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시민들이 변화를 확연히 체감할 수 있는 ‘하드웨어적인’ 업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청계천 고가도로를 허물고 물길을 낸 것이 단적인 예다. 이후 청계천은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반면 오세훈 시장이 취임 후 내세웠던 건 창의시정(市政), 공무원 기강 잡기 등 주로 소프트웨어적인 내용들이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도 “서울시장을 가급적 오래하면서 인사개혁 등 그간 바꿔놓은 서울시의 시스템을 완전히 정착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여전히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를 더 강조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오세훈판(版) 청계천’으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강 주변을 재정비해 공공의 공간으로 시민에게 되돌려주겠다는 발상은 도심 속에 청계천 물길을 새로 낸 것과 흡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오세훈의 한강’과 ‘이명박의 청계천’ 사이에는 다른 부분이 더 많다. 청계천은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 재임기간 중 재정비를 끝냈지만, 한강은 오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임기 중 완성품을 보기 어렵다. 청계천 재정비 사업도 도심 속의 생태와 환경을 고려했지만, 한강 프로젝트는 이름에 ‘르네상스’를 붙였을 정도로 생태와 환경, 문화 등 인문학적 가치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건 오 시장이 한강 프로젝트에 자신의 정치적 선전물로 활용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의미일까.
연말 분위기로 분주했던 2008년 12월29일,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만난 오 시장은 활기에 넘쳐 보였다. 기자가 2년 전 오 시장을 인터뷰했을 때 인상적으로 봤던 공약사항 추진 상황판도 한쪽 벽면을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잠깐 훑어보니 사업성과가 부진하다는 의미인 빨간 딱지는 몇 개밖에 없다. 수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한마디로 서울을 쾌적하고 매력적인 수변(水邊)도시로 재창조하는 겁니다. 한강을 서울의 중심에 놓고 모든 도시계획을 한강 중심으로 재편해나가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강이야말로 서울의 대표상품이 아닐까요? 이걸 잘 세일즈해서 ‘서울 하면 한강, 한강 하면 서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한데, 그 중심에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업이 한강이 가진 문화적, 경제적 가치를 새롭게 찾아내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프로젝트의 기본 원칙과 기조를 ‘회복과 창조’로 선정한 것도 그런 취지에서죠. 성장 일변도의 개발과정에서 훼손된 한강의 가치를 회복해서 시민들에게 돌려주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삭막한 콘크리트 호안을 녹색의 자연호안으로 바꾸는 작업은 ‘회복’에 속합니다. 반면 용산이나 마곡지구 같은 사업은 ‘창조’에 해당하고요.
프로젝트의 이름에 ‘문화부흥’을 의미하는 ‘르네상스’를 붙인 것도, 이 프로젝트가 본질적으로 단순히 한강의 외관을 바꾸거나 새로운 시설물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삶의 질 자체를 풍요롭게 할 문화를 만드는 사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강가 공원에서 가족끼리 둘러앉아 바비큐 파티를 하는 외국 도시의 풍경을 상상해보세요. 한강에는 그 같은 혜택을 누릴 하드웨어적 기반뿐 아니라 그러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소프트웨어적 기반도 필요한 겁니다.”
- 한강이 단순히 서울의 한강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부연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만.
“맞는 말씀입니다. 한강은 서울뿐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가 한 단계 도약할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세계의 젊은 예술가들이 언제부터인가 시애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적이 있을 거예요. 자동차 디자인에 열정을 가진 유능한 디자이너와 젊은이들은 바르셀로나로 모여들었죠. 그 도시들이 품고 있는 예술적 다양성이나 유서 깊은 건축문화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하드웨어적 조건들이 그들을 불러 모은 겁니다. 저는 한강도 그런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와 관광이라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바탕이 될 수 있다는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