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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훈의 남자 옷 이야기 ⑨

클래식 슈트에 담긴 전통과 지혜

  • 남훈│‘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 alann@naver.com│

클래식 슈트에 담긴 전통과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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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슈트에 담긴 전통과 지혜

클래식 슈트는 영국 귀족들이 입던 군복에서 진화한, 전통있는 의상이다.

디자이너 슈트의 장점은 개인의 감성을 일깨우는 디자인의 힘과 브랜드에 대한 감정이입에 있다. 그러나 남성들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디자인의 신제품을 소화하기는 사실 무리다. 이는 여성과 남성의 감성 차이, 나아가 여성복과 남성복 구조의 근본적인 차이와도 같다. 옷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해지는 여성의 마음을 투영해, 가능한 한 많은 브랜드가 빠르고 다양하게 제시하는 것이 여성복 마켓의 경향이라면, 남성들은 충동구매보다는 신중하게 좋은 물건을 사는 데 더 관심이 있다. 따라서 남성복 브랜드의 가짓수는 여성복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하나를 사더라도 좋은 제품, 나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조직이나 커뮤니티에도 잘 어울리는 제품을 사고 싶은 것이 남자들의 공통점이다. 결국 남자의 옷에는 사회성이라는 주제가 필연적으로 담겨 있으며, 이는 클래식 슈트의 탄생 배경과도 일맥상통한다.

모든 옷차림은 보온이든 치장이든 기본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특히 남자의 복장은 타인을 위해서도 존재한다. 즉, 슈트는 개개인의 옷인 동시에 넓은 의미에서 사회와 연계돼야 하며 그 때문에 그 옷을 평가할 때는 객관성이라는 잣대를 사용해야 한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다른 물건들, 즉 자동차나 AV시스템, 카메라, 시계 등은 주관으로 고르든 브랜드로 고르든 그다지 달라질 일이 없다. 이런 제품들은 그 자체로 개인의 취향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래식 슈트는 그것을 입는 순간, 바로 사람과 일체가 되면서 그 어떤 요소보다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그의 존재감을 표현한다. 이처럼 클래식 슈트는 입었을 때 옷을 넘어 누군가의 복장으로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배려하는 지혜를 가져야만 멋지게 입을 수 있다. 홀로 튀기 위해 혹은 브랜드네임을 자랑하기 위해 클래식 슈트를 입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슈트를 선택하는 최선의 방법

결국 클래식 슈트는 브랜드의 문제가 아니다. 나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가 가장 우선이다. 따라서 브랜드에 구애하지 않고 슈트를 선택하는 자신만의 확실한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클래식 슈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장을 찾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지만, 그동안 수동적으로 슈트를 대해온 대한민국 신사들에게 특별히 제안하고 싶은 방법은 옷을 구매하기 이전에 가능한 한 많은 슈트를 직접 입어보라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슈트와 자신의 궁합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브랜드네임이나 이미 알고 있던 정보에 얽매이지 말고 부담 없는 마음으로 슈트를 입고 그 모습을 분석해보기를 권한다.

물론 처음에는 꽤나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다. 100% 자신과 어울리는 슈트에서부터 가끔 50%면 감지덕지의 기분도 들고, 때로는 30% 미만의 좌절감도 맛볼지 모른다. 유적 탐사처럼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다. 마치 골프나 수영 같은 스포츠에 숙련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동안 스스로, 혹은 배우자에 의해서 나에게 어울리는 옷은 이것이라고 주입되었던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나의 품위와 신체적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좋은 슈트를 고르는 ‘눈’을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슈트를 입어보는 수밖에 없다. 마음에 드는 소재인데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가 없다면, 그 사이즈의 옷이 맞는 판매원에게 슈트를 입어보기를 부탁하고 그 모습을 자세히 보면 된다. 이 같은 비교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슈트의 느낌을 조금 더 현실로 끌어들이게 해줄 것이다.



슈트의 종류와 수량에 대해 처음부터 욕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특별한 맞춤복이 아니라 기성복이라면 슈트를 선택할 때 질적인 면에 보다 큰 관심을 두어야 한다. 질적인 문제란 넓이보다는 깊이를 중요시한다는 것으로, 슈트의 색상이나 패턴을 너무 다양하게 하지 말고 선호하는 방향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는 의미다. 새로운 컬러나 무늬의 슈트를 갖추면 이에 따르는 셔츠, 타이, 구두 등의 필수품들도 종류가 늘어나게 된다. 모든 비즈니스맨을 위한 슈트의 색상은 당연히 네이비나 그레이로 한정된다. 그렇다면 우선 이 두 가지 색상을 철저하게 고집하면서 그 느낌을 비교하고 소재를 음미하며, 솔리드와 스트라이프 그리고 때로는 체크로 패턴의 변주를 즐겨보는 것이다. 심플한 공식으로 절대불변의 정답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어울리는 최선의 답을 구하는 과정 자체가 슈트에 대한 교육이고 클래식 문화의 성숙에 이르는 길이다.

자산의 보유 상태나 자동차 브랜드 혹은 남다른 주량 등으로 남자다움을 평가해온 한국 사회에서, 진지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와 타인에 대한 예의를 표현하는 클래식 슈트는 남자들에게 새로운 지혜를 수혈하는 문화가 되고 있다.(다음호에는 클래식 슈트를 입는 귀중한 그러나 실용적인 법칙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신동아 200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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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훈│‘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 alan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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