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호

고통 없는 세상의 덫 ‘무통문명’

  • 장석주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입력2005-11-11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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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 없는 세상의 덫 ‘무통문명’

    ‘무통문명’ 모리오카 마사히로 지음/ 이창익·조성윤 옮김/모멘트

    고통없는 세상은 인류의 오랜 꿈이다. 고통이 잔인하고 야비하며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이 신체적 징벌은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무통(無痛)문명’을 하나의 병리 현상이자 악몽이라고 단정한다.

    인류 역사 내내 사람을 괴롭혀온 고통을 문명사회가 박멸해야 할 최대의 표적으로 삼은 것은 일견 옳은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고통을 헌신짝처럼 버린 뒤 ‘안전, 쾌락, 안락함, 자극’을 얻었다. 하지만 무통문명을 지향하는 세계에서는 진정한 고통이나 진정한 기쁨이 없다. 진정한 고통을 대신해 애초부터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수준의 모험과 역경을 추구하고, 진정한 기쁨 대신에 쾌락과 자극을 추구한다.

    고통을 근본적으로 배제하는 사회에서는 조건 없는 사랑과 근원적 안도감도 함께 사라진다. 무통문명을 지향하는 사상과 철학 그리고 고통을 없애는 갖가지 장치가 생명, 사회, 생활, 내면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든다. 우리는 무통문명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무통문명이란 거대한 전환의 흐름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인류는 이미 무통문명의 안락함에 깊이 빠져 있다.

    무통문명의 성장 동력

    무통문명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모든 형태의 고통을 배제하는 문명이다. 자연 환경에서는 예기치 않은 죽음이나 고통이 배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통이 없고 쾌락과 쾌적함이 넘치는 환경을 최적화된 삶의 환경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고통을 배제하고 죽음을 관리할 수 있는 인공 환경을 만든다.



    하지만 이 인공 환경 속에서 인간은 ‘자기가축화’라는 질병을 얻는다. 그 여덟 가지 징후를 보자.

    첫째, 인공적인 환경. 사람은 일의 능률과 삶의 쾌적함을 높이기 위해 인공 환경을 만든다. 밤이 되어도 조명이 환하게 밝혀진 이 인공 환경은 닭의 산란을 위해 24시간 내내 불을 켜두는 닭장과 비슷하다. 둘째, 식료품의 자동공급.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쉽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식품 재료나 제품을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 셋째, 자연의 위협에 대한 안전한 대처. 넷째, 생식의 관리. 인공수정, 체외수정, 불임수술의 방법으로 생식 과정에 개입하고, 다섯째, 우생학 이론에 따라 생명의 질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선택적 중절이나 유전자 진단을 통해 질이 떨어지는 생명체를 솎아낸다. 여섯째, 신체 형태의 변화. 뼈의 수가 변화하고, 성형술로 얼굴 형태와 체형까지 바꾼다. 일곱째, 죽음에 대한 완벽한 관리. 의료기술의 발달로 예기치 않은 죽음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죽음의 시기와 방법을 인간 스스로 결정한다. 여덟째, 안정과 쾌락을 제공하는 사회 시스템에 자발적으로 속박당한다.

    인류가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한다면 한정된 지구 자원은 고갈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은 지금의 생활수준과 안락함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버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인간의 자기가축화를 증명하는 유력한 징표다.

    무통문명의 성장 동력은 신체적 욕망이다. 신체적 욕망은 다섯 가지 측면으로 범주화된다. 첫째, 쾌락을 찾고 고통을 피한다. 둘째, 현상 유지와 안정을 추구한다. 셋째, 자신의 기득권을 확대 증식한다. 넷째, 타인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다섯째, 인생·생명·자연을 통제하고 관리한다.

    신체적 욕망은 무자각·무분별한 욕망이다. 개체의 편의와 안전, 쾌락을 우선 가치로 추구하며, 이를 획득하려는 욕망, 포식하려는 욕망에 따라 사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무한대로 자기증식하려는 이 신체적 욕망의 바탕 위에 세워졌다. 그 심층에 자본주의 체제가 내면화한 포식(捕食)의 연쇄는 ‘나의 즐거움과 생명을 위해서 너의 즐거움과 생명은 희생될 수도 있다’는 사고에 바탕을 둔다. 타자의 존재론적 지위를 ‘나’의 그것에 종속된 하위 가치의 범주에 두는 것이다. 무통화라는 형질을 추구하는 이 현대문명의 진화가 끝내 닿을 종착점은 과연 어디인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을 없애는 이들 장치가 사회 구석구석에 온통 둘러쳐지고 개인 속으로 내면화함에 따라 사회 전체의 무통화가 진행되고, 그 속에 사는 인간들은 고통에 의해 자기를 붕괴시키는 일 없이 쾌적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무통문명은 이 무통화 작업을 세포의 대사 작용처럼 자동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무통문명의 내부에서는 자기를 붕괴시킬지도 모르는 진짜 고통은 제거되거나 내면화하며, 인간은 신체적 욕망의 함정에 빠져 생명을 서서히 마비시켜 가는 것이다.”

    고통과 해프닝의 배제

    이 책은 고통의 유의미성에 대한 탐구이자, 무통문명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문이다. 사람들은 쾌락을 찾고 고통을 피한다. 고통을 회피함으로써 사람은 신체적 욕망에 예속되는데, 안전·쾌적함을 얻는 대가로 기꺼이 사회 시스템과 속박관계를 맺는다.

    신체의 필요와 욕망에만 따를 때 인간은 가축과 다를 바 없다. 신체 욕망의 끝없는 확장의 종착지는 자기가축화의 심화다.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음식과 안전보장의 대가로 축사(畜舍)에 자발적으로 갇힌 돼지가 되는 것이다. 이 은유의 맥락에서 축사는 무통문명이다. 사람들은 고통을 경감하며 배제하는 문명의 진화, 즉 축사를 기꺼이 선택한다.

    무통문명은 ‘고통과 해프닝,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의 배제’를 바탕으로 성립한다. 무통문명을 추구하는 사회는 첨단기술을 이용해 예방적 무통화를 시스템으로 구축한다. 예방적 무통화의 한 예가 태아의 유전적 장애를 진단해서 건강한 아이만 선택적으로 출산하게 하는 것이다. 장애아의 출산으로 인해 빚어지는 고통을 미리 피해버리는 것이다. 생명의 질(質)을 검사하고 선택적으로 출산하자는 사상과 행동을 저자는 ‘생명의 품질관리학’이라고 부른다. 모든 질병과 죽음은 그 ‘생명의 품질관리학’의 관리를 받는다.

    무통문명은 자연을 예측 가능한 틀 안에 가두고 이중으로 관리한다. 하천과 바다, 자연 경관마저 인간의 기술로 교묘하게 관리된다. 무통문명이 일궈낸 ‘기술의 자연화’는 인공 기술이 마치 자연의 행위로 느껴지게 한다. 머지않아 개발될, 기술의 흔적을 지운 인공소재와 인간의 세포를 결합시킨 혼성 인공 장기(臟器)는 이물질이 아니라 몸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기술은 인간의 몸 안에서도 자연화로 작동하며 예기치 않은 죽음을 통제해서 인간의 수명마저 관리한다.

    자기가축화에 저항하는 길

    무통문명이 우리에게 주겠다고 약속하는 안전과 쾌락, 고통 없는 세상은 마약이다. 그것에 중독될 때 우리는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나’의 고통에 대해서, 그리고 타자의 고통에 대해서 무감각해질 때 결국 우리는 고통에 대한 총체적인 지각 불가능의 상태에 빠진다. 질병에 따른 고통은 의학 처방으로 줄이고, ‘나의 죽음’과 ‘죽음의 공포’에 따른 고통조차 신앙이나 연애, 성애, 마약 따위에 의지해 인위적으로 없애버린다.

    문명화와 사회복지의 이상은 예기치 않은 죽음의 철저한 배제다. 죽음조차 철저하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죽음은 죽음에 이르는 태도에 대한 가능성을 갖고 견디며 빠져나가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죽음의 고통을 견디지 않고 생명의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생략된 채 무통화의 시스템으로 도망가는 것은 고통을 통제하고 배제하는 문명의 눈가림 구조 속으로 숨는 것이다. 그것은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는 것이다. 무통문명이 완성된 세계에서 사람들은 모두 욕망충족기계가 될 수밖에 없다.

    무통문명의 궁극은 모든 인간을 자기가축화로 내몰고 끝내 파국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무통문명의 대안은 무엇인가. 신체적 욕망을 해체하고 그 자리를 생명의 욕망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체 욕망의 에너지를 생명 욕망의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다. 타자의 포식을 통한 자기증식의 노력을 즉각 포기하고, 무통문명이 이룩한 일체의 기득권을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무통화 문명의 격류에서 빠져나오는 길이다.

    고통 속에서 생명의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생겨나고, 그 기반 위에서 인류의 모든 예술과 철학, 정신적 유산이 만들어졌다. 우리를 둘러싼 무통화의 덫을 투명하게 인식하고 그것과 싸우려는 것이 저열한 욕망의 무한복제 속에 자기를 가두는 자기가축화에 저항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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