 환경 문제를 포기하고 있다.

    1949년 공산당은 민주계열 중간파를 흡수했다. 그러나 민주와 언론자유를 외치며 국민당을 비판한 공산당은 국민당보다 더 철저하게 사상통제를 시행했다. 이에 민주계열 중간파는 회의를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이하 마오)은 1956년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을 교시했다. 춘추전국시대 문화예술이 꽃피고 수많은 사상백가가 나온 것처럼, 신중국도 이제 자유롭게 비평과 토론을 해 문화수준을 올리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에 따라 석 달 동안 공산 중국에 언론자유가 있었다. 민주계열 중간파들은 토론회를 열어, 공산주의 선전만으로 가득한 연극·영화 사조를 비판했다. 그러다 결국 정치비평까지 나오고야 말았다. 당시 중국 신문 사설에는 ‘이것은 독재다’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마오는 이 석 달 동안 언론자유를 마음껏 누린 언론인, 학자, 민주계열 인사들을 영장도 없이 하루아침에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냈다. 이를 중국 현대사에선 ‘반(反)우파투쟁’이라 한다. 동시에 마오는 인민의 집단역량으로 모든 외부 조건을 극복하기로 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중국을 실현하기 위해 인민공사운동을 벌였다. 모든 사유재산을 없애버리고, 전 인민을 인민공사 하부 조직원으로 묶어 자급자족·자력갱생·공동생산·공동분배라는 공산주의적 원칙을 실천한 것이다. 이런 기조에서 나온 일이 대연강철(大煉鋼鐵) 사건이다.

    숲 집어삼킨 대연강철 사건

    1958년 8월 중국 정부는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전 인민에게 강철 1070만t 생산을 위해 분투할 것을 호소한다”는 회의공보를 발표했다. 이 회의 이전 중국의 연간 철강 생산량은 450만t에 불과했다. 중국 정부는 각 성(省)·시·자치주별로 당위원회서기회의를 열고, 모든 지역에 대형·소형 용광로와 토고로(土高爐·흙으로 만든 소규모 용광로)를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1958년 7월 말 강철전선 노동력은 몇 십만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9월 말에는 5000만명으로 늘어났고, 연말엔 무려 9000만명이 강철 만들기 운동에 뛰어들었다. 제철용 초탄(焦炭)이 부족해 일반 석탄이 투입됐다. 이마저 모자라자 나무를 베어 불을 지폈다. 철광석이 부족하자 집에서 쓰는 철기그릇까지 동원됐다. 마침내 그해 겨울, 중국은 강철 1108만t, 생철 1369만t을 생산, 목표를 초과 달성했음을 공식 선포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엄청났다. 강철 1108만t 중 800만t만 합격품이었다. 생철 1369만t 중 아무 쓸모없는 토철(土鐵)이 416만t이나 됐다. 이처럼 무모한 ‘대연강철’ 사업을 위해 중국은 전국의 숲을 마구 파헤쳤고 이로 인해 환경이 무참하게파괴됐다.

    삼선건설(三線建設)도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1964년 하반기, 중국 정책결정자들은 국제정세에 따라 전쟁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같은 해 8월21일 정부 내 국가건설위원회는 베이징에서 ‘이전(移轉)회의’를 열어 ‘넓게 분산하고 작게 집중하라(大分散, 小集中)’는 원칙을 제정했다. 곧 ‘분산한다, 산을 낀다, 은폐한다,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分散, 퇜山, 隱蔽, 進洞)’는 국방 원칙이 제시됐다. 전쟁에 대비해 삼선(三線)지역은 공업시설을 분배받았다.

    삼선이란 중국 전역을 세 부분으로 나눈 것을 일컫는다. 동부 연해지역이 일선(一線), 중부가 이선(二線), 중국 서남부인 쓰촨(四川)·구이저우(貴州)·윈난(雲南)성이 삼선이다. 그런데 ‘분산한다, 산을 낀다, 은폐한다,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는 원칙에 따라 공장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은 좁은 협곡으로 들어가게 됐다. 공업시설이 지나치게 산재해 오염방지시설 건설비용이 급증했다. 이 때문에 중국 전역에서 심각한 환경오염이 발생했다.

    중국의 무지와 야만이 부른 지구 황폐화
    대연강철, 삼선건설과 더불어 중국의 환경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또 하나의 사건이 바로 문화대혁명이다. 마오가 통치하는 동안 현실과 맞지 않는 과도한 탁상행정일지라도, 당이 결심하면 전 인민이 고군분투해야 하는 현실이 이어졌다. 그 결과 자연재해와 기근이 닥쳤다.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류사오치(劉少奇)가 헐벗은 산야와 굶주려 죽어가는 농민을 눈으로 확인했고, 쓰촨성 출신의 덩샤오핑(鄧小平)은 “우리가 10년 동안 좌(左)로 치우쳤으니 이제 조금 우(右)로 나아가자”고 주장했다. 그는 쓰촨성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격언을 내세웠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라는 이른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다.

    결국 공산당 내부 비판이 거세지자 마오는 ‘7000인대회’를 계기로 국가주석을 사임했고, 당 주석만 유지했다. 중국 인민의 존경을 받는 류사오치가 국가주석을 승계했다. 그러나 마오가 보기에 류사오치가 추진하는 각종 정책은 부르주아적이었다. 마오는 다시 한 번 공산주의의 위대한 전진을 결심했다.

    후베이성 1065개의 호수가…

    마오는 정적(政敵)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때 공산 중국 수립 이후 태어나 철저한 사상교육으로 무장된 중·고·대학생들이 동원됐다. 마오는 ‘부르주아 노선을 걷는 자본주의자들을 타파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들 피끓는 홍위병들을 선동해 당원들을 숙청했다. 문화대혁명은 거대한 재난이었다. 공업은 철강을 근본으로, 농업은 식량을 근본으로, 지방행정은 전쟁준비를 위한 자력갱생으로 단순화됐다. 그 결과 엄청난 자원낭비와 환경파괴가 초래됐다.

    공업 자력갱생을 목표로 많은 도시가 공해산업을 부적당하게 배치했다. 예를 들어 베이징, 항저우(杭州), 쑤저우(蘇州), 구이린(桂林), 지난(濟南), 시안(西安), 뤄양(洛陽), 쿤밍(昆明) 같은 도시에 철강, 화학, 건설자재공업 등 공해산업이 중복 건설됐다. 주거밀집지역, 문화교육지역, 관광지역, 수원보호구역 등지에도 마구잡이로 공장이 세워졌다. 소형 공장도 부지기수로 들어섰다. 중국의 공장은 기술과 장비수준이 낮고 자금력도 취약해 정화능력이 형편없었다.

    농업에 있어서도 여러 지역이 편협하게 식량 생산만 추구했다. 호수와 못을 매립해 밭으로 일구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숲과 초원도 함부로 개간됐다.

    ‘1000개의 맑은 호수(素有千湖)’라는 별명을 지닌 후베이(湖北)성은 원래 큰 호수가 1065곳이나 있던 곳이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이 되자 호수는 500개 이하로 줄었다. 전체 수량의 4분의 3이 없어졌다. 장시(江西)성에 있는 포양후(?陽湖)는 호수 방파제가 331개, 호수면적이 3900만평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엔 호수 면적이 1200만평으로 줄어들었다.

    임업지역도 마구 파헤쳐졌다. 후난((湖南)성 쉬푸(?浦)현 양강인민공사는 연평균 6만평의 숲을 없앴다. 목축지역에서도 현실과 맞지 않은 식량·종자·사료 자급사업이 벌어졌다. 네이멍구 자치구에선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대대적으로 초원이 개간됐다. 1970년 이곳의 9개 인민공사는 농업대(農業隊)를 조직했다. 또 58개 목축대대가 식량 생산팀을 건립했으며, 그 결과 농지가 전해보다 40% 증가했다. 반면 엄청난 면적의 초원이 파괴됐다.

    이러한 호수 간척, 산림 훼손, 초원 개간은 토양유실, 강수량 급감, 자연재해를 불러일으켰다. 문화대혁명 10년 동안 중국의 자연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셈이다. 이 무렵 중국은 환경보호를 자본주의의 산물로 간주했다. 사회주의에선 환경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착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개방정책이 추진되면서 중국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차별 공업화’의 혹독한 대가

    개혁개방 이후 10년이 넘는 노력 끝에 중국은 체계적인 공업시스템을 건설했다. 지금까지 공업에 투자한 총액은 1경(京·1京은 1兆의 1만배)위안이 넘는다. 중국은 중형·대형 공업 항목 3000개 이상을 개발해 광산, 발전소, 야금,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등 중요 공업단지를 세웠다. 1990년 중국 공업 총생산액은 2조3851억위안. 같은 해 농업 총생산액은 7382억위안이었다. 1990년 중국은 석탄 10억8000만t, 원유 1억3800만t, 철강 6604만t을 생산했다. 발전량은 6180억㎾h에 달했다.

    그러나 ‘중국 공업화’의 대가는 혹독했다. 1989년 전국 공업폐수 방출량은 353억t이었다. 이 중 약 80%가 아무런 처리도 거치지 않고 강·호수·황해로 흘러들었다. 1988년 지류 532곳을 표본 측정한 결과 436곳이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고체 폐기물과 생활쓰레기 무단 방출량도 나날이 증가했다. 1990년 공업폐기물 종합 처리율은 29%에 불과했다. 도시 쓰레기 재처리율은 5% 미만이었다. 이렇게 나온 폐기물이 대도시와 공업지역 교외에 있는 하천에 계속 쌓였다. 그 양은 무려 67억5000만t으로 심각한 2차 오염원이 되고 있다.

    공업화와 도시팽창에 따라 자연은 크게 잠식됐다. 30년간 상하이(上海)시가 전용한 교외 농지는 3300만평이 넘는다. 1980년 톈진(天津)시 면적은 161㎢였는데, 1986년엔 282㎢로 넓어졌다. 6년간 42.9%가 확장된 것이다. 1986년 다롄(大連)시 신개발지역은 기존 도시면적의 30%에 달했다. 1979~87년, 10년도 안 되는 사이 전국 향진기업이 전용한 농지는 30억평에 이른다.

    결국 중국 정부는 환경 문제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이런 까닭으로 지금 중국대륙에선 환경파괴라는 거대한 유령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인류역사상 최악의 자연파괴를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중 한반도에도 심각한 재앙이 되고 있는 것은 중국의 사막화 현상이다.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은 “중국·몽골·시베리아 등 동북아시아 숲은 열대림이나 북미·유럽의 나무와 달리 한번 훼손되면 다시 조성하기가 쉽지 않기에 세계 환경자원으로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무지와 야만적 개발로 인해 나무들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땅이 메말라가는 것도 지하수의 과도한 개발 탓이다. 중국에선 비가 와도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촉촉이 적셔주지 못한다. 빗물은 땅에서 튕겨져 나와 하천으로 모여들고, 결국 바다로 흘러가 버린다. 토양은 지표에서 수만년 내지 수십만년 동안 서서히 형성된다. 중국의 무분별한 개발로 흙과 물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중국인들은 ‘수토유실(水土流失)’이라 일컫는다. 2001년 ‘중국환경현황공보’는 이렇게 전한다.

    “전국 토양유실 총면적 356만㎢. 그중 물이 말라 생기는 토양침식이 165만㎢, 풍화침식이 191만㎢다. 토양침식과 풍화침식이 동시에 일어나 사라진 토양은 26만㎢다. 가벼운 수토유실 162만㎢, 중급 수토유실 80만㎢, 강한 수토유실 43만㎢, 심각한 수토유실 33만㎢, 너무나 심각한 수토유실 38만㎢….”

    토양유실 총면적 356만㎢는 중국 총면적의 38.2%에 해당한다.

    “흙과 물이 사라져간다”

    중국 국토는 강수조건에 따라 건조, 반건조, 반습윤, 습윤지역으로 구분된다. 중국 국토의 52.5%가 건조·반건조지가 됐다. 주로 신장(新疆)·웨이얼 자치구, 간쑤성, 네이멍구 자치구에 집중해 있다. 사막 면적은 130만8000㎢로 중국 전체 국토면적의 13.6%에 달한다.

    중국의 사막은 서북부의 백색사막(백갈색 모래사막), 중동부의 황색사막(황토고원지대 황색모래), 남부의 홍색사막(라테라이트 적갈색 모래)으로 분류된다. 또 지표면을 구성하는 물체에 의해 모래(砂)사막, 암석(巖石)사막, 자갈(礫)사막으로도 구별된다. 중국의 사막 중엔 모래사막이 55.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신장 지역은 이미 25%가 사막으로 변했다. 중국에서는 ‘사막화 현상’을 ‘황막화(荒漠化) 현상’이라고 표현한다. 사막화에다 황토고원지대의 황폐화와 염류화 피해를 합친 개념이다. 황막화한 토지는 주로 중국 서북부 6개 성 및 자치구의 7개 사막, 즉 타클라마칸 사막, 구얼반퉁구트 사막, 바단지린 사막, 텅거리 사막, 우란부허 사막, 모우스 사막, 쿠부치 사막에 분포한다.

    동북아산림포럼 자료에 따르면 황막화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과거 수백만년 전부터 사막인 지역이 있다. 강우량이 극히 적고 바람이 세기 때문에 지피식물이 거의 생육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막지대에서도 이전에는 산림지대였음을 추정케 하는 유적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지구온난화이며, 세 번째로 인위적인 원인을 들 수 있다. 방목, 연료채취 및 개간에 따른 초지 훼손으로 사막화 토지 면적이 증가하고 있는 것. 10년 전에는 초지 2~3㏊당 양 1마리를 방목했으나 현재는 5~10마리를 방목하고 있으며, 따라서 10년 전 약 40㎏이던 양 1마리의 무게가 현재는 10㎏에 지나지 않는다.

    동북아산림포럼이 2000년 작성한 ‘중국의 사막화 현황과 방지대책’에 따르면 중국 전체 면적의 34%인 332만7000㎢가 이미 사막화했다. 이 중 풍식(風蝕)에 의한 사막화 토지는 153만3000㎢, 수식(水蝕)에 의한 사막화 토지는 179만4000㎢이다. 1970년대의 황막화 속도는 연간 1600㎢였다. 그런데 국가임업국 방사치사관리센터(防砂治砂管理中心) 후페이싱(胡培興) 부주임은 2001년 12월 “현재 중국에선 매년 2460㎢가 모래땅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국토 34% 사막화

    심각한 것은 인위적인 원인으로 사막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 신장성 타클라마칸 사막의 경우 실크로드 남쪽도로가 송대(宋代)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그 후 1000년간 타클라마칸 사막은 수십㎢나 커졌다. 고성(古城)이 사막 한가운데 점점이 보이는 것은 이곳이 예전에는 사막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과도한 산림벌채와 방목으로 식생이 파괴되어 사막이 된 것이다. 준가리 분지 서부지역도 이런 원인으로 유동사지 40㎢가 생겨났다. 타클라마칸 사막 남부에도 농지 및 주거지가 모래에 파묻힌 곳이 많다.

    오르도스 고원 남부 산시(陝西)성 모우스 사지는 5세기엔 수초(水草)가 아름답게 생육하던 토지였다. 모우스 사지 남동부 백성자(白城子)에 당시 지방정권의 수도인 통만성(統万城)이 있었으나 이후 사구에 매몰되어 폐허로 변했다. 송대부터 원대(元代)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지나친 방목으로 사막화한 것이다. 특히 17세기 이후 군부대와 주민 이주에 의한 개간으로 완전히 파괴됐다.

    신중국 수립 이후 50년 동안 황토고원(黃土高原)의 인구는 2배로 늘었다. 이에 따라 먹고살기 위한 개간이 벌어져 식생이 파괴됐고, 수토 유실이 발생했다. 황하는 더욱 누런 빛깔을 띠게 됐다. 산시성 북부의 자(佳)현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빈곤지역이며, 수토유실도 심각하다. 이곳에서 해마다 황하로 흘러 들어가는 진흙이 3500만t에 이른다. 그러나 이곳은 원래 나무와 풀이 무성하던 곳이었다.

    중국에서 사막화 토지 면적이 늘어나는 원인 중 95%는 인위적인 것이다. 가뭄과 같은 기후적 요인에 의한 사막화는 5%에 지나지 않는다. 토지 난개발, 방목지역 확대, 삼림 남벌과 수자원 남용 등 ‘4남(濫)’이 주 요인이다.

    국가임업국 저우성셴(周生賢) 국장에 따르면, 중국은 매년 50억t의 토양을 잃고 있다. 토양이 사라진 곳에 대신 들어차는 것이 모래다. 심지어 하룻밤 사이에 살고 있던 집이 사막으로 둘러싸이는 일도 있다. 베이징시 옌칭(延慶)의 ‘천막(天漠)’이 그런 곳이다. 바다링(八達嶺)고속도로를 벗어나면 보이는 농촌이다. 생동감 넘치는 도시 풍경과는 딴판으로 누런 흙벽돌로 만든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허물어진 집이 많다. 맨살을 그대로 드러낸 민둥산이 펼쳐진다. 이 민둥산에 인공 조림한 나무들이 위태롭게 서 있다. 건조한 기후를 이겨낼 수 있을지 아슬아슬하다. 심은 나무마다 돌로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 아래 30~40m 깊이의 골짜기가 도처에 보인다. 강한 바람이 불면 흙더미들이 쏟아져 내릴 것이다. 이 경사지에도 나무가 심어져 있다.

    마을 전체가 모래에 덮여

    중국 정부는 ‘산림녹화’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 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이미 메말라버린 땅에 나무를 자라게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한국 산림정책의 산 증인인 안학수 전 고려대 임학과 교수는 “한국 정부는 산림녹화사업을 자랑한다. 그러나 우리가 심은 나무 중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30%밖에 안 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산은 나무로 가득 차 있다. 이건 모두 생태계가 스스로 심은 것이다. 한국의 산은 그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천막의 토지는 한국의 토지와 다르다. 경작지는 물론 마을을 휘감아 흐르던 강에도 물이 사라지고 모래가 차기 시작했다. 옥수수 잎사귀에도 황토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물이 흐른 흔적이 있는 곳에서만 풀이 조금 자란다. 30m 높이 모래언덕에는 이런 안내문이 있다.

    “천막은 하늘에서 내려온 사막입니다. 10년 전 갑자기 이상하게도 황색모래 몇십만t이 날아와 이곳이 사막으로 변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네이멍구에서 왔다 하고, 어떤 사람은 신장에서 왔다고 하며, 심지어 다른 행성에서 날아왔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지금도 수수께끼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모래폭풍이 10배 이상 심하게 불어 이곳 면적이 20~30배 늘었습니다. 지금 이곳은 골칫거리입니다. 천막은 동남쪽 베이징 시내 방향으로 확대돼 이제 베이징 시내와 70㎞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곳 모래먼지는 한국과 일본까지 날아가기도 합니다.”

    2000년 5월 주룽지(朱鎔基) 총리는 이곳을 방문해 “사막화 방지 임무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녹색장벽을 반드시 세워 베이징과 천막의 생태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곳은 청소년 대상 환경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대다수 중국인은 환경 문제에 별반 관심이 없다. 이곳엔 커다란 간판이 있다. ‘사막낙원(沙漠樂園).’ 중국인 관광객들은 모래 위에서 말이나 삼륜 오토바이, 썰매를 타고 즐긴다.

    베이징의 살인적 모래폭풍

    네이멍구 자치구의 경우 지난 30년 동안 초원 면적이 56% 감소했다. 이제 중국 지식인들도 황막화가 자업자득이라는 것을 가슴 아프게 인정하고 있다. 국가환경보호총국 ‘환경과 경제정책연구소’ 후타오(胡濤)·쑨빙옌(孫炳彦) 연구원은 2000년 8월 네이멍구 시린궈러맹(錫林郭勒盟)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시린궈러맹은 네이멍구 자치구 중부에 있다. 베이징과 가장 가까운 초원지대다. 이 지역은 한반도와 비슷한 크기로 총면적 20만3000㎢, 총인구 92만명, 그중 농업인구가 57만3000명이다. 그러나 농지면적은 총면적의 2%도 안 된다. 대부분 초원 목축지대다. 시린궈러 초원은 유라시아 초원이 중국 안으로 뻗은 자리에 해당한다. 온대 반건조 지역이고, 다싱안링(大興安嶺) 남부에서 네이멍구 고원 동부로 이어진다.

    그런데 시린궈러 전체에 걸쳐 초원이 사막으로 변하고 있다. 1999년의 퇴화 면적은 전체면적의 64%를 차지했다. 사막화는 중국 정부 수립 이래 시행한 네 차례의 대규모 초원 개간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 정부의 가축 두수 중시형 축산정책은 사막화에 일조했다. 중국인들은 겨울철 사료 마련을 위해 풀을 마구 베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초지 파괴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1999년 중국 내 가축은 1800만두에 이르렀다. 개인목축을 허락한 이래 양 100마리를 갖고 있던 유목민이 2000마리로까지 늘린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시린궈러는 ‘쌍권일제(雙權一制·소유권, 사용권, 책임의무를 동시에 갖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 대다수 목장 경영자는 여전히 옛날 방식대로 자연약탈식 경영을 하고 있다.

    중국 정부에서 초원목장을 관리하는 부서는 축목국(畜牧局) 초원참(草原站)이다. 그런데 이 부서의 중점정책은 여전히 가축두수 늘리기에 있다. 풀이 얼마나 자랐는지는 묻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초원 조성 및 관리에 필요한 국가예산도 책정하지 않고 있다. 그 돈은 촌민들로부터 거둔다. 화재방지 경비는 공무원들이 착복한다. 기술 부족으로 올바른 목축업 지도를 펼 수도 없다. 구조적으로 초원을 보호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베이징외국어대학 인도네시아어과 2학년 천시(陳曦) 양은 2002년 5월 “모래폭풍이 2년 전부터 갑자기 심해졌다. 모래폭풍이 베이징을 덮칠 땐 1m 앞도 볼 수 없을 지경”이라고 했다. 산시성 셴양(咸陽) 양링(楊凌)농업기술산업시범구에서 관광 가이드로 일하는 김금연(金錦蓮)씨는 이렇게 말했다.

    “농촌에선 대야 하나에 담긴 물로 다섯 식구가 세수한다. 세 번째쯤에 씻는 사람은 그야말로 흙탕물에 씻는 셈이다. 양링시범구 사람들은 목욕을 평생 세 번 한다. 태어나 한 번, 혼인하기 전 한 번, 죽어서 한 번. 아무리 씻어도 황사 때문에 몸이 이내 더러워지기 때문에 좀처럼 목욕을 하지 않는다.”

    중국의 사막화가 심해지면서 모래바람인 황사의 세기는 더욱 강력해졌다.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다.

    황사는 주로 중국 북서쪽 타클라마칸 사막, 칭장고원 황하 발원지역, 바다인잘렌 사막, 황토고원 및 모우 사막, 베이징 북서쪽 싱산다크 사막, 네이멍구 고원지역에서 발생한다. 발원지는 동서 6400㎞, 남북 600㎞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이다. 이 지역에 전선을 동반한 저기압이 통과할 때 그 후면의 강한 바람에 모래 및 흙먼지가 공중으로 날려 올라가면서 황사가 생긴다.

    허시회랑(河西走廊)은 간쑤성 서북쪽 허리산(合黎山)과 룽서우산(龍首山)의 남쪽에 위치한 동서 1000㎞ 남북 200㎞ 평균 해발 1400m인 지역이다. 이 부근에 민둥산인 치롄산(祁連山)이 있다. 몽골어로 ‘하늘’이란 뜻이다. 요즘 중국인들은 이 지역이 원래 푸르름과 맑은 물을 자랑하는 산이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중국임업과학원(中國林業科學院) 샤오원파(肖文發) 연구원은 “허시회랑과 치롄산은 벌채와 목축, 광산개발로 나무를 잃었다. 이곳 관목림 중 50%를 없앤 것이다. 나무를 없애자 물도 사라졌다”고 했다.

    1993년 5월 자연의 복수가 시작됐다. 거대한 모래폭풍이 허시회랑을 습격해 농토 1500㎡를 휩쓸었다. 농토에 쌓인 모래 높이가 1.5m나 됐다. 경제림 3733㏊가 피해를 보았고 방풍나무 9000그루도 뽑혀 나갔다. 3만2000마리의 양이 죽었으며, 소와 말도 수만마리가 죽었다. 마침 모래폭풍이 불 때 초등학생들이 하교하고 있었는데 그중 100명 가까이가 죽었고 67명이 중상을 입었다.

    하교길 초등생 100명 사망

    2002년 3월20일, 베이징 등 중국 북부·서북부 일대에 1990년대 이래 최악의 황사가 몰아쳤다. 중국 중앙기상대는 이날 “강력하고 집중적인 황사가 북부·서북부 일대 140만㎢를 세찬 바람과 함께 강타했다”고 밝혔다. 베이징 하늘은 노란 안개가 낀 것처럼 물들었고, 가시거리가 100m 이하로 떨어져 한낮에도 자동차들이 전조등을 켠 채 거북이 운행을 했다. 사람들은 스카프를 얼굴에 두르고 다녔다. 자전거 통행자도 크게 줄었다.

    간쑤성 일부 지역은 시계(視界)가 영(0)까지 떨어졌으며 항공기가 결항했다. 이 황사는 허베이(河北)성, 네이멍구 자치구, 간쑤, 닝샤후이(寧夏回)족 자치구, 산시성, 베이징, 톈진의 1억3000만 인구와 농경지 28만5000㏊, 초지 236만㏊를 덮쳤다.

    중국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사막화 현상은 중국 정부가 골머리를 앓는 환경 문제가 됐다. 이에 중국 정부는 1978년부터 ‘녹색 만리장성(綠色長城)’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녹색 만리장성’ 4단계 공사는 2001년 11월26일 시작됐다. 만성적인 가뭄과 수토 유실로 인한 사막화를 방지하기 위해 숲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전체 길이는 4480㎞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2000년 말까지 숲과 초지 2780만㏊를 조성해 3단계 사업을 끝낸 상태다. 1년 정도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 제4단계 공사는 향후 10년 동안 13개 성·자치구에 걸쳐 산림벨트 950만㏊를 새로 만든다는 목표다.

    녹색 만리장성 사업이 성공하면 중국 전체 국토면적의 42%에 해당하는 400만㎢, 북방 13개 성과 자치구, 551개 현(縣)을 에워싸는 세계 최대규모 인공 생태환경보호림이 탄생하게 된다. 특히 이 가운데 8개 사막지역과 4개 사막화지역이 몰려 있는 158만㎢는 이 사업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지역이다. 중국 정부는 이 사업을 2050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문제는 녹색만리장성 사업이 추진되는 동안에도 중국의 사막화는 심화, 가속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황막화 지역은 매년 1만㎢씩 늘고 있다. 이미 말라버린 강, 모래더미에 덮인 산과 초원이 복원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한 인구의 급격한 팽창, 도시의 비대화, 엄청나게 많은 수의 공장 증설, 거의 가동되지 않는 오염방지시설, 더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대기 및 수질오염이 환경파괴의 새로운 요인이 됐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오염방지에 돈을 쓰는 데는 여전히 인색하다.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이면서도 말이다. 중국의 실리적 사고방식이란 정화설비를 가동하면 원가가 상승해 수출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데 멈춰 있다.

    중국이 최고 富國이 되는 날…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의식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정부와 대다수 중국인은 물질만능주의, 자국우월주의(중화사상)에 빠졌다. 국토를 아끼고 사랑하는 환경보호 의식이나 이웃 국가에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교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2002년 봄 중국의 모래폭풍은 태평양을 넘어 미국과 캐나다 서부로 날아갔다. 한반도의 대기는 중국의 사막에서 발생한 모래와 중국의 공장이 내뿜는 유독가스에 오염되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조금 더 떨어져 있는 일본이 부러울 정도다. 세계 최대의 싼샤댐이 양쯔강을 막으면서 황해의 염분 농도가 높아져 바다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천지개벽’했다는 상하이시는 제대로 정화되지 않은 엄청난 양의 공장폐수와 생활하수를 매일 황해로 쏟아낸다.

    중국의 무지와 야만이 부른 지구 황폐화
    박근형

    1974년 서울 출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중국 쓰촨(四川)대 역사문화학원 석사(중국 근현대사)

    ‘시민의 신문’ 환경담당 기자

    現 쓰촨대 역사문화학원 박사연구생(티베트학)

    저서 : ‘아름다운 살인-새만금의 진실은 무엇인가’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파괴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재앙이 되고 있다. 중국으로 인해 중국의 산하뿐 아니라 황해와 한반도의 수질, 대기, 토양의 오염도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연간 32억t(세계 2위)씩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동아시아 전체의 기상이변 및 지구 온난화의 직접적 요인이 되고 있다. 이제는 한국을 비롯한 이웃나라와 세계 각국이 중국을 향해 “더 이상 지구를 파괴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요구해야 할 때가 됐다.

    중국이 세계 최고의 부자국가가 되는 날, 중국인들은 아마 모래더미 속에서 돈을 세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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