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대중문화가 지금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적은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문화유산이란 대부분 왕실이나 귀족, 교회나 사찰 또는 국가의 후원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던가. 우리가 자랑하는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청화백자는 왕실 가마에서 만들어졌거나 아니면 귀족들의 주문과 취향에 맞춰 태어난 것들이었으며, 고려불화는 당시 최고의 권력집단이자 경제세력이던 사찰의 주도로 제작된 것이다. 불국사와 석굴암, 팔만대장경도 예외가 아니다. 유럽의 파르테논 신전과 바티칸 대성당, 그리고 모차르트 음악도 우리와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그 시절 대중은 문화예술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21세기 문화산업의 주된 수요층은 왕후장상이나 권문세가가 아닌, ‘보잘것없는’ 개체들이다. 그들의 작은 손이 음반을 사주고, 영화관과 공연장과 전시장의 입장권을 사줌으로써 거대한 문화산업이 가동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개체가 비즈니스 세계에서뿐 아니라 문화예술 영역에서도 주역으로 떠올랐다. 21세기 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런 개체 중심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개체가 문화예술의 소비자로만 행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 구실을 한다. 상품과 서비스 영역에서의 ‘생산소비자’, 즉 ‘prosumer(producer+consumer)’의 힘을 문화예술의 영역에서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개체는 예술작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예술가에게 전달할 수 있고, 작품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런 채널을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소정의 절차나 비평가의 평가라는 힘겨운 관문을 통과해야 예술가가 될 수 있던 과거와는 달리 진입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 덕분에 생겨났다. 디지털은 쌍방향성을 갖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대량의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매스미디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매스미디어는 곧 사라질 것이다. 대신 수천 개의 ‘마이크로 미디어’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21세기 문화의 핵심적인 변화는 문화생산의 개인화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을 긍정적인 혁명이라고 본다.”
이렇듯 개체가 중심이 되는 문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해서 모두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실력없는 사람들이 주위에서 칭찬을 좀 해준다고 예술가인 척하다보니 그 질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거나 소비자의 기호에 영합해 상업주의 색채를 띤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이들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중문화의 발달이, 문화예술을 누리는 즐거움을 소수의 상류계층에서 일반인에게까지 확대시킨 점과, 그것을 살아 움직이게 하고 다양한 변화를 꾀하도록 했다는 긍정적 기능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긍정적 면과 부정적 면이 공존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거다 저거다 하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효과를 최대화하는 노력이다.
문화산업 시대이자 대중문화 시대인 지금, 개체가 해야 할 제일의 과제는 문화예술과 친해지는 일이고 그 다음은 그런 과정에 생겨날 수 있는 부정적인 효과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기업과 문화의 만남
우리의 다음 기착지는 기업이다. 기업은 ‘잼’이 아니라 ‘빵’을 만드는 곳이기에 문화가 없을 수 없다. 기업은 시장을 상대로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조직이다. 기업은 이렇게 시장을 상대로 하면서도 그 역사를 더듬어보면 요즘처럼 시장의 일거수 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운 적이 없었다. 잘 나간다는 기업도 시장의 반응이 시원찮으면 당장 유동성 위기에 몰리고, 그런 때도 금융당국이나 채권단과 협상하기보다는 시장의 직접적인 반응에 더 주목한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그런 기업을 압박할 때도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자구책을 내놓으라”고 주문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말이 우리 귀에 못박인 지 오래지만 기업은 시장을 자신들이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지배받으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시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상황에 이르렀다. 익명의 다수가 만들어내는 시장이 기업의 번영은 물론 생존 여부까지 결정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 주된 이유는 최근 일고 있는 시장구조의 근본적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급자 중심이던 시장이 지금은 완전히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었다. 지난날 궁핍과 불편에서 벗어나고자 대량생산 체제를 유지하던 산업화 시대에는 성능과 가격, 품질과 같은 구체적이고도 물질적인 요소가 중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똑같은 성능과 품질을 가진 제품이라 해도 누가 만들었느냐(브랜드 파워), 디자인이 어떤가(디자인 파워), 다른 상품과 비교해서 차별성이 있는가, 나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인가 하는,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요소가 상품의 값어치를 결정짓는다.
대량화·고속화·거대화가 특징인 산업화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지식·정보사회가 도래하면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개성을 찾게 됐고, 시장구조도 이런 변화에 맞춰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로 전환하고 있어 기업은 시장의 변화에 주목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물질이 아니라 훈훈한 감동을 원한다.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은 이런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 제품과 서비스에 감정적 요소를 투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됐으며, 그리하여 예술적·문화적 요소를 찾게 된 것이다. 기업활동과 문화예술의 만남은 그렇게 해서 시작됐다.
1960년대에 들어 베트남전쟁이 터지고 히피, 소비자운동 등이 기승을 부리면서 미국 기업들의 이미지가 실추됐는데, 기업과 문화의 만남은 그렇게 실추된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차원에서 시도됐다. 당시 기업들이 타개책으로 내세운 것은 ‘필란드로피(philanthropy)’, 즉 사회공헌 활동이었고,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 내지 후원사업은 그 일환이었다.
BCA와 A&B
1966년 미국의 몇몇 기업이 ‘예술을 지원하기 위한 기업모임(BCA·Business Committee for the Art. Incs)’을 설립했다. 초대회장을 맡은 이는 데이비드 록펠러였는데, 그는 창립 기념사에서 “미국은 우리 기업인들의 주도로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게 됐다. 이제 기업은 예술과 긴밀한 연대를 통해 우리가 이룩한 물질적 토대를 문화예술 분야로도 확산할 수 있도록 머리를 돌려야 할 것”이라며, 미국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의 일단을 제시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97년 10월, 데이비드 록펠러 2세는 BCA 창설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부친의 유업을 계승해나갈 것이라며 이를 위해 앞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예술단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되, 환경 변화에 맞춰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며, 쾌적하고 창의력이 풍만한 근무환경을 만들기 위해 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지난 30년은 물리적으로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닐지 모르나 기업 분야에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친 시기였다. 산업화에서 정보화로, 그리고 지식기반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 미국 기업들은 처음에는 문화예술단체를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광고에 활용하는 등 자사의 이미지 제고에 힘썼으나, 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는 가속된 지식 정보화 추세에 발맞춰 문화예술을 기업 내부로 끌어들여 그것과 혼연일체가 되려는 노력을 보였다. 이는 기업과 예술의 만남이란 차원을 넘어 경영과 예술의 만남, 다시 말해서 경영의 예술화라고 말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변화인가.
그러나 이 분야의 선두주자는 BCA가 아니라 영국의 A&B였다. 문화예술 분야와 기업을 연대케 하여 두 분야를 함께 발전시키려는 취지로 1976년 설립된 A&B의 원래 명칭은 ‘Association for Business Sponsorship of the Arts’였으나 99년에 이를 ‘Arts and Business’로 바꿨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기업과 예술은 후원자 관계(sponsorship)가 아니라 동반자, 혹은 협력자 관계(partnership)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A&B의 인식 변화를 통해 현대 기업이 처한 사정은 물론,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무엇이며, 예술인과 경영인, 그 양자간에 같은 것은 무엇이고 다른 것은 과연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A&B는 90년대 들어 ‘경험공유 제도(Skill Bank)’와 ‘이사겸임 제도(Board Bank)’를 도입했다.
경험공유 제도는 기업이 자사 간부들로 하여금 예술단체 임원들에게 부족하기 쉬운 재정 및 회계, 마케팅, 인력관리 등에 관한 지식을 전수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예술단체도 ‘경영단위’이기 때문에 효율적인 운영이 필요하고 또 그렇게 해야만 기업의 지원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교육과 만남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사겸임 제도를 도입하게 됐다. 기업 간부를 예술단체의 비상근 임원으로 임명하여 그들을 실질적으로 돕게 함으로써 효율을 높임과 동시에 기업과 예술단체 사이에 이해의 폭을 넓히려 했던 것. 예술단체도 그저 지원만 받는다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이에 대응했고, 또한 기업에 보탬이 되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하고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성과는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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