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김형우 기자
지난해 검찰이 창설 60주년을 맞아 선정한 20대 사건에 포함된 슬롯머신 사건의 출발점은 ‘빠찡코 대부’로 통하던 정덕진씨 구속이었다. 표적수사 논란 속에 ‘6공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의원이 정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구속된 데 이어 이건개 대전고검장, 안기부 기조실장 출신의 엄삼탁 병무청장, 이인섭 경찰청장 등 정관계의 거물급 인사가 줄줄이 구속됐다. 당시 홍 검사가 강골검사의 표상, 나아가 ‘정의의 화신’으로 비친 데는 언론의 우호적인 평가도 한몫했다.
슬롯머신 수사가 끝난 후 그에겐 시련이 찾아왔다.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검찰 지휘부가 그에게 사건을 배당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돌았다. ‘선배를 잡아먹은 검사’ ‘통제할 수 없는 검사’로 낙인찍혀 ‘왕따’가 됐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 무렵 서울지검 강력부를 즐겨 드나들던 나는 그가 집무실에서 출입기자와 바둑 두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허허로운 모습이었다.
1년간 안기부 파견근무(국제범죄수사지도관)를 마치고 1995년 10월 검찰에 돌아온 그는 수사와는 거리가 먼 법무부 특수법령과로 발령이 나자 사표를 던졌다. 이듬해 4월 신한국당 공천을 얻어 총선에 출마한 그에게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때마침 불어닥친 TV 드라마 ‘모래시계’의 영향이었다.
빨간색 팬티
그가 국회의원이 된 후 나는 그에게 흥미를 잃었다. ‘정치인 홍준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던 데다, 깊이 없이 좌충우돌하는 듯한 그의 정치적 행보가 마뜩찮았던 것도 이유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저격수’로 활동할 때는 용감하다기보다는 무책임하고 위태롭게 보였다.
그가 2006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설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던 나는 그가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후 경악과 찬탄의 눈길로 그를 지켜봤다. TV토론회에 비친 그는 공부 많이 한, 나름 준비된 대통령후보였다. 특히 대운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이명박 후보를 매섭게 몰아붙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지난해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추대됐다. 어느덧 4선의 중진의원이다. 언제부터인가 신(新)실세, 혹은 신주류로 불린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기질이 있는 이 새로운 실세는 지난 한 달간 지속된 여야 입법전쟁의 한가운데서 거대 여당의 사령관으로서 전투를 지휘했다. 1월6일 전투가 종료됐다. 아니, ‘휴전을 맞았다’라는 표현이 정확하겠지만. 아군 진영에서 그를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적군의 불법과 폭력에 굴복했다는 것이었다. 글쎄, 호전적 성격의 그가 이런 비난을 받을 줄이야…. 나로서는 좀 뜻밖이다.
인터뷰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첫날인 1월9일 오후 원내대표실은 어수선했다. 의원들이 왔다갔다했고 출입기자들이 무람없이 드나들었다. 칫솔을 입에 물고 나온 홍 대표가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인터뷰는 예정보다 조금 늦게 시작됐다. “1시간 안에 끝내자”는 그의 말에 “그러면 한 번 더 만나야 한다”고 하자 그가 죽는소리를 했다.
“나 좀 쉬자. (원내대표로 선출된) 지난해 5월22일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쉰 날이 없어요. 오늘 저녁에 여행을 떠나려 해요. 집사람하고 둘이서.”
제주도에 갔다가 이틀 뒤인 일요일 밤에 돌아올 예정이란다. 그는 후줄근해 보이는 감색 양복에 붉은색 셔츠를 받쳐 입고 붉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실실 웃음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으며 ‘인터뷰 전쟁’에 돌입했다.
-그런데 왜 늘 빨간색 옷을 즐겨 입으십니까. 정열의 표시인가요?
“붉은색이 러시아에서 정의와 순수를 상징합니다. Justice and Purity. 약자로 JP. 홍준표 이니셜이 JP야. 정치판 들어오면서 붉은색 옷을 즐겨 입고 넥타이도 붉은 걸 매요. 내복도 그래요.”
더 웃음을 참다간 몸 상할 것 같았다. 사진기자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