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만들어진 대형공원과 예쁜 디자인의 시설물이 한강의 전부일 수는 없다. 어쩌면 한강은 그 자연성이 빛날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강의 생태를 되살려 서울의 생태를 복원하려는 시도, 모든 이가 서울의 중심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은 그래서 뜻 깊다. 강변을 뒤덮은 콘크리트 대신 풀과 나무를 심는 일, 동과 서의 끝자락에 생태공간을 만드는 일, 한강으로 연결되는 여러 지천의 생태계를 되살리는 일이 모두 이러한 뜻으로 진행되고 있다.
암사동 생태공원의 현재 모습(작은 사진)과 봄 이후 초록이 넘치는 풍경을 예상한 그래픽.
서울시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한강 생태공간화 프로젝트는 이렇듯 제 모습을 잃은 한강의 자연성을 회복하기 위한 작업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이를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전체에서 핵심 중의 핵심 부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한강이 지닌 ‘자연’으로서의 가치는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강 생태공간화 프로젝트는 콘크리트로 발라 만든 인공 호안(護岸)을 녹화하는 사업을 비롯해 강서습지 생태공원, 암사생태공원, 여의도샛강 생태공원, 한강으로 연결되는 12개 지천의 생태 복원, 자연형 침수공간 조성, 지천 합류부 생태개선 사업 등 총 7개 사업에 941억원을 투입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들 7개 사업이 각각 따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끼치며 ‘자연성’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 그 요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인공호안 녹화사업과 생태공원, 지천생태 복원 및 지천합류부 생태개선 사업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삭막한 콘크리트 강변을 풀냄새로 채우며
1980년대 이후 이뤄진 한강 개발의 핵심은 홍수 때마다 쓸려나가는 흙 대신 탄탄한 콘크리트로 강변을 뒤덮는 작업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강의 풍경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은 이의 눈에 삭막함으로 비친 것도 꽤 오래된 일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호안 녹화사업은 이 한강변에 꽃과 나무의 푸른 생기를 더하는 작업이다. 지금의 인공호안의 수리(水理)적 특성을 철저히 분석해 이를 단계적으로 자연형 호안으로 전환하는 사업으로, 2009년 12월까지 공사를 마무리한다는 목표로 진행 중이다.
잠시 짚고 넘어가자. 사전을 찾아보면 ‘호안’이란 ‘하안(河岸)이나 해안(海岸)에서 둑을 보호해 유수에 의한 물가선의 침식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 비탈면에 시설하는 공작물’을 말한다. 환경분야 전문가들은 현재 한강의 인공호안은 생태적인 기능이 극히 저조하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해왔다. 수분이 필요한 식물이 살 수 없고, 그 서식처가 돼줘야 할 물이 고이는 지역도 형성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의 인공호안은 한강의 평소 수위보다 9~12m 높은 위치에 옹벽을 쌓아 만든 것이라 강과 단절된 상태다.
이들 호안에 흙을 덮어 키 작은 나무와 벌개미취, 부채붓꽃, 비비추와 같은 자생초화류를 심어 생태녹지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 2006년 11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녹화작업의 첫 단계다. 이를 통해 한강의 물고기와 물속 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당연히 한강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강에 접근하기가 쉬워진다. 한강 호안의 86%를 차지하는 콘크리트 호안 72km 중 유속이 빨라 풀이 자랄 수 없거나 선착장 같은 곳을 제외한 62km를 자연형 호안으로 개선해 한강을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이 작업에는 총 214억원이 투입되어 단계별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촌지구에서 진행된 호안개선 시험공사 전(왼쪽)과 후, 을씨년스러운 콘크리트 블록 대신 싱싱한 녹색 화초들이 시민의 발길을 반긴다.
작업의 개요는 이렇다. 기존의 콘크리트 호안블록 중간중간에 흙막이를 설치한 뒤 흙을 30cm 두께로 덮는다. 이 위에 고수호안의 경우는 마른 날씨에도 잘 견디고 보기에도 좋은 풀이나 나무를 심고, 중수호안에는 물에 잠겨도 잘 견딜 수 있는 식물을 골라 ‘식물매트’를 만들어 흙 위에 붙이는 식으로 진행한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이해룡 녹화팀장은 “호안 주변에는 차량이 진입하기 어려워서 일일이 자전거도로로 다니며 사람 손으로 작업을 진행해왔다”며 “공사가 완료되면 한강은 훨씬 친환경적인 공간으로 변신해 도심 속의 푸른 강길을 시민에게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촌지구에서 2008년 진행된 호안개선 시험공사 후의 풍경.
호안 개선 작업과 함께 진행되는 생태공원 조성사업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2008년 4월 공사가 시작돼 12월에 개장된 암사동 한강둔치 생태공원과 확장공사가 진행 중인 강서 습지생태공원이 대표적이다. 16만2000㎡ 규모인 암사동 생태공원은 설계부터 전문가들에게 자문해 인위적으로 조성되는 시설물을 최소화했다. 공사 중에 뽑힌 갈대와 물억새를 공사 후에 다시 심은 것만 봐도 자연스러운 경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또 한강변에 자라고 있는 풀과 나무들의 씨앗을 뿌려 식생이 빠른 시간 안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이와 함께 암사동 생태공원에는 이용객들이 한강을 조망하며 날아가는 새들을 관찰할 수 있도록 강물과 나란히 배치된 관찰데크를 만들었다.
기존의 인공호안을 녹화하는 작업은 암사동 생태공원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뤄졌지만, 방법은 좀 더 ‘근본적’이다. 콘크리트 호안 1km 남짓을 철거해 완만한 경사지로 만든 것. 공원 중앙부에는 폭 2m의 탐방로를 만들어, 봄부터 가을까지 철따라 만날 수 있는 좀작살, 찔레, 조팝나무 같은 키 작은 나무와 원추리, 부처꽃, 참나리 같은 꽃과 풀을 심었다. 딱정벌레나 잠자리 같은 다양한 곤충이 살 수 있도록 자그마한 돌무더기와 물웅덩이도 곳곳에 만들어두었다.
생태공원 조성 후 자연형 호안.
한편 강서 습지생태공원 확장 및 리모델링 사업은 총 28억원을 들여 기존의 생태공원 34만㎡를 37만㎡로 늘리는 작업이 핵심이다. 이와 함께 기존 공원지역의 수로를 자연형으로 정비하는 한편 2만㎡ 규모의 테마별 습지생태원을 새로 만들어 연꽃, 부들, 물옥잠 군락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암사동 생태공원과 강서 생태공원은 한강이 스스로의 힘으로 그 생태계를 복원하도록 돕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강을 사람의 뜻에 맞춰 바꿔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강이 스스로 생태계를 만들어가도록 돕는다는 것이 기본개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태공원이 한강이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거점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더욱 고무적이다. 더 많은 새와 곤충이 공원을 집으로 삼아 인근지역을 날아다니며 한강 생태계를 확장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장점은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이 얻을 위로와 휴식이다. 한강이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그 모든 과정의 드라마가 생태공원을 찾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다. 탐방로와 관찰데크에서 생태공원을 즐길 시민들은 그를 통해 생명의 힘과 ‘푸름’의 위력을 몸으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
생태공원 조성 후 자연형 호안.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울에 물이 한강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과 북, 동과 서에 모두 12개 지천이 한강으로 연결돼 있지만, 이들 지천에도 홍수를 막기 위해 콘크리트로 옹벽을 쌓거나 인공호안을 쌓았다. 그러나 이 때문에 많은 지천이 말라버렸고, 물은 순화할 수 없게 되었고, 생태계는 무너졌으며, 도시환경은 더욱 삭막해졌다. 물이 줄어들수록 하천의 오염이 심각해진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한강으로 연결되는 여러 지천을 도심지의 녹색 휴식처로, 도심과 외곽을 연결하는 생태연결통로로 만드는 생태복원사업은 이 때문에 시작됐다. 여기에는 한강의 생태적인 건강성이 서울 전체의 생태적인 건강성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한강에 동서남북으로 연결된 각 지천 생태네트워크의 중심으로 만듦으로써 도시 전체의 자연성과 생태성을 되살린다는 콘셉트다.
서울 자연생태는 한강을 중심으로 한 동서 수경축, 외사산(外四山·관악산 덕양산 북한산 용마산)을 잇는 동그라미형 녹지축, 주요 지천을 중심으로 하는 남북 수경축, 내사산(內四山·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잇는 동그라미형 녹지축, 북악산-세운상가-남산-관악산으로 이어지는 남북 녹지축을 기본골격으로 삼는다. 한강으로 이어지는 지천을 생태거점으로 만드는 작업은 곧 남북 수경축의 복원 혹은 서울 전체 수경 생태망 구축을 의미하는 셈이다. 특히 이들 지천이 한강과 만나는 지점은 생태적으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암사동 생태공원의 한강변.
지천의 생태를 복원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고, 이는 과연 어떻게 이뤄지는가.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은 바로 지천을 ‘좋은 물’로 만드는 일이다. 한강 지천이 건천화되면서 잃어버린 ‘건강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환경’을 되살리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서울시 물관리국 하천관리과 등 관련부서에서 지천 유입부에 대한 엄격한 수질관리나 오염원 관리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수관을 정비하거나 소규모 하수처리장을 여러 곳에 새로 만드는 물리적인 정화처리 방안과 함께 습지나 식물섬을 설치해 생태적인 정화능력이 강해지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진행됐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건강하고 맑은 물을 흐르게 하려면 먼저 물 자체가 필요하다. 이른바 ‘유지용수(維持用水·하천의 형태를 유지하고 환경을 보전하는 데에 필요한 물)’다. 그렇다고 이 유지용수를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끌어오는 것은 하천의 자생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당 유역 내에서 물이 자연스럽게 공급되게 만드는 체계를 설계하는 작업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하류의 물을 상류로 끌어올리는 하상여과시설과 저류조를 만들어 지천에 꾸준히 물이 흐르도록 만드는 방안을 채택하고 있다. 이와 함께 물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는 낙차공이나 보(洑) 등 하천횡단시설을 철거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지하수를 뽑아 올려 맑은 물을 확보하는 방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강서 습지생태공원의 수로 확장 지역(왼쪽). 지천의 물 흐름을 원활히 하기 위해 진행된 낙차공 철거 전(위)과 후(아래).
이 같은 지천 생태복원 사업이 마무리되면 한강과 지천은 바야흐로 동서남북 간 생태계를 이어주는 매개체의 구실을 하게 된다. 철새도래지인 강서지역, 여의도와 밤섬을 중심으로 한 도심생태지역, 어류와 조류의 서식처가 자리한 강동지역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한강 중심의 ‘Eco-Network’라 부를 만하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 숨쉬는, 한강 그 이상의 한강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