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호

經藝不二, 기업·시장·문화의 상생 방정식

  • 권삼윤 < 문명비평가 > tumida@hanmail.net

    입력2005-04-21 1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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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00년 동안 예술의 세계와 기업의 세계는 양극단에 존재했다. 그러나 이제 기업인과 예술인이 재능과 가치를 공유하는 것은 ‘시대정신’이다. 새 천년에 ‘新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문화는 빵 위에 발린 잼이 아니다. 빵 그 자체다.” 이는 지난해 6월 서울을 찾았던 영국 기업예술지원협의회 ‘아트 앤드 비즈니스(A&B)’의 콜린 트위디 사무총장이 ‘기업과 문화예술,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국제 심포지엄에서 한 연설의 테마였다.

    흔히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도 하고, ‘이제 키워드는 문화다’ ‘문화가 강해야 이긴다’는 말도 자주 들었지만 그렇게 실감나지는 않았는데, 그는 그 핵심을 이처럼 명쾌하게 설명해 참석자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문화는 고상한 장식품이 아니라 현실의 삶에서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대상이며 나아가 그것을 실천적·전략적인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깨우쳤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에 조금만 살을 붙인다면 ‘한국이 지금 직면한 위기는 한국 문화의 위기’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정치제도나 경제체제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우리 문화가 가진 문제점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토록 비생산적인 정치·경제제도는 부산물이거나 결과일 뿐 원인은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우리의 문제점은 물론 문화의 중요성을 그 이상 명쾌하게 지적한 말을 듣지 못했기에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가 처한 위기는 쉽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섬뜩함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문화에 대한 종래의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문화산업의 힘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문화’라는 말은 그 개념의 폭이 워낙 넓어 쓰는 사람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때로는 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누구는 좁은 의미로 예술과 지적 활동을 지칭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주 넓게 해석해 의식주와 종교, 놀이 등 모든 삶의 방식과 가치체계까지 포함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어떤 의미로 쓰이든 문화라는 것이 지금처럼 인류의 삶 속에 깊이 들어온 적은 없었으며, 보통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적도 일찍이 없었다.



    트위디의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문화는 이제 주변적 요소가 아니라 핵심적 요소로 떠올랐다. 그리하여 그것은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됐고, 세계는 기술전쟁 시대에서 문화전쟁 시대로 접어들었다.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부드럽게만 여겨지는 문화가 어찌하여 살벌하기만 한 ‘전쟁’과 손잡게 됐으며, 이를 위해 첨단무기 구실까지 하게 된 것일까.

    21세기가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문화가 무엇인지 구명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왜 21세기를 일러 문화의 세기라 부르는지, 또 그에 따라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지금부터 그러한 문화의 실체를 만나기 위해 그것의 행동반경을 따라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그 방문지는 가능한 한 개체와 관련이 많은 곳으로 잡았다. 준비가 됐다면 이제 함께 길을 떠나보자.

    첫 기착지는 ‘문화산업’이란 곳이다. 문화산업의 실체를 먼저 살펴봐야 이야기를 쉽게 풀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문화산업이라는 말을 들으면 몇 년 전 극장가를 달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공원’이 먼저 떠오른다. 그 영화 한 편으로 벌어들인 돈이 한국의 자동차 업계가 1년 동안 자동차를 수출해서 얻은 수익보다 조금 많은 8억5000만 달러라며 언론이 연일 대서특필해댄 적이 있다.

    그 뒤에 나온 할리우드 순정영화 ‘타이타닉’은 공상과학 영화인 ‘쥬라기공원’을 훨씬 앞지른 12억 달러의 판매수익을 올려 문화산업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곧이어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그 위세는 더욱 가공할 수준이 되었다. 마치 “시간과 공간의 벽은 이렇게 넘는 거야”라고 시범을 보이듯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포켓몬스터’는 순식간에 전세계 어린이와 청소년을 사로잡으면서 출시 석 달 만에 무려 50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귀족에서 대중으로

    냉장고나 자동차, 라면처럼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과는 달리 아무런 실용적 기능을 갖지 않은, 단순한 ‘재밋거리’가 이렇게 가공할 파괴력을 과시하는데, 누군들 놀라지 않겠는가. 인구 4000만을 조금 넘는 우리나라에서도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음반과 영화, 책이 등장했고, 극장이나 공연장이 아닌 대형 경기장이나 공원에서 수만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 그만큼 수요층이 넓어진 것이다.

    어렵사리 수십 개의 도장을 받아서 공장을 지어놓고도 공해물질이 배출될까봐 이런 저런 설비를 추가 설치하고, 원만한 노사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회사를 운영하건만 벌이가 시원찮아 늘 걱정인데, 이른바 ‘스타’로 한번 뜨기만 하면 수십억 원을 벌어들일 수가 있다니 부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그때부터 문화산업이란 말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고, 우리 정부도 문화산업 육성책과 문화복지 정책 등을 잇따라 내놓았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산업에는 정보통신 기술과 접합된 음반, 비디오,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등을 주축으로 스포츠와 음식, 관광, 레저, 이벤트, 바둑, 출판, 디자인, 광고 등이 포함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문화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화려하게 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이미 한 차례 꽃피운 적이 있다. 그 주역은 ‘이목구비 가운데 봐줄 만한 것은 눈뿐’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외모가 별 볼일 없던 메디치가(家)였다. 이름없는 약장수 집안에서 태어나 숱한 질곡과 부침을 거쳐 피렌체의 실력자가 된 메디치가, 그들은 금융업을 통해 이룩한 부를 바탕으로 피렌체의 수장이 된 뒤 예술가를 지원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13세의 미켈란젤로에게서 천재성을 발견하고는 그를 적극 후원해 대가로 키워냈으며, 피렌체의 명물 두오모(대성당)를 탄생시킨 건축가 브루넬레스코와 화가 다 빈치, 보티첼로, 라파엘로 등 우리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예술가들의 후원자 노릇을 했다. 이들은 덕분에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고 역사에 남는 작품을 창조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메디치가 사람들이 자선 차원에서 후원자를 자처한 것은 아니었다. 그 시대엔 수준 높은 그림이나 조각작품을 모으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는 것이 정치행위이자 경제행위였다. 많은 도시국가가 경쟁하던 그 시기에 영주나 주교들은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또는 주민들의 단결심을 드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성당과 궁전을 짓고 그 안팎을 아름답게 장식했는데, 피렌체는 많은 예술품을 그들에게 수출할 수 있었다. 예술은 그렇듯 르네상스 시대에도 ‘돈 되는 일’이었으니 그것을 문화산업이라고 일컬어도 무리는 아니리라.

    그러나 지금의 문화산업은 내용으로 볼 때 르네상스 시대의 그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최근에 번창하고 있는 문화산업은 수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닌데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후원자가 특정한 소수 권력자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 즉 대중이기 때문이다.

    대중이 과거 왕이나 귀족, 권문세가, 국가 또는 종교단체가 행하던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자 구실을 해내자 예술가들도 그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고, 시장의 변화에 늘 촉각을 세우고 있는 기업이 이를 좌시하지 않고 관련기술 개발에 매진한 결과, 이와 같은 성과를 얻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산업은 대중문화와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대중문화가 지금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적은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문화유산이란 대부분 왕실이나 귀족, 교회나 사찰 또는 국가의 후원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던가. 우리가 자랑하는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청화백자는 왕실 가마에서 만들어졌거나 아니면 귀족들의 주문과 취향에 맞춰 태어난 것들이었으며, 고려불화는 당시 최고의 권력집단이자 경제세력이던 사찰의 주도로 제작된 것이다. 불국사와 석굴암, 팔만대장경도 예외가 아니다. 유럽의 파르테논 신전과 바티칸 대성당, 그리고 모차르트 음악도 우리와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그 시절 대중은 문화예술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21세기 문화산업의 주된 수요층은 왕후장상이나 권문세가가 아닌, ‘보잘것없는’ 개체들이다. 그들의 작은 손이 음반을 사주고, 영화관과 공연장과 전시장의 입장권을 사줌으로써 거대한 문화산업이 가동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개체가 비즈니스 세계에서뿐 아니라 문화예술 영역에서도 주역으로 떠올랐다. 21세기 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런 개체 중심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개체가 문화예술의 소비자로만 행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 구실을 한다. 상품과 서비스 영역에서의 ‘생산소비자’, 즉 ‘prosumer(producer+consumer)’의 힘을 문화예술의 영역에서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개체는 예술작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예술가에게 전달할 수 있고, 작품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런 채널을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소정의 절차나 비평가의 평가라는 힘겨운 관문을 통과해야 예술가가 될 수 있던 과거와는 달리 진입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 덕분에 생겨났다. 디지털은 쌍방향성을 갖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대량의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매스미디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매스미디어는 곧 사라질 것이다. 대신 수천 개의 ‘마이크로 미디어’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21세기 문화의 핵심적인 변화는 문화생산의 개인화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을 긍정적인 혁명이라고 본다.”

    이렇듯 개체가 중심이 되는 문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해서 모두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실력없는 사람들이 주위에서 칭찬을 좀 해준다고 예술가인 척하다보니 그 질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거나 소비자의 기호에 영합해 상업주의 색채를 띤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이들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중문화의 발달이, 문화예술을 누리는 즐거움을 소수의 상류계층에서 일반인에게까지 확대시킨 점과, 그것을 살아 움직이게 하고 다양한 변화를 꾀하도록 했다는 긍정적 기능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긍정적 면과 부정적 면이 공존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거다 저거다 하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효과를 최대화하는 노력이다.

    문화산업 시대이자 대중문화 시대인 지금, 개체가 해야 할 제일의 과제는 문화예술과 친해지는 일이고 그 다음은 그런 과정에 생겨날 수 있는 부정적인 효과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기업과 문화의 만남

    우리의 다음 기착지는 기업이다. 기업은 ‘잼’이 아니라 ‘빵’을 만드는 곳이기에 문화가 없을 수 없다. 기업은 시장을 상대로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조직이다. 기업은 이렇게 시장을 상대로 하면서도 그 역사를 더듬어보면 요즘처럼 시장의 일거수 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운 적이 없었다. 잘 나간다는 기업도 시장의 반응이 시원찮으면 당장 유동성 위기에 몰리고, 그런 때도 금융당국이나 채권단과 협상하기보다는 시장의 직접적인 반응에 더 주목한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그런 기업을 압박할 때도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자구책을 내놓으라”고 주문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말이 우리 귀에 못박인 지 오래지만 기업은 시장을 자신들이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지배받으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시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상황에 이르렀다. 익명의 다수가 만들어내는 시장이 기업의 번영은 물론 생존 여부까지 결정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 주된 이유는 최근 일고 있는 시장구조의 근본적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급자 중심이던 시장이 지금은 완전히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었다. 지난날 궁핍과 불편에서 벗어나고자 대량생산 체제를 유지하던 산업화 시대에는 성능과 가격, 품질과 같은 구체적이고도 물질적인 요소가 중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똑같은 성능과 품질을 가진 제품이라 해도 누가 만들었느냐(브랜드 파워), 디자인이 어떤가(디자인 파워), 다른 상품과 비교해서 차별성이 있는가, 나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인가 하는,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요소가 상품의 값어치를 결정짓는다.

    대량화·고속화·거대화가 특징인 산업화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지식·정보사회가 도래하면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개성을 찾게 됐고, 시장구조도 이런 변화에 맞춰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로 전환하고 있어 기업은 시장의 변화에 주목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물질이 아니라 훈훈한 감동을 원한다.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은 이런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 제품과 서비스에 감정적 요소를 투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됐으며, 그리하여 예술적·문화적 요소를 찾게 된 것이다. 기업활동과 문화예술의 만남은 그렇게 해서 시작됐다.

    1960년대에 들어 베트남전쟁이 터지고 히피, 소비자운동 등이 기승을 부리면서 미국 기업들의 이미지가 실추됐는데, 기업과 문화의 만남은 그렇게 실추된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차원에서 시도됐다. 당시 기업들이 타개책으로 내세운 것은 ‘필란드로피(philanthropy)’, 즉 사회공헌 활동이었고,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 내지 후원사업은 그 일환이었다.

    BCA와 A&B

    1966년 미국의 몇몇 기업이 ‘예술을 지원하기 위한 기업모임(BCA·Business Committee for the Art. Incs)’을 설립했다. 초대회장을 맡은 이는 데이비드 록펠러였는데, 그는 창립 기념사에서 “미국은 우리 기업인들의 주도로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게 됐다. 이제 기업은 예술과 긴밀한 연대를 통해 우리가 이룩한 물질적 토대를 문화예술 분야로도 확산할 수 있도록 머리를 돌려야 할 것”이라며, 미국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의 일단을 제시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97년 10월, 데이비드 록펠러 2세는 BCA 창설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부친의 유업을 계승해나갈 것이라며 이를 위해 앞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예술단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되, 환경 변화에 맞춰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며, 쾌적하고 창의력이 풍만한 근무환경을 만들기 위해 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지난 30년은 물리적으로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닐지 모르나 기업 분야에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친 시기였다. 산업화에서 정보화로, 그리고 지식기반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 미국 기업들은 처음에는 문화예술단체를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광고에 활용하는 등 자사의 이미지 제고에 힘썼으나, 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는 가속된 지식 정보화 추세에 발맞춰 문화예술을 기업 내부로 끌어들여 그것과 혼연일체가 되려는 노력을 보였다. 이는 기업과 예술의 만남이란 차원을 넘어 경영과 예술의 만남, 다시 말해서 경영의 예술화라고 말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변화인가.

    그러나 이 분야의 선두주자는 BCA가 아니라 영국의 A&B였다. 문화예술 분야와 기업을 연대케 하여 두 분야를 함께 발전시키려는 취지로 1976년 설립된 A&B의 원래 명칭은 ‘Association for Business Sponsorship of the Arts’였으나 99년에 이를 ‘Arts and Business’로 바꿨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기업과 예술은 후원자 관계(sponsorship)가 아니라 동반자, 혹은 협력자 관계(partnership)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A&B의 인식 변화를 통해 현대 기업이 처한 사정은 물론,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무엇이며, 예술인과 경영인, 그 양자간에 같은 것은 무엇이고 다른 것은 과연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A&B는 90년대 들어 ‘경험공유 제도(Skill Bank)’와 ‘이사겸임 제도(Board Bank)’를 도입했다.

    경험공유 제도는 기업이 자사 간부들로 하여금 예술단체 임원들에게 부족하기 쉬운 재정 및 회계, 마케팅, 인력관리 등에 관한 지식을 전수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예술단체도 ‘경영단위’이기 때문에 효율적인 운영이 필요하고 또 그렇게 해야만 기업의 지원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교육과 만남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사겸임 제도를 도입하게 됐다. 기업 간부를 예술단체의 비상근 임원으로 임명하여 그들을 실질적으로 돕게 함으로써 효율을 높임과 동시에 기업과 예술단체 사이에 이해의 폭을 넓히려 했던 것. 예술단체도 그저 지원만 받는다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이에 대응했고, 또한 기업에 보탬이 되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하고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성과는 아주 좋았다.

    1997년 A&B는 ‘크리에이티브 포럼(Creative Forum)’을 탄생시켰다. 기업인과 예술가로 구성된 지적 토론의 광장이었다. 그와 함께 ‘Arts@Work’라는 인터넷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A&B는 기업의 최고경영자에게 꼭 필요한 것이 창의력임을 깨닫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창의력에 죽고 사는 예술가들과 만나게 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끝에 그런 마당을 마련했다.

    대개 공학이나 경영학 등을 전공한 탓에 예술에는 무지한 신세대 경영자들을 예술가들과 만나게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A&B가 오랫동안 예술지원 활동을 해왔으나 기업 간부 중에는 그런 지원을 낭비로 보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A&B는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냈다. 그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과정에 그들이 목말라하는 것이 바로 창의력임을 발견한 것이다. 창의력은 마케팅부서나 연구개발부서 직원뿐만 아니라 직원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때부터 A&B는 회원사 간부들을 만나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그들은 ‘예술이야말로 창의력의 소산이고, 예술가는 논리적 사고를 하는 직장인과는 달리 비선형적(非線形的) 사고를 하고 상상력이 뛰어나므로 직원들이 그들과 자주 만나고 예술작품을 가까이 하면 창의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A&B는 이런 논리를 주입하기 위해 저명한 기업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어네스트 홀 경의 말을 동원했다.

    “기업이 사람을 고용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에게서 영감, 창의력, 상상력, 책임감, 모험심, 야망 등의 자질을 찾아내 기업을 위해 쓰게 함으로써 이득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주효했는지 곧 미술품 수집에 나선 회사가 생겼고, 사무실에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공간을 마련해주는 회사도 나타났으며, 공연단체를 불러다 직원들에게 감상 기회를 제공하는 회사도 있었다. 런던의 법률회사 미숀 데 레야 같은 곳에선 시인을 초청해 아름답고 다양한 언어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말과 글을 도구로 삼는 소속 변호사들에게 언어의 중요성과 함께 활용법을 일깨웠다.

    그중에서도 A&B가 가장 만족스러워 하는 것은 예술가들이 주도하는 기업 연수 프로그램이다. 이는 기업이 예술가들을 직원 연수 프로그램 강사로 활용하는 것으로, 그 목적은 직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어떤 회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예술가들에게 팀워크, 시나리오 작업, 변화 관리, 커뮤니케이션 강좌 등을 맡긴다. 강사는 왕립극단, 왕립 셰익스피어극단, 세계적인 마임극단인 ‘트레슬’ 등의 연기자들이며, 그 수혜기업에는 바클레이스 은행과 시그램 등 영국 유수의 기업이 망라돼 있다.

    좌뇌·우뇌를 함께 활용하라

    콜린 트위디 A&B 사무총장은 이러한 활동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이 직업 훈련을 넘어 다른 분야와도 관계를 맺고 그들이 수행하는 모든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한다고 믿는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기 능력의 극히 작은 부분, 아마도 좌뇌만을 그들의 일터에서 활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우뇌와 거기서 나오는 가치와 정서, 그리고 직관력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예술이 하는 일은 우리 각자의 타고난 특성을 인간성에 접목하는 일이다.”

    그는 그것을 역사적 상황과 연관해 우리 시대의 의미를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 100년 동안 예술세계와 기업세계는 양극단에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상업과 예술과 과학은 서로 연결돼 있으며 상호 의존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관념은 크게 바뀌지 않은 채 19세기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1914년 이후 서구 문명은 개인의 특성을 과학적이거나 아니면 예술적인 것으로 양분하고 말았다. 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이들 중 하나로 분류됐다면 그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아인슈타인이 어떻게 자신의 과학적 소질과 예술적 소질을 조화시켰는지 보라. 세계은행 총재인 올펜슨도 은행가이면서 성공한 음악가다.

    역사에는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제 예술가와 기업인은 재능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음을 안다. 그 두 개의 세계가 하나의 세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대단히 의미있는 것으로 이해하며, 새 천년에 접어들면서 우리가 신(新)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콜린 트위디 A&B 사무총장의 얘기를 들으면 현대 경영의 핵심은 사업계획서 검토, 시장분석, 신제품 개발, 주식 평가 같은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펼쳐 보이는 작업이거나 신화를 창조해내는 작업 같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웬만한 작업은 컴퓨터나 자동화 기계에 맡기면 된다. 그러나 내부 고객이건 외부 고객이건 인간을 어떻게 감동시킬 것인가, 사물을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아 있고, 기업에서 그것을 최종 결정하는 사람은 CEO다. 그런데 그가 단지 좌뇌의 활동 분야에만 능통하고 우뇌 소관 분야에는 무지하다면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그러고도 유능한 CEO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경영이 예술과 만나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문화는 그 자체가 가치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도 문화다. 따라서 문화를 모르고는 기업을 경영할 수 없다. 불교적 표현을 빌린다면 ‘경예불이(經藝不二)’라고나 할까.

    인문학을 살려라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인문학의 위기 또는 고사(枯死)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경영학이나 법학·의학·공학 같은, 당장 돈벌이가 되는 분야에는 사람들이 몰리고 책도 잘 팔리지만, 인간의 내면이나 사회의 구조 및 변동과정 등을 연구하는 인문학 분야는 파리를 날리고 있는 것이다. A&B의 사례에서 보듯 인문학을 괄시하는 것은 우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행위임에 틀림없지만 아직까지 그에 대해 납득할 만한 처방이 나오지 않아 안타깝다.

    왜 우리 사회는 인문학을 멀리하게 된 것일까. 거기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가 우리 사회에는 정보화, 지식기반 사회에서 인문학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해주는, 다시 말해 A&B와 같은 기구가 없다는 것이다. 경영학 법학 의학 공학 같은 학문과 그에 따른 기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분명 필요한 것이긴 하나 그것만으로 우리 삶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금과 같이 상상력을 동원해 얘깃거리를 만들어내고 그리하여 인간을 감동시키려는 시대에 그것들은 그다지 유효한 수단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과 미국 기업에선 인문학은 물론 예술까지 동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는 예술을 가까이 하기는커녕 인문학마저 멀리하고 있으니 어떻게 그들과 경쟁할 수 있겠는가.

    다음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인문학의 현실이다. 지금 우리 인문학의 수준이나 내용이 우리 사회, 나아가 세계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사회의 틀이 바뀌고 인간이 추구하는 바가 과거와 판이해졌는데도 우리 지식인들에겐 이렇다 할 분발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문제를 찾아내지도 않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데도 게을렀으며, 그나마 내놓은 것도 대개는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서구에서 학문을 배운 사람 중에는 한국의 현실이 자신이 배운 이론과 맞지 않는다며 우리 사회가 문제투성이라고 지적하는 경우도 있었다. 본말이 전도돼도 한참 전도된 것이다. 이런 마당에 인문학이 괄시받는다고 해서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우리는 인문학을 살려내야 한다. 인문학 종사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기 위해서. 서구의 석학이란 사람들이 지식기반 사회의 도래를 부르짖고 있지만,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공학적·경영학적 지식이 아니라 인문학적 지식이고 예술적 소양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곳곳에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자연공원 같은 문화시설을 세우는 것이다.

    이왕 기업이란 곳에 들렀으니 기업문화도 살펴보기로 하자. 문화라는 말이 워낙 다의적이라 기업문화도 쓰는 사람마다 뜻하는 바가 조금씩 다른데, 대개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 일하는 방식, 커뮤니케이션 방식 정도로 이해된다. 최근 들어 기업문화가 중요하게 부각된 것은 경영에서 문화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져서인데, 이 분야에서도 우리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말이 아니라 실천적인 차원에서 말이다.

    그러나 기업문화는 바깥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속성이 있으므로 일반인들은 기업에 대해 알고 있는 여러 가지 정보, 예를 들면 기업주의 신상이나 평판, 생산하는 제품과 시장에서의 평가, 언론보도나 광고 등을 통해 갖게 된 이미지로 기업을 대한다. 가령 우리가 삼성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현대에 대해 느끼는 이미지와 다르며, LG나 SK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미지는 매우 주관적인 것이라 실체와는 거리가 있지만 소비자들은 그것을 통해 기업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미지는 대단한 위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기업은 이미지를 좋게 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1990년대 초에 거세게 불었던 CI(기업이미지 통합작업) 붐은 그런 맥락에서 비롯됐다. 그렇지만 그것도 소리만 요란했지 알맹이는 없었다. 그저 남 하는 대로 따라하다 보니 그런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얼마 전 시카고 모터쇼에서 현대자동차가 신차를 선보였다. 그때 현장에 있던 현대자동차의 한 임원은 신차를 덮고 있던 베일이 벗겨지는 순간 옆에 있던 한국 기자에게 “저 베일이 벗겨지면 차 가치의 20%가 공중으로 날아간다”고 했다. 아직 현대차의 브랜드 파워가 약해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성능은 동급의 미국차나 일본차에 뒤떨어지지 않는데 값은 80%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미국의 소비자가 현대차에는 감동을 주는 요소가 없다고 판단하기때문일까. 아니면 현대자동차란 회사가 그저 그런 회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 이유가 어디에 있건 분명한 사실은, 소비자들은 기업이 일하는 스타일, 즉 기업의 문화가 그들이 만들어내는 제품 속에 그대로 나타난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만약 ‘예술적 감각을 가진 사람이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만드는 제품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만든 제품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면, 시장이야말로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

    일본의 종합상사 도멘(東棉) 서울지사장으로 있는 모모세 다다시는 한때 베스트셀러가 됐던 자신의 저서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는 18가지 이유’에서 기업 이미지와 관련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도멘은 일본의 9대 종합상사 가운데 7위를 달리는 회사다. 9대 종합상사라고는 하지만, 미쓰비시(三菱), 미쓰이(三井), 이토추(伊藤忠), 마루베니(丸紅) 등 상위권 상사와 도멘과 같은 하위 그룹 사이에는 회사의 규모나 매출액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미쓰비시나 미쓰이는 역사와 전통이라는 이미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조직의 미쓰비시’나 ‘인화의 미쓰이’ 같은 것이다. 그런데 도멘은 섬유 부문에서 출발한 종합상사라는 이미지 외에 별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지 못한데다 널리 알려져 있지도 않다.

    그렇다 보니 미쓰비시나 미쓰이의 직원은 거래처에 갈 때 자기 회사의 이미지를 등에 업고 가서 회사의 대표로 행세하지만, 도멘은 도멘 직원의 이미지가 도멘의 이미지가 되기 때문에 도멘 직원 노릇하기는 그만큼 어렵다.”

    문화적 부가가치

    기업이나 상품의 이미지는, 측정할 길이 없다 보니 전통적인 경제학이나 경영학에선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 소르망은 이렇게 말한다.

    “경제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에 있는 나라는 모두 강력한 문화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문화적 이미지는 계량할 수도 없지만 단순한 용어로 쉽게 묘사할 수도 있다. 즉 독일은 고품질과 기술, 프랑스는 패션과 삶의 질, 일본은 정밀성과 섬세한 아름다움, 미국은 탁월한 품질과 서비스, 이탈리아는 우아한 세련미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형화된 이미지가 반드시 실체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위장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확실히 존재하며, 경제의 순환과정과 소비자의 여망에,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결정 과정에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예를 들면 한국의 소비자는 프랑스 제품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 비싼 값을 지불하고서도 프랑스제 향수를 사려 하고, 프랑스 소비자는 더 비싼 값을 지불해서라도 독일제 승용차를 사려 한다. 프랑스 소비자는 독일차가 프랑스차나 영국차보다 더 견고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기엔 문화적 부가가치가 묵시적으로 부과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국 상품은 현대자동차의 예에서 보듯이 세계의 소비자들로부터 문화적 부가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지 ‘프랑스 소비자’의 한 사람이기도 한 기 소르망의 진단을 계속해서 들어보자.

    “한국은 견고한 문화적 이미지와 문화적 시각에서 본 부가가치를 갖고 있는 것일까? 본인의 대답은 유감스럽게도 부정적이다. 한국이 세계 시장에 상품을 수출할 수 없다는 게 아니다. 수출은 할 수 있지만 기본 경제가격으로 수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프랑스 소비자가 한국 상품을 사는 것은 값이 싸기 때문이지 한국 제품이어서는 아니다. 만약 한국이 석유 수출국이거나 기타 기초 원자재 생산국이라면 이런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제조업 국가이기에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문화라는 것이 빵 위에 바르는 잼이 아니라 빵 그 자체라는 트위디의 말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처방은 경제적인 것보다는 문화적인 것이 돼야 할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문화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겐 자기 나름의 삶의 방식이 있는데 그것을 ‘스타일’이라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그 나름의 문화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족이나 국가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우리는 나름대로 독특한 문화를 가졌고, 그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문화는 개성을 가진 것이고 그 나름의 역사와 풍토에서 자란 것이어서 우열을 논하기 힘들다. 보는 각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문화에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조차 부정할 수는 없다. 단기간의 고찰로는 그것을 분간해내기가 쉽지 않으나 역사 속에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몽골족이나 만주족은 지금 어떻게 됐으며, 고대 이집트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군 이들의 후예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와 로마제국의 후예는 또 어떠한가.

    어떤 민족이든 생명을 가진 유기체여서 영고성쇠의 운명을 갖는다고 한다면 더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외부의 변화나 자극에 능동적으로 대응한 민족은 살아남았다. 생존의 열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능동적인 자세다.

    우리는 단일민족이고 농경민족이다. 정착성이 강하고 혈연·지연의 단결력은 유별날 정도다. 차진 밥을 먹는 민족답게 끈끈한 정을 자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연고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 연고가 없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마음을 터놓지 않는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표현을 빌린다면 ‘사회적 신뢰도’가 아주 낮은 편이다.

    사회적 신뢰가 있건 없건 우리가 태어난 땅에서 우리끼리 평생을 살아간다면 그다지 문제 될 것이 없겠지만 지금의 우리 환경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세계화 시대이고 국내적으로도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사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80%를 넘는다. 거기에다 생각과 이해관계마저 다양·다기해서 예전과 같은 멘털리티로는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신뢰의 반대는 불신인데, 이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고 있으며, 끼리끼리 나눠 먹는 풍조로 인해 겪는 좌절은 또 얼마던가. 장부조작,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뇌물 수수, 그리고 이들을 고리로 한 각종 비리…. 이렇게 ‘끼리끼리의 벽’도 넘지 못하는데 기업과 예술이 어떻게 만날 수 있겠는가.

    서구 국가들이 우려의 눈초리로 우리를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같은 민족인데도 연고가 없다는 이유로 동업은 고사하고 터놓고 얘기조차 못 하는데, 하물며 생김새가 다르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과 거래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그들은 우리를 투명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기 소르망이 앞에서 말한 바가 있으니 설명은 더 필요치 않으리라.

    이보다 더 근원적이고 심각한 폐해는 무슨 일이 터지더라도 ‘내가 달라진다고 사회가 달라지겠는가. 달라지는 나만 바보지’ 하는 자포자기적인 태도다. 이 때문에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끝장을 보고 말겠다는 자세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개 미봉책으로 끝나고 만다. 이런 현실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제는 그게 민족성이 됐고 문화로까지 승화(?)됐으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멘털리티 바꿔야

    그러므로 우리가 서두르고 있는 구조조정은 우리의 문화와 멘털리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이 돼야 한다. 오늘의 위기는 단순히 금융제도가 미비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다시 말해 우리의 잘못된 문화에 기인한 바 크기 때문이다.

    굳이 원인을 파고든다면 이런 위기는 조선조 말에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어떠했던가. 책임질 자리에 있는 자들이 나라 밖에서 일어나는 변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끼리끼리 나눠 먹는 데만 혈안이 되지 않았던가. 그 결과 일본의 지배에 들어갔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그와 같은 모순은 확대 재생산됐으며, 그러다 민족분단까지 겪지 않았던가.

    1960년대에 시작된 경제개발계획은 그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탈출하는 것만 목적이었지, 우리의 근본을 바꾸는 작업은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제대로 바꿔보지도 못하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병이 깊겠는가.

    문화를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어렵기만 한 것도 아니다. A&B가 주동이 되어 보수적인 기업인들의 마인드를 바꾼 사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서로 벽을 허물고 진심으로 머리를 맞대면 못 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의식을 갖고 하나하나 해결하다 보면 창의력도 생기게 되고, 모든 일에 자신감도 갖게 되는 것이다.

    문화의 세기란 문화가 역동적인 힘을 발휘하는 시대를 가리킨다. 문화가 그렇게 중요한 구실을 하는 ‘문화의 세기’라는데, 우리에게 버려야 할 문화가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처리하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가진 자들이 미적거린다면 문화의 시대에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른 개체들이 앞장설 수밖에 없다. 문화란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앞서 나가는 데서 그 가치가 발현된다. 어물어물해서 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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