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반고등어는 늦은 저녁 달동네 좁은 골목길을 오르는 중년의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만큼 서민적인 생선이다. 영양이 풍부해 ‘바다의 보리’로 부르기도 한다. 그 자반고등어가 얼큰하고 시원한 무를 만난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1975년 김일 문화체육관 1기생으로 레슬링을 시작한 이씨가 합숙훈련을 할 때의 일이다. 지금이야 국내 레슬링계의 거목이지만 당시엔 새카만 막내였다. 음식 준비나 빨래는 당연히 이씨 동기들의 몫이었다. 이씨의 동기는 김일의 친동생인 김광식, ‘역발산’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양승희 그리고 임대수 등이었다.
눈 오는 추운 겨울 어느 날, 선배들이 정신교육을 시킨다며 이씨에게 양말은 고사하고 슬리퍼도 신지 않은 맨발로 자반고등어를 사오라고 했다. ‘하늘’같은 선배가 시키면 ‘무조건 복종’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다. 그게 싫으면 레슬링을 그만둬야 했다.
이를 악물고 자반고등어를 사와서 조림을 만들었다. 옛날 어머니가 해주시던 기억도 나고, 시장 아주머니에게 배운 것도 있고 해서 한번 만들어본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그렇게 호랑이같이 무섭던 선배들이 자반고등어조림 앞에서 무너졌다. 힘든 훈련 속에서 그나마 먹는 게 낙이던 때의 일이다.
이씨는 꼬박 2년을 그렇게 보냈다. 그리고 1977년 장충체육관에서 일본 선수 오니다와 드디어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이씨는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지고 말았다. 그가 짜릿한 첫 승리의 맛을 본 것은 그로부터 다시 20번을 내리 패배한 뒤였다. 그렇게 그의 레슬링 인생은 시작됐다.
당시 운동을 했다면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이씨의 집안은 그리 가난하지 않았다. 고향 충남 천안 동면에서 어머니는 농사도 짓고 시장에서 포목가게도 운영했다. 그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어머니 혼자서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가계를 이끌었다.
이씨는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를 따라 서울 이문동으로 이사한다. 그의 어머니도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들이 운동보다는 공부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이씨의 마음은 이미 오래 전부터 레슬링에 대한 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TV에서 본 당대 최고의 프로레슬러 김일의 포효가 어린 그의 영혼을 사로잡아버린 것이다.
그후 그는 태권도, 합기도, 유도 등 닥치는 대로 운동을 했고, 어느 날 신문에 실린 ‘김일 문화체육관 1기생 모집’ 광고는 마치 운명처럼 그를 체육관으로 이끌었다.
그로부터 꼭 30년이 지난 지금 이씨는 대한종합격투기협회 회장 겸 한국프로레슬링연맹 대표를 맡고 있다. 선문대 체육학과 겸임교수로 1주일에 한 번 강의도 나가고, 경기도 부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이왕표 스포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스포츠센터 회원은 1000여 명. 소탈한 성격 덕분에 ‘아줌마 팬’도 적지 않다고 한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한 그는 매일 아침 6시부터 12시까지 운동을 한다. 젊은 시절엔 그냥 해야할 것 같아서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운동은 그에게 권리가 아닌 의무가 됐다. 한국 프로레슬링의 화려한 부활을 위해….
자반고등어조림에서 가장 중요한 부재료는 무다. 먼저 무를 1.5~2cm의 두께로 큼직하게 잘라서 냄비 바닥에 깐다. 그 위에 고추장과 다진 마늘, 간장을 1:1:3의 비율로 섞어 만든 양념장을 골고루 뿌린다. 그리고 하루 전에 내장과 지느러미, 머리 등을 잘라내고 다듬어서 소금에 재워둔 자반고등어를 올린다.
그 위에 청양고추를 썰어 얹고, 고춧가루 2큰술과 들기름을 살짝 뿌린다. 들기름은 생선의 비린내를 없애고, 식중독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그 다음 무가 충분히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푹 끓인다. 이때 물이 너무 적으면 무가 익기도 전에 물이 졸아 탈 수 있고, 물이 너무 많으면 맛이 싱거워질 수 있는 만큼 물 조절이 중요하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파를 어슷썰기로 썰어넣고 한소끔 끓이면 요리는 끝난다.
흔히 간장게장을 ‘밥도둑’이라고 하지만, 얼큰하게 간이 밴 무와 매콤짭짤한 자반고등어조림에 비하면 좀도둑이다. 이씨는 자신이 직접 만든 자반고등어조림에 밥 한 공기 뚝딱 먹어치우곤 곧바로 자리를 떴다.
이씨는 요즘 이래저래 바쁘다. 다른 일도 많지만, 그에게 당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침체된 한국 프로레슬링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국내 프로레슬링이 침체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스타의 부재, 그리고 기술과 실력의 부족이다. 또 운영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것도 한 원인이다. 얼마 전 서울 강남의 레스토랑식 격투장에서 경기 중 선수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라는 것. 이씨는 격투기가 ‘술집 문화’로 자리잡아가는 것을 보고 무도(武道)가 허물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게 됐다. 그래서 그는 시합이 있을 때마다 다짐한다.
“레슬링은 제 인생이에요. 후회보다는 나름의 보람을 갖고 살아왔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명감과 의무감이 들더군요. 레슬링의 화려한 부활을 위해 힘이 남아 있는 한 결코 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