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3대 핵강대국이자 300만 병력을 보유한 최대의 군사조직, 중국 인민해방군은 한반도 안보의 주요변수. 중국군의 힘과 군사전략의 향방은 향후 한국의 생존전략과 직결된다. 대만사태가 위기로 치닫고, 북핵문제가 더욱 꼬여갈 때 인민해방군의 진로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이때 우리가 취할 대응태세는?
중국은 미국 러시아에 이은 세계 3대 핵강대국이자, 세계 최대의 군사조직인 300만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대를 거느리고 있다. 급속한 경제발전에 힘입어 명실상부한 군사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 군사력의 실체와 유사시 전략구사 방향을 살펴보는 작업은 우리의 생존전략 수립에 필수적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총통선거에서 대만독립의 기치를 내건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우여곡절 끝에 재선되면서 대만사회가 극심한 혼란에 휩싸여 있다. 중국은 천 총통의 대만독립노선이 가시화할 경우 무력사용도 불사할 태세다. 오늘 중국탐험 인터뷰는 황병무(黃炳茂·64)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와 함께 고조되는 대만위기에 대한 진단과 전망을 시작으로 중국 인민해방군의 모든 것을 파헤쳐 본다.
황 교수는 중국의 군사문제에 관한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중국군사통이다. 30년 이상 중국 군사문제를 연구해오고 있어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저명하다. 황 교수의 중국군사 관련 주요저서로는 ‘신중국군사론’ ‘China Under Threat’ ‘China’s Security’ 등 다수가 있는데, 일부는 미국에서 교재로 쓰이고 있다. 황 교수는 현재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장, 한국군사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고, 중국의 인민해방군 관계자나 군사전문가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하고 있다.
-최근 대만 총통선거에서 대만독립의 목소리가 크게 표출됨에 따라 양안간에 또다시 긴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선거과정에서 나온 얘기들을 보면 2006년에 헌법을 개정하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독립선언을 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렇게 전개된다면 2008년이 주목할 만한 시기인데요, 그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지금 총통선거의 후유증이 크지 않습니까. 가장 중요한 변수는 이 후유증이 어떤 식으로 안정될 것이며, 천수이볜의 민진당 정권이 어떻게 정통성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천수이볜 정권이 불안정해지면 민진당의 독립 시나리오대로 추진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만 본성인(本省人)들의 70~80%가 중국의 통일정책인 일국양제(一國兩制)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대만독립을 추진하는 것도 반대한다는 여론이 높습니다. 현재로선 현상유지 후 서서히 독립으로 가자는 측이 우세해요.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천수이볜의 대만독립 관련 시나리오가 방금 말한 일정대로 추진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천 총통은 현상유지 쪽으로 가면서 대내적으로 사회동요를 막고 정치적인 기반을 확충하면서 대륙간 삼통(三通)을 확대해나갈 겁니다. 또 양안간 대등협상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입장에서 현상유지 중심의 대륙정책을 추진하리라 전망합니다.”
중국과 대만의 군사력
-황 교수께서는 일단 대만이 현상유지 정책을 택할 것으로 보시는데요. 그렇지 않고 적극적인 독립정책으로 나온다면 예상되는 조치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대만이 독립을 하려면 정치적으로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라든가 영토조항을 바꾸기 위한 헌법개정, 국호의 변경 등을 시도하겠지요. 지금 대만 헌법에는 중국대륙도 영토에 들어가 있는데 독립하려면 먼저 그 부분을 삭제해야 합니다. 또 국호도 변경한다면 ‘리퍼블릭 오브 타이완’으로 해야겠지요.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의 이런 행동뿐 아니라 대만사회가 분열상을 보여 내란 상태로 들어간다든지 혹은 폭동이 일어난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대만이 중국 영토의 일부이므로 이 같은 사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죠.”
-유사시 양측이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중국이 대만공격에 사용할 수 있는 지상군은 푸젠(福建)지역에 배치된 제31 집단군 7만명을 비롯해 유사시 전략예비부대와 기동부대로부터 약 25만명을 증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대만은 지상군 약 20만명과 예비군을 동원하면 40만명 수준의 침공군을 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 해군은 60여척의 잠수함을 동원해 수중봉쇄를 하고 다양한 유형의 어뢰를 주요 항로에 설치할 수 있습니다. 해양과 공중통제력을 장악하고 상륙용 주정으로 동력어선단을 구성한다면 약 40만명의 경무장 병력으로 대만과 인접도서에 대한 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면 대만 해군은 수척의 잠수함밖에 없으나 11척의 구축함과 21척의 신예 프리깃함으로 대만해협에서 중국 해군이 일방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도록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항공력 면에서 중국 공군은 수호이-27 100여대, 수호이-30 58대를 보유한 반면, 대만은 미라지-2000 57대, F-16 146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주력기 구성으로만 보면 유사시 중국 공군이 대만해협에서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기는 어렵다는 게 일반적 평가입니다.
중국이 확실히 우세를 과시할 수 있는 것은 미사일입니다. 대만을 겨냥한 490여기의 미사일 이외에도 중·단거리 미사일 110기, 잠수함 발사미사일 12기 등은 대만에 아주 위협적이에요. 대만은 이에 대항할 수 있는 미사일을 가지지 못했거든요.”
-요약하면 해·공군력은 대만이 질적으로 우세하고, 중국군은 미사일에서 상대를 압도한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앞으로 양측의 전력은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보십니까.
“말씀드린 대로 대만을 겨냥한 중국의 미사일 490기는 사실 해·공군력의 열세를 상쇄하고 대만에 대한 강압 능력을 갖자는 것이죠. 중국이 해군력과 공군력을 현재의 추세대로 증강시켜 나간다면 2008년 내지 2010년이면 역전되리라고 봅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지난번 대만총통선거와 함께 실시한 국민투표의 1번 항목이 미사일 대응능력 강화였던 겁니다. 이것은 반드시 선거전략의 일환만은 아니고 군사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세월이 가면 군사적 균형은 중국 쪽으로 기울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중국, 해·공군력에서 열세
-만약 중국과 대만 사이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어떤 양상이 전개될까요. 중국과 대만의 공격·방어 시나리오 같은 것이 있습니까.
“미국과 대만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군의 대만공격 시나리오는 대만의 수역과 항구에서 비무장 어선단에 의한 교란, 대만 근접지역에서의 무력시위, 미사일 발사 시위, 연안 소도시 점령, 봉쇄위협 및 실시, 전자충격탄에 의한 대만군 지휘망의 마비, 대만사회를 교란시키기 위한 공중침투작전, 대만 방위력 파괴를 위한 해공전 그리고 수륙양용 작전에 의한 대만점령 등 아주 다양합니다.
이에 대한 대만의 전략을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최근 대만 국방백서에 따르면 대만군은 대만해협을 자연적 장애로 삼아 중국군의 무력행동 징후를 조기에 탐지하고 합동작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투태세와 능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킨다는 데 전비태세의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만군은 중국군 침공시 ‘전략적 지구와 전술적 신속성’의 원칙하에 각종 부대와 화력을 통합하고 민간자원을 총동원하는 총력전을 감행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대만은 또 제해 및 제공권을 장악해 중국군의 상륙작전을 저지하는 동시에 중국의 미사일 공격에 대해서는 ‘조기경보, 즉각대응, 다차원의 요격 및 결정적 파괴’지침에 따라 대응한다는 것입니다. 양측의 시나리오를 보면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대만 점령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어느 책을 보니까 중국의 대만점령 시나리오로 대만을 향해 200만 병력을 20만척의 어선에 나눠 태워 보내겠다는 대목이 있던데요, 현실성이 있는 것입니까.
“중국의 인해전술과 게릴라전술을 말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런 시나리오입니다. 중국이 초전에 본토에서 미사일을 대량으로 발사해 대만의 주요 지휘체계, 통신시설과 비행장 등을 파괴하면 하늘과 바다의 통제능력을 장악하게 될 것이고, 그 다음에 어선을 총동원해서 대만의 주요 항구를 봉쇄하고 수십만의 병력을 상륙시킨다는 것입니다. 현실성은 없다고 보아야겠지요.”
-말씀을 듣고 보면 당장 전쟁을 한다 하더라도 중국이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군요.
“그럼요. 특히 전쟁의 양태가 문제인데요. 중국군이 대만해협을 부분적으로 봉쇄한다든가 또는 어떤 도서를 점령한다든가, 미사일로 중요한 항로를 공격하는 정도가 아니라 대만섬을 점령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현재 중국군의 능력으로 대만을 점령하려면 대가가 너무도 큽니다. 다만 다양한 방식으로 위협을 가하면 주가가 폭락하고, 무역량은 뚝 떨어지고 투자가 줄어드는 등 피해를 줄 수는 있겠죠.”
-거꾸로 양안전쟁시 대만이 중국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범위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만에는 장거리 미사일이 없기 때문에 광저우(廣州)직할시 등 일부 가까운 지역을 공격할 수 있을 겁니다. 베이징은 멀어서 어림도 없습니다. 대만도 MTCR(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걸려서 300km 이상의 사거리를 갖는 미사일은 개발할 수 없는데, 대만해협만 해도 그 폭이 100마일(160.9㎞)이니까 말이죠.”
-중국은 대만과의 전쟁이 불가피할 경우 속전속결 작전을 펴 미국이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이런 점은 어떻게 보십니까.
“만약에 군사력을 사용한다면 그런 전략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겠지요. 양안간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제가 볼 때는 중국이 주도권을 잡을 텐데요. 중국이 전쟁의 목표를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시나리오가 달라질 것입니다. 중국이 대만섬을 점령하고 정권을 붕괴시켜서 완전히 새로운 정부를 세우겠다고 하면 전면전의 개념으로 작전을 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해협의 중요 항구를 봉쇄한 뒤 대만측의 반응을 보아가면서 정치적 효과에 따라 다음 수순을 결정한다면 전쟁의 양상은 또 달라질 것입니다. 혹은 일부 도서를 점령해놓고 대만에 대해 국민투표 실시 중지 같은 정치적 압력을 가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인민해방군의 전력은 평가하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현재보다는 미래의 잠재력에 더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할 것 같다. 아직은 지상군에 비해 공군력이 상대적으로 크게 뒤떨어지고, 해군 역시 대양해군으로 발돋움하기에는 다소 미약한 느낌이다. 그러나 핵능력이나 우주개발 속도를 보면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다. 문제는 이런 현실적 힘과 막강한 잠재력을 갖춘 중국군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이들의 과거 행동패턴 연구를 통해 전략전술상의 특징을 파악하는 일은 그래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중국의 대표적인 군사전략으로 알려진 적극방어의 개념은 어떤 것입니까.
“적극방어 개념은 국공내전과 항일전쟁을 거치면서 하나의 군사전략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이것은 전략적으로는 방어를 내세우고 있지만 전역(戰役)전투상으로는 항상 공세적인 성격을 띱니다. 그러니까 남의 공격을 받은 뒤에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공격이 임박하면 먼저 기선을 제압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는 기동전과 진지전, 유격전을 배합한다는 것이지요. 한국전쟁 때도 이 3개의 전술개념을 융통성 있게 배합했죠. 예를 들어 한국전쟁 마지막 단계에 휴전선 근처에서 전세를 굳히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진지를 파기도 했습니다.”
경고는 하되, 선전포고는 없어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도 적극방어의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까.
“그럼요. 적극방어의 개념에 따라 유엔군이 중국 쪽으로 넘어오기 전에 먼저 전략적 공세를 취한 것이지요. 특히 장진호 전투는 미해병 1사단을 7개 사단이 포위해서 섬멸전을 시도한 대표적인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1951년 1· 4후퇴 후 서울을 점령한 중공군은 한수 이남으로 기동전을 펼쳤지요.”
-중국이 군사력을 사용할 경우 그 정치적·군사적 목표는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정치적으로는 일단 안보위협을 배제하는 데에, 군사적으로는 자국을 위협하는 성격의 군사력을 파괴하는 데 목표가 있습니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대방 국가의 영토로 진격하기도 합니다만, 반대로 적을 끌어들여서 싸우지는 않는 전통이 있습니다. 베트남이나 인도와의 전쟁에서도 국경을 넘어 들어갔지요.”
-중국의 전쟁방식, 예를 들어 전쟁을 시작하고 종결시키는 양상에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중국은 전쟁을 개시하기 전에 항상 경고를 발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선례후병(先禮後兵)이라는 것이죠. 단, 정치적 혹은 군사적으로 반격 시그널을 보낸 후 전쟁에 들어가지만 선전포고 없이 기습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좌시하지 않는다’든가 ‘우리가 공격받으면 틀림없이 반격한다’는 표현이 정치적인 시그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표현이 정치지도자나 군사지도자로부터 나올 때는 중국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봐야 합니다.
반면 전쟁을 끝낼 때는 일방적으로 철군선언을 합니다. 절대로 상대국 영토를 점령해놓고 교섭을 하거나 항복문서를 받지 않습니다. 인도 베트남 러시아와의 전쟁 때 모두 이런 식으로 끝냈습니다. 다만 한국전쟁에서만 정전협정을 체결했는데, 그때는 남의 나라 영토였고 또 북한의 안전을 보호해줘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죠. 항상 일방적으로 철군함으로써 전쟁을 종결짓는 식이기 때문에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전쟁이 응징전의 형태를 띠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중국의 전쟁방식상의 특징에 어떤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까.
“이를테면 자국의 중화주의에 굴복하지 않는 번국(藩國)들, 그러니까 주변국들에게 응징을 해왔다는 역사적 배경을 들 수 있겠지요. 병자호란도 응징전 아닙니까. 항복을 받고 세자를 끌고는 갔지만 점령군을 주둔시키지 않았거든요. 이런 특징이 있다 보니까 미국처럼 아예 상대국의 정권을 교체시켜버린다거나 친미정권을 세우는 등의 정치적 목표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빛을 감추고 어둠을 기르자’
-중국의 대미(對美) 전략기조로 ‘도광양해 유소작위(韜光養晦 有所作爲)’라는 말이 유명합니다. 이 말의 뜻과 유례를 설명해주시지요.
“뜻을 풀이하면 ‘빛을 감추고 어둠을 기르며 일정한 역할만 한다’는 것이에요. 이게 원래 삼국지에서 유비의 생존전략으로 나온 것입니다. 유비가 조조의 식객노릇을 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조조의 참모들이 유비가 범상치 않으니 제거하라고 조언하는 것을 눈치챈 유비가 몸을 낮춰 조조와 참모들의 경계심을 풀도록 한 것입니다. 자신의 재능은 감추고 모호성을 기른다는 의미로, 한마디로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는 철학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중국의 자세가 뚜렷이 드러난 게 1993년의 은하호 사건입니다. 중국의 중형 화물선이 칭다오(靑島)항을 출발해 이란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미국의 첩보에 의하면 이 선박에 화학무기 생산 물질을 적재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홍해에서 미7함대가 불심검문을 했어요. 중국으로선 주권을 침해 당했다고 할 수 있지만 결국은 검색에 응했습니다. 힘이 약하니까 말이죠. 700여개의 컨테이너를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어요.
그러자 중국 내부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연판장을 돌리는 등 난리가 났어요. 그때 덩샤오핑의 말이 ‘우리가 아직은 힘이 약하니까 시간을 벌어 국력을 신장시켜야지, 지금 미국과 대립하여 싸우면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이런 내용을 모든 외교 국방관련 당·정 지도자와 관료한테 교육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런 것이 아직도 중국의 대미전략에 있어 기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한국과 미국은 동맹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대미 전략기조는 한국의 안보전략 수립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을까요.
“중국은 주한미군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미군의 한반도 주둔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고, 미국과의 역학관계로 볼 때 중국이 ‘주한미군은 철수하라’고 해봐야 나갈 것도 아니고 결국은 문제만 생긴다는 것이죠. 그러나 중국은 주한미군을 증강한다거나 한국이 MD 구축에 참여하는 데에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동아시아에서 심화시키고 장기화시키므로 국제정치의 다극화에 역행한다는 것이지요. 아무튼 한반도문제에 대한 중국의 이런 태도는 바로 몸을 낮추면서도 나름대로의 견제역할을 하는 전략기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어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중국이 건설적이고도 적극적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도 이런 전략기조가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북핵문제는 한반도의 안정을 해칠 뿐 아니라 잘못하면 미중관계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이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중국의 또 하나의 전략원칙으로 ‘남이 만약 우리를 공격하면, 우리도 반드시 남을 공격한다(人若犯我 我必犯人)’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이 같은 전략원칙의 등장배경과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 원칙은 1930년대 초반에 마오쩌둥이 처음 제기한 것입니다. 이 뒤에 한 구절이 더 들어갑니다. ‘남이 나를 공격하지 않으면 나도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人不犯我 我不犯人)’는 것이지요. 여기서 ‘범(犯)’은 공격으로 번역합니다만, 한국전쟁 때인 1950년 8월에도 이 말이 나왔습니다. 당시의 중국은 주변의 공산주의 국가가 붕괴되는 것을, 중국 자체에 대한 공격인 ‘범’으로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적극방어의 군사전략과 이 원칙은 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군요.
“당연히 서로 통하는 것이죠. 적극방어라는 것은 상대가 공격해오면 절대로 피해가지 않는 전략입니다. 중국은 외부에서 자국의 이익이나 주권을 공격해오면 절대 피해가지 않습니다. 한국전쟁 때 미국의 맥아더도 바로 중국의 참전가능성에 대해 오판했지요. 당시 병참도 약하고 제공권도 부족한 중국이 감히 한반도까지 나와서 싸우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결국 중국은 한국전쟁에 참전했습니다. 그 방식이 인해전술이긴 했습니다만.”
북한지역의 전략적 중요성
이제 마지막으로 한반도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부분에 대해 알아볼 차례다. 6·25 전쟁에 개입해 우리와 직접 맞닥뜨린 과거가 있고, 지금은 북한과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을 떼놓고는 한반도 안보를 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전쟁을 통해 깨달은 점도 많고, 얻은 것과 잃은 것도 많았을 것이다. 21세기 초엽, 격동하는 한반도 주변정세에서 중국군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통일한국과 중국의 군사적 대응관계도 궁금하다.
-중국의 입장에서 동북지역, 나아가 북한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은 어떤 것입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은 북한을 전략적 주변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완충지대화하는 데에 전략적 목적을 둡니다. 그러니까 이 지역을 자신의 영향권에 두지 못하게 된다면 최소한 강대한 세력이 단독 지배하는 것만은 반대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입장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북핵문제를 놓고 전략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북한이 중국의 국가이익에 자산이 될 것인가 아니면 부담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였어요. 진보파는 냉전적인 사고는 그만하고 새롭게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주류는 북한의 지정학적인 위치는 중요하다며 북한의 생존이 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중국은 북한 핵문제 해결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한반도 문제에 미국과 더불어 ‘공동’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북지역에는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는데, 중국은 이 지역이 소수민족의 관할지역으로 중화민족에 통합된 부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에 비우호국가가 들어서게 될 경우 자칫 잘못하면 동북지역에 대해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핵문제가 잘못 되면 탈북자가 대거 발생하게 되고, 이로 인해 한만국경이 불안정해지면 동북지역이 더욱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한국전쟁시 중국은 한국군이 단독으로 38선을 넘으면 개입하지 않겠지만 유엔군이 38선을 넘어오면 개입하겠다고 천명했고 그대로 실천한 바 있습니다. 중국은 한반도의 38선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까.
“1950년 10월1일 국군 3사단이 38선을 돌파한 날 밤, 정확히는 2일 새벽 2, 3시경일 겁니다. 저우언라이가 베이징주재 인도대사 파니칼을 불렀어요. 파니칼의 메모에 보면 당시 상황이 나오는데, 캄캄한 새벽에 저우언라이가 보낸 사람이 왔다길래 서둘러서 옷을 입고 나오니까 ‘우리 외교부장이 당신을 보자고 하니까 가자’고 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영문도 모른 채 외교공관으로 가니까 저우언라이 외교부장이 인민복을 입은 채 눈을 말똥말똥 뜨고 ‘당신 뉴스 들었느냐. 오늘 남조선군 3사단이 38선을 넘었다. 만약 미군이 38선을 넘어가면 우리는 군사 개입할 것이다. 이 같은 우리의 의사를 당신이 본국 정부를 통해서 미국한테 전달해달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당시 중국과 미국은 외교관계가 없었거든요.
중국은 한국군이 38선 이북으로 진격한 것은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이니까 간여하지 않겠지만 미군에 대해서는 방관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었지요. 내전의 성격과 국제전의 성격을 구분해서 대응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중국은 1950년 10월25일을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의 시작으로 보고, 그 이전은 내전으로 취급합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유사시 한반도의 사태진전에 대해서 깊이 연구해야겠지요.”
-북한의 핵개발은 일본의 핵무장을 부추기는 등 동북아의 세력균형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습니다. 중국군의 입장에서 북핵이라는 존재는 군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약화되는 것이겠죠. 그리고 북한의 대남도발을 억제하는 것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중국이 북한의 오판 소지를 완전히 억지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북한은 도발시 사태의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중국의 연루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만, 중국을 상대로 위협하는 등의 군사적 행위는 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그건 게임이 안 되는 일종의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니까요.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가 주변국에 미칠 파장을 크게 우려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일본의 핵무장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고, 다음으로는 미국의 군사개입에 구실이 되는 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만약 북한이 핵을 계속 개발하고, 미국은 선제공격도 불사한다는 식으로 치닫는다면 중미가 대립할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태를 염려하는 것이지요.”
한반도와 대만해협
-앞에서 중국의 몇 가지 전략원칙을 살펴보았는데요. 이 같은 전략원칙이 한반도의 상황, 특히 북핵위기 처리과정에 주는 시사점은 어떤 것입니까.
“지금 중국은 북한의 동맹국가가 아닙니까. 그런데 혹시 북핵사태가 악화돼 북한에 대한 (미국의) 봉쇄조치나 무력공격이 가해진다면 중국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가 상당히 민감한 관심사가 될 것입니다. 만약 이런 경우가 발생한다면 중국은 매우 신중한 계산을 하리라고 봅니다. 이 같은 사태를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볼 것인가의 여부를 예측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일단 자국의 국익을 훼손하는 것으로 평가하겠지만, 군대를 보낸다거나 혹은 어느 수준의 군사적 지원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속단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다만 미국의 지상군이 북한지역에 들어가지 않는 한 중국도 지상군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정도로 조심스럽게 전망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이 있어요. 바로 195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고조된 대만해협 위기지요. 그때 동맹관계였던 소련의 후르시초프가 말하길 ‘중국의 도발에 의해 빚어진 일이므로 그로 인해 중국 본토가 공격받더라도 소련은 지원해줄 수 없다’고 했거든요. 이런 역사적 사례도 북한에 대해서는 상당히 복잡한 의미로 전달될 것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중국의 대만점령이 좌절됐다고 하는데요. 당시 상황이 어땠습니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이 사태를 이용해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든가 대만이 중국을 공격하는 움직임을 차단하려 했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전쟁 개입을 결정하면서 동시에 대만해협을 중립화시킨다는 정책을 세웠습니다. 중국이나 대만 어느 측도 군사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지요. 이런 방침에 따라 대만해협에 7함대를 파견했던 것이에요. 미국의 조치로 인해 중국의 대만공격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됐어요.
당시는 중국이 건국(1949년 10월1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여서 아직도 대륙의 남쪽에는 대만군대의 잔당인 게릴라들이 활동했으니까 준전시상황이었어요. 중국이 대만을 해방시키겠다며 광저우 군구에 군사력을 집결시키는 등 대만에 대한 공격이 임박했었습니다만,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자 미국이 천명한 대만해협 중립화 방침에 의해 좌절된 것입니다. 그리고 곧 한국전쟁에 개입한 것이죠. 아무튼 중국의 대만해방전쟁 꿈은 한국전쟁 발발로 일단 사라지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한반도에서의 남북관계와 중국·대만의 양안관계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향후 양안관계의 사태 진전에 따라서 한반도의 안보환경에도 어떤 변화가 초래되지는 않을까요.
“기본적으로 미국과 중국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를 처리하려고 합니다. 왜냐 하면 전선을 또 만들어서 도움될 게 하나도 없거든요. 베트남전쟁 때 김일성이 프에블로호 납북과 1·21사태를 일으켰지만 미국은 또 하나의 전선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중국도 베트남에 파병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새로운 전선을 만들려 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냉전시대도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대만 문제에 미군이 개입할 경우 주한미군의 이동에 대해 한미간 협의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것이고, 일본은 후방기지화할 수밖에 없겠죠. 그렇게 된다면 중국도 미국이 발진하는 기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해당국가와 협의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는 외교적인 분쟁이라든가 민감한 문제가 떠오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동아시아가 안정될 수는 없겠죠. 그래서 우리로서는 중국과 대만이 모든 것을 평화적인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한반도에서 한국주도의 통일이 현실화될 때 중국은 어떤 움직임을 보일까요.
“중국으로서는 어떤 방식의 통일인가가 가장 중요할 겁니다. 남북한이 교류 협력을 통해 평화적인 통일로 가게 되면 중국은 개입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명분도 없고요. 또 한중간 교류협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해 있고, 중국이 실용주의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통일한국에 대해 우호 협력관계의 유지라는 현실주의 정책을 택할 것으로 봅니다. 다만 통일방식이 무력에 의한 것이 된다면 중국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실질적인 개입이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통일한국과 중국의 군사적 대응관계는 어떤 내용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까. 이 경우 한국군의 적정한 군사력은 어느 수준이라고 보십니까.
“제가 볼 때는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서 안보체제를 유지하는 윈윈 방식을 취해야지 군사적 대치관계로 가서는 곤란합니다. 다만 우리도 적정 군사력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어느 수준이냐가 문제가 되겠는데요. 이와 관련된 전문용어로 ‘방위적인 충분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의 주권국가로서 주변국의 위협이나 무력 침략에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이나 주변국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준의 방위적 전력은 구비해야 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군사문제를 한국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대처해야 할 것인지를 말씀해주시지요.
“중국은 과거부터 군사강국입니다. 정치적 목적이 있으면 그 군사력을 사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 중국과 정치적으로 잘 지내야겠죠.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한국이 중국과 싸울 이유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또 그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외교 실패를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동북아 국가들이 참여하는 협력안보체제의 구축도 필요합니다. 또 앞에서 살펴봤듯이 중국 권력구조에서 차지하는 군부의 위상이 높고 입김이나 역할이 대단히 큽니다. 따라서 중국 군부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한중간) 정치·군사적 신뢰구축을 강화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주권국가니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항상 만반의 방어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당의 군대로서 인민해방군은 전투대뿐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역할도 수행해왔다.
“그렇습니다. 피해를 각오를 해야겠지요. 무엇보다도 중국이 난처한 것은 대만사람을 외국인으로 볼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지금 중국은 대만을 내국(內國)으로 보는데 거기에 군사력을 사용한다면 정치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명분이 서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수밖에 없거든요. 또 나중에 대만을 통합했을 때에도 반발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중국은 ‘우리는 절대로 같은 민족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표명해왔기 때문에 대만인들의 반발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라크 상황을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보기에, 중국이 대만에 대해 군사력을 사용한다면 제한적·상징적으로나 가능하지 대만섬 자체를 완전히 장악한다는 것은 정치·군사적으로 대가가 너무 클 뿐 아니라 미국과도 부딪쳐야 해 어렵습니다. 중국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인민해방군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군은 여러 면에서 독특한 군대다. 당의 군대로서 부여되는 특수한 위상, 혁명군대의 전통, 인해전술에서 핵전쟁까지 구사하는 다양한 전술전략, 넓은 국토를 분담하고 있는 대군구 제도 등 우리로서는 하나같이 생소한 모습들이다. 인민해방군의 어제와 오늘, 구조와 편제에서 첨단무기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대 군조직의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보자.
黨軍으로서의 인민해방군
-먼저 중국군, 즉 인민해방군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그 성립의 역사를 간단히 말씀해주시지요.
“중국군은 1927년 8월1일 난창(南昌)폭동을 계기로 중국공산당의 주더(朱德)와 마오쩌둥(毛澤東)의 영도하에 주로 농민들을 조직해 만든 군대였습니다. 당시 중국공산당의 목표는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에 있었기 때문에 중국군은 혁명을 수행하는 군대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중국공산당의 영도를 받는 ‘당의 군대’라는 것이죠. 중국군은 인민을 동원해서 국가를 만들어낸 군대입니다. 따라서 중국군은 군 본연의 전투대 역할 이외에도 1927년에서 1930년 초에 걸쳐 강서소비에트라고 하는 최초의 해방구를 만들어서 통치행위를 하는 등 정치적 역할도 수행했고, 또 군대의 보급을 자급자족해온 데서 비롯된 경제적인 역할 등 3가지 역할을 맡아왔다고 하겠습니다.”
-중국군의 가장 큰 특징은 당의 군대, 즉 당군(黨軍)이라는 사실입니다. 당군이란 개념이 우리에게는 아주 생소하지 않습니까.
“당군에 대한 학설이 많습니다. 당이 군을 지배하는 형태다, 당과 군은 서로 공생하는 관계다, 또 군은 당 속에 통합된 형태다 등등 여러 가지로 분석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중국군은 당내에 통합돼 있으므로 ‘당내의 당군관계’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듯합니다. 이처럼 당과 군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습니다. 현재 중국공산당의 정책 결정을 대표하는 제16기 당중앙위원회의 정위원 198명 가운데 인민해방군 간부가 48명입니다. 군부 인사가 중앙위원의 22%나 돼 단일조직으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군이라고 했을 때 당과 군의 연결고리가 군의 당위원회이고 그 책임자가 정치위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현재 정치위원은 어떻게 배치돼 있고, 그 역할과 파워를 어떻게 보십니까.
“중국군에는 이른바 당위원회라는 게 설치돼 있습니다. 이것은 당과 군의 연결고리라기보다는 당위원회 자체가 하나의 집단적인 지도기구이자 정책결정기구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당위원회에는 당중앙위원회에서 파견한 간부와 인민해방군 총정치부에서 보낸 정치위원, 그리고 군사령관이 들어와 있고, 요즘엔 당기율검사위원회에서 파견한 간부들까지 있어 각각의 기능을 발휘하면서 당에 의한 군의 통제와 지휘를 제도화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군내의 당위원회 책임자, 즉 당서기를 누가 맡느냐는 것입니다. 당서기가 해당 부대의 수장이 되기 때문에 누가 그 자리를 맡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지금 중국 인민해방군 내의 사단급 이하 부대, 그러니까 사단 연대 대대에서는 정치위원이 대개 당서기가 됩니다. 그런데 사단보다 상위부대인 집단군에서는 정치위원이나 군사령관이 당서기가 되고, 그 상부의 7개 대군구는 사령원(사령관)이 당서기가 됩니다. 이 대군구의 사령원은 거의 모두가 당중앙위원회 정위원이고 과거에는 당 정치국에까지 진출한 적이 있었어요. 군구 사령원이 바로 당서기이기 때문에 당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부대 이동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국군대의 수뇌부는 사령원과 정치위원의 쌍두마차 체제라 할 수 있는데요. 이런 점이 유사시 군지휘권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요.
“흔히 정치위원과 사령원간의 관계를 논할 때 전자는 정치와 관련된 문제를 담당하고 후자는 부대 지휘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구분은 일단 기능상으로는 맞습니다만, 그 모든 결정은 당위원회에서 결정하고 당서기가 주관하죠.
그런데 지금까지 군 지휘권과 관련한 문제의 핵심은 정치위원과 사령원간의 갈등보다는 당이 군을 지휘하는 데 있어 당내 누가 군을 지휘하느냐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톈안먼(天安門)사태나 린뱌오(林彪)사건 때처럼 정치지도부에 균열이 생겼을 때 누가 군을 지휘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 경우 인민해방군은 당군이므로 당총서기가 군을 지도할 수 있고, 혹은 군통수조직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군을 지도할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군령권을 가지고 있고, 당총서기는 당권의 최고지도자라는 위상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과거 마오쩌둥 시절에는 당권과 군령권이라는 2개의 모자를 혼자 쓰고 있었습니다만, 톈안먼사태 때만 해도 자오쯔양(趙紫陽)이 당권을, 덩샤오핑(鄧小平)이 군권을 나누어 가지고 있었어요. 지금도 장쩌민(江澤民)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서 군권을 가지고 있고, 당권은 총서기인 후진타오(胡錦濤)가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평상시에는 국가나 당의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군령권을 근거로 7대 군구의 사령원에게 직접 부대 이동과 같은 중요한 사안을 발의할 수 있습니다만, 정치지도부에 분열이 생겼을 경우에는 미묘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중국군 관계자들에게 슬쩍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중앙위원으로 나간 군간부 48명은 장쩌민의 지시와 후진타오의 지시가 다를 때 누구 지시를 따르냐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대답이 재미있어요. 군인한테 물어보면 당연히 장쩌민 주석의 말을 따라야 하지 않겠냐는 반면, 민간인 간부들한테 물어보면 당총서기인 후진타오의 지시를 따르는 게 맞다는 식이에요.”
중국군 움직이는 8인의 실세
-경우에 따라서는 커다란 혼란이 초래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군대 내부에서 혼란이 생기기보다는 당지도부가 분열됐을 때 군이 분열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중국공산당 역사상 지금까지 군이 분열돼 정치리더십까지 분열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야전군은 지금까지 당의 명령에 충실히 복종해왔습니다. 그런데 문화혁명 같은 사태가 일어나면 4인방의 말을 들어야 할지, 군통수권자의 지시를 들어야 할지를 놓고 군이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인민해방군은 이런 정치적 동란을 아주 싫어합니다. 자칫 줄을 잘못 서면 나중에 숙청대상이 될 수도 있거든요. 이런 점을 살펴보면 사령원과 정치위원간 갈등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당중앙군사위와 국가중앙군사위가 중국군의 최고정점을 이루고 있습니다만, 군사정책 결정의 메카니즘과 핵심 실세는 누구라고 볼 수 있습니까.
“현재 중국 군사정책 결정의 핵심 실세는 중앙군사위의 구성원들입니다. 당중앙군사위와 국가중앙군사위는 구성원이 동일한데, 장쩌민 주석 아래로 3명의 부주석이 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후진타오로 당총서기인 동시에 군 문제에서는 부주석입니다. 나머지 두사람은 차오강촨(曹剛川) 상장과 궈보슝(郭伯雄) 상장이죠. 두 사람은 현역군인으로서 부주석이고 그 밑에 총정치부장 총참모부장 총후근부장 총장비부장 등 4대 총부장이 위원들입니다. 이들이 실질적으로 군사관련 정책을 결정하면 그 내용이 최종적으로 정치국에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중국군은 전투뿐만 아니라 정치공작을 하고 생산활동에도 참여한다는 점에서 다른 국가의 군대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군의 이 같은 역할의 특징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당군으로서의 인민해방군은 당의 명령에 복종하고 정부의 이익과 인민의 이익에도 봉사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전투대만이 아닌 정치공작대의 전통을 갖게 돼 농민을 동원하는 작업이라든가, 더 나아가 생산대의 전통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중국군이 생산대의 전통을 가졌던 대표적인 경우가 1958~69년까지의 대약진시기입니다. 이때는 대만해협에 위기가 고조됐던 시기로 전투훈련을 많이 실시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약진운동을 명분으로 내세워 군을 경제전선으로 내몰았습니다. 이 시기에는 농사일에서부터 댐건설, 탄광노동 등 각종 생산활동에 군을 투입했어요. 부식(副食)을 군대가 자급자족하는 건 기본이었구요.
이처럼 생산대의 역할을 함으로써 인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활동은 군 본연의 전문적 직업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이런 문제를 놓고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군부의 역할은 공산국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 소련에서도 그랬고 북한에서도 최근 선군(先軍)정치를 내걸고 군에서 농사를 다 맡아 하지 않습니까.”
중국 해군은 근해 적극방어의 개념하에 300만㎢의 해역을 작전통제지역으로 설정해놓고 있다.
“1980년대 초반 덩샤오핑이 군의 기업활동을 허용했어요. 그 내용은 군이 자급자족하기 위해 직접 농업과 공업에 관련된 기업에 들어가서 생산 주체로서 시장에 참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유명한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 나온 것입니다. 국방예산이 많지 않으니까 생산활동으로 돈을 벌어 쓰고 군인들에 대한 복지비용도 거기서 충당하라는 것이었지요. 또 군의 기업활동을 군인 가족의 취업확대에 활용하라는 내용도 들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업활동이 확대되다 보니까 총후근부를 비롯한 4대 총부는 물론이고 해군사령부, 공군사령부도 자회사를 두어서 기업활동에 나서게 됐어요. 그 결과 한때 군기업의 숫자가 2000개, 3000개를 넘기도 했습니다. 이런 추세가 15~16년간이나 지속돼 1997년에 장쩌민이 중지시킬 때까지 엄청나게 커진 것이지요.”
-군의 기업활동을 통해 올린 매출액이라든가 수익이 통계로 잡히지는 않았습니까.
“일부는 통계가 나온 게 있습니다만, 군 자체적으로 무기를 생산, 판매한 부분과 순수 기업활동을 통해 올린 수익 부분이 제대로 구분되질 않습니다. 군공기업과 군대기업의 생산물 가치총액은 1980년대 말 공식적 국방예산 210억위안의 30%에 해당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베이징 시내에도 군에서 운영하는 기업으로 알려진 바오리(保利)집단의 고층빌딩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오리 테크놀로지는 총참모부 산하 장비부의 자회사였습니다. 총후근부 산하 신싱(新興)이라든가, 총정치부 산하 카이리(凱利)가 대표적인 군기업입니다. 이들 군기업은 자회사가 또 자회사를 만드는 식으로 해서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죠. 이런 자회사는 군가족을 고용하기도 합니다. 또 각 지역으로 내려가면 대군구가 자회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광저우(廣州)군구 산하 자회사는 홍콩까지 들어가 기업활동을 했어요.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넘어오던 시기에 인민해방군이 들어가 합작회사를 운영했는데, 엄청나게 불공정 경쟁을 한다고 해서 말썽이 일기도 했습니다. 인민해방군 기업은 면세혜택은 물론이고 원료획득과 금융면에서 특혜를 받았는가 하면, 군소유 토지에다 공장을 건설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지요.”
-이 같은 군의 경제활동에 대해 중국정부가 규제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배경에서 규제를 하게 된 것인가요. 현재는 군의 기업활동이 많이 줄어들었습니까.
“앞서 언급한 대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속출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군의 부패를 방치하면 안 된다는 점이 고려됐습니다. 총후근부 중심으로 기업활동이 이루어지다 보니 후방일꾼들이 부패의 온상이 돼버렸다는 겁니다. 유사시 전방에서는 열심히 싸우는데 후방 조직이 부패해 사욕만 채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군은 황량(皇糧), 즉 중앙정부에서 내려주는 양식을 먹어야 말을 잘 듣는 법인데 그대로 두어 인민해방군이 돈이 많아지면 중앙을 우습게 알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또 군대가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토지나 자원 등의 조달문제를 다루다보니 성(省) 단위의 관료들과 관시(關係)가 생겨 서로 유착하는 현상이 나타나는가 하면, 군의 기업활동이 외교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제기됐어요.
예를 들어 홍콩주둔군은 기업활동을 못하도록 했는 데도 군이 다른 방식으로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과정에서 시장질서를 교란시켰다는 것입니다. 또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과정에서도 군기업이 재정이나 원료조달, 은행융자 등에 있어 일반기업과 달리 특혜를 받고 있다며 미국이 불공정경쟁 문제를 제기했을 정도입니다. 물론 군이 기업활동에 빠져들다 보면 군의 전문화가 안 돼 전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점도 고려했다고 봅니다.
이런 배경에서 1997년 말에 장쩌민이 직접 명령을 내려 4대 총부와 7대 군구, 성군구 집단군의 기업활동을 금지시켰습니다. 예외로 국무원 산하 군수공장과 군부대의 자급자족 체계에 의한 농사나 두부공장 돼지사육을 제외하고, 군이 투자해서 이익을 추구하는 활동을 법으로 엄격히 규제한 것이지요. 기업활동 금지조치 이후 군기업들이 민영화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제대군인이 중심이 되고 있어 효율성이 더 떨어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중국은 땅이 넓은 데다가 병력도 많아 군의 구조와 편제가 간단치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떤 구조로 돼 있습니까.
“중국군은 과거에는 중앙군 지방군 민병으로 이루어졌었는데, 1984년에 병역법을 만들면서 구조조정을 거쳤습니다. 그 결과 중앙군은 7대 군구와 그 산하의 24개 집단군으로 재편했고, 지방군을 없애는 대신 무장경찰대를 발족시켰어요. 그리고 민병과 예비병을 상호결합했습니다. 무장경찰대는 전투부대 임무보다는 지방의 소요를 진압하고 국경지대의 안정을 책임지도록 돼있습니다.
중앙군의 구조조정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총참모부 산하에 7대 군구를 두었는데, 각 군구는 합성방위사령부 형태로 조직돼 있습니다. 즉 군구사령관 산하에 공군구성군 사령관과 해군구성군 사령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7대 군구의 사령관은 보통 서너 개의 집단군과 함께 공군 및 해군부대를 거느리고 있어요. 그래서 공군은 집단군과 연계시켜 공군군구를 만들고, 해군은 북해함대 동해함대 남해함대로 나누어 해당 군구의 지휘를 받도록 했습니다. 우리의 경우처럼 3군 병립제도가 아닌 군구별 합성집단군 체제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토가 넓다 보니 각 군구가 관할지역에서 신속하게 육해공 통합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든 것이지요. 이외에 제2포병이라는 전략미사일부대가 있습니다.
-제2포병이 육해공군과 동격인 것이 이채롭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제2포병이 별도의 군조직으로 위상이 높아진 겁니까.
“제2포병은 핵무기와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450개의 핵탄두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통합해 운영하는 것이 제2포병의 임무입니다. 각 집단군에 속해 있는 전술 미사일인 M-11 정도가 아닌 중장거리 미사일은 전부 제2포병 휘하에 배치돼 있습니다. 이 제2포병은 1960년대에 저우언라이(周恩來)가 만들었는데, 총참모부가 아닌 중앙군사위원회의 지시를 받습니다. 6개 사단(기지) 사령부가 있고, 각 사단은 3개 여단으로, 1개 여단은 4개의 발사대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여단에는 동풍(東風)계열 미사일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한반도는 선양군구가 대처
-중국군은 7대 군구로 나뉘어 있는데요. 각 군구의 편제와 관할지역 및 그 특성은 어떻습니까.
“7대 군구는 베이징군구 선양(瀋陽)군구 지난(濟南)군구 난징(南京)군구 광저우(廣州)군구 청두(成都)군구 란저우(蘭州)군구입니다. 이 밖에 베이징 위수구를 비롯 상하이, 톈진, 난징 경비구가 있습니다. 베이징군구의 경우 6개 집단군 40여만의 병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양군구는 동북3성을 관할하고, 난징군구는 동남연해의 인구밀집지역과 공업지역 5개 성을 수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이밖에 광저우군구는 광둥(廣東)성을 비롯한 5개 성과 함께 홍콩을 관할하고 있고, 란저우군구는 핵무기 생산시설 및 미사일 시험발사 기지를 방어하는 임무를 띠고 있습니다.”
-7대 군구 가운데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은 어디입니까.
“우선 베이징군구는 수도 방위 임무를 띠고 있으므로 당연히 가장 중요한 곳이지요. 과거 소련을 가상적(敵)으로 삼던 시절, 소련이 기갑부대와 전략무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맞서는 베이징군구의 전략적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선양군구도 중요시되고 있죠. 광저우군구는 요즘 대만해협에 위기상황이 조성되면서 새삼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군구 산하의 집단군은 A급 B급 C급으로 구분해 각각 평지, 산악지대, 국경지대에 배치하는데, 평지의 집단군에는 기갑부대와 기계화부대 전술미사일 등을 많이 배치하고 있습니다. 베이징·선양·광저우군구가 바로 이런 평지 집단군 위주로 구성됐습니다.”
-한반도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선양군구의 배치실태랄까 전략개념은 어떻게 돼 있습니까.
“지역적으로 봐서는 선양군구가 한반도로부터 오는 위협에 1차적으로 대처하는 부대가 되겠죠. 창춘(長春) 하얼빈(哈爾濱) 잉커우(營口) 진저우(錦州) 툰시(屯溪) 등에 5개의 집단군이 주둔하고 있는데 기계화부대가 주력이고, 정보화가 확충돼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한반도와 관련해서는 유사시 선양군구가 관할구역으로서 일차적으로 책임을 집니다만, 만약 어떤 우발적인 계획을 만들어서 그걸 이행하려고 한다면 별도의 전선군(前線軍)을 편성하게 됩니다.
한국전쟁 때도 전선군을 편성해서 참전했고, 지난 1979년 베트남과의 전쟁에서도 해당 군구인 청두군구가 나서지 않고 별도의 전선군을 편성했습니다. 당시 총사령관도 청두군구 사령관이 아닌 전선군 사령관 양더즈(楊得志)였습니다. 아무튼 선양군구가 한반도를 맡는다면 지난군구는 일본을 맡도록 돼 있습니다.”
-중국군의 병력을 감축한다는 발표가 그동안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감군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중국군은 어느 수준까지 줄어들게 됩니까.
“1985년에 덩샤오핑이 중앙군사위 확대회의에 200명의 장군을 모아 놓고 100만 감군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때 철도병이나 지방군이 없어지고 무장경찰대가 만들어졌지요. 그후 1997년에 50만 감군방침이 발표됐고, 2003년에서 2005년까지 다시 20만을 줄이겠다는 언급이 장쩌민의 군사과학기술대학 연설에서 나왔습니다. 실제로 2003년에는 4만여명을 감축했습니다. 대신 해·공군의 작전효율성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해군은 칭다오, 뤼순, 상하이 등 9개 기지를 폐쇄하여 지휘제대를 보다 단순화한다는 것이고, 공군은 기존 5개 군단을 폐쇄하여 대군구 공군사령부에서 직접 비행사단을 통제하겠다는 것입니다.
육군의 경우는 신속대응부대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땅이 넓으므로 유사시 신속히 부대를 투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지요. 집단군을 편성하고 긴급대응부대, 신속대응부대, 공수부대를 만든 것도 이런 방침에 따른 것입니다. 저장성 항저우(杭州)에 2개 공수사단을 신규 배치하여 유사시 군용기로 분쟁지역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대만을 의식한 조치라고 보여집니다. 란저우군구의 전력보강은 신장(新疆)지역의 독립세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감군조치 등을 거쳐 현재 인민해방군의 총병력은 얼마나 됩니까.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 문건에 의하면 중국군 정규병력의 총수는 약 220만입니다. 무장경찰대 약 80만을 합치면 300만이 되는 셈이지요. 20만 감군이 예정대로 완료되는 2005년 말 중국 정규군은 약 200만 수준이 될 것입니다.”
-군병력의 숫자만 놓고 보면 세계에서 가장 많지 않을까요.
“숫자상으로는 가장 많죠. 그러나 중국의 지리적 여건을 봐야 합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남쪽의 베트남에서 파키스탄을 지나 중앙아시아 쪽으로 근래에 분리 독립한 나라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인도와 러시아 같은 대국과도 국경이 맞닿아 있지요. 동쪽으로 한반도가 있고 일본과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어요. 또 대만해협과 한반도에서는 미국과도 마주하고 있습니다. 아마 EU를 뺀 모든 강대국과 직간접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300만의 병력이 결코 많은 건 아니라고 중국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인구대비로 봐도 그렇구요.”
-중국군은 혁명군의 전통을 갖고 있어 다른 나라 군대와는 다른 점이 많다고 하겠습니다. 한때 계급제도가 폐지됐던 적도 있고 말입니다. 그래서 군의 정규화가 중요시되지 않았습니까.
“정규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군대의 계급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혁명군의 동지 개념 대신 정규군대의 계급개념을 도입한 것이지요. 문화혁명 때 계급이 폐지되었다가 1988년도에 부활된 데 이어 군관 복무조례를 제정해 계급정년제와 연령정년제 진급요건 등을 규정했어요. 과거엔 정년이 없어 노병(老兵)이 득실거렸어요. 지금 북한군에 정년이 없습니다. 한번 군인이면 영원한 철밥통이지요. 중국군은 이제 그런 군대가 아닙니다.
또 군대를 전문화하기 위해서 원교교육을 강조해요. 전에는 혁명군대라고 해서 사상력만 강하면 된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현대전의 전기(戰技)를 갖지 못하는 장교는 앞으로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자연히 원교교육, 그러니까 오늘날의 군사학교 교육을 강조하게 됐고 이는 진급의 필수조건이 됐습니다. 후근관리 개발연구 의무직종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1980년대 말에는 10만명의 문직간부를 탄생시키기도 했어요. 병참부서 간부의 약 60%는 문직간부로 채워지고 있는데, 이 제도의 도입으로 장교 대 사병의 비율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과거 관시문화가 군대에도 널리 퍼져 있었는데 이것도 엄정한 규율에 의해 통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고, 군복무자에 대한 복지혜택도 제도화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원병으로 입대해 10년 이상 복무하고 제대하면 출신 성(省)에서 직장을 보장해줍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나서 예편하면 연금을 주게 돼 있어요. 또 1997년에 국방법을 만들어 국가주석이 총동원령을 내릴 수 있게 했습니다. 인민해방군이 당의 군대라고 하지만 유사시에는 국가의 군대가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방비도 체계화해 국가의 재정과 국방소요를 상호 결합시켜서 책정하도록 했어요. 1980년 이후 이 같은 국방비 규정을 강력히 이행하고 있어 중국군을 전문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자력갱생의 무기획득 원칙
-중국의 무기는 과거 소련제 위주로 구성됐던 것으로 압니다만, 최근에는 독일이나 프랑스로부터 무기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중국군의 무기획득 원칙은 어떤 것입니까.
“중국군의 무기획득은 근본적으로 자력갱생의 원칙에 따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기의 기술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중국군은 무기수입을 하되 라이선스로 생산한다든가 기술을 모방하려 하지 대량으로 수입하지 않습니다. 우수한 무기 기술은 남이 주지 않기 때문에 자주적으로 개발해야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으므로 결국 외국 기술을 라이선스로 생산한다든가 모방생산한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일부 무기를 역설계해서 기술을 가져오자는 것이지요. 남의 무기를 대량으로 가져오면 그로 인해 외국에 의존하게 되므로 국산화를 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원칙을 갖고 있다 보니까 전력화에 걸리는 시간이 비교적 긴 편입니다. 수호이-27 전투기도 러시아와 도입계약을 했지만 60~70대밖에 들여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중국의 수요로 봐서는 얼마든지 도입량을 늘릴 수가 있거든요. 무기획득의 또 하나의 원칙은 선진국의 첨단무기 독점을 파기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무기는 남이 가지면 나도 갖는다는 것이지요. 선진국의 패권추구라는 건 결국 다른 국가가 못 가진 첨단무기를 가지고 약자를 들볶는 것이죠. 그래서 선진국가의 무기독점 그 중에서도 핵독점을 깨야 하고, 우주의 독점, 해양 통제의 독점도 깨야 한다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같은 무기획득의 원칙이 실제로 지켜지고 있습니까.
“핵독점은 이미 1964년에 깼습니다. 1955년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 이와 관련한 전략논쟁이 있었습니다. 논쟁의 핵심은 대만해협 위기가 언제 촉발될지 모르니까 미국과 대적할 수 있는 현대화된 재래식 무기를 들여오느냐 아니면 장기적인 측면에서 핵을 개발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결론은 재래식 무기의 현대화는 인민전쟁체계로 돌리자, 적을 끌어들여 싸우면 된다, 그러나 핵이 없으면 계속 강대국에 들볶일 것이니 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일부에서는 소련의 핵우산을 빌리면 된다고 주장했으나 마오쩌둥이 국가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소련이 중국의 이익을 보호해줄 것으로 믿을 수 없다, 자주국방 개념에 맞지 않는다 해서 핵개발쪽으로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이미 우주개발까지 구상한 것이지요. 거기서부터 발전을 거듭해 선저우(神舟) 5호 유인 우주선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중국은 병력을 감축하는 대신 현대화 첨단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지상군 현대화의 구체적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중국 지상군이 추구하는 방향은 기계화와 정보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의 이라크전쟁을 보면서 공중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기동력, 화력과 공수부대를 강화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병의 경우 장갑기계화해야 한다 해서 기계화를 추구하다가 최근에는 정보화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단거리 미사일도 과거의 포병화력을 대치시킬 수 있는 것으로 정보화에 합치된다는 것입니다.”
항공모함 보유계획 없어
-해군의 전략개념과 현대화 방향은 어떤 것입니까.
“해군은 근해(近海) 적극방어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원양(遠洋)이란 말을 쓰지 않습니다. 중국의 국익을 지켜야 할 해군의 작전통제지역으로 근해 300만㎢를 설정해놓고 있습니다. 이 해역은 근해라고 하지만 어느 면에서는 원양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함정이 커야 하므로 엔진 추진력이 좋은 구축함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구축함은 약점이 있어요. 함대함(艦對艦) 미사일은 그런대로 가능한데 함대공(艦對空) 미사일이 없다는 겁니다.
최근 새로 선보이는 구축함에는 모두 함대공 미사일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서브르매니 구축함을 러시아로부터 도입했는데, 함대함·함대공 미사일은 물론 대잠수함 작전능력까지 갖고 있어요. 정보체제와 작전통제체제가 있고 화력통제장치도 자동화돼 있는 구축함입니다. 중국 해군은 또 대만해협에서의 작전을 중요시하므로 잠수함의 세력 강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중국 해군이 항공모함을 보유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아직까지는 항공모함 획득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런 것 같아요. 첫째, 항공모함의 작전해역이 마땅치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해역인 대만해협의 폭이 100마일에 불과해 항공모함이 끼어들 수가 없어요. 즉, 대만의 지상미사일 사격권에 들어간다는 것이지요. 둘째, 운영비가 엄청나게 소요된다는 점입니다. 셋째, 중국이 항공모함을 보유하게 되면 일본 미국 등 주변국을 자극하게 된다는 것으로, 항모를 남중국에 띄우면 자칫 미7함대를 끌어들일 염려가 있습니다.
제가 이 문제를 가지고 중국 미국 양국의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해보았습니다만, 중국은 항공모함을 획득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항공모함의 운영을 위한 간부 양성과 함재기에 관련된 부분을 준비하고 있는 정도인 것 같아요.”
-중국은 공군의 작전반경이 짧아 강대국이 못된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공군의 전략개념은 어떤 것입니까.
“공군이 상대적으로 가장 부진한 편입니다. 역사적으로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인도, 베트남, 러시아 등과 전쟁을 치렀습니다만, 한번도 공군이 제대로 작전을 한 적이 없어요. 고작 연락기나 정찰기 역할을 했죠. 그리고 아직까지도 교리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에 나온 교리라 해도 제공(制空)에 관련된 교리라든가, 근접전투시 지상군 지원, 전장 차단, 후방지역의 중요한 표적을 공격할 수 있는 전략폭격 등등에 대해 제대로 된 교리가 없습니다. 공군장교들을 만나 공군 교리에 대해 물어보면 “부칭추(不淸楚)”라고 합니다. 확실치 않다는 뜻이죠. 그래서 지금 공군의 현대화 방향은 교리 발전을 부단히 추구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공군의 작전 개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방어에 있어서는 3선방어의 개념을 갖고 있어요. 우선 제1선에는 요격기를 배치합니다. 적이 영공을 침입하려고 하면 요격기가 미리 바깥으로 나가 요격을 시도합니다. 만약 이것이 실패하면 그 다음에 또 다른 요격기 편대가 출격하고, 그 다음에는 방공포나 방공미사일로 대응합니다. 현재 상하이를 빼면 주요 도시와 시설은 내륙 깊숙이 들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영토방공에 있어 중국은 아직은 요격기 체제에 의존하기보다는 방공미사일에 주로 의존하는 편입니다.”
방어위주의 공군력 운용
-유사시 중국 공군력이 한반도지역까지 커버할 수가 있습니까.
“외지에 멀리 나가서 전력을 투사할 수 있는 능력, 예를 들어 원정대를 따라가서 지원할 수 있는 공군력은 크게 부족합니다. 다만 기지에서 발진할 수 있는 육속지역에서는 가능하겠죠. 수호이-27은 전투 행동반경이 1500km인데 공중급유기 없이 한반도까지 오려면 산둥반도 쪽에다 기지를 형성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발진하면 한반도에 겨우 들어올 수 있죠.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공군력이 대만해협을 겨냥해 광저우지역에 몰려 있거든요. 거기서는 한반도로 날아오기가 어렵습니다. 중국은 3000km 전투행동반경과 대지공격 능력을 갖춘 수호이-30을 별도로 도입해 전력화하고 있어요. 또 최근 공중급유기를 도입했고 조기경보기도 일부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일단 공격보다는 방어 위주로 공군력을 운용하는 실정입니다.”
-중국은 일찌감치 핵실험에 성공한 핵강대국인데요. 중국군의 핵무기 보유실태와 총체적인 핵능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중국이 보유한 핵폭탄은 450기 정도고, 대륙간 탄도탄은 약 20기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전술핵도 가지고 있지요. 지금 중국은 지속적으로 핵무기 현대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요. 대표적인 게 고체 핵연료의 개발입니다. 지금의 액체연료는 발사할 때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다음에 로드미사일 개발입니다. 이것은 고정식이 아니라 이동하면서 발사할 수 있는 미사일을 말합니다.
핵미사일의 사거리 확장도 주요 목표입니다. 개발중인 동풍(東風)-41은 사거리 1만2000km에 다단계 재돌입체계를 갖춘 최신형 미사일로 구형 동풍-5A를 대체할 계획입니다. 그 다음에 2세대 미사일 내지 3세대 잠수함발사 미사일을 개량하고 있습니다. 대개 거랑(巨浪)-Ⅰ을 말하는데 이것을 고체연료로 개량하려고 합니다. 이 미사일은 사거리가 3000km로 파괴력이 큽니다. 그 다음에 SSBN에 해당하는 게 한 척 있는데, 이걸 2008년까지 영국·프랑스가 보유한 4척 수준으로 늘리려고 합니다. 또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크루즈미사일을 2005~06년에 개발해서 배치할 계획입니다. 그러니까 단계적으로 핵무기를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대륙간 탄도탄 20기의 전략전술
-중국군의 핵전력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강대국이나 인도 같은 경쟁국과 비교하면 어느 수준입니까.
“미국, 러시아와 비교하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떨어지죠. 미국과 러시아가 핵탄두를 2000기 수준으로 줄인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감축한 핵탄두를 완전히 폐기하는 게 아니라 안전한 장소에 옮겨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사시에 재조립하면 그만이에요. 현재 450기를 보유한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가 앞으로 1000기까지 감축하면 핵감축클럽에 가입하겠다는 것입니다. 프랑스나 영국은 질적으로 다른 면이 있겠지만 양적으로는 중국에 크게 떨어집니다. 인도는 더욱 낮은 수준이라 비교도 안 되고요. 전체적으로 중국의 핵전력은 세계 3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군의 기본적인 핵전략은 어떤 것입니까.
“지금 중국은 기본적인 핵전략을 최소억지전략에서 제한억지전략으로 전환하는 과도기에 있습니다. 제한억지전략이란, 예를 들어 과거 70년대에 미국과 소련이 가지고 있던 실증 파괴전략과 비슷합니다. 상대에게 어느 정도 얻어 맞더라도 나머지 핵을 가지고 보복하겠다는 것이죠. 중국도 그런 전략 개념에 따라 어느 정도의 억지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죠. 1964~65년경 마오쩌둥이 ‘우리는 상징적으로 핵무기 한두 개만 가지면 된다’고 했는데, 1970년대에 계속 양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때문에 80년대에 와서 비로소 핵전략이 본격적으로 나오게 된 것이지요.
중국이 제한억지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자국에 20기의 대륙간 탄도탄이 있으므로, 초전에 미국의 공격에 10기를 얻어 맞는다 해도 나머지 10기로 로스앤젤레스든 어디든 미국을 향해 날려보낼 수 있을 정도는 된다는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러시아에 대해서도 과거에는 ‘적에게 얻어 맞으면 우리도 볼세이 극장 정도는 때릴 수 있다’고 하다가 요즘은 ‘극동의 군사시설을 박살낼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중국의 핵전략이 상대의 민간시설 공격전략에서 군사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에 바탕을 둔 억지전략으로 격상됐음을 말해주는 사례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게 미국은 군사적 신뢰구축 차원에서 상대방을 데려와 핵시설을 다 보여주는데 비해 중국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러한 중국의 전략적 모호성은 제한억지전략의 일부분입니다.”
-미국의 미사일방어(MD)에 맞서기 위해 중국은 사거리 8000㎞로 미 서부까지 사정권에 두는 동풍31호 미사일과 우주에서 12개 이상으로 분리되는 탄두미사일인 MIRV 등의 개발을 상당히 진척시켰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습니다. 미국의 MD에 대처하기 위한 중국의 대응책은 무엇입니까.
“MD에 대해 중국이 구체적으로 발표한 것은 없습니다. 미국의 MD구상 초기단계를 놓고 본다면 중국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20기에 대응해 MD 100기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5대1이지 않습니까. 즉 중국이 탄도미사일 하나를 발사했을 때 미국측에서 5개의 요격미사일을 발사해 막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비율이면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또 미국은 중국이 탄도미사일 20기를 동시에 발사하지 못할 것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실시간으로 상공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하나씩 요격하면 알래스카에 20기의 MD체제만 구축해도 중국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결국 탄도미사일의 양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두 번째는 디코이(교란 물체)를 동시 발사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겠지요. 그리고 중국은 MD 자체를 공격용 무기로도 보기 때문에 자국 미사일 발사기지의 취약성을 제거하는 데도 신경을 쓰리라고 봅니다.”
-중국의 군사력이 미국에 필적할 만한 수준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 랜드연구소에서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2001년에 나온 QDR(4개년 국방검토서)을 보면 미국은 자신에게 필적할 가상의 적을 중국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이 따라오지 못하게끔 기술적인 갭을 만들려는 것이 미국의 기본정책입니다.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정보전 수행능력 아닙니까. 멀리서, 미리 보고, 먼저 정확히 때리는 정보전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중국이 1990~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이 보여준 정보전 능력을 가지려면 2020~30년은 돼야 할 겁니다. 중국은 이런 격차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능력을 절대 과대평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면대결보다는 ‘너는 너대로 싸우고 나는 나대로 싸운다(훏是훏的 我是我的)’는 논리로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는 인민전쟁 혹은 점혈(點穴)전쟁이라든가 급소를 때리는 전략 등을 부단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자체개발한 유인우주선 선저우5호 발사에 성공함으로써 중국의 우주군사력 개발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이 위성공격용 레이저와 미사일을 연구중이라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이런 우주개발 능력의 군사적 활용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우주선을 지구궤도에 진입시키기 위한 로켓기술은 미사일 기술의 핵심 아니겠습니까.
“중국은 이미 미국의 첩보위성에 달라붙어서 교란시키는 이른바 기생위성도 개발했어요. 2005년에 또다시 유인우주선을 발사할 예정이고요. 기본적으로는 우주정거장을 만든다는 계획입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2007~08년에 달 탐험선을 보낼 계획도 갖고 있죠. 우주공간에서의 군사적 활용에 대한 미국의 독점을 깨려는 중국의 계획은 부분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아직은 본격적인 우주무기 획득계획이 없습니다만 레이저빔을 일정 수준 개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기상위성이라든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GPS 기술은 중국도 상당한 수준으로 향상시켰다고 할 수 있어요.”
중국 국방예산의 내막
-중국의 올해 국방비는 약 31조원 규모로 11.6%의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14년 만에 처음으로 한 자릿수로 낮췄다가 다시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한 셈입니다. 중국의 공식적인 국방예산과 이에 대한 서방측의 시각은 어떤 것인가요?
“두 자릿수로 국방비가 증가한 것은 중국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02년에 중국 국방부가 발표한 것을 보면 국방비가 204억달러로 나와 있어요.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의 실제 국방비는 그보다 3배는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은 중국측이 발표한 204억달러도 PPP라고 하는 구매력 등가지수를 감안하면 몇 배를 곱해야 한다고 보고 있어요. 제가 한번은 중국군 간부들에게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150억~160억달러를 가지고 핵무기도 없이 60만 군대 유지하는 데에도 허덕거리는데 당신들은 204억달러 가지고 어떻게 그만한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 노하우좀 가르쳐달라’고 말입니다.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만 중국은 중요한 군사력 건설비가 국방비 항목이 아닌 아닌 과학기술비 예산항목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인민해방군 장교들의 해외연수 비용이 문화비에 포함돼 있어요. 이런 식으로 숨어 있기 때문에 중국의 국방비를 정확히 추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3배니, 4배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이지요.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구매력 등가지수를 고려하면 중국 국방비의 실제규모는 훨씬 더 크다고 봐야 할 겁니다. 지금의 추세로 본다면 2010년에는 1500억달러를 초과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