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무협소설 최초의 여성작가 진산.
- 그는 남성장르로 분류되는 무협소설계에서 전혀 새로운 경지의 무협소설을 선보이고 있다. 섬세한 문체와 비극적 서정성이 배어나는 줄거리, 추리소설적 기법 등이 진산 소설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진산의 이채로움은 여성이 남성 장르의 작가가 되었다는 보기 드문 사실 자체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진산이 남성중심주의를 상쾌하게 벗어난, 새로운 무협소설을 선보였다는 점이다. 물론 여성작가라고 해서 남성중심주의를 저절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작가도 남성중심주의에 동일화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진산은 무협소설의 남성중심주의를 상쾌하게 벗어난, 진정한 의미의 여성작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진산을 여성작가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여성작가란 말이 ‘무협소설의 여성적 세계를 개척한 작가’란 수준으로 진산의 의미를 제한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무협소설은 여전히 남성장르이며 진산이 구축한 여성적 세계는 단지 하나의 예외로 규정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진산이 단지 여성적 세계를 개척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의미에서 무협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이다.
최초의 여성무협작가
1969년생인 진산(본명 우지연)은 1994년 제1회 하이텔 무림동 무협공모전에서 단편 ‘광검유정(狂劍有情)’으로 대상을, 1995년 제2회 공모전에서는 중편 ‘청산녹수(靑山綠水)’로 우수상을 받았다. 진산은 1996년 장편 ‘홍엽만리(紅葉萬里)’를 출판하면서 본격적인 전업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두 편의 중·단편소설과 첫 장편소설에서 진산은 종래의 무협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참신성을 보여주었다. 진산은 이후 ‘색마열전(色魔列傳, 1996)’ ‘대사형(大師兄, 1997)’ ‘정과 검(情과 劍, 1998)’ ‘사천당문(四川唐門, 1999)’ ‘결전전야(決戰前夜. 1999)’를 잇달아 발표하며 참신함을 갱신해왔다. 이 계속적인 갱신에서 ‘같은 것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진산의 치열한 예술가적 태도가 발견된다.
그러나 부단한 갱신의 바탕에는 변하지 않는 ‘진산’이, 다시 말해 근본적이고 원형적이라 할 ‘진산’이 작동하고 있다. 진산이 연 무협소설의 새로운 지평은 바로 이 변하지 않는 ‘진산’과 부단한 갱신의 태도가 협력해서 이루어낸 성과라 할 것이다.
서정성 가득한 진산의 문체
진산 소설에서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문체이다. 좋은 의미에서 그는 ‘스타일리스트’라고 부를 만하다. 자신의 필명을 신동엽의 시 ‘진달래 산천’에서 따왔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그 문체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서정성이다. 그의 독자들이 좋아하는 한 대목을 인용해보자.
물에는 빛깔이 없다붉은 등(燈)을 들고 들여다보면 붉은빛이요, 푸른 등을 들고 들여다보면 푸른빛일 뿐이다. 달이 휘영청 뜬 밤은 온통 달빛이며, 매화락(梅花落) 만발한 날은 매화빛인 것이다.강절행성(江浙行省) 진회하(秦淮河)의 물빛은 그래서 찬연한 오색이라 말할 수 있었다. 강의 양쪽에 즐비한 유곽(遊廓)들로부터 새어나오는 휘황한 불빛들이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그렇게 오색 영롱한 강물 위로 배들이 떠다녔다.
‘색마열전’ 제1장의 서두이다. 진회하의 물빛에 대한 이 서정적 묘사는 단순한 멋 부리기가 아니라 서술 전체와 유기적으로 연관된다. 이 묘사는 한편으로는 진회하의 폐가(廢家) 귀회루에 살고 있는 주인공 소운비와 진설영의 이야기로 연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귀회루에 모여드는 다섯 명의 색마, 나아가서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저마다의 삶의 속사정과 유비적 관계를 맺는다. 그리하여 네 권에 걸쳐 펼쳐지는 긴 이야기를 끝마치면서 이 작품은 서두의 묘사를 다음과 같이 변화시켜 되풀이한다.
물에는 빛깔이 없다.붉은 등(燈)을 들고 들여다보면 붉은빛이요, 푸른 등을 들고 들여다보면 푸른빛일 뿐이다. 달이 휘영청 뜬 밤은 온통 달빛이며, 매화락(梅花落) 만발한 날은 매화빛인 것이다.진회하(秦淮河)의 물빛은 그래서 찬연한 오색이라 말할 수 있었다.사람들의 삶도 그와 같아 본래는 아무런 색깔도 없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안에 온갖 색깔들을 머금게 되는 것이다.도인은 도인의 색을.범부는 범부의 색을.색마는 색마의 색을.
서정적 문체와 서정적 비극성의 이야기로 새로운 무협세계를 선보인 진산.
다른 예를 더 들어보자.
그날 아침, 평원(平原)에 떠오른 해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너무 붉지도 않았고 너무 뜨겁지도 않았다. 너무 오래 머무르지도 않았고 너무 빨리 지지도 않았다.햇살의 광휘(光輝)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별들의 운행도 침착했고 바람도 습기도 지나치지 않았다.땅을 벗어난 모든 하늘의 일들이 그렇게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동안에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오천(五千)의 생명이 제 근본인 흙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생겼다.
첫 장편 ‘홍엽만리’의 서두로서, 관군과 무림맹의 연합 세력이 홍교(紅敎)를 토벌하는 장면을 묘사한 대목이다(여기서 홍교는 역사상의 백련교에 해당하는 종교이지만 동학의 모습이 곳곳에 투영되어 있다. 특히 5000명이 부적을 붙인 채 화살에 맞아 죽어가는 전투 장면은 동학의 우금치 전투를 옮겨놓은 것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일을 하늘의 항상적 운행과 대비시킴으로써 서정성을 극대화한 묘사는 이 작품의 서술 전체와 내밀한 연관을 맺는다. ‘정과 검’에 나오는 다음 구절은 또 어떤가.
…오감도 흐트러지고 마구 뒤섞였다. 소리가 보이고 사물이 들리고 냄새가 만져졌다.
진산의 서정적 묘사는 섬세한 감성과 절제되었으면서도 뉘앙스가 풍부한 언어, 그리고 야설록이 진산을 평하며 사용한 단어를 그대로 원용하자면 ‘수려한’ 문장 등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서정성의 내용이다. 진산의 서정성은 소녀적이고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 비극적인 서정성이다. 비극적 서정성을 핵심으로 한 선배 무협작가로는 1930년대에 활동한 중국 구파무협소설 작가 왕두루(王度廬)가 대표적이다(영화 ‘와호장룡’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가 바로 왕두루이다). 그러나 필자가 판단하건대 진산 쪽이 비극성의 열도(熱度)가 훨씬 높다).
진산의 비극성은 운명과 관계되는 것으로 카타르시스 효과를 수반하는 고전적 의미의 비극성으로 시작됐다. 첫 작품인 단편 ‘광검유정’에서 운명은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설정으로 나타난다. 신라를 배경으로 쓰여진 중편 ‘청산녹수’에서는 신라의 어린아이가 백제의 왕을 찔러 죽이리라는 무녀의 예언으로 운명이 암시된다. 첫 장편 ‘홍엽만리’에서는 술김에 누이동생을 범한 죄업이 주인공 뇌가도의 운명이고, 소홍은 그 운명적 죄업에서 태어났다(작가 자신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설정은 번안가요 ‘제비’에서 착안한 것이다. 멕시코 민요인 ‘제비’는 가난한 멕시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누이동생을 겁탈하고 평생을 죄의식 속에서 살다 죽어간 한 갱에 대한 노래라고 한다).
뇌가도가 홍교에 가입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전개되는 ‘홍엽만리’는 뇌가도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홍교라는 종교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홍교는 관부와 무림 양쪽의 공격을 받고 종교 내부에 갈등이 빚어져 멸망하게 된다.
홍교의 멸망은 유토피아란 현실에서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며 그것을 향한 추구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좌절을 통해 비극성은 더욱 고조되고 삶의 근본적 결핍은 독자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이는 비극적 유토피아주의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한편 뇌가도는 역시 비극적 운명을 가진 인물 검아(그녀는 홍교의 전 교주와 그의 여제자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그녀의 모친은 뇌가도의 칼에 죽었다)와 함께 소홍을 지키려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후일담이 붙어 있다. 십 년 뒤에 홍교의 후계자로 성장한 소홍이 서역에서 중원으로 돌아와 구대문파와 한 약속을 남몰래 실행하고, 뇌가도와 검아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신화적으로 보자면 죽음과 재생의 과정을 거쳐 운명의 죄업을 씻었다는) 암시가 주어진 것이다. 이 후일담은 일종의 승리의 전망을 제공하지만 그렇다고 비극성이 취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 전망은 어디까지나 비극성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운명이란 개념 자체부터 극복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극복될 수 있는 것은 이미 운명이 아니다. 그렇다면 운명에는 항상 굴종의 길만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진산의 비극성은 운명의 극복이나 운명에의 굴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운명에서 근본적인 결핍이라는 삶의 조건을 발견하는 데서 나온다.
진산의 초기 작품들. 삶의 근본적 결핍에 대한 탐색이 특징적이다.
나는 진산의 소설 중 ‘대사형’을 가장 좋아한다. 이 소설에는 두 명의 대사형이 나온다. 첫 번째 대사형 검룡은 장백쾌검문의 일곱 제자 중 맏이이며 용모, 능력, 인품 등 모든 면에서 가장 뛰어나다. 말하자면 전통적인 무협소설 주인공에 부합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강호에의 첫 출도에서 좌절, 유골이 되어 돌아온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검룡의 이야기가 아니라 검룡이 죽은 뒤에 남은 여섯 사형제들의 이야기가 된다. 검호는 원래 일곱 제자 중 둘째였으나 대사형 검룡이 죽은 후 새로운 대사형이 된다.
이 작품은 어느 모로 보나 전혀 대사형답지 못한 검호(검룡의 존재가 검호로 하여금 스스로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다는 측면이 있다)가 여러 곡절을 겪은 뒤에 명실상부한 대사형이 되는 과정을 서술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그렇다고 검호의 성격이 바뀐다거나 능력이 크게 발전하여 천하의 고수가 되는 것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천비록(天秘錄)을 둘러싼 무림의 음모와 암투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뒤에도 검호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 진정한 대사형이 된다. 오히려 그는 무공을 상실하고 적어도 10년 이상 다른 이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상태가 된다.
이 작품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숨겨진 비밀은, 원래 사부가 한 아이의 존재를 은폐하기 위해 다른 여섯 아이를 함께 키웠다는 것이다. 검호는 ‘매의 후예’이며 천비록의 소유자인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알았지만 발설하지 않는다. 그 아이가 누구인지가 이 작품에서 조금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호소력을 위해서는 오히려 그 아이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아야 한다. 전통적인 무협소설이라면 그 아이가 주인공이 되어 복수하고 성공하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다른 여섯 아이는 조연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사형’은 여섯 아이, 그중에서도 가장 못난(못남 속에 나름대로의 현명함을 감추고 있지만)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결핍을 조건으로 하는 삶에서 가능한 진정한 가치를 모색한다.
‘정과 검’은 진산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그러나 그보다 ‘감정의 진실’이라는 주제가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작품이란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이 작품은 주인공 설서영이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무정검 이결의 제자가 되기 위해 유주로 오는 데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변방인 유주는 도망자들의 최후의 거처이다(이 장소는 ‘대사형’에도 나온다).
천하제일검의 제자이자 아들인 무정검 이결은 사부인 아버지로부터 파문당하고 그 상처를 안은 채 유주에서 자폐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모든 관계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유인이 되기는커녕 자폐증에 빠지고 말았다. 그가 추구한 관계로부터의 해방은 관계의 거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제자로 삼아달라고 요구하는 설서영으로 인해 이결은 거짓된 자유인의 전망에서 벗어나 감정의 진실이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이제 설서영과 이결, 두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감정의 진실이다. 그들에게 감정의 진실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해주는 필요충분조건이며 진정한 자유인의 징표이다. 대부분의 무협소설에서 목적, 혹은 가치가 되는 복수, 신의, 정의, 무도의 완성 등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가령,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무엇이 치솟아올랐다. 생전 처음, 인생의 중심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음을 그는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야 비로소 자신이 진짜 자유로워졌음도 그는 느꼈다. 지금까지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던 가장 큰 족쇄는 바로 자기 자신의 손이었던 것이다.
라고 서술되는 자에게 그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정과 검’과 ‘사천당문’, 그리고 ‘결전전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사마세가의 음모와 관련된 일련의 곡절을 겪으면서 설서영과 이결은 차츰 감정의 진실에 접근한다. 그것의 이름은 사랑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성취와 동시에 유예된다. 이결은 지하 석실에 스스로를 유폐할 수밖에 없게 되고, 설서영은 이결이 문제를 해결하고 바깥으로 나오기를 5년째 기다리지만 그 전망은 불투명하다.
‘사천당문’의 주인공 당군명도 여성이다. 이 작품은 대가 끊긴 사천당문의 딸 당군명이 가부장제의 제약을 극복하고 문주가 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기둥 줄거리로 삼는다. 그러니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읽힐 여지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감상 포인트는, ‘정과 검’에서부터 뚜렷하게 나타난 감정의 진실에 대한 탐색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탐색의 주역은 당군명과 그녀의 비밀 보드가드인 무, 그리고 사천당문과 숙적 관계인 귀독문의 소문주 군승룡 등 세 명의 젊은이이다. 무는 당군명이 문주가 되었을 때 그녀를 죽여 배신의 아픔을 맛보게 하라는 어머니의 명을 어기고 계속해서 문주의 비밀 보디가드로 남는다. 군승룡은 사천당문에 대한 복수라는 가문의 사명을 외면하고 당군명을 사랑한다. 군승룡의 갈등은 가문과 사랑 사이의 갈등이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 자체는 의식적으로 확고하다고 하겠는데, 군승룡에 비하면 무와 당군명에게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없다. 무는 감정의 실체를 정확히 모르거나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고, 당군명은 문주가 되어야 한다는 절박한 목적의식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억압한다.
‘사천당문’의 제2부인 ‘결전전야’는 당군명이 문주가 되고 난 3년 후에 귀독문과 싸우는 이야기를 기둥 줄거리로 삼고 있다. 여기서 감정의 진실에 대한 탐색은 한층 심각해진다. 인혼술(引魂術)이 그 탐색을 위해 마련된 장치인데, 이는 막강한 위력을 가진 일종의 최면술이다. 인혼술에 걸리면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인혼술을 건 자의 암시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무는 당군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녀를 구하지 말라는 암시에 걸렸고, 군승룡은 갈등을 벗어나기 위해 당군명을 망각하는 암시를 걸어달라고 자청한다.
그러나 인혼술은 이처럼 자신의 뜻과는 무관한 행동을 하게 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인혼술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작중 인물들의 자기 감정에 대한 불신과 회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감정의 진실에 대한 극단적인 회의를 형태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감정에 대해 그것이 진실로 자신의 것이라고 확신할 근거를 하나도 갖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수많은 이데올로기적 계기가 작용하고 있고, 근본적으로는 무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그뿐인가. 심지어는 언어의 작용도 있는 것이다. 인혼술이 바로 이러한 것들의 은유라면 여기에는 포스트 구조주의적인 문제제기가 들어 있는 셈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뚜렷한 해결의 전망을 제시하지 않는다(혹은 못한다). 실은 이것이 정직한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좌절의 늪에 빠지는 것이 옳지 않음은 말할 나위 없다. 사천당문과 귀독문의 싸움이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연기된 뒤, 당군명이 일본으로 건너가는 무와 동행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감정의 진실에 대한 시험을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두드러지는 추리기법
지금까지 진산의 비극적 서정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진산 소설의 또 다른 측면, 추리소설적 구조에 대해 살펴보겠다. 무협소설은 대체로 추리적 기법을 담고 있다. 그런데 진산의 경우는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진산은 핵심적 모티브가 되는 비밀을 설정해놓고 그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서술해나간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홍엽만리’의 홍화문(紅花紋), ‘색마열전’의 기제진경(旣濟眞經), ‘대사형’의 천비록, ‘정과 검’의 역천신공(逆天神功), ‘사천당문’의 당산묘 사건의 진상, ‘결전전야’의 인혼술 등이 핵심적 모티브가 되는 비밀들이다.
이들 중 다수는 보물찾기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대체로 그 보물의 실제 내용이 알려져 있던 바와는 다소 다르다는 것이 진산 작품의 특징이다. 기제진경은 완전체를 이루는 데 실패하고(마치 좌백의 ‘야광충’의 결미처럼), 천비록은 비급이 아니라 범죄자들의 연판장이었으며, 역천신공은 인성의 상실이라는 부작용을 수반한다. 밝혀진 비밀은 존재의 결핍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일종의 환멸을 야기함으로써 진산의 비극적 서정과 융합된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비극적 운명 내지 결핍이 많은 경우 ‘가족의 손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를 작품별로 열거해보면, ‘광검유정’에서는 무정한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고, ‘청산녹수’에서는 남편이 무녀의 애국주의적 요구에 따라 아내를 버리고 자식을 희생시킨다. ‘홍엽만리’에서는 오빠가 누이를 겁탈하고 사부가 여제자를 범한다. ‘색마열전’에서 소운비와 진설령은 고아이며 혜와 역시 고아로 자란다. ‘대사형’의 일곱 사형제도 모두 고아다. ‘정과 검’에서 설서영은 아버지가 자살했고 이결은 아버지(이자 사부)에게 버림받는다. ‘사천당문’에서 당군명과 군승룡은 편모 슬하에 자랐고, 무는 부모가 있으나 가족이 해체된 상태이며 어머니와의 갈등이 심각하다.
이러한 운명 내지 결핍 속에서 인물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는 대부분 남녀간 관계에서 생성되는 감정의 진실이다. ‘광검유정’의 젊은 남녀, ‘색마열전’의 소운비와 혜와, ‘정과 검’의 설서영과 이결, ‘사천당문’의 당군명과 무 가 모두 그러하다.
그렇다면 진산의 소설은 ‘가족의 손상으로부터 남녀의 사랑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부모에 종속된 존재에서 독립된 인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대한 알레고리로 볼 수 있을까. 다른 요소들을 일단 유보한다면 그러한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
무협소설과 로맨스소설 뛰어넘기
그러고 보면 가족의 손상에서 남녀의 사랑으로 나아가면서 남녀간의 관계에서의 감정의 진실 문제에 초점을 두는 것은 소위 로맨스소설의 일반적 특징과 공통된다. 물론 로맨스소설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고 장르의 한계를 넘어서는 작품이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로맨스소설에서 감정의 진실은 깊이가 얕고 두께가 엷으며 감상적이고 소녀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산이 그리는 비극적 서정의 치열성, 감정의 진실이 함유한 깊이와 두께는 확실히 일반적인 로맨스소설과는 구별된다. 그 치열한 비극적 서정과 깊고 두꺼운 감정의 진실이 보기에 따라서는 무협소설의 형태를 빌린 로맨스소설, 혹은 로맨스소설과 결합된 무협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산의 소설이 일반적인 무협소설과 일반적인 로맨스소설을 뛰어넘는 예외적인 작품이 되도록 하는 원동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