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은 바다로 이어진다. 이 간단한 진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한강이 바다로 이어진다면 한강을 달리는 배는 바다로 나갈 수 있다. 한강의 사람들은 배를 타고 중국과 일본, 먼 대양으로 나갈 수 있다. 한반도 내륙 깊숙이 자리한 서울을 대양으로 이어지는 ‘항구도시’로 만들겠다는 꿈은 한강으로 인해 꿈이 아닌 현실이 된다.
인간의 문명은 예외 없이 강을 중심으로 탄생했다. 한반도의 젖줄인 한강도 마찬가지다. 고조선 이래 많은 부족과 국가가 한강을 중심으로 흥망을 계속해왔다. 이렇듯 인간이 강을 중심으로 모여들게 된 것은 강의 여러 효용 때문이다. 한강은 수천년 동안 사람들에게 식수와 농사지을 용수를 제공했고,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다. 그래서 고대국가로부터 지금까지 국가의 큰 임무 중 하나가 바로 치수였다. 홍수와 가뭄 등 재해를 막고 강의 운송 기능을 제대로 살린 국가는 선진국이 됐다.
한강은 지금도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 식수와 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과 자원을 실어나르는 운송 기능, 즉 하천 주운(river canal)의 기능은 거의 상실했다. 도로와 철도, 자동차와 기술의 발전은 가장 느린 운송수단으로 전락한 수로(水路·waterway)를 교통수단의 역사에서 끌어내렸다. 한강에서 배가 사라진 것이다. 선진국의 아이들에게 강을 그리라고 하면 그 그림에는 우선 큰 배와 요트가 등장하지만, 요즘 우리 아이들의 그림에는 배가 없다. 관광수단으로 전락한 유람선 외에는 실제로 강에 배가 다니는 광경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7년 4월 하이서울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행사에서 형형색색의 유등(油燈)으로 붉을 밝힌 모형 배들이 서울 한강시민공원 여의지구 앞을 시험 운항하고 있다. 중국 돛배, 타이타닉, 고대 북유럽선, 스위스 범선 등 세계 각국을 상징하는 이 배들은 페스티벌이 열리는 동안 여의도 특설무대 앞을 지나며 ‘유등 선박 퍼레이드’를 펼쳤다.
한강도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하천 주운의 기능을 충실히 해왔다. 조선시대 말기까지 소금, 새우젓을 실은 배가 충주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가 그곳에서 다시 목재나 곡물을 실어서 내려왔다. 임금께 진상되는 각종 조공도 한강주운을 통해 마포나루에 내려졌다. 고려시대 이래 경남 일대와 전남 일대에서 만들어진 자기류들도 뱃길을 타고 마포나루까지 들어왔다. 서해안 곳곳에서 자기류를 실은 배들이 발견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한 한강은 조선시대 말기까지 대(對)중국 무역의 전진기지 노릇을 톡톡히 했다. 조선시대 최대의 상업중심지였던 한양 종로 육종가가 마포나루와 인접해 있었고, 마포나루는 충주 남한강과 낙동강에서 남해와 서해를 거쳐 올라온 각종 자원과 물품의 집산지였다. 마포나루 인근에는 시장이 번성했다. 배들은 김포를 지나 강화 인근에서 임진강 물길을 타고 서해로 빠져나갔고, 거꾸로 양쯔강 주운을 타고 나온 중국의 배들은 서해와 임진강, 한강을 거쳐 마포나루로 들어왔다. 당시 한양은 바다를 끼고 있지 않았지만 한강 자체가 항구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한강이 다른 선진국의 대표적 강과 달리 하천 주운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일제의 수로교통 통제정책이나 무분별한 남벌(濫伐)과 무관치 않다. 철도와 신작로를 새로 만든 일제는 육로교통에 비해 통제가 어려웠던 수로교통을 막기 시작했다. 일몰 이후에 배의 운항을 금지하는 도선법(渡船法)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일제에 의해 자행된 한강변에 대한 무차별적인 남벌도 배가 다니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었다. 산에서 무너져 내린 토사는 강바닥을 채웠고 한강은 조각배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수위가 낮아졌다. 이후 분단체제가 고착화되면서 서해로 이어지는 한강 물길은 완전히 막혔고, 남한강 꼭대기에 팔당댐이 지어지면서 강의 수위는 더욱 낮아져 한강은 더 이상 배가 다닐 수 없는 강이 돼버렸다.
하지만 선진국의 경우엔 상황이 다르다. 하천 주운은 비록 1등 교통수단의 자리는 내줬을지 모르지만 문화관광의 메카로서, 생태환경의 보고로서 그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미국, 중국 등이 이동시간의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수백년에서 수천년 된 하천 주운을 유지, 보수, 신설하기 위해 매년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는다. 주운이 가진 막대한 환경적 효용과 항구와의 밀접성, 물 그 자체와 주변의 친수공간이 인간에게 주는 안식과 문화적·관광적 기능 때문이다.
2007년 7월3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 설명회. 이 회의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왼쪽에서 세 번째)은 “한강주운을 복원해 배로 연결되는 8곳의 수변도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최근 몇 년간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강의 사라진 뱃길을 다시 살려 하천 주운의 기능을 회복시키기로 결정한 바 있다. 한강을 조선시대처럼 수량이 풍부하고 맑은 강으로 되살림으로써 서울에 잃어버린 항구도시의 면모를 되찾아주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한강 르네상스의 ‘회복’과 ‘창조’라는 마스터플랜 중 워터프런트가 ‘창조’라는 계획 기조하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한강주운의 재탄생은 ‘회복’의 개념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목표는 한강주운의 복구를 통해 한강의 자연성과 역사성을 회복하고 동서남북을 소통시키자는 것이다. 한강주운의 복원은 곧 내륙인 서울의 항구화를 의미한다. ‘서해 연결 주운의 기반조성’이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8대 실현과제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1900년경 서울 마포나루의 풍경.
서울시는 한강주운과 함께 운송지원 프로그램의 개발과 그와 연계된 배후 교통수단의 구축도 검토 중이다. 용산 지역은 경부선, 경의선 철도가 연결돼 있고, 현재 진행 중인 철도정비창 재개발과도 맞물려 있어 장차 한강주운의 수변도시이자 국제비즈니스의 허브로 급부상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한강에는 이외에도 난지, 당인리(잠두봉), 반포, 서울숲, 뚝섬, 잠실 등 6개의 여객선 선착장이 새로 생긴다. 한강 전체가 세계로 나아가는 전진기지가 되는 셈이다.
또한 대형 페리급 여객선이 아닌 작은 여객선이 운행되면 한강과 인접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배를 타고 출퇴근하는 진풍경이 연출될 수도 있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한강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특화 유람선을 개발하는 한편 통근용 수상버스를 도입하고 현재 일부 구간에서 운행이 시작된 수상택시를 전면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조선시대 한강이 선비들의 문화공간이자 유람의 공간이었던 것처럼 새롭게 복원될 한강주운도 그에 맞는 명성을 되찾게 된다. 서울시는 한강주운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마곡과 난지, 여의도, 잠실에 각각 수상레저 시설과 마리나(요트 계류장)를 만들기로 한 바 있다. 카누, 카약, 윈드서핑, 요트, 조정 등 각종 스포츠와 레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한강물을 끌어들여 상업, 문화시설을 조성하는 마곡지구, 복합 수상레저시설이 들어서는 잠실 종합운동장 인근도 마찬가지다. 한강의 대표적 지천인 중랑천과 탄천에도 준설을 통해 수심 2.8m를 확보해 수상레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다.
서울시는 이처럼 한강을 서해주운으로 연결하기 위한 기반조성과 수상지원 시설 조성 작업을 2010년까지 완공키로 하고 총 1538억원의 예산을 투입키로 했다. 서해주운 개통 시기는 이르면 2010년 이후, 멀게는 2030년까지 예정돼 있는 상태다. 이처럼 시한이 매우 가변적인 것은 일차적으로 한강에서 서해로 빠져나가는 통로 구실을 할 경인운하가 정치적 결정에 따라 어떻게 될지 점치기 어렵다는 점에 원인이 있다. 또한 파주와 강화도를 지나는 노선조차 북한 지역을 통과해야 하는 까닭에 북한의 협조 없이는 운행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준설과 갑문의 정비가 선결과제
이처럼 한강주운을 복원하고 이를 서해로 연결하기 위해선 몇 가지 과제가 해결돼야 한다. 우선 대형 여객선 등 큰 배가 한강을 떠다니기 위해서는 수심과 수량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한강은 6·25전쟁 이후 토사의 침전으로 하상이 높아지면서 수량이 급격하게 줄었다. 강폭은 넓지만 대부분은 모래밭이었고 실제 물길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으면 가물어 수질오염이 가속화됐고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일어났다.
1968년에서 1979년까지 박정희 정권이 제1차 한강종합개발을 추진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이 시기 지금의 한강 제방이 콘크리트로 건설되었고 모래언덕이었던 공유수면을 매립해 반포와 압구정, 잠실과 같은 대규모 택지가 조성됐다. 그와 동시에 조선시대 아름답기로 유명했던 한강의 330만여㎡ 백사장이 사라졌고, 대신 현재의 여의도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 대공사로도 수량은 늘지 않았고 수심도 깊어지지 않았다. 제방사업을 통해 한강을 직선화하자 한강 물이 머물러 모이는 대신 서해로 너무 빨리 빠져나가게 됐기 때문이다. 수질의 오염도 가속화됐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수중보였다. 전두환 정권은 1985년 잠실대교 하류와 김포대교 아래에 각각 수중보를 만들고 암사동에서 김포에 이르는 38km의 한강 수위를 평균 2.5m로 유지하게 만들었다.
이들 수중보는 물의 유속을 느리게 함으로써 물은 계속 흐르면서 담겨 있는 수량은 늘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풍부해진 수량 덕분에 한강의 수질은 좋아졌고, 비록 짧은 구간이긴 하지만 유람선의 운항도 가능하게 됐다. 현재 한강 위를 떠다니는 한강 유람선이 운행된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최근 서울시는 이러한 소규모의 유람선 대신 바다와 강을 모두 오갈 수 있는 4000~5000t급 국제 여객선을 서해주운에 띄운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재 운항 중인 한강 유람선은 배가 물에 잠기는 깊이, 즉 흘수가 1.3m에 불과하지만 국제 여객선은 수심이 적어도 6m 이상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서울시는 준설공사를 해서 수심을 확보한다는 복안을 추진 중이다. 최근 환경공학의 눈부신 발달로 부유물질이나 환경훼손 없는 준설시설이 개발돼 이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 더욱이 현재 공사가 중단된 상태인 경인운하의 수심이 6m이므로 준설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해결할 과제는 수중보에 대형 갑문을 설치하는 일이다. 현재 한강 유람선이 잠실대교와 상암 선착장 사이 구간만을 뱅글뱅글 돌 수밖에 없는 것도 이 수중보가 배의 진로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수중보에는 우선 콘크리트를 쌓아 만든 고정보(固定洑)가 있고, 상류의 수량 조절과 저수로의 하상(河床) 청소를 위해 강북 쪽 200m에 수문 3개를 설치해서 만든 가동보(可動洑)가 있으며, 배가 수중보를 오르내릴 수 있게 만든 두 개의 갑문과 생태계의 보호를 위하여 만든 고깃길(魚道) 등이 있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지만 현재의 갑문으로는 대형 여객선이 다닐 수 없으므로 이를 정비해야 한다. 흔히 사람들은 물이 계단 모양으로 층을 이룬 갑문의 앞뒤를 배가 어떻게 올라가는지 의아해하지만, 사실 그 원리는 간단하다. 강 수위가 높은 곳에 배가 갑문 도크로 들어오면 수위가 낮은 쪽 갑문이 열리면서 물이 빠져나가 수위를 맞추고, 거꾸로 낮은 곳에 배가 도크로 들어오면 수위가 높은 쪽 갑문이 열리면서 물이 들어와 수위를 맞춘다. 이런 일은 남해와 낙동강을 가로막고 있는 부산 낙동강 하구언 댐 갑문에서 매일같이 일어난다.
2006년 10월 한강 잠실의 수중보에 설치된 물고깃길. 폭 4m, 길이 228m의 완만한 경사로로 만들어졌다.
대형 여객선이 오갈 수심이 준설에 의해 확보되고 수중보에 갑문이 만들어지면 한강의 서울지역과 한강 최하류인 임진강까지의 뱃길은 복원되는 셈이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한강주운의 서해 연결 부분이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해 서해로 연결되는 지점인 강화도 북측이 북한과의 군사분계선에 맞닿아 있는 지역이라 통행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민간 선박이 운항하려면 유엔군사령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서울시는 지난 2005년 한강 이촌에 있던 거북선을 경남 통영으로 내려보내면서 이 길을 잠시 이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길을 상시적으로 활용하려면 북한과 유엔사령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남북관계의 해빙과 경색에 따라 물길이 열리고 닫힐 우려가 있다 보니 이 물길을 정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대통령후보 시절 남북경제협력 구상으로 발표했던 나들섬 계획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들섬 계획은 경기도 강화군 교동도 북동측(강화도 북서쪽) 한강 하구 퇴적지 일대를 준설해 여의도보다 약 10배 넓은 부지(약 30만㎢)를 확보한 다음 남북경제협력지구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이 나들섬의 중심부로 군사경계선이 지나가게 되는데, 당시 이명박 후보는 “남측은 기술과 자본을 대고 북측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형태로 첨단 복합 산업단지를 만들고 거기에 남북경제협력 신도시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만일 나들섬 계획이 실행에 옮겨진다면 한강주운의 서해 연결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1990년 굴포천 방수로 공사로 시작했다가 환경단체의 반대로 건설이 중단된 경인운하를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굴포천 범람에 의한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서해까지 인공물길을 뚫는 것으로 시작된 방수로 공사를, 총 14.2km인 방수로의 폭을 배가 오갈 수 있도록 두 배로 넓히고 그 길이도 3.8km 더 길게 해 운하사업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무슨 연유에서인지 수공이 이를 민자사업으로 넘긴 뒤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현재는 공사가 전면 중단된 상태다. 이를 다시 수자원공사가 직접 자금을 투입해 조기에 완공키로 최근 정부가 방침을 정함으로써 한강주운의 서해 연결, 즉 서해주운의 완성이 더욱 현실화됐다.
경인운하가 완성되면 한강주운은 행주대교 인근에서 서해로 바로 향하게 된다. 경인운하의 구간은 행주대교 - 인천시 계양구 계양동 - 서구 백석동 - 서해의 총 19km다. 경인운하가 완성될 경우 한강에서 올라온 대형 여객선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화물 바지선의 운항도 가능할 것이다. 영종도 인천국제공항까지 뱃길이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40년 넘긴 한강주운의 꿈
서울시 측은 서해주운 프로젝트에 극히 신중을 기하고 있다. 벌써 기본적인 구상이 완성됐음에도 그 구체적인 사항의 공개는 조사용역이 완전히 끝나는 올해 상반기가 넘어야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서해주운 마스터플랜은 서울의 10년 후를 내다보고 계획된 사업으로, 끊어진 물길을 이어 중국의 상하이, 칭다오까지 갈 수 있도록 한강의 뱃길을 서해안으로 연결하는 사업”이라면서도 “도시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목표하에 현재 주운수로의 확보, 운행 여건에 적합한 선박 도입, 선착장과의 연계교통망 확충, 광역터미널 등 세부계획을 수립할 예정이지만, 내년 상반기 용역 보고서가 나와야 구체적인 청사진을 보여줄 수 있다”고 밝혔다.
한강주운을 서해로, 또 세계로 연결한다는 서울시의 계획은 절대 허황된 꿈이 아니다. 이 부분에서 상기해야 할 대목은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한강주운 프로젝트가 지난 40여 년 동안 다섯 차례에 걸친 타당성 조사에서 단 한 번도 그 경제적 타당성이 부인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역대 정권의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해 그간 사업 추진이 번번이 무산돼온 것 역시 사실이다.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한강운하를 극심하게 반대했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때 만들어진 정부 보고서조차 다른 강의 운하는 몰라도 한강운하의 경제적 타당성은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심지어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기도 했던 2007년 대선 당시 수자원공사의 대운하 조사 보고서조차 한강운하 구간에 대해서만큼은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실정이다.
그 때문일까. 서울시는 서해주운 프로젝트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 측은 한강주운의 복원에 대해 “한강을 1000만 서울시민과 세계인이 즐겨 찾는 세계적 명소로 자리매김하는 일이며 한강을 평화의 강, 생명의 강, 공생의 강으로 복구하는 작업과 다름없다”라고 주장한다. 과연 한강은 서해 뱃길의 복원을 통해 그 화려했던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서울시의 다음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