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호

우울증 新치료법 ‘웰니스 프로그램’

식단·체중·생활습관 개선으로 ‘웰빙 복귀’ 유도

  • 황태연 용인정신병원 지역정신보건부장

    입력2005-10-26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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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트레스 공화국’이라 할 만큼 바삐 돌아가는 세상. 우울증, 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는 늘어만 간다. 하지만 그간의 치료는 증상 개선에만 머무는 한계가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환자의 정신은 물론 신체 건강까지 추슬러 삶의 질을 높이려는 ‘웰니스 프로그램’이 새로운 치료법으로 최근 각광받고 있다.
    우울증 新치료법 ‘웰니스 프로그램’

    웰니스 프로그램은 교육 대상자의 자발적 참여를 중요시한다.

    정신과에서 다루는 질환 중 대표적인 것이 우울증과 조울증, 정신분열병이다. 그 중에서도 우울증은 평생 유병률이 15%로 매우 흔한 정신질환. 그래서 흔히 ‘마음의 감기’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누구나 걸릴 수 있을 만큼 흔하지만 치료를 잘하면 회복도 잘 된다는 뜻이다.

    한편으론 그만큼 이 질환의 사회·경제적 부담도 크다는 의미인데,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우울증의 질병 부담은 계속 늘어 2020년엔 모든 질병 가운데 2위를 차지할 전망이다. 미국에선 매년 1700만명이 우울증에 걸린다고 한다. 2001년 우리나라의 역학조사에서는 주요 우울장애의 평생 유병률이 3.37%로 나타났다.

    실제로 우울증은 고혈압, 당뇨병, 관절염, 요통과 같은 만성질환보다 한 개인의 사회적·신체적 안녕(well-being)을 더 손상시킨다.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도 한다. 1990년 미국에선 장기 결근, 생산성 상실, 자살로 인한 조기 사망 등의 간접비용으로 313억달러, 약물치료 등의 직접비용으로 124억달러 해서 모두 437억달러가 우울증 때문에 쓰였다고 한다. 우울증 환자 10명 중 9명이 우울증 이외의 병으로 진료를 받으며, 여기에 드는 비용이 전체 치료비용의 약 70%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최근 통계청에서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는 충격적 보고를 했는데, 자살의 원인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없지만 외국의 통계에서는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 등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이 전체 자살의 약 70%를 넘는다고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우울증에 대한 불충분한 치료는 실제 공공보건상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중 홍보 및 질환의 조기발견 및 치료가 시급하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



    정신질환을 약물로 치료한다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과거 프로이트에 의해 보편화한, 긴 의자를 사용한 정신분석 치료나 면담 (혹은 정신) 치료 등이 정신과 치료를 대변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분자생물학과 더불어 발전한 현대 정신의학은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이 인간의 감정이나 사고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새로이 밝혀내면서 정신질환을 ‘마음의 병’이라기보다는 ‘뇌의 병’으로 정의하고, 생물학적 치료에 많은 발전을 이뤄왔다.

    1950년대에 클로르프로마진이 처음으로 정신분열병 환자의 치료에 사용되면서 정신병적 증상의 호전과 함께 재발률이 크게 감소하고 퇴원한 환자들이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사례가 늘자 이후 여러 가지 항우울제와 기분조절제, 항정신병 약물이 개발되어 치료의 혁신을 가져왔다. 임상 연구에서 우울증이나 정신분열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정신치료와 약물치료를 각각 시행한 결과 약물치료의 효과가 탁월하다는 결과를 얻었고, 현재는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표적인 만성 정신질환인 정신분열병에 대한 약물치료로는 클로르프로마진 이후 개발된 전형적인 항정신병 약물 혹은 도파민 길항제가 사용됐다. 전형성 항정신병 약물은 적정 용량을 충분한 기간 사용해도 20∼30%의 환자에서는 치료반응이 보이지 않고, 무감동, 무의욕, 감정둔마(感情鈍麻), 사회적 위축과 같은 음성 증상에서도 효과가 떨어진다. 또한 부작용이 많아 환자들이 약물 복용을 중단해 재발률을 높이는 원인이 됐다.

    이에 따라 부작용을 최소화한 새로운 약물이 개발돼 치료에 저항적인 정신분열병 환자에게서 뛰어난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알려진 이후 이와 유사한 새로운 비전형성 항정신병 약물이 개발돼 치료 성과를 올리고 있으며, 재발률도 낮춰 많은 환자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이 같은 효과에 대한 홍보 부족, 정신과 약물이 중독을 일으킨다는 오해 등이 환자 치료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키웠다. 이로 인해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치료를 지연, 중단해 삶의 질과 예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울증 新치료법 ‘웰니스 프로그램’

    웰니스 일기장.

    우울증 혹은 정신분열병 환자 대부분이 약물치료를 받고 정신질환에서 회복되지만, 여전히 상당수 환자는 치료 후에도 일부 증상이 지속되는가 하면 재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런 환자들이 자신의 증상을 스스로 인지하고, 약을 왜 복용하는지 이해하면서 자신의 질병을 관리하도록 돕는 것이 바로 재활치료다.

    정신분열병 환자에 대한 약물 치료의 목적은 의학적 모델에 기초해 증상을 경감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잔여 증상에도 불구하고 사회 복귀나 기능 회복을 주요 목표로 삼는 정신사회재활 분야에서 약물 치료의 목적은 단순히 증상을 경감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환자가 지역사회에서 최대한으로 제 구실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웰니스=웰빙+행복

    정신과 환자를 위한 재활의 최종 목표는 환자가 사회적 기능, 특히 직업적인 활동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정신분열병 환자의 직업 활동은 경제 생활의 안정뿐 아니라, 사회적응과 독립생활에 크게 기여한다. 또한 직업 활동을 통한 생산성과 독립성 회복은 사회와 가족의 부담이 되어온 환자의 자존심을 회복시키고, 차별이나 주위의 압력과 같은 사회적·환경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해 치료과정에 중요한 기능을 갖는다.

    최근엔 정신과 환자의 삶의 질에 관한 관심이 증가되고 있다. 삶의 질은 ‘한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주관적으로 느끼는 행복감, 자긍심, 보람, 삶의 의미 등 긍정적 정서 혹은 여러 가지 생활 측면에서 느끼는 안녕감 또는 행복감’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흡연, 운동부족, 부적절한 식사 등이 생활습관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정신과 환자의 신체적 건강에 대한 염려는 높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단순히 증상 치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게 최근 정신질환 치료의 트렌드다.

    통상 정신질환 치료에서 정신적인 증상 개선만을 위한 약물치료와 상담치료가 주로 이뤄졌으나 최근엔 ‘웰니스(Wellness) 프로그램’이라는 건강관리 프로그램이 정신과 치료에 접목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식이요법, 운동요법으로 신체 건강을 호전시키고, 인지행동요법에 의한 그룹치료 방식으로 환자의 의사표현 기능을 개선한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은 환자가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자신감과 성취감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으며, 이는 환자의 빠른 사회 복귀를 돕는다. 정신과 환자의 신체건강을 위해 마련된 웰니스 프로그램이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신속한 사회 복귀를 돕는 데 기여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웰니스(Wellness)’란 웰빙(Well-being)과 행복(Happiness)이 합쳐진 개념. 웰빙이 육체적 건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웰니스는 정신적으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웰니스 프로그램은 우울증이나 정신분열병을 앓는 정신과 환자의 영양과 건강한 생활습관의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비만관리 프로그램으로 한국릴리에서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정신과 환자에게 식단, 체중조절, 생활습관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식과 방법을 알려주는 것으로, 환자의 증상 치료와 연계되어 궁극적으로는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용인시 정신보건센터, 서울대병원, 국립정신병원, 아주대병원, 상계백병원, 은평시립병원, 경희대병원, 강남성모병원, 동작구 정신보건센터, 한양대병원, 국립나주정신병원, 계요병원, 국립부곡정신병원 등 40여 병원에서 실시 중이며, 430여 명의 환자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웰니스 프로그램의 대상자는 정신과 환자 중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체중조절이 필요한 외래 환자나 입원 환자들로, 환자 스스로 체중조절의 동기가 충분하고 자발적 참여 의지가 있는 이들이다. 참석 대상자 수는 10명 내외로,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해 교육시간 동안 대상자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은 평균 4.6kg가량 체중을 감량한 것으로 나타났다.

    11kg 빼고 대학 입학

    웰니스 프로그램은 체중조절이란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정신과 환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감량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교육 내용을 더욱 쉽고 재미있게 운영하고 시각적인 자료와 활동요법을 병행한다. 또한 그룹 내에서 교육 내용과 관련하여 환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며, 이러한 지식을 습관화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를 위해 식이와 운동에 관한 일기를 작성하게 해서 환자 개개인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체중조절과 더불어 환자가 실생활에서 경험하는 여러 가지 정서적·감정적인 부분에 대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지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 모든 것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웰니스 프로그램의 목표다.

    113kg에서 102kg으로 무려 11kg의 체중을 감량하는 데 성공한 한 프로그램 참가자는 “콜라 1.5ℓ대신 물을 마셨고, 두세 공기씩 먹던 밥도 한 공기로 줄였다”며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서인지 몰라도 웰니스 프로그램 교육을 받기 전보다 훨씬 활기찬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밝힌다. 특히 웰니스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 사이버대학에 입학해서 좋아하는 과목을 전공으로 선택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면서 자신의 사회 복귀에 대해 매우 만족해했다.

    한 웰니스 프로그램 참가자의 보호자는 12주 동안 운동과 음식에 대한 모든 지식을 알 수 있게 됐고, 이를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웰니스 프로그램은 총 12주 동안 주 1회 1시간에서 1시간30분간 교육자와 대상자가 협력하는 상호교환적인 교육과정으로 진행된다. 교육과정 동안 대상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며, 이로 인해 각자 문제점을 공유하고 지지하도록 이끌어준다. 교육자는 새로운 지식의 전달뿐 아니라 환자가 이미 갖고 있는 지식을 환자의 것으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정신과 전문의와 환자 보호자는 첫 주와 마지막 주의 교육에 참석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체중을 관리하는 방법과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다. 웰니스 프로그램의 대상자에게는 환자 워크북, 웰니스 일기장, 지식평가서, 체중측정 기록지, 포스터가 제공된다.

    환자 워크북은 영양과 건강한 생활습관, 체중조절과 운동 두 부분으로 나뉘며, 각 과정은 식생활과 운동에 관한 조언과 설명으로 구성된다. ‘웰니스 일기장’은 환자 스스로 일일 섭취 음식과 활동량을 적는 기록지로 전문의는 환자의 다음 방문일에 환자가 작성한 웰니스 일기 내용을 검토, 평가한다.

    각 교육과정의 처음과 마지막에 작성하는 지식평가서는 영양과 식이, 체중조절과 운동 등 총 37문항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며, 프로그램을 잘 수행하고 목표를 달성한 대상자의 보상기준이 된다.



    ‘체중측정 기록지’는 매 교육 시작 전 체중을 측정한 후 환자가 직접 기록하며, 초기 체중 감량에 성공한 환자를 격려하고, 환자의 목표 달성 여부를 관찰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 치료의 초점을 정신과 환자의 증상 조절에만 두는 시대는 지났다. 웰니스 프로그램은 환자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 복귀를 위한 적극적인 치료법으로 자리를 넓혀나갈 것이다.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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