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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 효과 프루스트를 만나는 겨울 오후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마들렌 효과 프루스트를 만나는 겨울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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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황홀의 순간

지나가버린 과거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헛된 일이며, 모든 지성의 노력도 불필요하다. 과거는 우리 지성의 영역 밖에,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우리가 전혀 생각도 해보지 못한 어떤 물질적 대상 안에 (또는 그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에 달렸다. - 마르셀 프루스트, 앞의 책 중에서

물질적 대상이 감각과 만나면 물질적 황홀로 변화되기도 한다. 문학, 특히 예술을 지향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같은 소설은 바로 이러한 순간을 포착하고 증언하는 몫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이 20세기 이후 현재까지 현대소설의 출발점이자 종착지로 평가받아온 데는 물질적 대상을 물질적 황홀로 승화시킨 ‘마들렌 효과’의 창출에 근거가 있다.

어느 겨울날, 집에 돌아온 내가 추워하는 걸 본 어머니께서는 평소 내 습관과는 달리 홍차를 마시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셨다.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왠지 마음이 바뀌었다.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서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가느다란 홈이 팬 틀에 넣어 만든 ‘프티 마들렌’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 오게 하셨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 마르셀 프루스트, 앞의 책 중에서

추운 겨울 외출에서 돌아온 나에게 어머니가 준 따뜻한 홍차에 프티 마들렌을 한입 베어 문 순간을 그린 이 대목은 현대소설사를 통틀어 몇몇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로 꼽힌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되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1942) 첫 대목, 로캉탱이라는 주인공 사내가 오후의 해변을 산책하다가 아이들이 조약돌로 바다에서 물수제비를 뜨는 것을 보고 자신도 해보려고 조약돌을 집어든 순간의 친근하면서 이질적인 느낌을 추적한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1938)의 한 대목. 이들 장면은 단순히 수많은 단락 중 한 단락에 그치지 않고 소설의 주제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따뜻한 홍차에 작은 마들렌 한 조각을 한입 베어 물었을 뿐인데, 서사는 이전과 다른 양상을 띤다. 물질적 대상(프티 마들렌)이 물질적 황홀로 전환(기억의 복원)될 때마다 과거의 사적인 에피소드가 불쑥불쑥 되살아나 소설을 끝없이 이끌어간다. 맛은 과거 잊힌 어느 시기의 삶을 불러내고, 비로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 그 맛은 내가 콩브레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 레오니 아주머니 방으로 아침 인사를 하러 갈 때면, 아주머니가 곧잘 홍차나 보리수차에 적셔서 주던 마들렌 과자 조각의 맛이었다. … 그것이 레오니 아주머니가 주던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의 맛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 온 콩브레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 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 - 마르셀 프루스트, 앞의 책 중에서

20세기의 작가(베케트)와 비평가(벤야민), 철학자(들뢰즈)를 자극하고 새로운 작품 창작의 전범(典範)이 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1970년대부터 세계문학전집의 일환으로 제1권 ‘스완의 사랑’(박은수 옮김, 동화문고, 1972) 또는 ‘스완의 집 쪽으로’(이정 옮김, 삼성출판사, 197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김인환 옮김, 학원사, 1984) 등으로 번역 소개됐다. 1998년대 7부 11권으로 완역(김창석 옮김, 국일미디어판)됐고, 몇 해 전에는 김화영 번역으로 ‘현대문학’에 연재되다 중단된 상태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루스트 전공자 김희영의 번역이다. 프루스트의 미의식 자체인 미묘하고 난해한 문장이 어떻게 우리말로 옮겨졌는지가 감상 포인트다. 총 7권 중 현재 2권까지 번역됐고, 그동안 접한 번역본들과 비교해 프루스트를 가장 가깝게 그리고 가장 깊게 느낄 수 있다.

프랑스의 문학사가 앙드레 모루아의 말처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 마들렌 아니 프루스트 효과인가. 겨울 오후, 내가 원하는 것은 따뜻한 홍차 한 잔과 프티 마들렌 한 조각. 그리고 프루스트를 읽는 즐거움 외 모든 것은 사족이다.

신동아 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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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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