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호

“복지가 좋긴 한데 세금을 더 낼 순 없고”

  • 입력2011-02-23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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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대기업의 손자, 손녀는 자기 돈 내고 (급식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손자, 손녀에게 용돈을 줘도 10만∼20만원을 줄 텐데 식비를 공짜로 해준다면 오히려 그들이 화를 낼 것이다.”

    이에 대해 김종인 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뚱딴지같은 소리다.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부유층 자녀들은 보육원에 가지 않는다. 심지어 공립학교에도 안 간다. 공짜로 밥을 주려야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현실을 왜곡해 논리를 만들어내면 누구도 납득하기 어렵다. 세금 공제의 경우 부자들에게도 모두 자녀 공제를 해주고 있다. 이건 왜 선별해서 하지 않나. 건강보험과 연금도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의무교육도 헌법상 보장된 것이다. 의무교육을 하면 급식문제도 국가가 책임지고 제대로 해줘야지 부자와 빈자를 나눠 차별하면 안 된다.”(이하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발췌 인용)

    김 전 의원은 노태우 정부 때 보건사회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내며 우리나라 의료보험이 뿌리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이다. 그는 한때 ‘정운찬의 정치적 멘토(조언자)’였다고 하며, 최근에는 ‘박근혜의 가정교사’라는 말도 들린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김 전 의원의 말이 좀 더 설득력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손자 손녀에게까지 무상급식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대통령의 메시지는 훨씬 간명하다. 오래 생각하고 말고 할 게 없다. 답은 쉽게 나온다. “그럴 필요는 없지요.” 결국 감성이 논리를 제압하고, 여론은 전면 무상급식 반대로 기운다.

    김 전 의원은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이 주장하는 부유세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너무 나갔다. 정치인이 말을 뱉은 이상 후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부자)감세를 철회하는 게 먼저다.”



    부유세는 그 용어부터 부자에 대한 징벌의 의미를 내포한 느낌을 준다. 부자들의 반감을 살 확률이 높다. 부자니까 별도로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데 흔쾌히 그러자고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중산층 이하 서민은 부자만 세금 더 낸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여론조사 결과는 당연히 부유세 찬성이다.

    요즘 한국사회의 최고 의제인 ‘보편적 복지-선택적 복지 논쟁’은 대체로 이런 식의 낮은 프레임(틀)에 갇혀 있는 듯하다. 보편적이냐, 선택적이냐는 이분법부터 분열적이고 적대적이다. 한쪽은 ‘창조적 복지국가’를 내세우고, 다른 쪽은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을 경고한다.

    이 대통령은 신년 특별연설에서 “한정된 국가재정으로 무차별적 혜택을 베풀고 환심을 사려는 복지 포퓰리즘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올해 전체 예산 중 복지예산의 비중과 규모는 사상최대다. 이제 우리는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말대로 올해 복지 분야 예산은 86조4000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27.8%이다. 규모와 비중 모두 역대 최고수준이다. 그러나 복지국가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복지지출이 차지한 비중은 8.9%(조세연구원 잠정추계)로 200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인 19.3%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국민소득 등에서 차이가 있는 만큼 선진국들과의 직접 비교는 무리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8000달러대였던 2006년의 공공복지지출 비중은 7.3%로 같은 국민소득대에서 북유럽(23.8%), 프랑스 독일 등 유럽대륙(22.0%), 영미(13.7%) 나라들의 2분의 1∼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대통령의 말은 틀렸다.

    하지만 만날 선진국들과 복지지출 수치나 비교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특히 오랜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있는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는 참고는 될지언정 우리의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복지가 넘쳐서 문제인 나라를 두고 복지가 턱없이 부족한 우리가 “저것 봐라, 복지 하다가 나라 망한다”고 지레 호들갑을 떠는 것도 이상하다. 과잉 복지의 실패에서 미리 교훈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자칫 복지 망국론의 편향된 이데올로기만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6.1%의 경제성장률에 1인당 국민소득도 2만달러대에 복귀했다. 이 대통령이 “경제성적표가 좋았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좋은 성적표가 골고루 체감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득 불균형은 커지고, 빈부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GDP를 기준으로 기업의 소득증가율은 1990년대 연평균 4.4%에서 2000년대 25.2%로 6배가량 높아진 데 비해 가계의 소득증가율은 12.7%의 절반 수준인 6.1%로 크게 낮아졌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한 지난 4년간 한국인의 실질재산이 6분의 1이나 감소했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지난해 경제가 회복됐다고 하는데도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0.3%로 관련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1982년 이래 가장 낮았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좋은 일자리야말로 성장과 분배의 두 바퀴를 함께 굴릴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다. 문제는 좋은 일자리가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비정규직, 임시직으로는 ‘최고의 복지’가 될 수 없다. 소득 양극화가 심화될 뿐이다. 이러니 출산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아이 한 명 키우는 데 월 100만원 이상 들어가고 대학 졸업할 때까지 최소 2억6000만원이 든다는데 그러고도 변변한 일자리조차 갖기 어렵다면 어느 부모가 아이를 많이 낳아 키울 용기를 내겠는가. 반면에 고령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노동력이 절대부족해지면 국가경제의 잠재성장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빈부 양극화와 저출산, 고령화가 한국사회의 미래를 좌우할 위험요인이라는 데에는 다른 의견이 없다. 따라서 복지 논쟁의 초점은 어떻게 우리 사회공동체가 위험요인에 대비하고 예방할 수 있느냐에 모아져야 한다. 그러고 보면 오세훈 서울시장이 “쥐덫 위에 놓인 공짜 치즈”라며 맹렬히 반대하는 무상급식 문제는 곁가지에 불과하다.

    복지의 본질적 문제는 복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국정철학과 복지 확대에 소요되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데 있다. 우파 성장론자들은 대체로 복지를 낭비거나 시혜의 차원으로 인식한다. 나라 곳간 형편은 생각지 않고 복지에 돈을 펑펑 쓰다가는 과거 아르헨티나나 최근의 그리스, 스페인, 일본처럼 국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남유럽 국가나 일본의 위기가 꼭 과잉복지 탓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가 있지만 선후야 어떻든 재정 안전성을 고려하지 않은 복지가 국가 위기를 불러오는 것은 분명한 만큼 틀린 지적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복지에 돈을 펑펑 썼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이들은 복지가 지나치면 오히려 가난한 이들의 노동의욕이나 재활욕구를 저하시키는 복지병(病)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또한 일리 있는 걱정이지만 낮은 복지 수준의 우리 형편에서는 생뚱맞은 얘기가 될 수 있다. 서울시내 공립 초·중·고 학생 124만8708명의 10%가 넘는 13만6451명이 점심값을 내지 못하는 현실에서 복지병 걱정은 너무 앞서가는 게 아닌가.

    김종인 전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사회가 경험한 몇 십 년 동안 고도의 압축성장 속에는 엄청난 모순이 들어 있다. 그런데 한 번도 시정해본 적이 없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두 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하는 등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있지만 사회가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양극화가 극도로 심화되고 출산율이 낮아서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추락하고 있다. 정치인이라면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경제적인 파이가 크다고 해서 일류국가가 되는 게 아니다. 경제성장과 사회 안정이 역동적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두 개를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는 “낙수효과(trickle down)는 없다”고 말한다. 부자들이 돈을 벌게 놔두면 결국 그 돈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똑똑 떨어져’ 가난한 사람도 혜택을 입는다는 가설은 실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따라서 부(富)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밑으로 끌어내려야 하고, 그 역할을 하는 게 복지국가라는 것이다. 그는 복지가 외려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편적 복지는 경제 선순환의 출발점이고 성장 정책”이라는 민주당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즉 빈곤층뿐 아니라 중산층과 서민을 아우르는 복지정책은 대다수 국민의 가계지출을 줄임으로써 가처분소득을 늘리고, 늘어난 가처분소득이 소비를 촉진하고 내수를 진작하면 투자가 확대되고 일자리가 증가하는 경제성장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국가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 모든 얘기는 말짱 헛것이 되기 십상이다. 기존 재원의 우선순위를 조정한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국민의 세 부담 증가 없이 복지 확대는 지속될 수 없다. 따라서 세 부담을 늘리지 않고 보편적 복지를 하겠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근혜 의원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도 재원계획이 구체적이지 못하면 복지담론을 선점해 정치적 이득을 취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복지가 좋긴 한데 세금을 더 낼 순 없고”
    全津雨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다수 국민은 복지를 원한다. 중산층도 미래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은 ‘위험 사회’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복지 하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면 등을 돌린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담론보다 내가 세금을 더 내면 어떤 혜택을 더 받을 수 있고 전체적으로 그것이 이익이 됨을 구체적이고 세밀한 청사진으로 납득시키는 일이다. 현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복지는 어차피 미래 권력의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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