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호

명사 에세이

영혼의 때 씻어주는 사람들

  • 김학수 | 행복공장만들기운동본부 총재, 前 유엔 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 사무총장

    입력2016-07-20 14: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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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의 창(窓)으로 장애인을 보기 시작한 지 40년이 돼간다. 1977년 8월 외국에서 석·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나를 처남이 마중 나와 손을 잡고 목놓아 울 때가 엊그제 같은데…. 유도 8단인 처남 정덕환은 국가대표 유도선수였는데, 1972년 훈련 도중 경추 4, 5번을 다치는 바람에 중증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지긴 했지만 좌절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유도 코치로 일하려고 수소문했지만 거절당한 뒤로는 아무 일도 못하고 재활운동에 힘썼다.

    처남은 1983년 3월 장애인 자활공동체 에덴하우스를 만들었다. 자금난을 겪었지만 무담보 신용대출 500만 원을 종잣돈 삼아 5, 6명의 중증장애인과 서울 고척동 지하실에서 임가공을 시작했다. 주민들이 길거리로 내쫓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 “기회가 되면 매형이 일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은퇴하면 장애인을 돌보겠다”고 답했다. 그 약속은 2007년 7월 유엔에서 은퇴한 뒤부터 지키고 있다. 매주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경기 파주의 에덴복지재단을 찾아간다.

    처남은 1985년 서울 개봉동에 천막을 지었고, 1987년엔 역시 개봉동에 작은 건물을 마련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중증장애인 30여 명과 함께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생산했다. 때마침 한국에서도 쓰레기 분리 수거제를 도입했을 때라 서울시 여러 구청에서 봉투를 구매해줬다. 1999년에는 정부 지원을 받아 경기 파주에 중증장애인 재활시설을 짓고 생산설비 기능을 보강해 연 40억~5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곳은 2000년 사단법인 에덴복지재단으로 재단장했다.





    장애인이 된 처남의 부탁

    재단 산하에는 종량제 쓰레기 비닐봉투 생산과 인쇄사업을 하는 에덴하우스 재활시설, 세제를 생산하는 중증장애인 다수고용사업장이 있다. 중증장애인 140여 명과 비장애인 60여 명 등 200여 명이 함께 일한다. 재단은 보건복지부 산하의 장애인 직업재활시설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중증장애인들에게 최저 임금 이상을 지급한다. 독신자 대부분은 기숙사에서 사는데, 이곳에서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룬 중증장애인 커플이 50쌍에 달한다.

    나는 월요일 아침식사를 마치면 오전 내내 종량제 쓰레기봉투, 세제, 인쇄, 판촉 사업 현황과 문제점을 점검하는 회의를 사업별로 1시간씩 진행한다. 이것이 내 업무인데, 무보수로 일하니 월요일은 온전히 장애인을 위해 바치는 셈이다.  

    하지만 어렵지는 않다. 아침 6시에 그곳으로 달려가 아침식사를 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식당을 가득 채운 장애인들이 “안녕” “안녕, 좋은 아침!”이라며 해맑게 인사할 때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을 만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선지 아침에 입맛이 없던 나도 이곳에서는 어떠한 반찬이든 맛있게 먹는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영 어색했다. 특히 가끔 돌출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떤 장애인은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과 악수를 해야 직성이 풀렸다. 어떤 장애인은 너무나 큰 목소리로 싸우듯이 말했고, 어떤 이는 목소리가 안 나와 손짓 발짓으로 의사를 표시했다. 시간이 가면서 이런 모습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장애인 적합 품목’ 정해야

    나는 중증장애인에게 이러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평생 일터를 전국에 만들고자 지난해 ‘행복공장만들기운동본부’를 출범하고 총재직을 맡아 일한다. 장애인이 ‘맞춤형 제품’을 생산하면서 수익을 내고 계속 일할 수 있는 복지체계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에덴복지재단이 롤모델이자 1호 행복공장이고, 경기 부천시의 한 장애인복지시설이 2호 격이다.

    나는 전국 곳곳에 이런 일터가 많아지길 바라며 장애인을 위한 적합 품목이 선정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적합 품목이 정해져 일자리가 늘어나면 장애인도 일하고 세금 내는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장애인이 생산할 수 있는 품목을 정해 비장애인이 생산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국가가 복지의 일환으로 장애인에게 현물을 지급하면 장애인 개개인의 특기가 사장(死藏)돼버린다. 비록 몸을 움직이기 힘든 장애인일지라도 일하다 보면 자신의 재능을 살릴 수 있다. 전체 인구의 3~5%에 달하는 장애인은 소외계층이다. 그들에게도 일할 권리가 있고,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세계 곳곳을 다녀보니 서아시아, 남태평양의 몇몇 나라에서는 장애인을 만날 일이 없었다. 현지 관계자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집에 감금되다시피 한 장애인이 많은데, 성인이 되기 전에 죽는 경우도 많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이런 처지에 가까운 사람이 없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많은 중증장애인이 학교를 졸업하고 지역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끝으로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을 한다는 것, 제 몫을 한다는 것

    매년 봄 4월 셋째 주말에 에덴장애인 한마음축제가 열린다. 장애인 가족을 포함해 300~400명이 함께 모여 점심을 먹고 장기자랑을 하며 즐기는데, 이날 누구보다 행복해하는 사람이 바로 장애인들의 부모다. 집에서 뒹굴기만 하던 아이가 일을 하면서 제 몫을 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고 말하는 부모를 만나면 어깨가 무거워진다.

    내가 만나는 그들은 탐욕이 없고 조그만 일에도 감사할 줄 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볼 때마다 내 영혼이 깨끗해지는 걸 느껴 자꾸만 그곳에 가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80세가 되면 그만두려고 했는데, 이제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



    김 학 수

    ● 1938년 강원 원주 출생
    ● 연세대 상학과 졸업,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박사(경제학)
    ● 유엔 ESCAP 사무총장, 외교통상부 국제경제담당 대사
    ● 現 행복공장만들기운동본부 총재, 국제지도자연합 세계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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