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장관은 2월 13일 ‘신동아’ 기자와 마주하자 “경제 살린다고 시작한 정부인데 성장률이 낮아서 서민이 고통 받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MB 정부에서 겪은 두 차례 경제위기 때문에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을 크게 아쉬워했다. 4대강 사업, 녹색성장, 공기업 개혁, 금융 선진화 등 박 장관이 주도한 각종 국정 현안이 그 자신이 임기를 마치듯 깔끔하게 마무리됐다면 그의 감회는 좀 달랐을 것이다.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 녹색기후기금 유치 등 MB 정부가 거둔 성과가 적지 않은데도 국민은 마무리 시점에 박수보다는 질타를 더 보낸다.
하지만 0.195km를 남겨두고서도 그는 여유를 가질 수 없다. 2월 12일 북한의 핵실험 여파로 추정되는 지진이 감지되자 1급 간부회의를 소집해 실물경제와 국가신용도에 미칠 영향을 점검했다. 그는 과거 두 차례의 핵실험과 북한 관련 사건을 겪으며 국내 시장 참여자의 학습효과로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신속하게 내놓았다. 다음은 박 장관과의 일문일답이다. 박춘섭 기획재정부 대변인은 이번 인터뷰가 박 장관의 마지막 공식 인터뷰라고 밝혔다.
▼ 1년 8개월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많이 내놓았습니다. 선거를 염두에 둔 여러 가지 ‘청구서’가 기획재정부로 물밀 듯 날아들었죠.”
“정치권 요구 막기 힘들었다”
▼ 복지지출 증대나 재원 마련과 관련된….
“그렇습니다. 복지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대의명분에는 동의하지만, 너무 단기간에 급격하게 늘리는 것은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경제 주체도 준비하고 적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해요. 계획된 단계를 무시하고 갑자기 세금을 올리거나 재정지출을 늘리면 경제에 큰 충격을 줍니다. 정치권의 요구를 제어하고 순화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특히 지난해는 유로존 재정위기로 온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을 때 아닙니까. 자고 나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어요.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 강국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추락했고…. 우리는 북한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또 인구 구조가 초고령화 사회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어 많은 재정지출이 예상되고 있어요. 그런데도 비축은커녕 무책임하게 지출을 늘리는 것은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학계와 언론, NGO 등에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많이 알려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 대한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신용등급이 모두 상향조정되는 낭보도 있었습니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게 가장 큰 보람이었습니다.”
▼ 정치권의 요구 가운데 끝내 못 막은 것은.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면 당사자가 상처를 받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대학등록금 반값 문제는 어느 정도 막기는 했지만 완전히 막지는 못했지요.”
박 장관은 정치권이 대선공약으로 내놓은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해 정부 재정이 과도하게 투입되는 것에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 지난 5년을 돌아볼 때 가장 아쉬운 대목이라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정도의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경제체제나 여러 사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공공기관의 지분 매각, 금융산업 선진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설립 등 기본적인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하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 재정위기에 맞닥뜨리고보니 공격보다는 수비를 해서 우리 스스로 안정되는 것이 우선인 긴박한 상황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