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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Asia - 신동아 특약

“명분 없는 희생의 반복 패권 유지 위한 고집만 남았다”

위키리크스, 펜타곤 페이퍼, 그리고 미국의 전쟁

  • 글·멜 거토프| 포틀랜드주립대 명예교수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명분 없는 희생의 반복 패권 유지 위한 고집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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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11월 위키리크스가 미국의 방대한 외교문서를 공개해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을 당시 외신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표현은 ‘제2의 펜타곤 페이퍼 사건’이다. 1971년 베트남전 관련 1급 비밀 보고서가 언론에 유출돼 미 국방부의 ‘통킹만 사건’ 조작이 드러나면서 반전 여론이 격화됐던 일에 비견한 것이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쟁 관련 문서와 펜타곤 페이퍼가 모두 미국의 전쟁수행 방식에 관한 진실을 폭로한 것이기 때문이다. 1971년 당시 미 랜드연구소에 재직하며 펜타곤 페이퍼 작성에 관여했던 멜 거토프씨가 두 사건을 비교해 전쟁 수행과 관련한 워싱턴 정책결정자들의 인식을 비판하는 글을 영문계간지 ‘글로벌 아시아’ 2010년 겨울호에 기고했다. 전문을 번역, 게재한다. <편집자>
1971년 ‘뉴욕타임스’에 펜타곤 페이퍼를 유출한 장본인인 대니얼 엘스버그는 이라크와 아프간전쟁 관련 기밀문서에 접근할 수 있는 정부 관리들에게 자신의 당시 결단을 따르라고 종용해왔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미 육군 소속 병사 한 명이 결국 그의 선택을 따랐다. 위키리크스는 이를 뉴스 매체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공개했고, 결국 당시의 엘스버그가 그랬듯 이 병사 역시 현재 기소된 상태다. 이번 유출사건에 관련된 모든 당사자의 목표는 하나였다. 미국이 더 이상 참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막고 현재의 상황을 뒤엎는 것이다.

물론 아프간전쟁이 제2의 베트남전쟁은 아니며 펜타곤 페이퍼와 위키리크스 문서도 성질이 다르다. 위키리크스 문서는 현장에서 바라본 전쟁에 대한 견해를 보여줌으로써 미국 정부의 아프간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전쟁으로 인해 현지의 민간인들이 치르고 있는 대가를 부각하고 있다. 반면 펜타곤 페이퍼는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이 작성한 고급 비밀문서였고, 특히 정부 지지율이 날로 추락하는 가운데 막대한 손해만 야기하던 베트남전에 관해 당시의 최고위급 관료들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한눈에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두 문서가 갖고 있는 분명한 공통점은 미국 정부 관료들이 국내외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쉽게 패배를 인정하고 전쟁을 중단할 수 없는 곤란한 상황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문서들은 미국 대외정책의 현주소와 미래에 관해 일곱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반복되는 거짓말

“명분 없는 희생의 반복 패권 유지 위한 고집만 남았다”

‘펜타곤 페이퍼’의 유출자 대니얼 엘스버그 전 미 해군 중령(오른쪽)과 위키리크스 문서의 유출자로 의심받고 있는 브래들리 매닝 미 육군 일병.

첫째, 미국의 지도자들이 대중 앞에서 과시하는 낙관주의는 전쟁의 실상을 들여다보고 나면 거짓임이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여러 지표를 종합해볼 때 상황은 비관적이라는 사실을 지도자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전황과 전쟁수행 전망에 대해 국민이나 의회에 거짓말을 일삼는다. 펜타곤 페이퍼를 통해 드러났듯 당시 베트남에 있던 미국의 최고위 관료들은 모두 유례없는 미군의 파상공세 속에서도 베트콩이 성공적으로 신병을 모집하고 있으며, 사기 또한 높고, 점차 점령구역을 넓혀가고 있음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관료들 중 누구도 언론과 의회 앞에서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남베트남 정부가 쇠락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밝히려 하지 않았다.



똑같은 상황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고스란히 반복된다. 미국의 정부 및 군 고위관계자들은 최종적인 승리를 낙관하고 있지만, 유엔이나 NGO 등 현지에서 활동하는 중립적인 관찰자들은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군이 주장하는 상황 호전의 지표는 베트남 전쟁 당시와 놀랍도록 흡사하다. 지도상의 안전지대 범위가 확대되고 있으며, 훈련을 받은 아프간 정부군의 수가 늘고 있고, 반군세력의 사상자 수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립적인 소식통에 따르면 탈레반 반군의 수는 증가하고 있고 공격빈도 또한 더욱 잦아졌으며, 거의 모든 지역에서 군사활동이 활발하다. 예전에는 안전했던 지역이 관료들의 왕래가 위험할 정도로 변했다는 것이다.

둘째, 이렇듯 만연한 낙관주의는 미국의 개입을 끝내는 문제와 관련해 잘못된 예측을 낳는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개입한 이래 남베트남 정부가 몰락할 때까지 전쟁에 관한 주된 정치적 논리는 확전이었다. 패배하는 순간까지 철군은 선택사항이 아니었고 이를 건의했던 소수의 정부관료는 배척당했다. 전쟁 상황이 악화될 때마다 ‘적정’ 수준의 증파와 더 많은 폭격이 대세로 떠올랐다.

아프간전쟁의 양상도 유사하다. 2009년 2월 병력 1만7000명 증파를 결정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3만명 추가 증파를 결정했다. 이로써 2010년 겨울 현재 아프간에 주둔 중인 미군 병력은 대략 7만8000명에 달하고 사상자 수는 1300명을 넘었다.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중순까지 조속히 철군하겠다고 밝혀왔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실제로 2010년 5월 오바마 대통령 본인이 기자회견을 통해 “2011년 7월에 미군이 아프간에서 갑자기 철군하지는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베트남전쟁 당시의 미국 대통령들처럼 오바마 대통령도 미군의 동맹군인 아프간 정부군이 미국의 자리를 대신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장담컨대 2012년에도 미국은 여전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5만 규모의 병력을 유지할 것이고, 이들이 부대 내에서 편하게 군사적 조언이나 해도 무방한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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