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호

동네축구 이야기

  • 글: 고원정

    입력2003-02-04 18: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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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축구 이야기
    내 고향마을인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하귀리는 축구 열기가 높기로 소문난 곳이다. 아래로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지도 않은 코흘리개에서 위로는 머리가 히끗히끗한 중장년층 아저씨에 이르기까지 축구라고 하면 자다가도 깨어날 정도다.

    아침이면 조기축구를 하는 청년들이 공 차는 소리에 잠이 깨고, 저녁이면 주위가 어둑어둑해서 공이 보이지 않을 무렵까지 시합이 이어지곤 한다. 아무리 바쁜 농번기라 해도 잠시 짬을 내어 ‘한 게임’을 벌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동네사람들이다.

    그러니만큼 실력도 대단해서 하귀리는 제주시의 외도동, 화북동과 함께 제주 전역에서 열리는 각종 마을 대항 축구대회의 3강으로 꼽히곤 했다(솔직히 말해서 그 3강 중에서는 하귀리가 가장 승률이 낮은 편이었다).

    그런 마을 대항 축구대회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것이 바로 외도동에서 열리는 ‘8·15기념 축구대회’다. 제주시와 애월읍 팀들이 주로 참가하는 이 대회는 지금도 열리고 있는데 이미 그 연륜이 50회를 넘어섰다(요즈음도 지나가다 보면 그 주경기장이던 외도초등학교에는 어린이용 골문과 성인용 골문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우리 하귀리로서도 가장 비중을 높게 치는 대회가 바로 그 ‘외도 축구대회’다. 라이벌인 외도동의 홈에서 열리는 대회이니 더욱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8월초가 되면 벌써 마을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우선 하귀리 대표팀에 선발되려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수준이 수준인지라 고교나 대학에서 당당히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도 떨어지기 일쑤다. 자연히 연습경기가 치열해진다.

    초등학교 한구석에 있는 늙은 팽나무 그늘에는 마을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사람들이 모여 경기를 유심히 살펴본다. 골키퍼는 누가 낫고, 수비는 아무개가 역시 출중하고 공격수로는 또 누가 적당하다…. 의견이 엇갈리는 사람들끼리 목소리를 높이다 못해 멱살을 잡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지곤 한다. 며칠 동안의 설왕설래를 거쳐 결국 선수 명단이 확정된다. 대부분 20대의 혈기왕성한 청년들이지만 개중에는 마흔이 가까운 노장이나 새파란 중학생이 끼여들어서 화제가 되기도 한다.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는 선수들에게는 즉시 귀향하라는 급보가 날아간다.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대회 당일만이라도 합류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이런 선수들이야말로 초일류급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는 것이 군에 입대한 선수들의 경우다. 이들을 위해서 동네의 유지급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읍장(당시는 면장)을 만나서 소속부대로 이른바 ‘관보’를 치게 하는 것이다. 부모 중 누군가가 위독하다든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든지 하는 허위 전보가 군부대로 날아간다. 물론 불법이지만 워낙 동네사람들의 요구가 강력하니 읍장으로서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군복무중인 선수는 이렇게 조작된 관보를 받고 1주일쯤의 휴가를 얻어 귀향하게 된다. 이들이야말로 진짜 실력파들이다. 이른바 ‘관보 선수’들이다. 사정을 잘 모르는 타지 사람들도 ‘관보 선수’라는 말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관보 선수’보다 더 행세를 하는 것은 바로 ‘도 선수’다. 제주도를 대표해서 전국대회에 출전한 경력이 있는 선수를 말한다. 이번 팀에는 ‘도 선수’가 몇 명에 ‘관보 선수’가 몇 명이다…. 이것만으로 전력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팀이 모양새를 갖추면 마을의 이장이나 청년회 간부들은 가가호호를 순방하기 시작한다. 유니폼도 사고 선수들 밥도 해먹이고 하려면 경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생계가 곤란한 집이 아니면 반드시 성의 표시를 해야만 한다. 현금이 있는 사람은 현금을 내고, 아니면 쌀 한 됫박을 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 경비를 기반으로 선수들은 합숙훈련에 돌입한다. 초등학교 교실을 한 칸 빌려서 책걸상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숙소로 쓰는 것이다. 경비가 넉넉할 때에는 식당에서 밥을 대어먹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음식 솜씨 좋은 아줌마들이 번갈아가며 식사 당번을 맡는다. 운동장 한구석에 솥을 걸어놓고 해먹는 그 밥이야말로 별미요 진미가 아닐 수 없다.

    마을 처녀들에게 축구선수는 선망의 대상

    한창 나이의 청년들을 모아놓았으니 말썽이 생기지 않을 리 없다. 밤늦게까지 술타령을 하다가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동네처녀들과 어설픈 풋사랑에 빠지는 선수들도 있다. 그 처녀들에게도 축구선수들은 선망의 대상이었으니 한 대회가 끝나고 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한두 건의 스캔들이 생겨나게 마련이었다. 축구 때문에 부부가 된 경우도 결코 드물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도 팀의 임원진은 유니폼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한푼 두푼 추렴한 돈으로 충당해야 하니 제대로 된 유니폼을 맞춰 입기 어려웠다. 결국 하의는 수영팬티에 상의는 러닝셔츠를 유니폼 대신 입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거기다 매직으로 팀 이름과 백넘버를 적어 넣는다.

    이렇게 급조된 유니폼은 한 경기를 치르고 나면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번호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재질이 러닝셔츠이니만큼 얼른 빨아서 말리면 다음 경기에는 이상 없이 입고 나갈 수 있다. 영 곤란할 경우에는 새 셔츠를 하나 사오면 된다.

    그러면 축구화는? 이 점만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 시골축구대회는 아예 축구화 착용을 금지하는 게 보통이었다. 모두 축구화를 갖추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두 명만이 축구화를 신고 나서면 다른 선수들이 다치기 쉽다는 게 명분이었다.

    결국 하얀 운동화를 갖춰 신은 정도에 그치게 된다. 이 정도면 출전준비가 끝난 셈이다. 객지에 나가 있는 ‘도 선수’들도 속속 귀향하고 ‘관보 선수’도 도착해서 사기를 북돋운다. 출전 전야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돼지를 한 마리 잡게 돼 있다. 거금을 쾌척하는 독지가가 없으면 울며 겨자 먹기로 마을 이장이 부담을 해야만 한다.

    판정에 불만이면 운동장에 드러눕기도

    그렇게 잡은 돼지로 선수들은 물론 마을 사람들이 포식을 하고 나면 대회 당일이 된다. 선수단에는 박카스며 과일, 달걀 등이 들어와 쌓이고 온 마을 사람들이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대회장을 향해 떠난다.

    이틀에 걸쳐 열리는 8·15기념 외도축구대회의 참가팀은 대개 15∼16개 팀이다. 그러니만큼 90분 경기를 할 수가 없어서 전·후반 50분, 혹은 60분씩 진행하는 게 보통이다. 결승까지 올라가려면 4경기를 해야 하는데 운이 없으면 하루에 3경기를 벌이는 경우도 있다.

    이 도 축구대회의 우승후보는 늘 홈팀인 외도동과 우리 하귀리로 압축되곤 했다. 두 팀이 결승에서 만나는 것이 최상의 흥행카드지만 때로 8강전이나 4강전에서 만나 숙명의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두 팀간의 맞대결에서 이기는 팀이 사실상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었으니 늘 불꽃튀는 접전이 벌어지게 마련이었다.

    안타깝지만 내 기억으로는 4대6 정도로 우리 하귀리의 승률이 뒤졌던 것 같다. 외도동이 홈팀이었기 때문에 우리 마을 사람들은 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곤 했다. 지난 월드컵 때 이탈리아나 스페인이 그랬던 것처럼 불공정한 판정 때문에 졌다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경기가 끝난 다음에 항의하는 정도는 애교에 속한다. 경기 중 선수나 응원단이 반발하고 나서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가령 우리 하귀리 선수가 골을 넣었는데 심판이 오프 사이드를 선언했다고 치자. 당연히 선수들은 항의하고 심판들은 판정의 정확성을 강변한다. 흥분한 선수가 심판의 멱살을 잡는 일도 예사로 벌어진다. 하지만 심판은 이런 난국을 어디까지나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 흥분해서 선수를 퇴장이라도 시키는 날이면 문제가 더 커진다.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친다.

    “앉아! 앉아!”

    선수들은 경기장에 털썩 주저앉아버린다. 아예 길게 누워버리기도 한다. 중단된 경기는 물론이고 다음 경기까지 진행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심판은 물론 주최측의 임원들까지 몰려나와서 설득을 하지만 막무가내다.

    이런 과정에 오가는 말들이 험해지다 보면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는 선수들이 본부석으로 난입하는 것이다. 천막과 우승기가 찢겨나가고 트로피가 내동댕이쳐진다. 응원단까지 가세하면 마을 대항 축구대회는 마을 대항 패싸움으로 변해버린다.

    일이 이렇게 되면 경찰이 출동해야 한다. 해마다 이런 소동이 한두 차례는 벌어져야만 대회가 막을 내린다. 그러니 대회진행이 순조로울 리 없다. 마지막 경기인 결승전은 날이 어두워져 볼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치르기도 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공동우승으로 처리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사정이 이러니 마을의 유지들은 우승보다도, 큰 사고 없이 대회를 치르는 일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승기를 차지하고 돌아오면 마을은 다시 잔치판이 된다. 이번에는 돼지를 두 마리, 세 마리씩 잡고 막걸리가 한섬, 두섬씩 나누어진다. 돈깨나 있는 사람들은 이럴 때 아낌없이 호기를 부려야 한다.



    신명이 난 누군가가 장고를 메고 달려오기라도 하면 초등학교 운동장은 때아닌 춤판으로 변해버린다. 남정네들에게 뒤질세라 여인네들도 떨치고 나선다. 1년에 한 번뿐인 마을의 축제가 벌어지는 것이다. 브라질의 축구열기가 어떻고 삼바축제가 어떻다고? 우리에게도 이미 이런 열기와 축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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