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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복지가 좋긴 한데 세금을 더 낼 순 없고”

“복지가 좋긴 한데 세금을 더 낼 순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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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대기업의 손자, 손녀는 자기 돈 내고 (급식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손자, 손녀에게 용돈을 줘도 10만∼20만원을 줄 텐데 식비를 공짜로 해준다면 오히려 그들이 화를 낼 것이다.”

이에 대해 김종인 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뚱딴지같은 소리다.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부유층 자녀들은 보육원에 가지 않는다. 심지어 공립학교에도 안 간다. 공짜로 밥을 주려야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현실을 왜곡해 논리를 만들어내면 누구도 납득하기 어렵다. 세금 공제의 경우 부자들에게도 모두 자녀 공제를 해주고 있다. 이건 왜 선별해서 하지 않나. 건강보험과 연금도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의무교육도 헌법상 보장된 것이다. 의무교육을 하면 급식문제도 국가가 책임지고 제대로 해줘야지 부자와 빈자를 나눠 차별하면 안 된다.”(이하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발췌 인용)

김 전 의원은 노태우 정부 때 보건사회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내며 우리나라 의료보험이 뿌리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이다. 그는 한때 ‘정운찬의 정치적 멘토(조언자)’였다고 하며, 최근에는 ‘박근혜의 가정교사’라는 말도 들린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김 전 의원의 말이 좀 더 설득력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손자 손녀에게까지 무상급식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대통령의 메시지는 훨씬 간명하다. 오래 생각하고 말고 할 게 없다. 답은 쉽게 나온다. “그럴 필요는 없지요.” 결국 감성이 논리를 제압하고, 여론은 전면 무상급식 반대로 기운다.

김 전 의원은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이 주장하는 부유세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너무 나갔다. 정치인이 말을 뱉은 이상 후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부자)감세를 철회하는 게 먼저다.”



부유세는 그 용어부터 부자에 대한 징벌의 의미를 내포한 느낌을 준다. 부자들의 반감을 살 확률이 높다. 부자니까 별도로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데 흔쾌히 그러자고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중산층 이하 서민은 부자만 세금 더 낸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여론조사 결과는 당연히 부유세 찬성이다.

요즘 한국사회의 최고 의제인 ‘보편적 복지-선택적 복지 논쟁’은 대체로 이런 식의 낮은 프레임(틀)에 갇혀 있는 듯하다. 보편적이냐, 선택적이냐는 이분법부터 분열적이고 적대적이다. 한쪽은 ‘창조적 복지국가’를 내세우고, 다른 쪽은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을 경고한다.

이 대통령은 신년 특별연설에서 “한정된 국가재정으로 무차별적 혜택을 베풀고 환심을 사려는 복지 포퓰리즘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올해 전체 예산 중 복지예산의 비중과 규모는 사상최대다. 이제 우리는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말대로 올해 복지 분야 예산은 86조4000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27.8%이다. 규모와 비중 모두 역대 최고수준이다. 그러나 복지국가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복지지출이 차지한 비중은 8.9%(조세연구원 잠정추계)로 200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인 19.3%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국민소득 등에서 차이가 있는 만큼 선진국들과의 직접 비교는 무리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8000달러대였던 2006년의 공공복지지출 비중은 7.3%로 같은 국민소득대에서 북유럽(23.8%), 프랑스 독일 등 유럽대륙(22.0%), 영미(13.7%) 나라들의 2분의 1∼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대통령의 말은 틀렸다.

하지만 만날 선진국들과 복지지출 수치나 비교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특히 오랜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있는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는 참고는 될지언정 우리의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복지가 넘쳐서 문제인 나라를 두고 복지가 턱없이 부족한 우리가 “저것 봐라, 복지 하다가 나라 망한다”고 지레 호들갑을 떠는 것도 이상하다. 과잉 복지의 실패에서 미리 교훈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자칫 복지 망국론의 편향된 이데올로기만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6.1%의 경제성장률에 1인당 국민소득도 2만달러대에 복귀했다. 이 대통령이 “경제성적표가 좋았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좋은 성적표가 골고루 체감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득 불균형은 커지고, 빈부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GDP를 기준으로 기업의 소득증가율은 1990년대 연평균 4.4%에서 2000년대 25.2%로 6배가량 높아진 데 비해 가계의 소득증가율은 12.7%의 절반 수준인 6.1%로 크게 낮아졌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한 지난 4년간 한국인의 실질재산이 6분의 1이나 감소했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지난해 경제가 회복됐다고 하는데도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0.3%로 관련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1982년 이래 가장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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