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진 민주통합당 대선평가위원장은 2월 11일 ‘신동아’ 기자와 만나 “민주당이 통렬한 자기반성 없이는 핵심 지지 기반마저 잃을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해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의 국정자문단에서 활동했지만, 문희상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요청으로 민주당 대선평가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문 위원장이 1월 18일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철저하고 냉정한 대선 평가를 바탕으로 한 민주당의 혁신과 새 정치 실현’ 의지를 밝혔지만 한 위원장의 눈에는 민주당이 진정으로 반성하는 것 같지 않은 모양이다.
비상대책위가 굳게 다짐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민주당엔 ‘냉정한 대선 평가’ 의지는 시들해지고 대신 ‘뜨거운 전대(全大)’ 바람이 불고 있다. ‘전당대회 룰’을 둘러싼 당내 이견이 노출되고, 차기 전대에 출마하려는 당내 인사들의 출마 시사 발언이 벌써부터 나온다. 한 위원장의 속이 타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신동아’는 설 연휴 끝자락에 한 위원장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만났다. 1시간으로 예정된 인터뷰는 2시간 30분간 이어졌다.
마음은 벌써 차기 全大에…
▼ 대선 평가는 언제까지 마칠 계획입니까.
“평가위 출범 때는 3월 말로 예정했는데, 당의 분위기로 봐서는 앞당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차기 전당대회(전대)가 3월 말 또는 4월 초에 개최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내 관심이 벌써 차기 전대로 쏠리는 것 같습니다.
“걱정입니다. 말로는 반성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 대선 패배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가린 뒤 그에 걸맞은 조치를 취한 뒤라야 민주당이 새 출발할 수 있습니다. 일신(一新)하지 않고 과거 당의 체질 그대로 당권 경쟁에 몰두하면 지지 기반을 크게 잃을 게 분명합니다. 텃밭이라는 호남에서도 (지지율이) 주저앉을 수 있어요.”
▼ 민주당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 뭐라고 봅니까.
“정당을 아우를 리더십이 없어요. 당의 이익보다 계파의 이익을 좇는 모습만 보이는 게 큰 문제죠. 마지막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 삿대질하며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화해의 정신으로 대선 결과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과오를 고백하고, 물러날 사람 물러나면 치유가 됩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민주당은 당장 내년 지방선거에서부터 절벽에 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 대선 평가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1월 21일 출범 이후 지금껏 평가 기준과 틀을 확정했어요. 대선 국면에 당 싱크탱크(민주정책연구원)의 역할과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물의를 일으켜 뜨거운 감자가 된 모바일 투표 문제, 그리고 민생과 세대, 지역에 대한 정책적 영향 등 몇 가지 과제에 대해서는 이미 평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대선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에 앞서 치러진 지난해 4월 총선 결과부터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기본적으로 대선 평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총선에서 패한 뒤 그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대선까지 실수를 되풀이한 이유도 따져볼 것입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도 ‘(민주정책연구원에서 만든) 총선 평가 보고서를 보니 대선 평가 보고서를 보는 듯했다’고 말하더군요. 총선 패배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서 책임을 규명한 양질의 보고서가 사장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민주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9대 총선 이후 38쪽 분량의 ‘4·11 총선 평가와 과제’ 보고서를 작성해 당시 문성근 대표대행에게 보고했다. 보고서는 총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을 ‘민주통합당 자신’이라고 지적했다. 낙동강 벨트 선거 결과에 대한 섣부른 낙관과 오판에 따른 전략과 행동이 국민에게 오만한 모습으로 비쳤고, 새누리당 지지 세력 결집의 빌미가 됐다는 게 보고서의 주요 내용이다.
문 대행은 이 같은 보고서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며 ‘부족한 점을 보완한 뒤 공개하자’고 했다. 그러나 5일 뒤 문성근 대행체제가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바뀌면서 보고서는 ‘유실’됐다. ‘유실됐다’는 것은 문 대행의 비서실장을 지낸 최민희 의원이 민주당 워크숍에서 한 해명이고, 당내 일각에서는 ‘은폐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