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5월 일부 언론은 탈북 공학박사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해킹 능력에 대해 짤막하게 보도한 바 있다. 때마침 국회·원자력연구소·국방연구원 등 주요 국가기관이 해킹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 북한의 해킹 능력에 대한 관심도를 높였다.
그즈음 북한 해커 부대가 청와대를 공격한다는 내용의 가상소설까지 나왔다. 건국대 허만형 교수가 펴낸 ‘유니파이’는 북한 해커 부대의 활약상과 함께 남북한 넷(Net)세대가 힘을 합해 한반도의 전산망을 일시 마비시킨 뒤 휴전선 철조망을 허물어 통일을 이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흥미진진하지만 ‘황당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지난 6월 국군기무사령부와 고려대·한국정보보호진흥원이 공동으로 개최한 ‘2005년 국방정보보호 컨퍼런스’ 주제 발표문에서 국방과학연구소(ADD) 변재정 박사는 “북한의 정보전 능력이 미군 태평양사령부 지휘통제소와 미 본토 전력망에 피해를 줄 수준”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해커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처음에는 학계와 국내에서 활동하는 해커를 중심으로 취재했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것 이상의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 북한의 컴퓨터공학 박사가 지난해 탈북해 지금 서울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확인해보니 지난해 2월 북한을 탈출한 김철수(45·가명) 전 북한컴퓨터기술대학 교수였다.
“만납시다”
기자는 여러 정보기관을 통해 김 교수가 어디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확인했다. 그는 북한연구소에서는 비상근으로, 대학에선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문제는 연락처였다. 수소문 끝에 서울 S아파트에 산다는 것을 알아냈다.
아파트 주민 중 한 사람은 “항상 가족과 함께 다니더라”고 전했다. 정보기관에 알아보니 지난 5월, 그의 아내와 딸도 북한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어렵게 알아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김 교수는 “함부로 만날 수 없다”고 했다. 기자는 연락처를 알아내는 데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털어놓으며 거듭 만남을 청했다. 그러기를 며칠. 마침내 수화기 너머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납시다.”
10월10일 오전 10시. 김 교수를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났다. 167cm 정도의 자그마한 키에 다부진 몸.
“별 볼일 없는 저를 힘들게 찾아내셨다니…감동해 나왔습니다.”
“북한은 해킹에 딱 맞는 나라”
인터뷰는 호텔 내 비즈니스룸에서 이뤄졌다. 탈북자와 북한의 해커 부대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이니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룸에 들어서자 김 교수는 다짜고짜 “조사실 같네요. 저를 조사하는 건 아니겠죠?”라고 툭 던졌다.
-한국에 들어와 오랫동안 조사를 받았나 봐요.
“그렇진 않았어요. 북한에 대해 알려주는 정도였습니다.”
-우리 정보기관에서 북한에 대해 거의 다 알고 있을 텐데요.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북한 해커 부대 얘기를 하니 긴가민가하던데요. (알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한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