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1월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트레이더들이 분주하게 석유 선물거래 주문을 내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원유가격은 미국산 서부텍사스 원유 선물을 기준으로 연초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더니 2008년 7월3일에는 급기야 배럴당 145.29달러라는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원유는 7월 중순 돌연 하락하기 시작해 8월18일에는 112.87달러가 되었고, 12월초에 40달러가 되었다. 시장에 유가가 25달러를 향해 달려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 것이 이 무렵이다.
비정상적인 파동도 여러 차례 감지됐다. 1983년 NYMEX가 개장한 이래 하루 가격하락폭이 5달러를 넘은 경우는 모두 13차례 있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11차례가 올 한 해 동안 일어난 것이다. 거꾸로 하루 가격상승폭이 5달러를 넘어선 11차례는 모두 올해 벌어졌다. 그 와중에 수많은 국가의 국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도대체 이런 일들은 왜 일어난 것일까. 겉으로 보이는 것은 수요 공급 원리라는 기본공식뿐이다. 그러나 무대 뒤편에서는 국제적인 투기자본의 움직임과 대규모 투자은행의 행보, 산유국과 소비국 사이에 벌어진 각축, 사우디 왕가(王家)와 미국 부시 가문의 관계 같은 게임이 숨어 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이유를 놓치는 한 원유가격의 요동 현상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것이고, 이를 통제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2008년 한 해 동안 벌어진 급격한 파동의 싹은 이미 2004년부터 엿보였다. 7월까지의 가격폭등 상황을 ‘제3차 석유파동’이라고 부르는 이도 적지 않지만, 필자는 이러한 변동은 지정학적 요인과 투기에 그 원인이 있었다고 판단한다. 이미 2004년과 2006년에도 원유 공급량이 수요량을 상회했음에도 가격상승이 지속된 바 있다. ‘조용한 석유위기’라고 부를 만한 이 시기는 이를테면 2008년의 전조였던 셈이다.
흔히 석유자원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혹은 공급량이 지나치게 빡빡해 유가가 상승했다고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으로는 2008년의 비정상적인 고유가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물론 필자도 세계 석유수급과 원유가격 문제에 대해 주로 수요와 공급이라는 기초원리를 근거로 설명해왔고, 또 실제로 그런 요인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선물시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작은 시그널이 크게 증폭되어 수요공급의 기초원리를 넘어서는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는 일정한 범위 내에 머무르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나 최근의 유가변동은 그 허용범위를 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석유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에 유가가 급등했다는 통설을 들여다보자. 이들 국가의 석유수요 증가는 이전부터 예측돼온 것으로 전혀 새로운 흐름이 아니다. 굳이 수요 부분에서 요인을 찾자면 1990년대 후반 이후 고도 성장을 거듭한 미국 경제의 석유수요에서 찾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석유매장량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마찬가지다.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유전이 확인되면서 잠재 매장량은 오히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으로는 최근 벌어진 석유가격 급등과 급락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2001년 20달러 이하로 떨어졌던 원유 가격이 2004년부터 급등하기 시작한 첫 번째 시발점은 지정학적 요인이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여기에 더해 원유 선물시장은 국제적 투기자본과 대규모 투자은행이 암약하는 장소가 되었고, 이는 급격한 석유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가 원유가격이 150달러까지 상승한 2008년의 파동이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석유 선물시장에서 자행되는 과도한 투기를 아무도 통제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분석은 필자 혼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