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호

이회창의 ‘칼과 저울’ 강박관념과 균형감각

  • 정혜신

    입력2005-04-20 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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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 이회창’의 빛과 그림자를 ‘저울과 칼’로 비유할 수 있다. 타고난 성향과 고도의 훈련으로 거의 완벽한 균형감각을 보여주는 저울의 모습은 그의 빛에 해당한다. ‘그러나 또한’ 극단의 분노와 폭력적 언행으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공포에 가까운 불안감에 휩싸이게 하는 칼의 모습은 그의 그림자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입천하지정위(立天下之正位) 행천하지대도(行天下之大道)’.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좌우명이다. 항상 하늘 아래 올바른 위치에 서 있어야 하며 큰 길을 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중에서 ‘올바른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는 말은 이총재에게 거의 절대적인 가치관으로, 그는 평생을 이 기준에 맞춰 살아왔다.

    스물세살의 나이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평생 ‘원칙’만을 소신으로 법정신을 지켜왔고,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관료 시절에도 원칙주의자라는 면모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96년 정계에 입문한 이후에는, 정치인이면 누구나 당연히(?) 받는 비판에다 이총재가 개인적으로 가슴아파할 만큼 인간성에 관한 비난까지 듣고 있다.

    그 절정은 아마도 지난해 한나라당의 공천파동일 것이다. ‘이회창은 무서운 사람’ ‘이회창은 가차없이 보복하고 인간적 신의를 배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비난이 난무했다. 정치적인 이해관계는 논외로 하더라도 단 한마디의 인간적 양해나 설명도 없이 허주를 비롯한 그의 동지들을 제거한 일은 한나라당 출입기자들조차 분노할 정도였다는 평가다. 그 과정이 비열했다는 것이다.

    단아한 선비 스타일의 이총재와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사건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들을 이전에도 종종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반인들이 이총재에 대해 ‘대쪽’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를 표리부동한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97년 대선 기간에 약속을 깨고 DJ의 병역기피 의혹을 얘기하고, ‘DJ 비자금’까지 폭로했다는 것이 그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원래 여야 영수회담은 실무선에서 타결되지 않는 정치현안을 풀기 위해 개최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김대통령은 발표문안까지 사전에 합의토록 지시한 적도 있는데 이게 다 이총재의 표리부동을 걱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총재는 또 가끔 예상할 수 없는 폭력적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때가 있다. 언젠가 한나라당 총재단 회의 중에 생긴 일이다. 회의 참석자들 간에 이견이 생겨 약간의 말다툼이 생겼다. 짜증이 난 이총재는 그만하라면서 탁자에 있던 물컵을 높이 쳐들었다가 탁자 위로 세게 내리쳤다. 컵 속의 물이 자신의 얼굴에 튈 정도였다. 두 번 연속으로 컵을 내리쳐서 결국 컵은 박살이 나버렸다. 이총재의 이런 행동을 간간이 보아온 한나라당의 어느 부총재는 그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무섭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반대의 모습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총재를 만나본 사람들은 그가 정계에 입문한 지 5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부끄러워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회식 때 식탁에 오른 산낙지를 보고 “허참, 잔인하구먼…”하며 입에도 대지 못하는 사람이 이회창이다. 주위 사람들은 극단적이기까지 한 이총재의 두 얼굴에 혼란스러워 한다.

    저울과 칼

    필자는 이회창이라는 한 남자의 성향을 살펴보다가 문득 ‘저울과 칼’을 연상했다. 법의 상징인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tia)는 한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서서 법의 엄정성과 공정성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저울과 칼’은 유스티치아의 그것과는 좀 다른 개념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루스 베네딕트가 쓴, 일본에 관한 명저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는 개념과 더 유사하다. 국화의 온화함과 칼의 잔혹함, 이렇게 극단적인 양면성(빛과 그림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국민이 일본인이라는 게 루스 베네딕트의 해석인데 그 시각을 좀 차용해 보자. 이총재의 심리적 특성은 우리가 흔히 일본인의 국민성이라고 일컫는 결벽증 혹은 강박증적 특성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인의 심성과 이총재의 심리적 특성을 비교해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루스 베네딕트에 의하면 서양사람들이 일본인에 대해 기술한 글에는 ‘그러나 또한’ 이라는 표현이 연발되고 있다 한다.

    “일본인은 유례없이 예의바른 국민이다. ‘그러나 또한’ 불손하며 건방지다. 일본인은 용감하다. ‘그러나 또한’ 겁쟁이다. 그들은 유순하다. ‘그러나 또한’ 분개하길 잘한다. 그들은 철저히 복종적이다. ‘그러나 또한’ 무섭게 반항적이다.”

    ‘그러나 또한’ 이란 말은 일본인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상징적인 단어다. 세계 최고의 친절을 자랑하는 서비스 국가지만 잔혹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는, 이렇게 양 극단을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일본인의 심성을 상징하는 말이 ‘국화와 칼’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필자는 ‘인간 이회창’의 빛과 그림자를 ‘저울과 칼’로 비유해 보는 것이다. 이총재는 타고난 성향과 고도의 훈련으로 거의 완벽한 균형감각을 가진 사람이다. 이것이 필자가 말하는 ‘저울’이며 인간 이회창의 빛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또한’ 이총재는 극단의 분노와 폭력적 언행으로 주위 사람들을 공포에 가까운 불안감에 휩싸이게 한다. 이것이 ‘칼’이며 인간 이회창의 그림자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는 모순된 양 극단을 동시에 보여준다. 마치 손은 하루에 열번 씻으면서 발은 열흘에 한 번 씻는 사람 같다.

    이 글은 ‘인간 이회창’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정치적 호불호(好不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이총재의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한 글이라는 뜻이다. 행여 필자의 세련되지 못한 전달 솜씨로 인해 뜻하지 않게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부분이 없었으면 한다. 이총재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위치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성향을 분리해서 설명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겠으나 ‘칼의 이회창’과 ‘저울의 이회창’으로 나누어서 인간 이회창을 살펴보자. 먼저 ‘칼의 이회창’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이회창은 전형적인 결벽증 또는 강박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한번 만나보지도 않은 사람에 대한 필자의 단정적인 해석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확을 기하기 위해서 말을 조금 바꾸어 보자. 이회창은 정신의학적으로 강박적 성격이라고 진단해도 무리가 없을 만한 외적인 특징이 많은 사람으로 보인다.

    강박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첫째 특징은 청결과 돈, 시간에 대해서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엄격하다는 것이다. 물론 정갈한 위생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시테크나 재테크에 관심이 좀 있다고 해서 다 강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강박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문제에 있어서 주위 사람들이 유별나다고 느낄 만큼 뚜렷한 구별점을 가진다.

    강박적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우선 외견상으로도 다른 사람과 차이를 보인다. 그들은 언제 봐도 사우나에서 막 나온 사람 같은 느낌을 준다. 잘 씻어서 언제나 빛나는 듯한 얼굴, 한가닥의 머리카락이라도 흐트러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단정한 머리 모양새, 군더더기 없이 말쑥한 옷차림 등 ‘지나친 깔끔함’ 때문이다.

    이회창은 정치입문 이후 지방에 내려가서 숙박한 경우가 딱 한번이라고 한다. 거의 대부분 행사가 끝나기 무섭게 서울로 올라오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머리손질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매일 아침 자택에서 전속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기는데 가르마가 조금만 달라도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칫솔질도 10분 이상 할 정도로 청결에 철저하다.

    이회창의 지나친 깔끔함은 그의 대국민 이미지를 고려해야 하는 참모들에겐 걱정거리일 것이다. 지난 대선 때 이회창 후보 분장의 키포인트는 차갑고 딱딱한 인상 대신 ‘부드러운 이회창’을 연출하는 것이었단다. 헤어스타일을 부드럽게 바꾸어서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건의한 한 보고서도 같은 맥락이다.

    청결에 대한 집착

    청결에 대한 그의 집착은 외모 같은 외형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스님의 ‘희대의 보복정치’ 발언으로 충격을 받은 이회창이 수덕사를 찾았다. 이 절의 주지를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고 하는데, 이 에피소드에서 필자의 눈을 끈 것은 법장스님을 만나 자신의 심중을 토로하고 서울로 올라오던 이회창이 예산성당에 들러서 20분간 혼자 기도를 했다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울라프’라는 자신의 세례명에 대단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가톨릭 신도 이회창이 연상되면서 정신과의사로서 일종의 직업병이 발동한 것이다.

    혹시 스님과 밀담을 나눈 일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의 마음에 짐이 된 것은 아닐까. 부담스러운 일을 행(doing)했다는 죄의식 때문에 그것을 취소(undoing)하려고 성당에서 기도를 올린 것은 아닐까. 강박적 성향의 사람들이 부채의식을 느낄 때 흔히 사용하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취소(undoing)다. 그의 결벽증은 물리적인 영역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 청결(순결)’의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는 듯하다.

    또 강박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시간개념이 철저하다. 그들은 시간개념이 흐릿한 사람을 마음속으로 경멸한다. 이회창도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키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젊은 시절부터 상대를 15분 이상 기다리는 법이 없어서 ‘15분맨’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돈에 엄격한 정치인

    돈 문제도 철저하긴 마찬가지다. 이회창만큼 돈에 엄격한 정치인도 흔치 않을 것이다. 3김과는 차별되는, ‘돈 안쓰는 정치’를 실천하고 싶은 그의 정치적 결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돈문제에 있어서 그는 거의 결벽을 고집한다.

    이회창은 어떤 일이 있어도 돈으로 추종자와 권력을 만들어내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대선 때는 지정기탁금제 폐지를 선언하면서 여당 프리미엄을 포기했고, 지난 총선 막판에는 1000만원만 지원해주면 당선권에 들 수 있다는 지구당 사람들이 총재에게 다급한 구조요청을 보냈지만 그 요구를 거절했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총선을 치르면서도 그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히 선거혁명이라 불릴 만하다.

    그러나 그런 원칙을 고수한 데는 정치적 신념 외에도 돈에 대한 그의 개인적 성향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는 돈을 직접 만지는 행위 자체를 꺼리는 것 같다. 아마 심리적 깨끗함에 대한 집착 때문일 것이다.

    지난 대선 때 몇몇 기업인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수억원의 정치헌금을 내겠다고 했지만, 그는 ‘다시 연락할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전화를 수차례 하다가 끝내 돈을 받지 못하고 선거를 끝내버렸다. 그는 당시 선거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 구기동 자택을 팔아 전세금을 제외한 5억원을 신한국당에 특별당비로 기부했는데, 그 집은 부인 한인옥여사가 “결혼생활 중 구기동 집을 장만했을 때가 가장 기뻤어요”라고 얘기할 만큼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는 집이었다. 이회창은 돈문제에 그렇게 철저한 사람이다.

    또 그는 모든 일이 자신이 정한 ‘틀’에서 벗어나진 않았는지, 일의 사소한 부분까지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강박적 성향을 보인다. 이회창과 인터뷰를 하려는 기자는 항상 사전에 예상 질문지를 정확하게 써내야 한단다. 이회창은 예상질문지를 토대로 예상답변을 미리 만들어 완벽하게 익힌 다음에라야 인터뷰에 응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그런 식으로 인터뷰를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문데도 기자들은 이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만일 예상 질문지에 없는 질문을 하게 되면 나중에 그의 비서관들이 크게 혼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떤 일이든 자신의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당황한다. 매사에 완벽을 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혹시 실수라도 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한 기자가 이회창에게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이 누구인가를 물었다. 이회창의 답변.

    “김혜자, 고두심, 전인화 등 중견 연예인과 ‘와’의 이정현, 전지현, 핑클, 황수정, 채림, 김규리 등 여러 명이 있지만 이들 연기자 모두 특징이 있어서 어떤 연기자를 특히 좋아한다고 얘기하기가 사실 어려운 것 같아요.”

    아무 방어 없이 개인적인 취향이나 감정을 담뿍 드러내도 좋을 만한 질문에도 그는 비서관이 적어준 듯한 유명 연예인 리스트를 훑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치밀한 완벽주의는 정도가 지나쳐 그에게 생동감과 개인적 체취를 다 빼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왜 청결, 돈, 시간 등을 통제하기 위해서 그토록 신경을 쓰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에게 돈, 시간, 감정 등은 형이하학적이며, 악(惡)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통제의 대상이며 없을수록 깨끗하고 완벽한 것이다.

    정신적인 성숙이란 ‘본래의 자기(real self)’를 찾아 그것을 발현해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본래의 자기’는 뒷전에 둔 채 지나칠 정도로 높게 설정된 ‘이상적 자기(ideal self)’를 향해서만 몰입하면 신경증적인 사람이 된다. 강박증이란 ‘이상적 자기’가 비대할 때 생기는 병이라고 할 수 있다.

    아들이 대학을 다닐 때도 회초리로 때리고, 마흔이 넘은 아들이 변호사 개업을 하려는 것을 알고 불호령을 내려 판사를 계속하게 한, 이회창의 아버지 이홍규옹은 이회창의 삶에 ‘이상적 자기’의 첫 시작을 만든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훈인 ‘정신일도 하사불성’을 아들에게 강조하고, 자신감을 잃는 것이 으뜸가는 ‘죄악’이라고 가르친 아버지. 그 아버지가 두려워 수학시험을 망친 소년 이회창은 ‘자신감을 잃었다’는 자괴감에 가출을 하기도 했다.

    아버지에 의해 싹을 틔운 이회창의 ‘이상적 자기’는 판사라는 직업을 만나면서 더욱 강화된다. 그는 판사라는 직업을 신성시한다. 검사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에 의해 상위직 검사의 지시에 절대복종해야 하지만 판사는 자기 판단에 따라 재판을 한다는 점에서 더 자부심을 갖는다.

    객관적인 진실을 추구하는 판사라는 직업은 그에게 직업 이상의 의미, 즉 그가 끝없이 추구하는 ‘이상적 자기’의 또 다른 원형이 된다. 처음 읽은 후 그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지금도 그가 늘 곁에 두고 있는 책이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다. 그중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구절. ‘만일 네가 신과 같이 순결하고 순일하게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회창은 이 구절을, 신적인 존재에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포기한다면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이상적 자기’를 향해서 끊임없이 자기를 채찍질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그는 자신이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니 자신에 대한 ‘전지전능감’이나 ‘절대적 우월감’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존재와 판사라는 직업을 거쳐 형성된 그의 지나친 정신주의 혹은 정신적 완벽주의는, 그 자신을 심정적으로는 ‘절대자’의 위치에 올려 놓은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독선적, 독단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그런 이유다.

    정치학자와 국회의원들이 이회창 스타일에 대한 불만 중 첫번째로 꼽은 단어는 ‘아집, 편협, 경직’ 등이었다. ‘절대적 우월감’이 내재하는 이회창은 당연히 자신이 모든 것을 장악해야 마땅하다는 내적인 확신을 가진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을 때 그는 정당한(?) 분노를 느낀다. 마치 일본사람들이 2차 세계대전 때, 각 나라가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있으면 세계가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기 때문에 일본을 중심으로 세계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믿던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급(級)을 따지는 데 매우 예민하다. 그가 신한국당 대표로 있을 때 김영삼 대통령과 정기적 만남을 놓고 ‘주례보고’냐 아니면 ‘주례회동’이냐는 용어 문제로 청와대와 신경전을 벌인 일은 유명하다. 비슷한 시기에 총선을 책임지면서는 다른 당의 ‘선대위원장’과 자신의 급이 같을 순 없다며 ‘선대위의장’이라는 새로운 직책을 만들었다.

    직책에 관련된 희한한 에피소드는 당시 헌정위원회에서 각 당의 선대위원장들을 순번제로 초청해서 토론회를 하는 자리에도 이어진다. 이회창은 자신이 선대위원장이 아닌 ‘선대위의장’이기 때문에 타당의 선대위원장들과 똑같은 방식으로는 초대에 응할 수 없다면서 토론회에 참석만 한 후 일문일답을 거절하고 돌아가 버렸다. 연로한 헌정회원들의 분노가 어떠했을지 충분히 상상이 간다.

    그의 ‘급 따지기’는 거의 노이로제 수준이다. 한 언론사 행사에 초청되어 가는 길에 타당에서 참석한 사람이 자기보다 급이 낮다는 사실을 알고 차를 돌리기도 하며, 자신이 보낸 화환이 어느 위치에 놓여 있는지까지 일일이 확인한다고 한다.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은 야당총재의 비서실답지 않게 정무기능보다 ‘의전비서실’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깍듯한 의전에만 신경쓴다”는 한 기자의 코멘트가 괜한 소리는 아닌 모양이다. 그는 자신을 능가하는 권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주위사람들이 불안해 한다

    그는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이 해주는 것보다 스스로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느낀다. 영수회담을 한 뒤에 자세한 대화 내용을 측근들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 지나가는 말 한두마디씩 던지는 걸로 측근들은 ‘그런 얘기가 오갔구나’ 짐작할 뿐이다.

    필요하면 직접 이 사람을 불러 이걸 지시하고, 저 사람을 불러 저걸 지시하는 식이다. 이회창 캠프에서 누구도 그의 속내를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건 이런 이유다. 그런 식으로 누구에게도 완전한 신뢰를 주지 않기 때문에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언젠가 자신이 팽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그와 인연을 맺었다가 헤어지는 사람들은 항상 쫓겨나는 느낌을 갖는다고 말한다. 독단적이고 아집이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의 가까이에 있으면 칭찬을 듣기보다 야단을 맞는 경우가 더 많다는데, 이는 단순히 아랫사람을 단련하려는 의도적 행동은 아닌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렇다. 자신의 양복이나 와이셔츠가 계절별로 차곡차곡 걸려 있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강박적 성향의 남자가 있다. 그게 제대로 정리가 안되어 있으면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아내를 닦달한다.

    “많은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신경쓰면 되는데 그것도 못해줘?”

    그가 보기에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은 모두 상대방이 ‘조금만’ 신경쓰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강박적 성향이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그 ‘조금만’에 녹아나는데 말이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커뮤니케이션 자체에 문제가 생긴다.

    99년 한 시사잡지는 당시 윤여준 여의도연구소장과 이회창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가족조차 이총재 앞에서는 터놓고 말 못하는데 윤소장은 거의 유일하게 그 앞에서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인물이다.”

    한 기자의 이회창 관찰기도 그의 지나친 권위주의나 독선에 따른 부작용을 잘 보여준다.

    “기자들은 이총재가 기자회견 때나 인터뷰 때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언론계 대선배인 언론담당 특보들을 후배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꾸짖는 광경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이럴 때마다 이총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회창은 대학시절에 관람한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스파르쿠타스’라는 영화의 노예 얘기를 하면서,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서도 안된다는 진리를 적어도 한번쯤 가슴속에 새겨 보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단지 이상론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그런 원칙이 실제로 적용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기자들 얘기가 나온 김에 ‘편협’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회창의 알레르기적 반응을 한번 살펴보자. 이회창은 자신을 ‘편협하다’고 보도하는 기사만 나오면 길길이 뛴다고 한다. 한때는 ‘편협’이라는 단어가 보도되지 않게 언론사에 협조를 구하는 게 비서들의 주요 임무였단다. 차라리 ‘속좁은 사람’이라고 표현할지언정 ‘편협’이란 단어만은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 노력의 결과인지 얼마전부터는 이회창과 관련된 신문기사들에서 ‘편협’이란 말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협량(狹量)’이라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지 않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국어사전을 보면 ‘편협하다’는 건 도량이나 생각하는 것이 ‘좁고 치우치다’는 뜻이고, ‘협량’은 사람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좁음, 즉 ‘속좁음’을 일컫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반인이 보기엔 별 차이가 없는 말인데 왜 이회창은 ‘편협’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질색하는 것일까.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그는 자신을 법이나 정의와 동격체로 인식하는 듯한 언행을 자주 한다. 자신의 공평무사한 정신이나 균형감각은 ‘법이나 정의처럼’ 완벽에 가깝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편협’이란 단어에는 단순히 속이 좁은 것이 아니라 ‘치우치다’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편협? 내가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이라니… 이회창은 아마도 ‘편협하다’라는 말이 담고 있는, 자신이 공평무사하지 못하다는 의미에 참지 못하는 듯하다. 자신이 목숨을 걸 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손상받으면 누구나 그러지 않겠는가.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그의 감정 표현이나 분노 폭발 방식이 다분히 충동적이고 극단적인 것을 이해못할 바도 아니다. 이따끔 도저히 이회창이 했다고 믿어지지 않는, 강렬하고 ‘감정적 언사’들이 세인들의 화제에 오른다.

    96년 11월 대선 예비후보로 주목을 받기 시작할 때 그가 춘천에서 했던 연설의 한 대목을 들어보자.

    “더러운 정쟁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 구태의연한 낡은 정치판의 경험을 거쳐야 정치적 검증을 받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참으로 도착적 심리상태다.”

    평생을 자구(字句) 하나하나의 세밀한 의미까지 따져가며 객관적인 단어선택을 했을 이회창의 법관 경력을 감안하면 그 말의 과격함은 더 두드러진다. 실상은 ‘낡고 더러운 정치판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려는 자들은 전부 정신병자’라는 말이다.

    대선 직전의 ‘창자론’도 그렇고 ‘우리가 배알이 없고 자존심이 없어 영수회담을 제의한 것이 아니다’는 언사에도 다분히 원시적 감정이 배 있다. 한 언론사 중견기자의 분석은 더 구체적이고 날카롭다.

    “이총재는 상당히 이중적인 면이 있다. 그는 실제로 논리적이면서도 정서적으로 격한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까 긴장을 풀 때는 본인의 격한 감정이 원색적으로 표현되곤 한다. 그는 감정을 이성으로 억누르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런 격한 표현이 나오는 것 같다.”

    그렇다. 그는 평소에 감정표현이 미숙한 사람이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회창은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감추기 위해서 평상시에는 감정표현을 절제한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회창이 한 기자와 술을 마시다 취중에 한 말이다. 자신은 기존 정치인들과 기존 정치 룰로 맞서기에는 불리하므로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는 무엇이 필요하다면서 일본의 검법 ‘몽상류(夢想流)’를 예로 들었다. 몽상류라는 검법은 자신의 눈을 가린 채 전신의 감각만으로 상대의 의표를 감지해서 정확히 그곳을 찌르는 검법이란다. 공격하는 사람이 눈을 가리고 있으니 자연히 상대가 긴장을 풀게 되고 그때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것이다.

    이회창이 평소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몽상류에서 눈을 가리는 것과 같은 일종의 ‘무의식적인 페인트 모션’이다. 거의 일상화된 듯한 그의 지나친 감정통제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걷잡을 수 없는 감정폭발의 전조이자, ‘칼의 이회창’의 이면인 것이다.

    이제 ‘칼의 이회창’에 관한 글을 마무리하자. 사람은 살다보면 어이없는 무리수를 둘 때가 있다. 특히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인 경우엔 더 그렇다. 남들이 보기엔 사소한 일인데 거기에 목숨을 건다거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 결정적 실수를 했다는 말도 그럴 때 나온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완벽주의적 성향이 사람을 그렇게 몰아간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완벽주의자라고 하면 매사에 빈틈없이 치밀해서 실수같은 것은 전혀 용납하지 않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들은 자신의 현미경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게 세심하다. 그러나 그 세심함 때문에 중요한 부분에 의외로 큰 ‘심리적 구멍(lacuna)’이 생긴다. 면접에 대비해서 며칠 전부터 입고 갈 옷, 신발, 예상 질문까지 완벽하게 마스터한 취업준비생이 정작 면접 당일에 지각을 하게 되는 경우와 같다.

    완벽주의자는 불안의 정도가 매우 높다. 그 불안감 때문에 미세한 것까지 철저히 대비하지만, 불안이 너무 커지면 오히려 쉬운 일, 상식적인 일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다. 완벽주의자가 아니라도 사람은 심하게 불안해질 때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생긴다.

    ‘칼의 이회창’을 통해서 이회창 본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지난 세월 나의 ‘심리적 구멍’은 무엇이었는지 또 왜 그런 구멍이 생겼는지를 따져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저울의 이회창론

    이번에는 ‘저울의 이회창’을 살펴보자. 이회창은 불가사의한 사람이다. 환갑에 정치에 입문하여 1년 반 만에 집권 여당의 대통령후보에 올라 1000만표의 지지를 얻었지만 1.1%라는 근소한 차이로 졌다.

    그런데 이회창의 괴력은 그때부터 더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절대적인 지역기반도, 뚜렷한 계보도, 이렇다 할 측근그룹도 갖지 못한 ‘패장’의 신분으로 당권을 장악한 후 총재에 재선된 이회창은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제1당으로 끌어올렸다. 얼마전 한 시사주간지가 분석한 이회창의 리더십에 관한 기사를 살펴보자.

    “한나라당은 과거 군사정권에 맞선 선명 야당도 아니고 총재와 정치적 운명을 나눈 가신들이 포진한 단일화된 야당도 아니다. 뿌리와 이념과 성향이 각양각색인 세력들로 이루어진 130석이 넘는 거대 정당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평범한 리더십이 아니다. ‘50년 헌정사상 야당을 가장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대선패배 후 지금까지 이회창이 구축한 정치적 카리스마는 오히려 3김을 능가한다. 이회창의 학습능력이 대단하다는 게 빈말은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전문가들은 이런 경이적(?) 현상을 ‘대안부재론’과 ‘반사이익론’으로 심드렁하게 설명한다. 하도 오래 전부터 계속되는 얘기라 이제는 전혀 새로울 것도 없다는 투다. 이회창의 정치력은 스스로에게서 나오기보다 3김과 관련된 반사이익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는 한마디로 대안부재론의 중첩이 만들어 낸 행운의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실수도 계속되면 실력이라는데, 그가 이룩한 업적과는 별개로 정치인 이회창에 대한 인식은 아직 부정적인 것 같다. 필자는 그 이유가 앞서 ‘칼의 이회창’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의 ‘독특한 성향’과 ‘정치라는 생물’이 서로 코드가 맞지 않아서 생기는 부작용이라고 생각한다. 한 외신기자의 평가도 이와 많이 다르지 않다.

    “이총재는 정치를 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다. 정치 무대에선 때론 거짓말도 하고 쇼맨십도 필요하며 때로는 흙탕물 속도 걸어가야 한다. 미국 같은 선진국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세상만사를 다 끌어안고 가야 하는 게 정치지도자의 몫인데 이회창 총재는 이런 것을 피하고 있다. 원칙에 충실해온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뉴 이회창플랜’이라는 이름까지 내걸고 끊임없이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있지만 인식의 전환이라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는 많은 노력과 오랜 시간이 드는 반면, 부정적인 인상은 한번 각인되면 좀처럼 잊혀지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회창의 진면목은 그가 정계에 입문하기 전의 모습에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번듯한 재벌총수의 진면목이 시골촌놈이던 떠꺼머리 총각 시절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상이 곧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회창은 “정치는 옳고 그른 일, 해야 할 것과 안 해야 할 것의 구분이 때로 선명치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이회창에게는 참 당혹스러운 경험일 것이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 그가 하던 일이나 행동들은 몸에 잘 맞춘 옷처럼 이회창의 성격과 너무나 잘 들어맞는 것들이어서 갈등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자신의 성향과 딱 맞아 떨어지는 직업을 선택해서 모든 것을 얻은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이회창 아닐까.

    법관이 되는 순간 ‘칼의 이회창’에서 단점으로 보이던 그의 성격들은 그대로 몸을 뒤집어 대단한 장점으로 변한다. 설사 형제간의 싸움이라도 사건의 발단을 정확히 따져야 한다고 믿는 꼬장꼬장한 성격, 디테일을 중시하는 완벽주의 등은 이회창을 최연소 대법관으로 만들었고, 법조계에서 ‘가장 법관다운 법관’이라는 평가를 받게 한다. ‘대쪽 이회창’의 이미지도 그때 형성된다.

    초기 대법관 시절이던 81년부터 5년간 이회창이 주심을 맡은 사건은 16건에 달했는데 그중 11건이 소수의견이었다. 이런 성향 때문에 통제가 불가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여러 차례 불운을 겪기도 했다.

    그의 화려한 법관 경력 중 ‘법관의 꽃’이라고 불리는 서울형사지법 부장이 빠진 것은, 대법원장감이던 이회창이 그의 대쪽 같은 성격 때문에 혹시 시국사건 재판에서 권력층과 마찰을 일으킬까봐 선배들이 배려해준 때문이란다. 이 정도면 더 이상 행복한 승승장구가 있을 수 없다.

    이회창의 소수의견은 언제나 국민 인권과 사회적 약자 편에 서 있었다는 것이 박원순 변호사의 평가다. 정치권 일부 인사들은 법관 시절 그의 잦은 ‘소수의견’ 경력을 이회창이라는 인물의 ‘튀는 성격’을 보여주는 자료로 인용하기도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그건 마치 도루왕 출신 야구선수가 은행원으로 변신하자 그의 경력을 내세우며 혹시 ‘도벽’이 있는 게 아니냐고 다그치는 꼴이다. ‘소수의견’을 자신의 성격과 결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회창의 반론은 ‘논리’ 그 자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소수의견은 ‘형편은 어찌되었든 나는 이게 옳다고 믿는다’는 식의 고집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보편타당한 가치는 다를지 모르지만 나의 개인적인 배경이나 취향, 신념에서 보자면 이 쪽을 더 주장하고 싶다는 식이다. 그러나 법원의 소수의견은 이와 다르다. 법관의 판단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보편타당한 가치를 지향하는데, 다만 그 판단이 소수에 의해서 공유되었을 때 소수의견이라고 불릴 따름이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개인적인 취향이나 성장배경 등에 이끌려 결정되는 일이 아니다.”

    인터넷의 한 여론조사에서 그는 3김 이후 가장 유력한 대권후보 1위를 차지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법치주의에 대한 기대’였다. 이회창이 국민의 기억에 그런 이미지로 각인된 것은 1988년 7월 중앙선거관리 위원장에 선출된 이후부터다.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 격이 되더라도 내가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있는 한은 법을 지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그러는 것은 꼭 승산이 있어서가 아니라 현실에 굴복할 수 없는 본질적 근성 때문이다.”

    그의 취임 일성인데 ‘본질적 근성 때문’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는 불법타락 선거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선관위원장직을 사퇴한다.

    그해 한 시사주간지는 ‘올해의 인물’로 이회창을 선정했다. 선관위원장 재직시 보여준 그의 ‘준법정신’과 ‘도덕적 용기’가 많은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회창 신화의 배경

    이때부터 국민들 사이에는 ‘이회창 신화’가 싹텄다. 감히 ‘신화’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가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회창 신화’의 정점은 그가 감사원장에 취임한 후부터 국무총리직을 사퇴할 때까지였다.

    이 기간에 국민들은 이회창이라는 인물을 ‘정의와 대쪽’의 한 표상으로 삼았다. 대중연예인을 제외하고 또 의도적인 언론플레이를 통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한 사람에게 그토록 무조건적인 박수를 보낸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 이회창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그때처럼 국민들의 무조건적인 신뢰와 애정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그가 국무총리에 취임하고나서 20일 동안 신문 잡지에 실린 그에 관한 기사의 양은 그 전 해(年)의 반년치보다 많았다고 한다. 대부분 이회창에게 호감이 듬뿍 담긴 내용이었다. 공보비서실은 ‘써달라’ 대신 ‘그만 써달라’고 주문하는 촌극까지 빚었단다. ‘안티 이회창’을 표방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젊은이조차 당시의 ‘이회창 신화’에 대해서는 별 이의가 없는 모양이다.

    “적어도 정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딛기 전까지 그는 아름다운 원칙의 소유자였고 대쪽이란 이미지가 너무나도 걸맞은, 우리 국민이 가꾸고 사랑해줘야 될 참된 인물의 표상이었던 것이다.”

    당시 한 신문은 이런 원인을 이회창이 가지고 있는 ‘역사를 염두에 둔 현상적응력’으로 풀이했다. 대법관으로서 소수의견을 내야 하는 상황, 선관위원장을 스스로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 감사원장으로 사정에 앞장서야 하는 상황 등을 그때그때 분명하게 구별했다는 것이다. 국무총리가 된 후에도 스스로 마치 연예인 비슷한 인기인으로 묘사되는 데 대해 그는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하게 된 것 같다는 얘기다.

    필자가 얘기하는 ‘저울의 이회창’, 이회창이 가지고 있는 진면목의 기본 컨셉트도 바로 그의 탁월한 균형감각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신뢰하는 두 집단 중의 하나는 법관이다. 그들에게는 사회정의에 대한 치열한 고뇌와 상식을 존중하는 고도의 균형감각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성향이 부족한 사람은 훈련과 피나는 자기성찰을 통해서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형벌의 정도를 정하는 양형(量刑)은, 법관에게는 평면적인 숫자의 나열에 불과하지만 피의자에게는 절망과 환희가 엇갈리는 삶과 죽음의 문제다. 그런 까닭에 그 무게는 종종 악몽이 되어 법관에게로 돌아온다고 한다. 법관은 그런 괴로움을 다반사로 겪는다. 자신이 공평무사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가 괴로워서 견디지를 못한다. 그런데 이회창이란 인물은 그런 경우에 수반되는 기초적인 노력조차 필요없을 만큼 ‘마음의 저울’이 발달한 사람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따진다.

    “그동안 정의를 말하고, 원칙을 말하고, 그리고 내가 공동의 선이라고 믿는 바를 고집스럽게 주장해왔지만 정작 나는 그것에 얼마나 충실했는가. 내가 믿고 행한 최선이 과연 진정한 최선이었던가.”

    그는 현실의 세계보다 관념의 세계에 더 익숙한 사람 같다. 실제 상황보다 도상연습에 더 탁월하다. 이것은 인간 이회창이 법의 생리와는 일치하지만 정치생리와 충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상 이회창 쪽에서 보면 자신은 정계에 입문하기 전이나 후의 가치판단이나 행동이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사람들은 전혀 상반된 평가를 하니 가끔은 짜증이 날 것이다.

    예전에는 ‘신중하다’고 열광하다가 지금은 ‘소심하다’고 핏대를 올리며, 예전엔 ‘과감하다’고 박수를 쳐주던 사람이 지금은 ‘무모하다’고 혀를 차는 것이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은 후 그 갈등요소를 제거하고 균형을 맞추는 일이 이회창에게는 무척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뭐랄까. 원칙과 정도로 가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한 어떤 의무감과 현실과의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이 상당히 심해졌다. 원칙대로나 정도대로 가기 어려운 상황이 정치의 장에서는 많이 나오는 게 사실이고, 갈등을 느낄 때가 많다. 스스로 대쪽이라든가 포용력이 없다든가 하는 말을 의식해서 좀 유연성있게, 또는 폭넓게 하거나 타협의 여지를 두는, 그런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큰 고민은 정치의 마당이 현실적으로 정도나 원칙이나 이상대로 관철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지난 공천파동 후 이회창은 무조건 상도동에 찾아가 차에서 40분을 기다린 끝에 YS를 만나는 ‘수모’를 감내했다. 그러자 3김청산을 외치면서 YS를 찾아간 것은 모순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회창의 답변은 이렇다.

    “가만히 있었다면 ‘이회창이가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고 있다’ ‘한번쯤 찾아가서 노력을 해야 하지 않느냐’ ‘포용력이 없다’ 이런 비난들이 나왔을 것이다.”

    말하는 본인도 답답하기는 하겠다. 이러나 저러나 비난을 듣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좀 단순하게 말한다면 이회창의 개인적인 성향은 정치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지도 모른다. 정치라는 무정형의 괴물은 ‘인간 이회창’의 반듯반듯한 장점들을 모조리 약점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50년 헌정사상 야당을 가장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정치인 이회창’ 총재의 어디쯤에 ‘인간 이회창’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 둘의 무게 중심은 어디쯤일까.

    “대나무는 바뀌지 않아”

    이제 이회창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할 시점이다. 사람을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는 접어두자. 인간은 누구나 발을 함께 묶고 달리는 ‘2인3각 경주’처럼 잘 융합되지 않는 ‘나와 또다른 나’를 함께 거두면서 살아간다. ‘칼과 저울’이라는 극단적인 개념으로 상징되는 이회창의 내면세계는 보통 사람들보다 그 격랑이 더 심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 나름의 생각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나를 두고 ‘대쪽이 갈대가 됐다’고 말하지만 대나무는 옮겨 심어도 토양이 맞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말라죽을 뿐이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 이회창의 말처럼 세월이 흘러도 사람 속에는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몸 안에 있는 암세포도 자기 몸의 일부로 생각하고 잘 다스리면 물리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원하지 않는 자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모두 다 받아들이는 일은 힘들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의 ‘남다름’에 대해 이회창이 쓴 글을 감상하면서 이 글을 맺자.

    “나라마다 기후가 다르고 과일마다 향이 다르듯 사람도 모두 저마다의 특성을 가지고 세상에 나올 것이다. 그 특성은 그 사람이 아닌 다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특별한 성정이다. 그것을 잘 가꾸고 간직하는 일은 존재의 이유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잘 가꾸어진 개성을 보는 일은 아름다운 꽃을 볼 때처럼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다.”

    이회창은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이다. 인간 이회창의 독특한 캐릭터는 잘 지키되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장소에서만 ‘칼’이 뽑혀 나올 수 있도록 그의 마음속에 있는 ‘저울’의 무게중심 눈금이 늘 반짝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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