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어이없는 것은 검찰의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결과다. 검찰은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를 어물어물 끝냈다. 적당히 덮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싶다. 검찰은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불법사찰을 지시하고 보고받았는지를 전혀 밝혀내지 못했다. 불법사찰의 내용을 은폐할 목적으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훼손한 혐의자를 기소하면서도 그가 왜, 누구의 지시를 받고 훼손했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드디스크를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철저하게 훼손한 이유가 불법사찰의 핵심내용을 숨기려는 것이란 점은 삼척동자라도 알 일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오히려 주요 관련자로 떠오른 인물에게 무혐의 면죄부만 주고 말았다. 공식라인도 아닌 별동대로 움직이면서 비민주적인 권력남용을 자행한 사건의 전모를 이렇게 덮는 것이 공정한 사회의 기준인가? 이것이 권력 가진 자, 힘 가진 자들이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인가?
언어의 참뜻이 파괴되면 소통은 불가능하다. 소통되지 않아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판에 공정사회의 담론이라고 먹힐 리 없다. 아무리 공정을 소리 높여 외친다 해도 공정을 말하는 측의 불공정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다면 ‘공정한 사회’는 코미디가 될 수밖에 없다.
MB는 “국민에 먼저 공정사회를 요구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이 말이야말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첩경이라고 본다. 권력 가진 자, 힘 있는 자, 부자들이 먼저 공정사회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실천할 때만이 대통령의 공정사회 담론은 뿌리내릴 수 있다.
어려운 일이다. 이 정권의 남은 임기 2년 반 안에 뚜렷한 성과를 거두리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더구나 공정사회로 불편해 하고 고통을 받을 수도 있는 기득권자들은 대체로 이 정권의 지지기반이다. 당장은 숨죽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이익이 침해된다면 저항이 시작될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 ‘MB의 공정사회’가 현 정권의 덫이 될 수도, 굴레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총리후보자를 포함해 3명이 탈락한 것이나, 외교통상부 장관이 딸 특채 논란으로 해임된 것 역시 상당부분 공정사회의 부메랑을 맞은 게 아니던가.
그렇게 본다면 MB는 이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국정 수행 하나하나에 공정사회 기준을 적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뿌리 깊은 관행과 뼛속 깊은 의식에서부터 자기편과의 이해충돌에 이르기까지 부딪히고 넘어야 할 장애물이 산적해 있을 것이다. 그것을 피하느라 공정을 사정(司正)으로 전환해 레임덕을 방지하는 무기로 사용하거나, 국정의 주도권을 쥐는 국면전환용으로 활용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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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위기와 장애를 극복해나가며 공정사회의 초석을 쌓는다면 MB는 그것만으로도 ‘위대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먼저 MB 자신부터 지난 2년 반을 성찰(省察)해야 하지 않을까. 집권 전반기에 과연 공정사회의 기준에 맞는 인사를 했었는지, 일방독주로 국민과의 소통에 소홀한 점은 없었는지,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비판세력의 주장은 그저 정치적 반대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4대강 사업은 결코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신념의 산물인지 등등을 겸허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성찰 없는 가치 지향은 자칫 수사(修辭)나 상징조작에 그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미 하버드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면 좋은 삶에 대한 가치를 따지고 민주주의 가치, 공동체 의식, 시민의 희생봉사, 사회적 신뢰를 키우는 등 좋은 정치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