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호

“고비용-온실가스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친환경 아스콘 ‘그린시스템’ 공법 개발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3-04-19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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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비용-온실가스 두 마리 토끼 잡는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비포장도로엔 전국적으로 검은색 아스팔트가 깔리면서 ‘신작로(新作路)’ 전성시대가 열렸다. 곳곳에 신작로가 들어서면서 자동차가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모습은 빛바랜 ‘대한늬우스’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이 됐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는 대한민국 근대화, 산업화의 상징과도 같다.

    2000년대 들어 아스팔트 포장에 친환경 공법이 더해졌다. 폐(廢)아스콘(아스콘은 ‘아스팔트 콘크리트’의 준말)을 다시 사용하는 순환골재 시스템이 도입돼 폐아스콘 매립에 따른 토양오염을 획기적으로 줄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폐아스콘을 재활용하면 석분과 골재 등 원자재 구매 부담이 줄어 원가절감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최근에는 폐아스콘 재생에서 한발 더 나아가 ‘포밍’(거품) 기술을 아스콘 제조공정에 적용, 연료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크게 줄이는 신기술도 개발됐다.

    선박 도장(塗裝) 기술에서 착안

    채포기 영종산업 대표는 폐아스콘 활용 및 포밍 기법을 접목해 아스팔트 제조공법을 혁신하고 있다. 4월 1일 울산시 울주군에 있는 영종산업에서 채 대표를 만났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에 너털웃음이 인상적인 그는 걸려온 휴대전화를 모두 스피커폰으로 받을 만큼 거리낌 없이 화통한 성격이었다.

    ▼ 도로에 깔린 아스팔트를 무심코 봐왔는데, 제조과정에 어떤 신기술이 활용됐습니까.



    “우리가 특허 받은 게 폼드 아스팔트(Foamed Asphalt)라는 겁니다. 아스팔트 까는 것 봤죠? 골재와 아스팔트를 섞어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혼합물을 도로에 까는데, 가열된 아스팔트에 물을 분사하면 거품이 생기거든요. 그러면 접촉면이 넓어져 아스팔트가 (골재에) 고르게 입혀집니다. 그게 기술인 거죠.”

    일반적으로 아스팔트 콘크리트는 고온으로 가열한 아스팔트에 골재를 섞어 만든다. 영종산업에서 특허를 받은 폼드 아스팔트 제조공법은 가열한 아스팔트에 물을 고압으로 분사해 아스팔트 거품을 먼저 만들고, 여기에 골재를 넣어 섞는다. 물을 분사해 만들어진 아스팔트 거품은 접촉 면적을 확대하기 때문에 골재에 균일하게 아스팔트를 입히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포트 홀’도 줄어든다. 포트 홀은 포장 도로 표면의 조그만 구멍인데, 시공할 때 콘크리트가 골고루 입혀지지 않아 결합력이 떨어진 탓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폼드 아스팔트는 골고루 잘 섞이기 때문에 포트 홀이 생길 염려가 거의 없다고 한다.

    채 대표는 인터뷰 도중에 폼드 아스팔트 제조과정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줬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에 물을 분사하니 부글부글 끓는 폼드 아스팔트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골재를 넣은 뒤 ‘더블 배럴’이라는 통에서 골고루 섞어 혼합물을 만들었다. 단순한 공정 같지만 끈적끈적한 아스팔트에 고압으로 물을 뿌려 거품을 일으킴으로써 표면적을 넓히는 것이 핵심기술인 듯했다.

    ▼ 폼드 아스팔트 제조공법은 채 대표께서 직접 개발한 건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더블 배럴은 미국 회사(Astec社)에서 들여왔어요. 우리나라 아스콘 공장들의 제조과정은 대개 컨테이너 박스처럼 만들어져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섞이는 구조로 돼 있어요. 그에 비해 더블 배럴은 이중 구조의 원통형으로 서로 맞물려 반대로 돌면서 섞으니까 더 잘 섞이고, 한꺼번에 많은 양의 아스콘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핵심기술은 ‘그린시스템’입니다. 아스팔트에 고압으로 물을 뿌려 거품을 만들어주는 장치죠. 이것도 기존에 나와 있던 겁니다. 조선소에서 배를 건조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선체에 도장을 할 때도 이 장치를 씁니다. 거품을 일으켜 표면적을 넓히면 페인트가 더 곱게 입혀지니까요. 이처럼 다른 분야의 산업현장에서 사용하던 기술을 우리가 아스콘 제조공법에 처음 도입한 겁니다.”

    ▼ 그렇다면 특허를 받은 기술은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입니까.

    “그린시스템을 장착하더라도 최적의 거품을 만들어내는 게 관건입니다. 물을 어느 정도 압력으로 얼마만큼 뿌려줘야 하는지를 우리가 알아낸 거예요. 너무 세게 뿌리거나 너무 약하게 뿌리면 거품이 나지 않습니다. 물의 양도 중요해요. 물의 양이 너무 많거나 적으면 거품도 잘 안 나지만, 아스팔트가 골재에 고르게 묻지 않아요. 그 황금비율을 알아내려고 수백, 수천 번의 시험을 거쳤습니다.”

    “정부가 인정한 친환경 공법”

    ▼ 기존 제조공정에 그린시스템을 들여와도 같은 효과를 냅니까.

    “아스팔트 거품을 발생시켜 아스콘을 만들면 품질이 획기적으로 좋아집니다. 더블 배럴을 사용하면 더 좋겠지만, 더블 배럴 기계 1대 설치하는 데 10억 원 정도가 드는 게 문제죠. 기존 아스콘 공장에서 더블 배럴 없이 그린시스템만 채택해도 상당한 수준의 폼드 아스팔트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 그린시스템 설치 비용은 어느 정도인가요.

    “국내에서 제작하려면 3억~4억 원, 수입해서 설치하면 1억 원쯤 듭니다. 우리나라엔 그린시스템이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기계를 깎아서 만들어야 해요. 제작단가가 그만큼 높아지죠.”

    ▼ 폼드 아스팔트 제조공법의 또 다른 장점이라면.

    “아스팔트 거품 특성을 이용하면 낮은 온도에서 아스팔트를 혼합할 수 있습니다. 보통 아스팔트 혼합물을 제조할 때 170도까지 아스팔트를 가열하는데, 폼드 아스팔트는 이보다 20~30도 낮은 온도에서도 가능합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아스콘을 만든다고 ‘중온 아스콘’이라고 하는데, 낮아진 온도만큼 연료비가 적게 들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줄어듭니다. 친환경 아스콘인 거죠.”

    “고비용-온실가스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중온 폼드 아스콘 제조의 핵심기술 ‘그린시스템’.

    ▼ 중온 아스콘의 내구성이 고온 아스콘보다 떨어지진 않나요.

    “여러 차례 실험을 통해 품질에 문제가 없음을 입증했습니다. 국가에서 인증받은 신기술입니다. 검증됐으니 믿고 쓰셔도 좋습니다.”

    영종산업이 개발한 ‘개질재 주입장치를 이용한 중온 폼드 개질아스팔트 혼합물 제조공법’은 지난해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로부터 신기술 지정을 받았다. 이 기술은 중온화 장치(포밍 장치)가 설치된 아스팔트 혼합물 제조플랜트에 고분자 개질첨가재 주입 장치를 이용해 외부 드럼에 개질첨가제를 주입, 골재 및 폼드 아스팔트와 혼합함으로써 중온 폼드 개질아스팔트 혼합물을 생산하는 공법이다. 시공은 ①규격 골재를 배합설계에 맞게 계량해 혼합 드럼에 투입 ②약 150도로 가열된 아스팔트에 상온 상태의 물을 분사해 아스팔트 중온화(포밍) ③개질첨가재 투입 ④재료 혼합 ⑤아스팔트 혼합물 출하 ⑥현장 시공 순으로 이뤄진다.

    신기술을 이용한 공법은 기존 가열 아스팔트 혼합물보다 온도가 낮아 포설(鋪設) 및 다짐 작업이 용이하고, 양생시간이 적게 소요돼 도로에 아스팔트를 포장할 때 교통통제 시간이 단축된다.

    “우리나라 아스콘 포장 발주처는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이 전체의 70~80%를 차지합니다. 중온 폼드 아스팔트로 시공하면 이런 공공예산도 절감할 수 있고, 온실가스도 감축할 수 있습니다. 아스콘 업체도 연료비가 적게 드니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죠. 도로포장 공사에 투입되는 근로자도 고온과 유해물질에 덜 노출되기 때문에 그만큼 안전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廢아스콘 재활용 이점

    “고비용-온실가스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재활용을 위한 폐아스콘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 신기술을 개발한 채 대표 때문에 다른 아스콘 업체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겠네요.

    “신기술을 개발했다고 우리에게 무슨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닙니다. 아스콘의 특성상,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혼합물이 식지 않을 정도의 이동거리에서만 도로포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몇몇 사람이 독점적으로 이 기술을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중온 폼드 아스팔트 제조공법을 도입하면 사업주는 연료비를 30% 가까이 절감할 수 있습니다. 생산단가가 낮아지면 발주처는 그만큼 예산을 절감할 수 있고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그린시스템이 널리 활용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기존 업체들도 포밍할 수 있는 그린시스템만 달면 누구든 중온 폼드 아스팔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공법이 널리 보급되진 않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행정체계에선 신기술이나 신공법을 적용하려고 하면 담당자들이 ‘검증이 안됐다’며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발 초기엔 어디에서도 중온 폼드 아스콘을 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기술로 포장해서 문제가 생기면 기존 공법으로 다시 포장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그제야 ‘그럼 한번 해보자’는 반응이 나오더군요. 울산에서는 이미 몇 차례 시공을 통해 그 효과가 입증됐습니다. 검증이 끝났으니 전국 지자체 어디에서든 안심하고 쓰셔도 된다고 자신합니다.”

    채포기 대표가 물을 사용한 아스팔트 중온화 신기술을 개발하기 이전까지 국내에선 주로 화학적 첨가제를 넣어 중온 아스콘을 생산했다. 물을 이용하는 채 대표의 신기술을 적용하면 화학적 중온화 방식에 비해 1t당 생산단가를 3000원 가까이 낮출 수 있다고 한다.

    ▼ 폐아스콘을 재활용하는 공법도 선도적으로 도입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아스콘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폐아스콘 처리업을 했습니다. 도로를 새로 포장하려면 기존 아스콘을 걷어내지 않습니까. 그걸 모아다 깨서 매립했는데, 그 일을 하다보니 기름투성이 아스콘을 땅에 묻으면 토양오염 우려가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한편으로는 자갈이 몇 년 지났다고 성질이 변하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폐아스콘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했어요. 울산대 이병규 교수께 문의했더니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폐아스콘을 재생해 사용한다고 하더군요.

    그후 재생 아스콘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폐자원을 활용하면 원가도 낮추고, 덤으로 온실가스도 감축할 수 있어요. 재생 아스콘을 쓰면 낮은 온도에서도 혼합할 수 있으니 원료비도 줄일 수 있어요. 폐아스콘에는 골재에 이미 아스팔트가 섞여 있기 때문에 그걸 녹이기만 하면 되거든요. 그러니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도 혼합이 잘되죠.”

    순환골재 사용률 높여

    영종산업이 들어선 울주군 현장 한 켠에는 폐아스콘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포클레인이 잘게 부순 폐아스콘을 쉼없이 컨베이어벨트로 옮겼다.

    “순환골재(폐아스콘을 부순 골재)를 써도 한꺼번에 많은 양을 사용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중온 폼드 공법을 사용하면 순환골재 사용 비율을 높일 수 있어요. 생산원가도 절감하고 온실가스까지 감축할 수 있는 그린시스템이 하루빨리 전국 아스콘 사업장에 도입됐으면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창조경제’가 우리 경제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됐다. 창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지속가능한 경제구조를 만들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이 네 글자에 담겨 있다. 그러나 과거 없는 현재가 없듯,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 폐아스콘 재생과 중온 폼드 아스팔트 공법으로 연료비와 온실가스 감축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한 채 대표의 노력이 국내 아스팔트 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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